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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252화 (252/412)

처음에 이야기를 들었을 땐 그냥 적당한 실력행사로 끝낼 생각이었다.

나에게 개짓거리를 시도하면 무조건 손해를 본다는 것을 각인시키기 위해서는 죽은 사람보다 산 사람이 더 유용한 법이니까. 어지간한 소문은 쉬이 퍼지지도 않는 세상에서 하나라도 더 많은 생존자를 남기는 편이 내 숙원 성취에 이롭다는 건 두말할 것도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당텔의 얼굴을 본 순간 그 계획은 순식간에 백지로 바뀌어 버렸다.

"축하한다 당텔. 넌 내 경고를 무시한 첫 사례이자 그 대가를 치르게 될 첫 희생자로 다른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게 될 거다."

개과천선의 지크멜과 목숨을 내다 버린 당텔이라, 교보재로 가져다 써도 될 수준이군. 내 말을 들은 당텔은 갑자기 인상을 확 구기며 발악하듯 외쳤다.

"지, 지랄하지마! 엘드미아다! 엘드미아가 나타났다!"

이미 내가 외쳤는데 굳이 자기가 또 알리는 이유가 뭔지 고민할 틈도 없이 당텔은 욕지거리와 함께 입구가 박살난 건물 안으로 달려갔다.

정말 놀라우리만치 아무런 조바심도 느껴지지 않는다. 차라리 녀석이 다른 곳으로 도망쳤으면 달려가서 잡으려는 시도라도 했을 텐데 제 발로 고립을 선택하는 꼴을 보니 오히려 마음이 놓일 정도다. 덕분에 난 느긋하게 라이카에게 마력을 먹이며 간단하게 지시를 내릴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라이카. 건물 주변에 도망치는 녀석이 있으면 무력화 시켜."

[응!]

뽈뽈뽈 뛰어가는 녀석에게서 시선을 떼고 건물을 바라봤다. 번화가도 아니고, 대로에서도 많이 떨어져 있는 곳에 위치한 2층짜리 건물은 어째 술집을 겸하는 여관과 비슷한 디자인을 하고 있다. 당장 가엔달 일행이 묵고 있던 여관에서 창문을 절반 이상 줄이고 스윙 도어를 평범한 문으로 바꾸면 지금 눈앞에 있는 건물과 비슷해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나름 거창하게 여관을 차렸으나 입지가 안 좋아서 말아먹은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감상과 함께 걸음을 옮기는 사이 아직도 부서진 문의 파편들 사이에 쓰러져 낑낑 거리고 있는 길잡이를 지나 건물 안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어째 하나같이 상태가 좋지 못하다. 술에 취한 놈, 잠에 취한 놈, 무기 하나 들고 나오지 않은 놈들 열 댓명이 나온 뒤에야 그 너머에 좀 정상적인 꼴을 하고 조용히 날 바라보는 놈들이 두엇 정도 보이는 수준이다. 그게 참 뻔하고 한심하기 그지없다고 느끼다가도 아직도 이런 놈들과 트러블이 일어나는 내 처지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발전은커녕 퇴화할 거 같다. 빨리 정리하고 성광십자회에서 보상으로 줬던 정보들이나 살펴봐야지.

그렇게 속으로 푸념을 하는 사이 정신도 못 차리는 놈들과 달리 좀 멀쩡해 보이는 놈 하나가 앞으로 나오며 소리 높여 외쳤으나, 정작 그 주둥이에서 나온 건 정치질이었다.

"갑자기 이게 무슨 행패냐! 엘드미아!"

저게 왜 정치질이냐고? 방금 전 소란으로 기웃기웃 구경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걸 확인한 뒤에 외쳤거든. 솔직히 다짜고짜 치고 들어올 줄 알았는데 저런 어쭙잖은 정치질을 시전하려드는 게 조금은 신선하다.

