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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233화 (233/412)

마검魔劍.

엄연히 마신과 마족이 존재하지만 정작 마검은 그들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는 물건이다.

마법에서 파생된 수많은 마도구의 부산물이라 할 수 있는 이 물건에도 다양한 형태와 종류가 있으나, 기본적으로 마검은 생명체의 혼을 담보로 만들어진다.

스스로의 죽음에 대한 분노가 무기를 예리하게 만들고, 살아남고자 했던 생존 욕구가 적의 피를 마시며 자가 수복을 하게 만든다. 다양한 형태의 변형, 파생되는 마법, 검술 등등은 다 부가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런 건 마검이 아니라 마법검도 흉내 낼 수 있으니까.

당연하게도 골자가 되는 혼이 강할수록 자아도 강해진다. 그에따른 반동으로 무기라는 형태를 멋대로 벗어던지며 자신의 원래 모습을 찾아가려고 하고, 사용자를 침식하며 자아를 빼앗는다. 그리고 자신을 그 꼴로 만든 이들을 향해 맹목적인 분노를 표출하고 살육을 바란다.

그렇기에 마검의 통제에 실패하여 홀려 버린 사용자들은 살육을 저지른다. 절제를 하지 못한다. 그런 구조다.

그랬을 터인데...

"저, 저거 괜찮은 거 맞아요?"

어느새 일행들 모두가 수로의 공터로 모인 와중에 불안을 가득 담아 센이 질문을 던졌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 세네란은 대답해주고 싶었다. 조금도 괜찮지 않다고. 한낱 도적이 쥐고 폭주하는 것만으로도 엘드미아와 예카트리나 그리고 긴이라는 전사 셋이 달라붙어야 했다. 그게 마력을 사용할 줄 알며 전장에서 구르고 굴렀던 기사인 엔벨데조차 베어 넘기는 실력의 소유자를 다음 먹이로 삼은 상황이 괜찮을 리가 없었다.

분명 그랬을 터인데... 어째서인지 엘드미아는 주변을 돌아보지도 않은 채 짐승의 형태를 하고 있는 마검을 향해 주먹을 날리는 중이었다.

"에, 엘디! 괜찮은 거니?"

옆에서 아실리에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소리쳤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엘드미아는 그저 묵묵히 맹목적으로 마검을 공격할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은 명백했다.

분명 엘드미아는 지금 마검에 홀렸다. 마검이 강력한 것인지, 아니면 도시에서 저지른 학살로 충분한 힘을 비축하게 된 것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살짝 닿자마자 제대로 된 저항조차 못 해 보고 당한 게 맞았다. 그 상태로 마검을 공격하는 것이 뭘 의미하는지 이해한 세네란은 가볍게 소름이 끼치는 기분이었다.

-깨갱! 깽! 깽!

엘드미아의 사고방식. 자신을 향한 공격성에 대한 병적인 혐오감. 그 혐오감이 이성을 넘어서 본능에까지 새겨진 결과. 자신의 정신을 '공격'하는 존재조차 용납하지 않은 것이다.

-깨갱!

대체 뭐 하는 인간이길래 저러나 진절머리가 날 정도였으나 마검도 만만치 않았다. 마검은 충동적이지만 결코 멍청하지 않다. 굳이 엘드미아를 고른 것도 그가 가장 강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고, 정공법으로는 숙주로 삼을 수 없으니 붙잡힌 상태에서 소리 없이 몸을 흘려 접촉을 한다는 편법을 자발적으로 생각해낼 정도로 약삭빠른 지성을 지니고 있다.

그랬기에 마검은 아직도 엘드미아의 정신을 침식하려고 시도하는 중이었다. 여기서 자신이 '살아남으려면' 그 방법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기에 저 무자비한 폭력 속에서조차 포기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미 저렇게까지 됐으니 마검의 계획이 그대로 수포로 돌아가면 더할 나위 없겠으나, 언제 갑자기 엘드미아의 정신이 완전히 침식 당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보니 마냥 뒷짐지고 있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 엘드미아의 왼손에 닿아 있는 마검의 일부. 저걸 떼어내야 해요!"

