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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251화 (251/412)

당텔은 생각했다.

자기는 만델리 항에서 꽤나 잘 나가던 모험가였고, 수도에서도 결코 꿀리지 않는 어엿한 중견 모험가라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거울을 보고 스스로 굉장히 잘생겼다고 믿는 수준으로는 감히 비벼볼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착각이었으나 당텔은 그걸 착각이라 여기지 않았다.

주변에서 그를 위한 진심 어린 조언을 해줄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범법자의 기질을 타고난 그였으나 유유상종이라는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비슷한 수준의 친구들은 많았기에, 만약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냈다면 누군가 한 명쯤은 그를 미친놈 취급하며 촌철살인의 진실을 던질 정도는 되었다.

그가 자신만의 착각 속에서 살아올 수 있었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그저 생각만 하고 단 한 번도 입 밖으로 내 본 적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흔에 다다를 때까지 모험가 일을 하며 살아온 그는 마족들의 급습으로 마른 볏짚에 붙은 불처럼 타오르는 만델리 항에서 도망친 것만으로도 제 실력이 좋다는 증거라 여겼다. 동시에 그걸 훈장삼아 수도에서의 삶도 순탄하게 이어 나갈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허나 수도에서의 삶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당연히 문제는 당텔에게 있었으나 그는 언제나 그래 왔듯이 원인을 외부에서만 찾았고, 항상 그랬던 것처럼 합리화에 성공했다.

항구 사람으로서 자부심 뿐만 아니라 실력도 출중하다고 믿어온 자신과 동료들에게 수도가 안겨 준 것은 굴욕적인 모욕과 온갖 핑계를 대며 깎아대는 보수 그리고 의뢰 실패라는 오명이었다.

정도 없고 어이도 없는 차디찬 세계였다. 사람이 경비 좀 서다가 안에 있는 창고에서 술 한두 병 정도는 몰래 까먹을 수도 있는 것이고 그러다가 흥이 올라 조금 실수를 할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 사소한 일로 오히려 위약금을 물리질 않나, 신용을 깎질 않나 텃세도 이만한 텃세가 없었다.

만델리 항에서도 비슷한 짓거리를 했다가 뱃사람들에게 뭇매를 맞은 적도 있는 그였으나 당텔에게 그런 기억은 중요하지 않았다. 사람은 언제나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법이니까. 그런 거에 연연하면 큰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만델리 출신 모험가를 향한 수도 촌놈들의 비이성적인 핍박은 그 후로도 하루가 멀다 하고 이어졌지만 당텔은 굴하지 않았다. 그 모든 것이 시기와 질투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했기에에.

다 사나이답지 못한 소인배들이 사람을 깔아 뭉개는 수작에 불과한데 진짜 모험가가 그런 수작질에 무너질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들의 핍박이 강해질 수록 당텔은 더욱 당당하게 행동했고, 결국 그로인한 결실을 생각보다 금방 얻어낼 수 있었다.

수도를 상대로 건 싸움에서 당당하게 승리했다고 믿은 당텔은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드디어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고 여기며 모험가 길드에서 여유롭게 아침부터 맥주를 마시다가, 앙증맞은 엉덩이가 보여 슬쩍 만져 보려고 했던 그날 이전까지는.

그리고 그날의 일에 앙심을 품고 동료들을 모아 덤볐다가 처맞기 전까지는.

"흐어억!!"

식은땀을 흘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당텔은 쿵쾅거리는 심장에 신경 쓸 틈도 없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널브러진 술병과 자신의 비명에도 정신을 못 차리고 뻗어 있는 동료들. 그리고 익숙한 방안의 풍경은 이곳이 적급 모험가들이 얻은 건물 지하에 있는 그들만의 쉼터라는 것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점차 잠과 술기운을 떨쳐 내며 각성하기 시작한 머리가 현실과 악몽의 경계를 나눠 주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어제 있었던 즐거운 잔치를 떠올렸다.

