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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258화 (258/412)

마법사들이 맺는 사제의 연이라는 건 결국 형식적인 절차에 가깝다.

내가 메르델라와 맺었던 것처럼 각인 계약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다른 금제를 거는 것도 아니다. 공식적으로 사제지간이 되었다뿐이지 사실 학교의 선생과 학생의 관계라 해도 무방한 수준이라 할 수 있을 정도다. 냉정하게 따지고 보면 말과 언어에 힘이 있다고 믿으며 거짓말조차 꺼려하는 정통파 마법사들이 그런 형식적인 절차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기사도와 노블리스 오블리제 같은 의식과 규율을 어긴다고 하여 죽는 것이 아님에도 기사와 귀족들이 그것을 따르려고 하는 것처럼, 이 역시 마법사들에게는 중요한 규율이자 규칙인 것이다.

"긴 시간이 지나 결국 사제지간이 되었으니 나는 너를 도울 것이요, 너 역시 나를 도울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 특별할 것 없는 위드라 씨의 말만으로 그와 나의 관계는 스승과 제자가 되었다. 뭔가 삶에 있어 전환점을 맞이하는 기분이 들어 괜히 감성적이게 된다던가 하는 일은 없었다.

극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은 하나도 없었기에 우리는 적당히 담소를 정리하고 본격적인 업무 및 나를 위한 수업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네 수업에 대한 것은 세네란과 한 번 더 모여 조정을 하게 되겠지만, 아무래도 마력을 사용하는 방법부터 개선할 필요가 있을 거란다."

위드... 아니, 스승님의 설명은 다행히 내가 이해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지금 내가 작은 불씨를 지핀다거나 몸을 강화할 때 사용하는 방법은 간단하게 비유하면 마력이라는 원료에 그냥 불을 붙여 열기를 얻는 것에 가까웠다.

마법사와 오러를 사용할 수 있는 이들은 마력을 정제하기 위해 나름대로의 정제법을 익히고 몸 안에 일종의 연료 탱크와 이를 이용해 효율적으로 불을 지필 화로를 만든다. 그 탱크를 키우고 더욱 고순도의 마나와 오러를 담는 것과 더불어 화로를 더욱 튼튼하고 효율적인 연소가 가능하도록 바꾸는 과정이 높은 단계로 가는 길인데, 정제법만 익히고 나머지를 소홀히 한 이들이 흔히 나와 같은 방법으로 불안정하게 마나와 오러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너 스스로는 그걸 불안정하다고 느끼지 못했을 거란다. 마족들이 그러거든."

마족은 태생부터 마력에 대한 감응 능력을 지닌 채 태어난다. 날 때부터 정제법을 익히고 태어나니 거기에 불만 지펴도 힘을 발휘한다. 하지만 아무런 디메리트도 없는 게 아니다.

폐던전에서 만난 마족이 보여줬던 모습이 바로 그 결과물이다.

"불을 지피는 건 좋지만 그건 잘 마른 풀이 지천에 널린 들판에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고 불씨를 놓는 것과 마찬가지란다. 빨리 끄지 않으면 곧 걷잡을 수 없게 되고, 그 순간 타 죽는 거지."

그래서 인간은 마력을 사용하려하면 말 그대로 펑 하고 터진다. 마력이라는 건 잠깐의 틈조차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불씨이기에.

"하지만 네 몸에 흐르는 마력은... 아마 네 나름대로의 사용법이겠지. 그냥 무작정 몸에 힘을 불어넣기 위해 불을 지피는 게 아니라 일종의 통로를 만들었더구나. 심지어 육체적인 부분에서는 대체 무슨 방법을 쓴 것인지 몰라도 네 몸에 마력이 스며들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고 말이지."

대충 현대적인 표현을 섞어 스승님의 말을 풀어보니 내 근섬유가 마력섬유랑 뒤섞인 합성섬유가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듣자마자 떠오르는 건 내가 근육에 마력으로 부하를 줘가며 근력운동을 했던 과정이었다. 나름 전생에 주워들은 기억을 떠올려가며 근섬유가 찢어지고 초회복하는 과정을 촉진시킬 수 있나 싶어 한 짓이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불러왔다.

내가 로이더였다니!

어라, 아닌가? 마력은 엄연히 자연적인 힘이니 이건 내추럴이라고 봐도 되려나? 그보다 이거 씨발 악마 새끼들이랑 비슷한 꼴 되는 건 아니겠지?

"혹시 짐작 가는 점이 있느냐?"

"...아...뇨? 전혀 모르겠네요."

근데 아무리 스승님이라고 해도 그걸 말할 수는 없잖아. 이 세계에 해부학이 없는 건 아니지만 5살 촌동네 꼬마애가 어릴 때부터 접할 수 있는 정보는 절대 아니다. 결국 나는 스승님이 알아낸 부분과 관련된 진실을 묻어 버리고 우연의 산물 정도로 덮을 수밖에 없었다.

"그럴 수 있지. 애당초 인간인 네가 마력을 쓸 수 있는 것부터가 기적이니 이상할 것도 없다. 마신의 축복을 받았다 해도 무방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왜 마족의 신이 인간에게 그러한 축복을 내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야."

