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이 일단락 됐다고 생각했더니 가장 귀찮은 게 하나 남아버렸다.
[주인. 강해. 살려줘. 나 살고 싶어.]
이제는 크기마저 작아진 마검이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하기 시작한 것이다. 비굴하다는 표현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머릿속으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조금 힘이 없을 뿐이지 너무나도 해맑기 그지없었기에.
"이 똥개새끼가? 누구 마음대로 주인이야 주인은."
말도 뜯어먹을 수 있을 것처럼 거대하던 마검의 몸뚱이는 이제 중형견에 가까운 크기까지 줄어든 상태다. 크기 뿐만 아니라 거대했을 때에는 확실하게 늑대같은 꼴이었던 반면 지금은 무슨 액체 괴물마냥 형태가 구체적이지 못하다. 마치 뿌옇고 검은 안개에 둘러싸여 부분적으로만 형태를 짐작할 수 있는 수준이다.
덕분에 아직도 날 걱정하고 있는 아실리에를 제외하면 호기심과 신기함 그리고 두려움 한 스푼 정도가 섞인 시선들이 나와 마검을 두고 오락가락하는 중이다. 이 상황이 딱히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의문을 던지기는 편했다.
"그보다 이거 아까보다 어휘력이 떨어진 거 같은데? 왜 그러는 건지 혹시 아시는 분?"
천천히 머리가 제기능을 되찾으니 단편적으로나마 기억이 돌아와서 확신할 수 있었다. 저놈이 처음 내 몸에 손을 댄 순간 머릿속에 울려 퍼졌던 목소리는 그냥 사람과 다를 바 없었다. 그 방식과 목소리가 똑같은 걸 보면 분명 저놈이 말을 걸었던 것일 텐데...
"너무 많이 맞아서 어휘력이 저하됐나...?"
그러면 좀 많이 미안해질 정도로 멍청한 말투라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더니 세네란이 대답해주었다.
"점점 힘이 다하고 있어서 일 거야."
슬그머니 의견을 내놓는 세네란은 괜히 쓸데없이 조심스럽다. 사용자만 죽이면 된다고 자신만만하게 외쳤다가 예상을 벗어난 상황이 벌어진 탓에 아주 조금 자신감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거 사람이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참 쉽게 기가 죽는구만.
"힘이요?"
"사람의 피에서 얻은 힘. 그렇게 얻은 힘을 기반으로 제멋대로 몸을 구성한 게 슬슬 끝나가는 거지."
뭔 구조로 그런 마법적인 에너지 변환이 일어나는 건지 물어보면 끝도 없을 거 같아서 일단 속에 담아두기로 하고 다른 질문을 던졌다.
"왜 하필 개일까요?"
"그게 마검의 재료가 된 혼일 테니까."
뭔소리인지 이해가 안 돼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더니 세네란과 아실리에가 설명을 덧붙여가며 핵심 요약을 해줬고, 난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얘가 원래는 진짜 개나 혹은 그에 준하는 생명체였고, 검 하나 만들겠다고 어떤 미친놈이 그걸 잡아 죽여 넣은 거라는 말입니까?"
"대충 그렇지."
"미친."
인체연성 실험도 아니고 이 무슨 좆간의 부산물이란 말인가. 너무나도 악마적인 발상에 어이가 출타해 버렸다.
"마검은 다 그래요?"
"처음 마검이라 불리던 물건들은 다 그래. 후대에 이르러서야 마법이 발전하고 인공 혼과 함께 자체적으로 자아를 생성하는 방식이 연구되었지만, 그땐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완성도 높게 만들어진 마검은 자아를 지니고 감정에 기반하여 막강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얘처럼 미완성인 경우 완성형인 '검'이 아니라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되찾으려고 한다는 게 아실리에의 부가적인 설명이었다. 그래서 보자마자 미완성이라는 걸 알아챘던 거로구만.
