마검이란 대체 뭘까.
내가 지금 이순간을 맞이하기 전까지 생각했던 마검은 아무리 많이 봐줘도 일단 '검'이어야 했다.
"마검은 사용자가 죽으면 활동을 멈춰! 저 녀석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제 주인을 살리려고 할 거야!"
세네란의 외침을 들으며 검에 마력을 불어 넣는다. 그러면서 생각을 이어 나간다.
쥐는 순간 사람을 살인귀로 만들든 귓구멍에서 피가 나오도록 끝없이 수다를 떨든, 아무튼 검이라고 불리는 형태를 벗어날 것이라는 발상은 없었다. 그래, 많이 봐줘서 저 팔과 동화된 것 같은 형태까지는 그럭저럭 예상범위 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 외엔 전부 예상 밖이다.
-크르르! 컹! 컹!
그러다 보니 당장 내 눈앞에 있는 저 똥개새끼가 마검이라는 현실이 매우 낯설기 그지없다. 저건 아무리 좋게 봐주더라도 뒤틀린 황천의 이빨 달린 쇳물 덩어리지 '검'이 아니다.
"죽어!!"
심지어 마빡에 내 바늘이 박혀 시체가 되었어야 하는 놈에게 강제로 생명을 부여한다는 건 듣도보도 못한 성능이다. 저 정도면 검이 아니라 인간을 숙주로 삼는 괴생명체에 가깝다.
"너나 죽어라 언데드 유니콘."
죽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살아 있는 생명체라는 건 상상 이상으로 본능적인 거부감을 야기한다. 덕분에 내가 휘두른 검에 예상보다 많은 마력이 실려 버렸으나, 주저 없이 휘둘렀다. 저딴 게 정녕 마검이라면 아예 반갈죽을 시켜 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기에.
당장의 꼬라지만 놓고 보면 저것도 인류에게 있어 악마만큼이나 백해무익한 물건이다.
-피익!
마검을 반으로 쪼개버릴 생각으로 검을 휘두르며 아직 놈의 머리에 박혀 있는 바늘에 마법을 사용한다. 대체 무슨 힘이 작용했는지 몰라도 회전력과 관통력을 죄다 상쇄시켜린 놈의 머리를 뚫기 위해 다시 한번 회전하기 시작했다.
-까앙! 카가가가각!
하지만 둘 다 막혔다. 마검은 내 검을 물어뜯으려 들면서 갈라지지 않고 버텼으며, 도적놈의 머리에 박혀 있는 바늘은 격렬하게 회전하며 파고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마치 쇳덩이를 가는 듯한 소리만 낼 뿐 더 파고들지 못하고 있었다.
"크륵! 으그극!!"
그렇다고 해서 태연하게 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놈의 두 눈이 뒤집히며 어금니를 즈려물기 시작했다. 뇌까지 마검처럼 쇳덩이가 된 것인지 뭔지는 알 수 없지만 충격을 전부 상쇄시킬 수 있는 수준은 아닌가 보다.
-크르르르!
마검 역시 아까 바늘을 질겅질겅 씹었을 때와는 달리 지금은 그냥 물고 있는 것만으로도 벅찬 듯 파르르 떨고 있다. 내 입장에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랍기 그지없다. 마력을 발랐는데도 갈라지지 않을 정도의 강도라니. 저 개새끼인지 마검인지 알 수 없는 물건에 왜 그리 목숨 거는 놈들이 많은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졸지에 내가 놈의 움직임을 묶어 버린 꼴이 되자 예카트리나가 옆으로 치고 들어가며 외쳤다.
"엘드미아! 바늘 좀 쳐도 될까?"
"아예 가루로 만들어버릴 기세로 내려 쳐도 됩니다!"
솔직히 말해 놓고도 바늘이 아니라 머리를 치는 게 맞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예카트리나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날 놀라게 만들었다.
그녀의 워해머에 비하면 진짜 바늘과 다를 바 없는 첨단尖端을 노리고 휘둘러진 번개 같은 일격이, 마치 자로 잰 것처럼 깔끔하게 내려찍히며 굉음과 불씨를 일으켰다.
-까아앙!
"꺽!"
머리통이 통째로 뜯겨나가도 이상할 게 없는 충격이었을 텐데도 도적놈의 목이 꺾이는 게 고작이었다. 그래도 그 정도면 치명상이니 이번에야 말로 죽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찰나 저 위에서 세네란이 외쳤다.
