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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247화 (247/412)

차후 위드라 씨를 통해 언질이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나는 라이카와 함께 세네란의 공방인 3층을 벗어났다.

다리가 짧아 슬픈 짐승을 품에 안아 든 채 털레털레 내려온 2층은 내가 올라가며 잠깐 흘겨봤을 때보다도 사람들이 많아 보였다.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 수도에 모험가 용품을 구입하는 유행같은 게 생긴 건가 싶어 잠깐 사람들을 둘러보았으나 역시 대부분의 고객들은 모험가다. 아무리 가벼운 복장이라고 하더라도 모험가 증표만큼은 꼭 밖으로 내걸고 있어서 그리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황금의 마법사라는 이명이 허투루 붙은 게 아니라는 거겠지. 어쩌면 아실리에하고 같이 왔을 때가 가장 사람이 적은 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1층으로 내려가자 거기는 더 가관이었다.

[라이카 저기에 있으면 분명 밟힐 거야.]

나도 같은 생각을 했기에 품에 안고 있던 라이카를 내려놓지 않았다. 목동견이었던 과거 탓에 꼬리가 짧게 잘려 있는 라이카였지만 저긴 꼬리가 문제인 수준을 진즉에 넘어섰다.

대부분 나보다 키가 작으니 숨이 턱턱 막힌다는 느낌은 없지만 참 징그럽게도 많다. 2층은 비싼 물건들 위주로 있는 것인지 대부분의 모험가들이 적급 이상이었던 반면 1층은 낮은 등급의 모험가들만 한가득이었다. 그들 사이를 분주하게 움직이는 종업원들 중에는 넬비도 있었으나, 딱히 인사를 할 정도는 아니었기에 조용히 가게를 벗어나기로 했다.

그렇게 계단을 내려와 번잡한 1층으로 걸음을 디딘 순간, 나를 눈치채고 반응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주인! 사람들이 쳐다봐!]

그냥 한두 명 정도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와 같은 반응이 점차 퍼져나가더니 몇 초도 지나지 않아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날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순간 모종의 습격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솜털까지 곤두서며 바짝 긴장하는 찰나 작은 웅성거림들이 생겨났다.

"진짜 단두대인가?"

"저 개랑 키좀 봐. 소문이랑 똑같잖아."

"세네란의 마도서관 물건을 애용한다는 게 진짜였나 봐."

"아까 장인 발쿤이 있는 대장간에도 모습을 비쳤다는 말을..."

진짜 세상 알다가도 모르겠다. 똑같은 소문을 듣고도 누구는 텃세를 부리며 습격을 하려 하고 누구는 연예인 본 일반인처럼 반응을 하네. 다른 건 몰라도 슬금슬금 길이 열리는 건 참 마음에 들었다.

그 외의 모든 건 별로였고 말이지. 그들을 빠르게 지나쳐 도서관을 벗어날 때까지도 뒤에서 내가 진짜 단두대냐 아니냐를 두고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었기에, 난 라이카를 내려놓고 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다행스럽게도 열성팬처럼 쫓아온다던가 뒤를 캐는 행동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조금이라도 상식이 있다면 별명이 단두대인 인간의 뒤는 밟지 않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겠지만 워낙 상식적이지 못한 일들을 많이 겪다 보니 괜히 조심스러워졌다.

"쓰읍. 이거 나중에 집에 쳐들어오는 잡것들까지 생기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물론 그랬다가는 역사에 길이남을 죽음을 안겨줄 생각이지만 겁나지 않는 것과 귀찮은 건 항상 별개의 문제지. 그런 일이 일어나면 또 한바탕 갈아엎는 작업에 들어가야 할 게 분명하니 상상만 해도 피곤해진다.

그 뒤로도 꽤 다양한 시선들이 나와 라이카에게 쏠린 탓에 라그니스의 저택에 도착했을 무렵엔 괜스레 지치고 피곤한 상태가 되어 있었다. 애써 마른세수를 하며 정신을 차린 뒤 방문 의사를 밝히고 정문에서 서 있자 저 멀리서 익숙한 얼굴이 마중을 나와주었다.

"오랜만에 뵙는군요 엘드미아 경. 그간 많이 바쁘셨나봅니다."

"오랜만입니다 레니사 경. 이래저래 사건사고가 따라오는 체질인 거 같더군요. 그보다 이제는 일개 모험가에 불과하니 경은 빼주셨으면 합니다."

갑옷없이 제복만 입은 보기 드문 모습으로 반갑게 나를 맞이해준 레니사는 안쪽으로 안내해주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간의 업적을 따져 보면 오히려 작위를 받지 못한 것이 이상하니까요. 귀족원에서 강경하게 반대했다고 들었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표면상으로는 왕실과 대척점에 있는 귀족원이니 그녀의 반응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난 거기에 적당히 맞장구치며 레스롬 공작에게 나름대로의 감사를 표할 방법을 찾아보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쪽도 그쪽 나름대로의 이득을 위해 조율을 한 것이겠으나 내 입장에서도 꽤나 만족스러웠으니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한다고해서 나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개는...?"

"아, 어쩌다 보니 기르게 된 애완견입니다. 똑똑한 아이니 실례가 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라이카 똑똑해!]

당연히 라이카의 자신만만한 외침이 레니사의 귀에 닿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제스쳐는 볼 수 있었고, 라이카의 반응에 가볍게 놀라면서 웃음을 터트린 레니사는 별다른 불평없이 들여보내주었다.