이야기를 듣고보면 딱한 게 맞는데 이게 죽여댄 사람이 하도 많아서 더럽게 애매하네.
"쓰읍. 딱하긴 한데 그렇다고 안 쪼개기엔 저지른 죄가 좀 큰데...이 새끼 이거 사람 계속 잡아먹으려나?"
[안 먹을게. 나 말 잘 들어.]
뭔가 낌새를 느낀 것처럼 헥헥 거리며 바로 치고 들어오는 녀석의 뻔뻔함에 나조차 혀를 내둘렀다. 꼴에 개라고 사람 감정 파악에 능숙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에라이, 니가 말을 잘 들었으면 사람들이 그렇게 죽었겠냐?"
[진짜야. 나 말 잘 들어. 먹이가 다 죽여 버리라고 했어. 그래서 죽였어]
순간 얘가 먹이라고 말하는 게 이전 사용자인 도적놈이라는 걸 이해하느라 버벅이고 말았지만, 그다음이 더 압권이었다.
진짜 시키니까 한 거라고?
[나 먹이가 바라는 대로 했어. 그러다가 먹이 죽었어. 그래서 내가 바라는 대로 움직였어.]
"너 내 머릿속에서 막 죽이라고 지랄했던 건 뭔데?"
[주인, 그때는 주인 아니었어. 먹이라고 생각했어. 내가 살려면 그래야했어.]
씨발. 진짜 그냥 생존 욕구대로 행동한 것에 불과하다니 할 말을 잃어 버렸다. 그런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네란은 내 혼잣말아닌 혼잣말이 끝나고 나서야 조심스레 방금 전의 의문에 대답해줬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복잡한데... 결국 마검의 폭주는 감정적인 변화를 사용자가 조절하지 못 하는 경우가 태반이야. 피를 흡수할수록 강하게 만들어진 마검과 달리 사용자는 평범하기 마련이니까. 설계부터가 결국 무기이다 보니 주인의 의지를 반하는 행동은 안 해. 자아가 강할수록 좀... 많이 자의적인 해석을 할 뿐이지."
"피를 빠는 것도?"
"으음. 그것도 좀 설명이 필요한 부분인데, 마검을 물주머니에 비유해 보자. 처음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상태야."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허리춤에 달고 있던 가죽 수통을 꺼내보인 세네란은 그걸 거꾸로 뒤집어 내용물을 버리며 말했다.
"그리고 물이 전투에서 흡수한 피인 거지. 자아가 있기에 마검은 이렇게 물이 차 있는 상태를 '포만감'으로 인식하는데, 그 상태에서 만족하고 있다가 힘을 써야 해서 이렇게 피가 줄줄 새어나가면 급격한 허기를 느끼게 되는 거야."
"원래 피가 없는 게 정상인 상태인데도?"
"피를 마심과 동시에 '허기'를 이해하게 되기 때문이지."
참으로 악마적인 발상이다. 마검을 최초로 만든 새끼의 발상에는 악마도 기립박수를 칠 게 분명하다.
"결국 조절하기 나름이라는 거네요."
"무기니까."
짧지만 참으로 핵심적인 설명이었다. 솔직히 어지간한 수준으로 세탁기가 돌아가면 세탁기 째 반으로 쪼개버릴 생각이었는데 이건 그런 수준의 문제가 아니로군.
"...이거 종속시킬 수 있어요?"
"이미 엘디를 주인이라고 부르는 시점에서 종속된 거야. 어떤 형태로든 피를 마시고, 일종의 기싸움 끝에 엘디가 이겼으니 주인이라고 부르는 거지."
"끄으응...치료하려면 피를 줘야 하나?"
"응."
옆에 착 달라붙어 있는 아실리에의 대답에 난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마검을 바라보았다. 그 사이 감정적인 콩깍지가 씌인건지 봐도 봐도 측은하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너 이름 있냐."
[이름! 없어! 지어줘! 말 잘 들을게! 살려줘!]