"됐다!"
마법 용품을 팔아 황금의 마법사라는 이명을 얻게 된 이가 내뱉은, 많은 의미가 합축된 그 한 단어는 우리 모두의 긴장을 풀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실제로도 놈의 무릎이 바닥에 닿으며 그대로 뒤로 쓰러졌으니까.
"와, 세상에. 대체 저거 뭐로 만든 거야?"
일이 더 커지지 않아 다행이라는 안도감 속에서 예카트리나를 바라보자 그녀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바늘을 내려친 부분을 살펴보고 있었다.
워해머에 원래는 없던 구멍이 나 있었기에 나도 똑같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뜰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구멍을 뚫은 것도 굉장히 놀랍지만 제 바늘이 멀쩡할지가 걱정되기 시작하네요."
"가루로 만들어버려도 된다며?"
"그...럴 기세라도 괜찮다는 거였지, 정말 가루가 나면 가슴이 아플 거 같긴 한데..."
멋쩍게 웃으며 바늘에 마력을 주입하자, 다행히 반응이 왔다. 방금의 일격으로 훨씬 깊숙이 박혔으나 그럼에도 머리를 뚫고 나오지는 못한 바늘이 열심히 회전하며 시체에서 빠져나오려고 했다.
하지만 수 초가 지나도 바늘은 빠져나오지 못했다.
단순히 깊게 박혀서? 그렇다기엔 저놈이 튼튼한 것조차 마검의 능력이었으니 녀석이 죽음으로써 마검도 제기능을 상실하고 일반적인 시체로 돌아와야...
"제기랄, 예카트리나! 물러나요!"
-크어엉!
경고를 날리기가 무섭게 마검이 진짜 개새끼의 형상을 취하며 튀어 올랐다.
"흡!"
기겁을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지만 예카트리나는 순식간에 반응하며 짧게 쥔 워해머를 휘둘러 그대로 마검을 후려쳤다. 양손 무기를 토르가 묠니르 쓰듯 쥐고 휘둘렀음에도 볼따구를 후려맞은 개 형태의 마검이 제대로 저항조차 못해 보며 옆으로 튕겨 날아갔다.
"어? 어어? 이럴 리가 없는데?!"
얼빠진 소리를 하고 있는 세네란을 향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불신을 담은 시선을 보내주고 싶었으나 옆으로 날아간 저 똥개새끼가 바닥을 박차며 순식간에 튀어 오른 탓에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 짧은 사이에 비약적으로 덩치를 키운 마검의 꽁무니에서 죽은 도적놈의 시체가 거대한 꼬리처럼 비척거리는 듯 흔들리는 게 심히 기이하기 그지없다.
저 새끼를 대체 어떻게 상대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아실리에가 외쳤다.
"엘디! 그 마검은 미완성이야! 새로운 숙주를 찾기 위해 폭주하는 거라 잡히면 안 돼!"
대체 뭘 어떻게 하면 저게 미완성이고, 그럼 완성한 마검은 어떤 꼬라지를 하고 있는 것인지 정말 궁금했지만, 이번에도 물어볼 틈은 없었다.
"젠장! 일단 저 주둥이부터 막겠습니다!"
-피이익!
휘파람에 반응한 아홉 개의 바늘이 마검의 얼굴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놈이 아까처럼 물어뜯으려고 시도할 경우 최소한 놈의 이빨에 '잡히는' 상황은 나오지 않을 터.
허나 놈은 그런 예상을 깨버리고 날랜 움직임을 보이며 바늘을 피해 나에게로 달려들었다.
"어어, 저 새끼 학습한다!"
놈의 반응에 어디선가 센이 기겁하며 소리 질렀다. 짐승을 흉내 내는 게 아니라 진짜 짐승의 혼이라도 집어넣은 건가?
아실리에가 말한 '잡힌다'의 기준이 어디까지인지 모르겠으나 놈에게 몸이 닿아서 좋을 건 없어 보였다.
"엘드미아 물러서! 저지력은 내 쪽이 나아!"
그렇게 검을 휘두르려는 찰나, 다시 한번 예카트리나가 마검의 면상에 망치질을 시전했다.
-까앙!