거기까지 판단을 마친 세네란이 비장하게 해야 할 일을 입에 담았으나, 돌아온 것은 칼스의 맥 빠지는 질문이었다.

"어, 뭔 수로...? 우리 중에 가장 힘센 셋 중에서도 한 명 말고는 흠집조차 못 냈는데."

심지어 그 한 명은 지금 제정신이 아니지.

"지금 열심히 주먹질 중이니 엘드미아 님이 쓰던 검을 뺏어서 베면 되려나?"

"무기도 좋은 무기겠지만 저건 실력 문제야. 당장 예카트리나 씨가 휘두른 워해머조차 마검을 부수지 못 하는..."

"긴 씨! 도끼!"

센과 바이제의 부질없는 대화가 끝나기도 전에 예카트리나가 외쳤다.

"지금 엘드미아한테 신경이 간 것인지 마검의 저항이 약해! 당신 도끼를 정으로 쓰자!"

저항이 약한 것이지 없는 게 아니다. 한쪽 다리를 붙잡고 있는 긴이었기에 그 사실을 몸으로 체감하고 있었다. 그는 눈을 돌려 예카트리나에게 물어보려고 했다. 정말 괜찮겠냐고. 저렇게 미친 듯이 주먹을 날리고 있는데 우리 위치에서 살짝 실수라도 하면 엘드미아의 팔도 잘리고 자신들도 내장을 쏟을 수 있는데.

하지만 결연한 예카트리나의 눈과 마주치자마자 아무것도 물어볼 수 없었다.

"끄으응! 신호를 보내겠네! 엘드미아가 떨어지면 누가 좀 데려가주게나!"

가벼운 발소리의 주인이 일말의 주저도 없이 달려오는 걸 느끼며, 긴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 이 나이를 먹고 묘기를 부리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간다!"

쾅! 그 어느 드워프보다도 거구인 긴의 몸이 하늘로 치솟았다. 그 순간 예카트리나는 세상이 정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장대 높이뛰기를 하는 것처럼 자신의 도끼를 지지대 삼아 짐승 형태의 마검을 뛰어넘은 긴이 허공에서 빙글 몸을 돌리며 엘드미아의 왼팔에 시선을 고정한다. 평생을 함께 해왔을 그의 도끼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마검에게서 뻗어 나온 은빛 줄기를 노리고 휘둘러졌다.

엘드미아를 붙잡고 있는 그 줄기와 도끼 사이의 틈이 주먹 하나 정도 남았을 때, 예카트리나는 마검의 머리를 짓누르고 있던 워해머를 들어 올렸다.

"카스피-엘락시아!"

그리고 고향을 떠난 뒤 단 한 번도 입에 담아본 적 없었던 함성을 내지르며 전력을 다해 워해머를 휘둘렀다.

피투성이 워해머가 한줄기 섬광이 되어 엘드미아가 휘두르는 주먹을 피해 정확하게 긴의 도끼 위를 내리찍고.

-콰앙!

충격과 후폭풍이 세 사람을 제멋대로 밀어냈다.

붉게 물들었던 시야가 새하얗게 밝아지는 순간 내가 느낀 건 정체를 알 수 없는 부유감이었다.

왼손을 타고 오는 짜릿한 충격과 함께 얼굴에 강풍이 밀려온다 싶더니, 나도 모르게 균형이 어긋나 있던 몸뚱이를 마른 지푸라기 쓰러뜨리듯 밀어 버리는 강한 힘이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대체 무슨 일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머리가 안돌아간다는 느낌보다는 이전까지 너무 빠르게 돌아가던 머리가 정상 속도로 돌아오며 생기는 괴리감이라고 해야 할까?

