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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249화 (249/412)

모험가라는 직업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로우 리스크 하이 리턴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지만 말 그대로 운의 영역일 뿐. 리스크가 낮으면 얻는 것이 적은 반면 리스크가 크다해서 반드시 얻는 게 많은 것도 아닌 현실적인 직업. 블루 오션이나 레드 오션을 따지는 한철 장사가 아닌, 엄연히 인류의 역사와 함께 이어져 온 유서 깊은 막노동 직종이 바로 모험가다.

내 전생의 인류가 모기와 바퀴벌레들을 멸절시키지 못한 것처럼 이세계의 몬스터들 역시 끝이 없고, 강력한 몬스터가 남긴 부산물들은 인류 입장에서 창조 경제와 다를 바 없는 자원이니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결국 기술과 문명은 발전하기 마련이고 인간들은 거주지에서 완벽하게 몬스터를 몰아내지는 못했을지언정 위협적인 몬스터들을 밖으로 밀어내는 것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 그렇기에 수도 인근에는 위협적인 몬스터의 등장이 매우 드문 편이며 이는 결국 모험가들의 수익 저하로 이어지기에, 어느 정도 실력이 있는 모험가들은 은퇴를 하는 게 아닌 이상 새로운 위험을 찾아 밖으로 퍼져나간다.

당연히 모든 모험가들이 그럴 수 있는 건 아니다. 대기업에 입사하거나 판검의사가 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공부를 해도 결국 실제로 그 직업을 가지는 사람들은 소수인 것처럼 일부는 능력 부족으로, 일부는 새로운 생계를 찾아서 나름대로 삶을 꾸리고 정착하게 된다.

이번 문제는 바로 그 능력 부족으로 정착하되, 밥그릇은 지키고자 하는 이들로 인해 생긴 해프닝이었다.

지금은 죄다 대가리를 박고 있는 놈들에게 전해 들은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평소 미친개로 통하던 청급 모험가 놈 하나가 종종 같이 붙어다니던 적급 계집과 떨어지더니 어느 날을 기점으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가엔달 파티에 꼽사리를 끼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쟁쟁한 실력자인 가엔달 파티 자체는 그러려니 할 수 있었으나, 거기에 온갖 괴소문과 더불어 미친놈이라는 풍문이 실력과 연관된 소문보다 더 많은 잡것이 끼어들어간 게 영 곱게 보이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거기까지는 뭐 살다 보면 흔히 있는 일이었으나 문제는 그 다음부터 이어졌다.

정확히는, 은연중에 가엔달 일행과 자신들이 동열에 있다고 여긴 모험가들이 파티의 합류를 제안하고 이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약간의 트러블이 발생했다.

호탕함과 뛰어난 실력, 멋진 몸매와 보기 드문 미모까지 쥐고 있는 탓에 많은 전사들의 선망의 대상이자 성욕의 대상이기도 했던 예카트리나와 마법사인데다가 이쁘장하기까지한 렐리에는 본디 페어로만 활동한 탓에 접근할 기회가 영 시원찮았는데, 가엔달 파티에 들어감으로 인해 기회가 생긴 것처럼 받아들인 이들이 상당히 많았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나름 적급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며 실력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던 이들이 온갖 허세란 허세는 다 부리며 파티 가입을 신청했는데... 이런, 죄다 퇴짜를 맞아버린 것이다.

사유는 능력과 실적 부족. 사실 네 사람 모두 수도에서만 머물 그릇이 아니니 퇴짜를 맞은 이들 중 그 사유에 토를 달 수 있는 이들은 단 한 명도 없었으나, 그들에게는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난 정도가 아니라 얼굴에 똥칠을 당했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나.

한낱 청급 모험가 새끼하고도 파티를 맺었으면서 자기들을 안 받는 게 말이 되냐고 따지기 시작한 것이다.