쇳덩이 주제에 쓸데없이 디테일한 놈의 쩍 벌린 아가리가 위에서 짓눌러지는 충격을 못 이기고 닫히며 그대로 바닥에 박혀 버린다. 놈의 철로 만들어진 혓바닥이 제 이빨에 씹히며 카가각거리는 절삭음을 자아내는 사이, 이번엔 긴씨가 놈의 뒤편으로 달려가더니 도적놈과 마검이 연결된 팔을 자르기 위해 도끼를 휘둘렀다.
다행히 도적의 팔은 서걱하는 소리와 함께 쉽게 잘려 나갔다.
"시체에 화염 마법을 부탁하네!"
아까 내가 바늘을 뽑아내려 했을 땐 평범한 시체가 아니었는데 어째서 팔은 저렇게 쉽게 잘린 것인지 짧은 의문이 일었지만 그보다는 예카트리나의 워해머에 머리를 눌린 채 미친 듯이 발버둥 치고 앞 발을 움직여 예카트리나를 할퀴려는 마검을 저지하는 게 우선이었다.
"좀 잘려라!"
아까보다도 더 많은 마력을 담아 휘두른 검이었으나 이번에도 마검이 휘두른 앞발을 잘라 내지는 못했다. 그래도 반절 정도는 파고들었나? 마검이라는 것들이 죄다 이 모양인지, 사람을 많이 죽이고 피를 빨아 먹어서 강해진 것인지는 몰라도 정말 지랄맞게 단단하다.
검이 반이라도 박혀서 다행이었다. 그대로 바닥에 내려찍어 예카트리나를 할퀴려는 놈의 시도를 막을 수 있었으니까. 마검이 다른 앞발로 마지막 발버둥을 치려고 했을 땐 이미 긴 씨가 도끼를 휘둘러 나처럼 움직임을 봉쇄했다.
-크르렁! 크엉! 크엉!
"진짜 개인가? 이게 대체 어딜 봐서 검이야?"
온몸을 워해머에 실으며 마검의 머리를 누르고 있으면서도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내젓는 예카트리나였다.
"아실리에는 뭔가 알고 있는 거 같으니 이 녀석을 처리하고 물어보죠."
"그게 낫... 엘드미아!"
헛웃음과 함께 나에게로 가볍게 시선을 옮기던 예카트리나가 갑자기 고함을 내질렀다.
"이런 씨발."
거기에 몸이 반응하기도 전에, 내 검에 반쯤 잘린 마검의 앞 발에서 흘러나온 쇳물이 조용하면서도 빠르게 내 오른손에 감겨 왔다.
"엘디! 안 돼!"
"잡혔...!"
뒤통수를 후려맞은 것 같은 충격과 함께 말문이 막히고 주체하기 힘든 충동이 내면에서부터 치솟기 시작했다.
[죽여! 널 화나게 하고 있어! 널 분노하게 하는 것들! 다 죽여 버려!]
이 씨발 나쁜 엘드미아와 더 나쁜 엘드미아도 아니고...!
격통과 함께 들려오는 말소리에 나도 모르게 검을 놓고 머리를 움켜쥐었다. 귓가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기분이다.
"엘드..."
"물러..."
"피..."
마치 갑자기 고지대에 오른 것처럼 귀가 먹먹해지며 주변의 소리가 안 들린다. 그럴수록 두개골에서부터 울려오는 듯한 기이한 외침은 더욱 뚜렷해져만 간다.
[주변을 둘러봐! 널 적대하고 있어! 널 괴롭히려고 하는 거야!]
"날...적대..."
적대? 날 괴롭혀?
[맞아! 널 망가뜨리는 것들이야! 다 부숴 버려야 해!]
"날 망가뜨리는 것..."
절대 안 돼. 첫 번째는 어쩔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두 번은 있을 수 없어. 누구도 내 삶을 좆대로 망가뜨릴 수는 없어.
다 부숴 버릴 거야.
[맞아! 바로 그거야!]
"그러니...!"
[그러니까 당장 저...]
"마검을...!"
[...어?]
붉게 물들어 가는 시야 속에서 똑바로 마검과 눈을 마주쳤다. 분명 생물의 눈깔이 아님에도 진득한 감정이 휘몰아치고 있는 것 같은 그 눈을 보자마자 머리가 돌아버릴 것처럼 분노가 치솟았다.
너 왜 눈을 그따위로 떠?
나는 이를 드러내며 놈의 면상에 주먹을 후려 박아 넣었다.
-깨갱?!
"부순다!"
내 정신을 파괴하려고 드는 마검을 부순다.
처음부터 그 생각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