빌어먹을 엘드미아에게 당한 이들끼리 모여서 드디어 엘드미아가 적급 모험가 앞에서 질질 짜는 것도 모자라 자신들이 맞았던 것처럼 맞게 될 것이라는 기쁨에 취해 쌈짓돈까지 털어 벌인 술 파티였다. 열 명이 넘어가는 인원들이 주머니를 탈탈 털어 산 술은 밤과 새벽을 지나 아침까지 이어졌고, 잠에 드는 것이 아니라 술에 먹혀 혼절하는 지경에 다다른 뒤에야 끝을 맺었다.

"아이고 머리야..."

안 그래도 쌓인 게 많았던 당텔은 가장 먼저 마시고 가장 마지막까지 마셨었다. 거기까지 떠올리며 상황을 정리한 당텔은 깨질 것 같은 머리를 움켜쥔 채 구석에 위치한 물통으로 걸어갔다.

"좆 같은 악몽 같으니..."

좋았던 기분이 순식간에 짜증으로 변질된 게 정녕 악몽 때문인지 숙취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당텔은 일단 악몽부터 욕하고 봤다. 숙취를 욕하면 그렇게 될 때까지 처마신 스스로를 욕하는 것과 다를 바 없기에 본능적으로 발동한 자기합리화였다.

짧은 욕지거리 후에 물컵이 보이지 않아 대충 비어 있는 술병을 담그고는 꼴꼴꼴 올라오는 기포를 아무 생각없이 바라보던 당텔의 머릿속에 갑작스럽게 작은 의문이 스쳐 지나갔다.

근데 정말 적급 모험가가 그 새끼를 이길 수 있을까?

그 고민을 이제 와서 한다는 것 자체가 심각한 문제였으나, 놀랍게도 숙취로 인해 정신이 반쯤 나간 지금이 그에게 가장 냉철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다.

한평생을 남탓과 정신 승리 그리고 자기합리화 속에서 지낸 당텔에게 그 모든 것은 이제 숨 쉬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본능과도 같았기에 멀쩡한 정신으로는 결코 현실을 직시하려 하지 않았다. 적급 모험가들이 외치는 말에 감화되고, 그들이 만든 길드에 들어와서 거리의 양아치들과 다를 바 없는 삶을 보내고 있었음에도 자신이 여전히 잘났다고 여기며 엘드미아에게 '수치스러운 모욕'을 당했다고 믿으며 버티는 게 바로 그 증거였다.

하지만 알콜로 뇌가 마비된 지금은 다르다. 복날에 개 맞듯이 처맞았던 기억은 뇌 뿐만 아니라 몸에도 새겨져 있었고, 정신 승리가 가능한 뇌와 달리 몸은 솔직했다. 숙취로 인해 잠깐 깨어날 수 있었던 생존 본능이 기회를 틈타 뇌를 대신해 외쳤다.

그 새끼 적급 수준으로는 절대 상대 못 하는 새끼라고. 지금 좆됐다고. 벌벌 떨리는 손을 보고 제발 정신 차리고 튀라고 온몸을 떨며 주인인 당텔에게 경고했다.

"씨벌. 존나 춥네."

하지만 그 저항은 오래가지 못했다. 병에 담긴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목을 축이자마자 정신을 차린 뇌가 '내가 쫄았을 리 없다.' 와 '그딴 새끼가 나보다 잘났을 리 없다. 그때 맞은 것도 운이 없었던 것뿐이다.' 를 사용하여 순식간에 당텔을 자기합리화의 늪에 담가버렸기 때문에.

그가 스물이 되기도 전에 이미 사라져 버렸던 자존심과 자부심으로 가장한 허세와 바닥을 기는 자존감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달려들어 당텔의 머릿속에서 걱정거리를 지워 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빈 자리에 엘드미아를 두들겨 팰 수 있는 행복한 미래를 새겨넣기 시작했다.

물론 그 미래가 실현될 가능성을 염두하는 사나이답지 못한 행위는 당텔에게 별로 중요치 않았다. 그럴 거라 믿고 싶으니 믿을 뿐.

"어린 놈의 새끼가, 같은 청급 주제에 지가 잘나 봤자 얼마나 잘났다고? 낄낄낄."