분명 저 개새끼가 뭔가 수작을 부린 거까지는 명확하게 기억이 나는데 그 뒤로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는 것만 떠오르지 뭐 하나 똑바로 이해되는 게 없다. 남은 거라고는 저 새끼를 향한 깊은 빡침 뿐.

"엘디!"

"으왓?!"

그런 나의 정신을 붙잡는 건 아실리에의 돌발행동이었다. 결코 남들보다 크다고 할 수 없는 몸이면서 뒤로 날려 쓰러지려는 날 온몸으로 받아들려고 한 것이다.

덕분에 별 생각 없이 일단 바닥부터 구르고 볼 생각이었던 나는 옆으로 다가온 아실리에를 품에 안은 채 거하게 슬라이딩해야만 했다.

"괘, 괜찮은 거니? 어디 이상한데 없어?"

"방금 미끄러지면서 까진 게 가장 아픈 거 같은데..."

당연히 그녀가 걱정하는 건 그런 자질구레한 게 아니겠다만, 정말로 그 외엔 멀쩡하다.

꼴을 보아하면 내가 자발적으로 벗어난 게 아닌 건 분명했다. 저 마검인지 개새끼인지 알 수 없는 잡것은 차에 치인 고라니마냥 드러누워 발버둥 치고 있었고, 예카트리나와 긴 씨는 나처럼 바닥에 널브러진 몸을 이끌며 이제 막 자세를 다잡은 상태였다.

그 광경 속에서 긴 씨의 배틀액스 한쪽이 짓밟힌 깡통마냥 우그러져 있는 걸 보고 나서야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긴 씨. 그거 꼭 배상해드릴게요."

"껄껄. 금방 제정신으로 돌아온 거 같아 다행이구만. 솔직히 신경 쓰지 말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니 고맙게 받겠네."

천천히 몸을 일으킨 우리가 여유를 부리고 있었음에도 저 똥개 새끼는 반고리관이 망가진 것처럼 바닥을 기고 있었다.

"뭐야, 저거 왜 저렇게 다 찌그러져 있어?"

아닌 게 아니라 무슨 주먹만 한 돈가스 망치로 두들겨 팬 것처럼 머리 쪽이 잔뜩 우그러진 상태다. 정말 저거 때문에 못 일어나는 건가 싶을 정도로 꽤 중상으로 보여 물어보자, 내 품에서 아실리에가 어이없다는 듯이 대답해줬다.

"엘디가 주먹으로 팼잖아."

"...내가?"

즈언혀 기억이 없다. 하지만 아실리에의 말을 듣고 살펴본 건틀릿은 확실히 이곳저곳 찌그러진 흔적이 남아 있다. 마력 두른 내 검조차 베어내지 못 하는 놈을 두들겨 팬 것치고는 퍽 상태가 양호하다는 게 짧은 의문으로 남았지만, 일단은 놈이 무력화 상태라는 게 더 중요해서 나중에 고민하기로 하며 예카트리나에게도 감사를 표했다.

"고마워요 예카트리나. 덕분에 험한 꼴 안 당한 거 같네요."

"하하, 무사한 거 같아서 다행이야. 정말 식겁했다고."

마검의 움직임이 점차 약해지자 다른 동료들도 서서히 거리를 좁혀왔다. 솔직히 저놈이 아까처럼 난동을 부린다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보니 지극히 현명한 반응이었다.

[사, 살려줘.]

그렇게 포위망을 좁혀가던 찰나 곧 죽을 것처럼 헥헥 거리고 있는 마검이 말을 걸어왔다.

"이 개새끼가 이젠 목숨을 구걸하네."

"...엘디?"

[살려줘. 배신 안 할게. 살려줘.]

"...지금 마검이 뭐라고 말하고 있어?"

놈의 목숨 구걸에 어이가 없어 내뱉은 한마디에 예상치 못한 반응이 쏟아졌다.

뭐야? 이거 나만 들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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