참 아련하다. 빈말이 아니라 아직도 바닥에서 제대로 일어나지 못한 채 호흡기관도 없으면서 헥헥 거리는 모습이 과거의 기억과 놈의 정체성이 발현된 것에 불과하다고 하니 더 짠하다. 심지어 어중간한 꼬리까지 만들어가며 열심히 흔들고 있다.
인간의 손에 의해, 인간을 위한 도구를 완성시키고자 죽임 당하고 혼까지 뽑혔음에도, 저놈은 그냥 말 잘 듣고 꼬리 흔들고 싶어 하는 개인 것이다.
그 모습에서 내가 알고 있는 최고로 불쌍한 개가 떠올라서 자포자기 하는 심정으로 바늘을 뽑아 팔뚝을 긁어 피를 흘려보내줬다. 굳이 내 피를 줄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 불쌍한 꼴을 보고 있자하니 괜히 시체에서 피 긁어 먹이고 싶지가 않더라.
그리고 한참 혀를 낼림거리며 피를 마시는 녀석에게 이름을 지어줬다.
"넌 오늘부터 라이카다."
[이름! 좋아! 나 라이카야!]
"...그리고 나랑 같이 간다."
[좋아! 같이 가! 라이카 행복해! 주인 말 잘 들을게!]
옘병. 전생에 키웠던 개들이 생각나서 괜히 눈물이 나려하네.
"괜찮겠는가? 자네도 이미 각오하고 행동하는 거겠지만... 마검이라네."
긴 씨의 말에 난 그냥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했다. 저게 정상적인 반응이다. 마검이라는 건 결국 극단적인 경우에 치닫는 게 아닌 이상 내가 쓰는 물건이 아니라 팔기 위한 전리품이다. 도적놈이 겪었던 문제점은 너무나도 큰 리스크니까.
정신줄을 놓게 된다니, 나도 이번에는 위험한 상황에 놓였던 게 맞다. 주변에 누구 하나라도 다치는 일이 있었다면 당장 반으로 갈라놓았을 것이다. 그 시도를 사람 새끼가 했다면 주변이 멀쩡해도 일단 두개골을 쪼개놓았을 것이다. 그건 철저한 악의와 계산에 의한 거니까.
하지만 짐승이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친 걸 단칼에 죽이기도 좀 그렇다. 결국 같은 일이 한 번 더 일어나면 바로 쪼개버리자고 다짐하며 난 설렁설렁 대답했다.
"그냥 개 한 마리 키운다고 생각하죠 뭐."
할짝 할짝 피를 먹고나니 기운을 차린 것처럼 마검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형태를 굳히기 시작한다. 얼추 사족보행 동물이다 정도의 형태였던 것이 점점 제대로 된 얼굴을 갖추고, 허리가 생기고, 다리가...
"...너 그게 원래 네 모습이냐?"
[맞아! 라이카 모습! 원래 모습!]
헥헥 걸리며 제 모습이 만족스럽다는 듯 빙글빙글 돌며 꼬리를 쫓던 녀석이 그대로 앉으며 날 올려다본다.
"어, 나 이런 개 본 적 있어. 양치기 개? 목양견이라고 하나? 거기 개들 중에 저렇게 다리가 짧고 허리가 긴 개들이 많더라."
"저렇게 보니 쓸데없이 귀엽네."
"음... 솔직히 아까 봤던 덩치에서 크기만 줄어들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지."
얼굴은 완전히 개의 형상이라고 하기 힘들다. 이목구비는 거의 늑대형태의 투구에 가깝다.
하지만 저 짧은 다리와 긴 허리 그리고 풍성한 궁둥이는 전생에서도 너무나 익숙했던 개의 형상이었다.
"...그래, 털은 안 날려서 좋겠네."
[맞아! 라이카 털 안 날려!]
그렇게 나는 웰시 코기 한 마리를 분양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