실력도 애매한 반푼이 청급인 미친개랑은 파티를 맺으면서 적급인 자신들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 이유가 뭐냐는 일부 반발에 예카트리나는 그들이 나보다 실력이 모자르다는 객관적인 평가를 내려주었지만 당연히 이를 곱게 받아들이는 이들은 한 명도 없었다. 개중에는 나와 예카트리나의 관계를 지레짐작하며 매우 문란한 모욕을 던졌다가 그녀의 철권에 강냉이가 싹 다 털린 놈들까지 나왔다고 하니 곱게 정리되진 못한 게 분명하다.

하지만 강냉이가 털린 건 털린 거고, 자신들의 존재 의의를 부정당했다고 여긴 찌끄래기들은 심기가 불편해지고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났다. 동시에 삼강오륜이 해이해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가정이 파괴되는 것만 같은 참담한 심경을 느낀 이 씹새들이 취한 행동이 바로 '기강 잡기'였다.

예카트리나에게 섹드립을 쳤다가 뒤지게 처맞은 놈이든, 실력을 무시당해 화가 난 놈이든 일단 모여서 정신 승리를 위한 핑계를 만들고 조합을 만들었다. 이대로 가면 모험가 길드가 지고의 법률로 세워 놓은 기준인 등급 알기를 개좆같이 알게 될 것이라는 비약적인 논리 아래에서 똘똘 뭉친 패배자들은 차마 진짜 실력자인 가엔달 파티에게 도전할 엄두까지는 내지 못한 채 지들이 멋대로 세운 논리를 규칙인 것마냥 떠들며 적급 미만의 모험가들에게 갑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예 대가리가 빈 놈들은 아니었는지 열심히 정치질을 시전하며 자신들의 주장을 따르는 이들은 챙겨 주는 식으로 그럴싸한 차별화를 시도했고, 그렇게 내가 모르던 신생 향우회가 탄생하게 되었다.

놀랍게도 이 모든 게 내가 오그웬으로 휴가를 떠나기 전에 일어났던 사건들이라고 한다.

"그렇게 지랄 염병을 떨면서 정신 승리와 자위질을 동시에 하고 있었는데 내가 또 갑자기 튀어나오더니 가엔달 파티랑 합류해서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도, 도화선이 뭐죠?"

"옘병. 그 씹새들의 발작 방아쇠를 당겼다는 소리냐고."

"아, 예, 예. 맞습니다."

청급 모험가가 또 가엔달 파티와 협력한다. 그것도 그냥 합류한 게 아니라 광견이나 광검이라는 이명도 아닌, 단두대라는 이명을 뿌리면서.

그들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봐도 요즘 한창 소문이 무성한 '레비엥의 단두대'의 명성에 편승하려는 졸렬한 술수였다. 개쩌는 짱구를 지닌 패배자들은 청급 모험가가 시도한 그런 비열한 술수에 넘어가지 않았기에 분기탱천했고, 실력도 없는 주제에 예카트리나의 기둥서방 노릇이나 하며 남의 명성에 빌붙어 사기나 치고 다니는 건방진 애새끼에게 진짜 모험가의 힘을 보여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런 놈이 안 좋은 선례를 남겨 비슷한 잡것들이 늘어나면 가뜩이나 뜯어먹을 게 점점 줄어드는 수도에서 자신들이 발 붙일 자리가 사라질 수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지금에 이르렀다는 소리다.

"으허, 으허허허허."

씨발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밖에 안 나온다. 난 아찔해지는 머리를 부여잡다가 마음의 안정을 얻기 위해 라이카를 쓰다듬으며 대충 질문을 던졌다.

"담배 마렵네 진짜. 니네 레비엥의 단두대 이름 몰라?"

누구 하나 특정해서 질문한 것은 아니었으나 대답은 즉각적으로 튀어나왔다.

"다, 당연히 모르죠."

놀랍게도 놈의 말이 맞았다. 당연히 모를 수 있다.