덕분에 순식간에 기분이 좋아진 당텔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1층으로 올라왔다. 아침에 잠들었으니 못해도 점심이라 여겼는데 창밖으로 흘러들어오는 것은 붉은빛이 아닌 어둠이었다. 거의 꼬박 하루를 잠들어 있었다는 사실에 허탈함을 느끼려던 찰나, 당텔은 이게 허탈할 게 아니라 매우 유쾌한 상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씨벌? 그럼 오늘이 그 새끼 잡아 오는 날이라는 거잖아?"

선물 받기로 한 날짜를 하루 착각해 갑자기 받게 된 것처럼 화색이 된 당텔은 싱글벙글 웃으며 밖으로 나와 우물로 향했다. 이젠 정말 쌀쌀해진 밤바람에 온몸이 떨렸지만 그 정도는 웃어넘길 수 있었다. 그렇게 차디 찬 우물물을 떠서 세면을 마치고 저녁 공기를 들이마시며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을 느낀 당텔은 뒤늦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깐, 잡아 오기로 했는데 지금은 저녁이잖아? 아직 발견을 못 한 건가?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최근 모험가 지구에 집까지 샀다는 놈을 이 시간까지 못 찾아냈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니까. 혹시 이미 일처리를 끝내 2층에서 일을 치르고 있는 건가 싶었지만 건물은 언제나 그랬듯이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일상의 소음 속에서 잠시 멍때리던 당텔의 뒤편 먼 곳에서... 일상과는 좀 거리가 먼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런 짓을 하지 말아야 했는데, 난 그 사실을 몰랐어~"

"이, 이제 와서 후회한들 뭐 하리..."

뭔가 둘이서 노래를 부르는데... 한쪽은 겁에 질려 목소리까지 떨고 있는 반면 다른 한쪽은 태연하기 그지없다. 평생 듣도보도 못한 노랫가락에 의아함을 느끼며 마당을 벗어나 소리가 들려오는 길 쪽으로 나아가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도로의 가로등 아래에 비춰진 두 인영人影이 길드 쪽으로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겨울이라 어둠이 일찍 내렸다고는 하나 수도를 밝히는 빛들은 이 후미진 곳까지도 밝게 비출 정도는 되었고, 당텔은 선두에 서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남자가 자신들의 동료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파악했다.

근데 대체 뒤에 누가 있길래 저렇게 만신창이가 된 채 벌벌 떨면서도 노래를 부르며 온단 말인가? 의아함에 표정이 구겨지기 시작하는 당텔의 시야에 왠 개 한 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짧디짧은 다리로 헥헥거리며 걸어오는 모습에 잠시 시선을 빼앗겼다가 그 옆에 있는 인물에게로 시선을 돌리자...

"나는 바보가~ 돼 버린 걸~"

"...어?"

거기에 악몽이 서 있었다.

"어어?!"

당텔이 그를 확인한 것처럼 그도 당텔을 확인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일상복에 두터운 외투만 걸치고 있는 모습은 마지막 기억과 전혀 달랐으나 저 큼직한 덩치와 얼굴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당텔과 눈이 마주친 악몽이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어 올렸다. 친근한 미소도 아니었고, 손 인사를 위한 것도 아니었다.

"당텔 이 개 씨발 새끼야. 내가 개수작 부리면 저승길로 보내버린다고 했지? 넌 딱 기다려라."

할 말을 마친 악몽은 자기 앞에서 걷고 있던 남자의 목덜미를 잡더니 그대로 집어 던졌다.

마치 가벼운 공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내던져진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허공을 날아가 아지트의 나무 문을 박살 내며 굉음을 자아냈다. 그로인해 동료들이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으나 당텔은 악몽에게서 조금도 눈을 떼지 못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현실 도피에 실패한 탓에 공포로 몸이 굳어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악몽은 조금도 개의치 않으며 마치 선전포고라도 하듯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고...

"엘드미아 에가다!"

...자기합리화로는 벗어날 수 없는 압박감 속에서 당텔은 35년 만에 오줌을 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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