진실에 근접한 추론과 가설을 자꾸 내놓으시는데도 그걸 맞다고 할 수 없으니 참 곤욕스러운 입장이 되어 버리는군. 난 애써 꿈틀거리는 표정을 감춘 채 열심히 스승의 말을 경청하는 제자를 흉내 내야 했다.

"잠시 이야기가 딴 길로 샜군. 아무튼 네게도, 내게도 매우 바람직한 현상인 건 확실하단다. 마족들이 체내에 구성하는 마력 기관조차 완전하지는 않거든. 그런 건 오직 용만 가능한 일이니까. 결국 마족들도 마력을 사용하다 자칫 잘못하면 마력이 역류하거나 폭주해서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지. 그런데 너는 그에 대한 안전장치를... 아니, 그런 피해를 입을 일이 전혀 없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마력이라는 건 결국 공기처럼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힘이다. 자기만의 마력 기관을 생성하지 않고 불을 붙인다는 건, 석유가 흘러넘치는 바닥에서 내가 원하는 만큼만 불을 붙이겠답시고 성냥을 긁는 행위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니 문제가 생길 거였으면 이미 진즉에 생겨서 명을 다 했을 것이라는 게 스승님의 확신이 담긴 가설이었다.

졸지에 왜 사람들이 마력을 사용하려 시도하면 죽는가에 대해 체계적으로 깨닫게 된 나는 에파가 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린 뒤 질문했다.

"그럼 마족들의 강함은 마력 기관의 완성도에서 차이가 나는 건가요?"

"그렇지. 아쉽게도 그 부분은 나나 세네란 모두 이론으로밖에 접근할 수 없었던 영역이라 당장 뚜렷한 해답을 주진 못하겠구나. 그래도 마력 기관을 만드는 과정 자체는 도와줄 수 있으니 안심하거라."

오래된 의문 중 하나였다. 오러와 마나는 원석인 마력에 가깝게 순도를 올리는 방법이 있지만, 마족들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가정할 경우 그들도 원석인 마력을 사용할 게 분명했다.

근데 분명 에스뮈에 납치 사건 때 마주친 그 손톱쟁이 새끼는 내가 이길 수 없는 수준이었단 말이지. 내가 사용하는 방식으로는 명확한 한계가 있어서 대체 어떻게 더 강해지는 것인지 알 수 없었는데, 그 해답이 자동차 엔진같은 구조에 있었을 줄이야.

왜 그 생각을 못해봤을까, 라는 후회는 들지 않았다. 당장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는 오러와 마나 사용법은 엔진이 아니라 앞서 묘사했던 것처럼 화로에 가까웠으니까 으레 그런 줄 알았지. 내가 뭐 전생에서 엔진에 대한 심도 있는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아마 이렇게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면 스스로 깨닫기까지 한참은 더 걸렸을 것이다.

이렇게 이유를 알 게 된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기에 난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그러니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마력 기관을 만드는 것이다. 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일단 이야기를 정리한 스승님이 갑자기 떠올랐다는 듯 다른 주제를 꺼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오가토르프 가문의 소가주가 방문했더구나."

"셰릴이요? 걘 마법 안 배우지 않습니까?"

"맞아. 네가 아카데미에 학생으로 편입하게 되는 것인지 물어보려고 온 거였지. 그렇지는 않을 거라 했더니 굉장히 아쉬워하던데."

"걔 표정 읽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닐 텐데 굉장하시네요."

"글쎄...? 오히려 그때만큼은 누구라도 알아볼 정도로 확실한 반응을 보였다는 쪽이 맞는 거 같은데..."

흐음. 나도 구체적으로 어떻게 일이 진행되는지 알게 된 게 이틀 전이라서 이래저래 확실해진 다음에 이야기를 돌릴 생각이었거늘 조금 꼬인 모양이다.

"어차피 내 수업은 마법 방어술에 가까우니 결국 오가토르프의 소가주도 듣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겠지만, 신세를 진 곳이니 직접 가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방법일 거야."

아마 많이 아쉬워했다는 셰릴의 반응을 떠올리며 나름의 조언을 해주시는 것 같은데, 스승님의 그 안일한 조언에 난 자리에서 일어나며 고개를 내저을 수밖에 없었다.

"그건 괜찮을 겁니다. 이미 저희 집에 가 있을 테니."

"...흠?"

걔 성격에 아쉬운 마음을 이끌고 곱게 기숙사로 들어갔을 리가 없지. 왜 미리 언질을 안 줬냐고 따지기 위해 우리 집으로 향했다에 내 손모가지를 걸 수 있다. 어쩌면 지금쯤 나랑 길이 엇갈렸다는 사실에 낭패감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러니 괜히 투정이 더 심해지기 전에 오늘은 먼저 들어가 봐야 할 거 같습니다. 일은 내일부터인 거죠?"

"일이라고 할 만한 건 아니지만, 그렇지. 내일은 오후 2시에 맞춰 오면 된다. 본격적인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준비하는 일종의 체험 학습이니 너무 늦게 끝나지는 않을 거야."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스승님."

세부적인 내용은 그 후에 정하기로 한 뒤, 나는 예를 갖춰 작별 인사를 건네고는 교수실을 빠져나왔다. 낭패감을 느낀 셰릴이 아실리에에게 실례되는 행동을 할 리는 전혀 없겠지만 괜히 또 심통나면 그걸 받아줘야 하는 내가 고생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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