모험가 지구, 드워프 지구, 귀족 지구가 다 분리되어 있을 정도로 큰 수도에서 소문이라는 건 굉장히 두리뭉실하다. 인터넷과 통신기기가 발달한 현대에서조차 동네의 소문을 다 알지 못하는데 얘들이 어떻게 알겠어. 그걸 알면 정보상 했겠지.

오히려 모험가랑 별 연관도 없는 귀족가의 소문이 이렇게까지 빠르게 퍼졌다는 점에서 누군가 의도적으로 정보를 푼 게 아닐지 의심해보는 게 맞는 상황이다.

그러니 신생 향우회의 빡대가리들이 도달한 결론은 지극히 상식적인 추론을 기반으로 이루졌다고 할 수 있다. 뒷집 반지하에 살고 있는 김철수 씨랑 대기업 회장인 김철수 씨의 이름이 같다고 해서 동일 인물일 가능성을 검토하는 수준의 이야기일 테니까. 비록 그들의 시발점始發點은 졸렬하고 옹졸하나, 사건과 정보만 놓고 봤을 때 그들이 내세우는 명분은 퍽 그럴싸한 축에 속한다.

근데 그게 아무리 타당한 결론이라 한들 날 좆같게 만드는 것에 대한 변명거리는 될 수 없다.

모르면 더 신중했어야지.

"하아...그래, 개요는 대충 파악했다. 그래서 너희는 날 그냥 줘패려고 온 거냐 아니면 끌고 가려고 온 거냐?"

"......"

마찬가지로 누구 하나 골라서 물어본 게 아니라서 그런지 대답하기를 꺼려하는 분위기가 흐르기 시작한다. 대충 누구 하나 쪼인트를 까서 떠들게 만들까 싶다가, 문득 이 침묵이 의미하는 바를 알 거 같아 다시 물어보았다.

"줘패고 끌고 가려고 왔어?"

"...예."

옳거니. 나의 눈치는 나날이 발전하는군. 스스로의 발전에 조금 만족스러워진 나는 적당히 아무나 한 놈 목덜미를 잡아 강제로 일으켜 세웠다. 사시나무 떨듯이 떠는 건 둘째치고 다른 녀석들과 마찬가지로 앞니가 날아간 채 이제는 어느 정도 굳어 버린 피를 닦아내지 못한 흉한 몰골의 사내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연신 눈동자를 굴리기 시작했다.

"가자."

"예?"

"끌고 가려고 했다며? 갈 곳 있을 거 아니야. 가자고."

목적을 이루게 도와주겠다는데도 놈은 절망 어린 표정으로 연신 대가리를 박은 다른 놈들을 돌아보았다.

"왜? 얘들은 편하게 있는 거 같아?"

"아, 그, 그게 아니라..."

"라이카, 적당히 가지고 놀아."

지금까지 똘망똘망한 눈동자로 나만 바라보고 있던 라이카는 일말의 주저도 없이 가장 가까운 놈의 바지를 물고 그대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아아악! 사, 살려! 살려주세요!"

인간 풍차가 따로 없는 그 모습에 지금까지 대가리를 박고 있던 녀석들이 엉거주춤 일어나려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다시 대가리를 박았다. 라이카는 물고 있던 놈이 기진맥진할 때쯤 다른 놈을 물고 똑같은 일을 반복했고, 이미 개가 사람을 물고 휘두르는 시점에서 사태의 심각함을 느낀 놈들은 저항할 엄두조차 못내고 벌벌 떨 뿐이었다.

그런 놈들을 질린 눈으로 바라보는 녀석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자, 드디어 정신을 차렸는지 퍼뜩 놀라며 제대로 된 반응을 보여 주었다.

"가, 가시죠!"

"라이카, 가자."

고통받는 동료들을 향한 의리 때문인지, 안 움직이면 똑같은 꼴을 당하게 된다는 두려움 때문인지는 몰라도 녀석은 참 열심히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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