걸음을 옮기면서 어떤 방법으로 레스롬 공작에게 감사 편지같은 걸 보낼까 생각하다 보니 갑자기 몽순이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걔의 행방이 묘연하네. 아직 수도에 있다면 편지 전달 정도는 들어 줄 것 같은데 말이지. 어쩌면 엔벨데 저택 때 도와 줬으니 할 만큼 했다고 여기고 돌아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걔한테도 고맙다는 말 정도는 했어야 했는데 경황이 없어서 새까맣게 잊어 버린 게 좀 아쉽군.

잠깐 딴 생각을 하던 걸 멈추며 앞장서고 있는 레니사를 바라보자 그녀는 시녀들에게 능숙하게 지시를 내리는 중이었다. 이전보다 집사적인 면모가 더 강해진 것이, 말로 지시하는 게 아니라 사전에 예정돼있던 일들을 눈짓과 손짓만으로 진행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집사장이다. 원래 기사들은 이런 겸업을 달가워하지 않는 편인데 역시 충신은 충신인 것인지 그녀에게서는 그런 기색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레비엥 변경백께 레니사 경이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그 모습에 감탄을 숨기지 않고 입에 담자 잠깐 두 눈을 동그랗게 뜨던 레니사는 옅은 미소로 화답하며 접견실의 문을 열어 주었다.

생각해 보면 꽤 여러 번 방문했음에도 이곳의 접견실은 따로 방문한 적이 없었다. 매번 집무실에서만 이야기를 나눴었는데 이곳으로 안내했다는 것은 그만큼 라그니스에게도 여유가 생겼다는 뜻이겠지. 지난번에는 짙은 다크 서클 때문에 상당히 피곤해 보였는데 오늘은 좀 혈색이 돌아왔을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여유를 두고 가지는 만남을 기대하며 자연스럽게 소파 옆자리에 올라와 앉은 라이카를 쓰다듬기를 십여 차례.

문이 열리며 방으로 들어온 라그니스를 본 나는 내 예상이 크게 어긋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세상에. 라그니스? 얼굴이 반쪽이 됐는데?"

"...안녕 엘드미아. 보자마자 그런 말을 들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근데 이게 못 먹고 피폐해져서 피골이 상접했다기보단 극단적인 헬스 P.T를 받은 것 같다고 해야 할까...

"...묘하게 건강해진 거 같다...?"

"너에게 들을 말이 많은 것처럼, 나도 이번엔 할 이야기가 좀 많...그 개는 또 뭐니?"

"하하. 아무리 할 이야기가 많아도 엘드미아의 대환장 모험 앞에서는 새 발의 피일 것이다."

그래, 건강하면 된 거지 뭐. 근육통에 시달리는 것인지 거동이 불편한 라그니스가 자리에 앉자마자 우리는 이야기꽃을 피웠다.

실로 여유롭다라고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대화의 서두는 내 모험담으로 시작했다. 기분 좋게 아실리에와 함께 오그웬으로 가려다가 센 일행과 엮이게 된 것부터 성광십자회의 의뢰를 받아 악마를 때려잡고 마신교의 이단 심판관들과 대치한 뒤, 엔글렘에서 그론즈엘의 개수작 때문에 의도치 않게 라이카를 분양하게 되기까지의 모든 이야기를 아무런 조미료 없이 날것으로 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라그니스는 정신을 못 차리는 듯했다.

"그러니까, 얘가 마검이라고?"

"응. 원래는 얼굴이 좀 더 살벌했어. 꼭 늑대 모양 투구를 뒤집어쓴 것 같았지. 몸도 쇠질감이 났고."

자신의 무릎 위에 올라가 자고 있는 라이카를 쓰다듬으면서도 믿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이던 라그니스가 미심쩍은 시선을 보냈기에 그저 웃어 보였다. 사실인 걸 어쩌겠어?

그 뒤로 이어진 라그니스의 근황은 여러모로 예상 밖의 이야기였다. 그녀가 제국에서 했던 말에 진심이라는 것은 새삼 놀라울 일이 아니었으나, 라드넬반데스가 그녀를 과보호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었다는 것과 지금은 이를 뒤집고 그녀에게 스파르타식 교육을 시전 중이라는 건 조금도 상상하지 못한 전개였다.

난 솔직히 라드넬반데스가 엔벨데 사건 때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나중에 거하게 뒤통수를 치는 게 아닐까 심히 걱정했었거든. 그런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다는 게 참 다행스러우면서도 그 심경에 변화를 준 원인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글쎄. 네가 스승님의 예상보다 더 튼튼하고 막 나가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원인이라고?"

"스승님은 이미 내가 너에게서 떨어질 생각이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거든."

그러고 보면 제국으로 방문하던 날 라그니스에게 눈치 없는 소리를 지껄였다가 뺨 맞은 것만 보고도 바로 내 잘못이라고 알아챈 양반이었지. 지금까지의 내 행적을 검토하고 진지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 라그니스를 향한 스파르타식 교육이라면, 지난 몇 주간의 교육은 정말 기초 교육에 불과한 게 맞을 것이다.

갑자기 근육통 때문에 찻잔 드는 것도 고생스러워하는 라그니스가 더욱 측은해지기 시작했다.

"너 앞으로도 고생 좀 하겠는데."

"...왜?"

"내가 보기에 라드넬반데스 경은 내 옆에 있어도 죽지 않을 정도로 널 단련시킬 생각인 거 같거든."

그리고 머지않아 엔벨데 사건 이후로 내가 질러놓은 사건들 역시 그의 귀에 들어가겠지.

악마와 싸워도 죽지 않을 정도의 실력이 될 때 쯤이면 라그니스가 예카트리나에 버금가는 근육녀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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