덕분에 어떤 형태로 정치질을 시도하려는 것인지 잠깐 궁금해지기도 했지만, 그보다 이 상황이 안겨 주는 좆같음이 더 컸기에 나는 말없이 놈들에게로 다가 갔다. 어차피 이후로는 볼일 없는 놈들이 무슨 정치질을 시전하고 뭐가 목적이었는지 알아서 뭐에 쓰겠어?

"머, 멈춰! 이게 무슨 행패냐고 묻고 있잖아!"

당연히 내가 이렇게 찾아온 이유를 놈들이 모를 리 없다. 저건 그저 내 입을 통해 놈들이 나를 해하기 위해 사람을 보냈다는 주장을 듣고 자신들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한 연기에 불과하다. 증거가 어딨냐, 우리는 그런 적 없다 같은 뻔한 과정을 목청껏 외치면서 열심히 구경중인 이들에게 자신들의 무고함을 어필하려고 할 게 불 보듯 뻔하다.

길잡이와 더불어 날 습격하려고 했다가 영혼과 강냉이가 함께 털린 놈들이 증거라고 할 수 있겠으나, 패거리는 두고 왔고 길잡이는 내가 직접 놈들에게 던져 준 탓에 그마저도 지금은 얼마든지 위증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럴 경우 나중에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간에 지금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은 내가 부당한 폭력을 저질렀다고 여기며 놈들에게 유리한 여론을 형성하는데 기여하겠지.

근데 그것도 결국 나랑 대화가 이루어져야 시도할 수 있는 수작질이다. 그렇다면 대화를 안 하면 되는 거 아니겠어?

내가 받아 주지 않으면 놈들은 정치질을 이어 나갈 수 없고, 구경꾼들은 그저 앞으로 펼쳐질 일방적인 폭력을 본 뒤 지금까지 자신들이 들어온 소문과 정보를 기반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될 뿐이다. 그 상상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몰라도 놈들에게 유리한 형태로 통일되지 않을 거라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기에, 난 꿋꿋이 나아가며 어깨를 돌려 근육을 풀었다.

생각대로 이야기가 흘러가지 않아서일까, 그것만으로도 앞에서 외치고 있는 놈의 목소리에 초조함이 깃들기 시작했다.

"이런 씨발! 말을 해라 엘드미아! 왜 아무 말도 안 하는 건데!"

나는 지금 표면상으로 검 하나 없는 맨몸이다. 물론 외투 안쪽에는 바늘이 들어 있고 건물 뒤켠에는 라이카가 망을 보고 있지만 일반적인 시점으로 그 둘을 검과 대등한 무기로 보기엔 무리가 있지. 그에 비해 놈들은 전부 병신일지라도 검을 차고 있고 열 명은 되는 머릿수가 모여 있다.

누가 봐도 후자가 압도적으로 유리해야 하는 상황인데 정작 분위기는 거꾸로 돌아가니 구경꾼들 사이에서 걱정과 우려가 아닌 기대감이 일렁이기 시작한다. 일반인들이 지내고 있는 지역이었다면 당장 경비대를 부르고 난리가 났겠지만 이곳 모험가 지구에서 이런 건 재미난 구경거리에 불과하다.

"겨우 한 명인데 뭘 쫄고 있냐! 모험가답게 한 판 붙어!"

애당초 괜히 구경하고 있다가 불똥이 튈 수 있음을 감내하고도 싸움 구경을 선택한 인간들답다고 해야 할까,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쫄지 말고 싸우라는 추임새까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한 명이 목소리를 높이자 큰 웃음과 더불어 비슷한 주장이 사방에서 이어졌다.

그 속에서 내가 아무 말도 없이 계속 거리를 좁혀 오자 술에 취한 거 같은 놈들 중 하나가 기어이 참지 못하고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 들며 외쳤다.

"멈추라고 새끼야! 뒈지고 싶어?!"

"이런 씨발 병신아! 지금 칼을 꺼내면 어떻..."

다행스럽게도 다른 놈이 녀석에게 경고를 날리는 것보다 마력을 두르고 내가 달려드는 게 더 빨랐다. 그래도 나름 대변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혼자 떠들 실력은 있었던 것인지, 검을 뽑아 들었던 녀석을 욕하던 놈이 그런 내 움직임에 반응하며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갔다.

"좆됐...!"

하지만 놈의 손이 검을 잡는 순간 이미 내 발은 놈의 명치에 닿아 있었다. 퍼억! 하는 묵직한 소리와 함께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뒤로 날아가는 놈에게 시선을 빼앗긴 옆의 머저리들마저 주먹을 휘둘러 기절시키고 나서야 놈들은 뒤늦은 저항을 시작했다.

"저 새끼 죽여!"

"이 개 씨발 새끼가!"

내 입에서도 욕이 튀어나오려고 했지만 정말 열심히 참았다. 내 정치질은 지금부터 시작이었으니까.

이 보잘것없는 싸움에서 엘드미아가 욕을 내뱉으며 때리면 살고, 입 다물고 때리면 맞아 죽는다는 괴소문 하나쯤은 만들어야 내 입장에서도 수지타산이 맞는다. 위드라 씨와 사제간의 연을 맺고 한동안 잠잠히 지내다 보면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과 겹쳐서 적당히 부풀어 오른 소문이 생겨날 것이고, 그럼 못해도 수준 떨어지는 놈들이 나에게 시비를 터는 일은 사라지겠지.

"저, 저 병신들 칼 들고도 지네 저거!"

"좀 더 분발해 봐 병신들아!"

다행히 내가 해야 할 도발을 구경꾼들이 대신해주고 있었기에 아쉬움은 적었다. 내가 놈들과 마찬가지로 검이라도 뽑았으면 누구 하나 정도는 경비병을 부르러 갔을 거 같은데 머릿수도 많고 칼까지 뽑아 든 놈들이 되려 주먹뿐인 한 놈에게 처맞고 있다 보니 심각성이 결여된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 같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주먹과 발차기에 죽는 놈이 생기고 있었으니 지금 상황은 심각한 게 맞다. 그저 바닥에 널브러진 채 못 일어나는 놈들이 죽었다는 생각 조차 못 하고 들떠 있을 뿐.

나는 칼을 뽑아 들고 덤비는 녀석들에게 한 방 한 방 살의가 담긴 공격을 선물하며 입구를 정리한 뒤, 한 놈도 못 일어나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건물 안으로 진입했다. 어차피 계속 싸울 거라면 좁은 곳이 더 유리하기도 했고, 당텔이 도망칠 때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여기 있는 놈들이 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쉬이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을 게 분명했기에 내린 판단이었다.

그렇게 들어선 건물에서 내가 마주한 것은  무기 뿐만 아니라 방어구까지 장비를 마치고 서둘러 2층과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오는 모험가들이었다. 장비를 보아하니 쟤들은 그래도 좀 적급이라고 할 만한 실력을 지녔을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고 당황하는 건 매한가지였다.

수도 일곱 정도 밖에 되지 않으니 고전 할 요소는 전혀 없다.

"그, 그걸 벌써 다 쓰러뜨렸다고?"

참 식상하고 뻔한 감상을 내뱉는 놈이 당텔이 아니라는 사실이 조금 아쉽지만 별수 없지. 난 외투를 벗어 반쯤 박살 난 문을 옷걸이 삼아 걸어두며 통보했다.

"맨손으로 덤비면 목숨은 살려 준다. 당텔을 가져다 바치면 다치는 곳 하나 없이 멀쩡히 보내주마."

그것만으로도 당황스러움만 가득하던 녀석들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애초부터 자존심에 상처가 나서 모인 놈들이니 내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을 게 뻔했다. 이건 그저 나중에 내가 막무가내로 놈들을 죽였다는 거짓 증언을 막기 위한 포석에 불과하다.

"하지만 칼 뽑고 덤비는 놈들은 다 죽는다. 알아서 선택해."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놈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무기를 뽑아 들었다. 그리고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계단을 박차며 뛰어내렸다.

거기에 감사함을 느끼며, 나는 짧게 휘파람을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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