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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268화 (268/412)

뤼비스 교수의 수업 이후로 한 주 정도는 무난한 일상이 이어졌다.

조금 차이가 있다면 갑작스러운 스케줄 변동으로 인해 1학년 실전 과목까지는 해봤지만 3학년은 할 수 없었다는 것 정도? 단순히 3학년만의 문제는 아니고 2학년과도 엮여서 뭔가 수업 조정이 있었다는데 구체적인 이야기를 전해 듣지는 못했다. 겨울 합숙 비슷한 거라고만 들었을 뿐. 말이 겨울 합숙이지 거의 혹한기 훈련같은 꼴을 하고 있을 게 뻔했기에 실컷 셰릴을 놀려주고 싶었으나 아쉽게도 마주치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특별한 사건 사고가 없다는 의미에서 무난한 일상이었을 뿐, 여유롭게 보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어중간한 시기에 치고 들어온 탓에 겨울방학까지 시간이 비어버린 스승님은 연구실이 정리되자마자 곧장 세네란을 불렀고, 그녀는 무슨 이사라도 가는 것처럼 엄청나게 많은 짐이 실린 마차와 짐꾼들과 함께 저세상 하이 텐션을 보여 주며 나타났다.

"드디어! 내가! 왔다!"

"아...예. 간만입니다 세네란. 근데 뒤에 짐 마차는 대체 뭡니까?"

"연구 물품!"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연구실에 자기가 가져온 물건들을 채워 넣기 시작하는 세네란에게서 스승님에게로 시선을 돌려보았지만 돌아온 건 어깨를 으쓱이는 싱거운 반응 뿐이었다.

"내 장비는 너무 낡았다더군. 황금의 마법사가 그렇다는데 굳이 말릴 이유는 없지."

"마력 연구 장비는 마족령에서나 구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신품은 그렇지."

마족령과 무역이 이뤄지고 있는 종족과 나라들을 경유해서 들여온 물건이라는데, 덕분에 가격이 거의 두 배 가까이 뛰어 버렸음에도 세네란은 일말의 주저도 없이 일시불로 긁어 버린 모양이다. 과연, 자기 연구를 위해 돈을 벌기 시작한 여자다운 행동력이었다.

도무지 용도를 알 수 없고 감조차 잡기 힘든 물건들을 괜히 내가 옮기다가 망가트리게 될까 걱정했는데 다행스럽게도 그녀가 데려온 짐꾼들이 세팅까지 완벽하게 끝마치고 마차와 함께 사라졌다. 처음 봤을 땐 꽤 넓어보였던 연구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세네란의 마도서관 연구실을 고스란이 옮겨 놓은 것 같은 혼돈의 카오스가 펼쳐진 가운데,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세네란이 선언했다.

"마력 기관을 만들 시간이다!"

방 안에 있는 세 사람이 모두 바라 마지않는 목표를 외친 그녀는 내가 동의할 틈도 주지 않은 채 곧장 칠판 하나를 끌고 오더니 마력 기관의 구조와 일반적인 원리 그리고 마족들이 그걸 어떠한 형태로 인식하는지 등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전문적인 지식의 범람으로 나 빼고 자기들끼리만 말이 통할 것 같았던 첫인상과는 달리 세네란은 내가 확실히 이해하는 그 순간까지 거의 모든 것을 하나하나 풀어가며 설명함으로써 날 놀라게 만들었다.

"뭘 그런 거에서 놀라는 거야? 네가 핵심인데 당연한 거 아니야?"

오히려 그런 내 반응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의아함을 표하는 세네란에 대한 평가를 이상한 사람에서 이상하지만 좋은 사람으로 격상시킨 뒤, 그녀의 성의에 보답하고자 열심히 질문을 던졌다.

뻔뻔하게 살아가기로 마음먹은 나조차도 굉장히 부담스러운 시간이었다. 내로라하는 명성을 지닌 두 마법사가 고등 수학을 알아야 풀 수 있는 문제는 하나하나 사칙연산으로 풀어가며 떠먹여 주는 수준으로 설명해야 이해할 수 있는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한 문장을 말하면 질문 하나가 튀어나오는 수준으로 대화를 나눈 끝에야 나는 그 마력 기관이라는 게 어떤 형태로 작용하는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옘병."

그리고 이해와 동시에 반사적으로 욕지거리가 튀어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갑자기 욕?"

이에 세네란이 의문을 표했지만, 난 말실수를 정정하기보다 도저히 믿기 힘든 현실에 대해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어떻게 마족과의 전쟁을 7년씩이나 버티고 있는 겁니까?"

마력 기관의 구조는 마나 혹은 오러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애당초 마력을 한참 다운그레이드해서 만들어진 게 그 둘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반드시 '정제'라는 형태를 통해 연료를 공급받아야만 굴러갈 수 있는 마나와 오러는, 비유하자면 현대의 이동 수단에 들어가는 엔진에 가깝다. 그렇기에 연료의 순도를 올리고 그 순도를 버틸 수 있게끔 계속 계량하고 조정하며 강해질 수 있다.

그에비해 마력 기관은 유명한 부자 슈퍼 히어로의 가슴 팍에 박혀 있는 원자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그냥 숨만 쉬어도 필요한 자원이 자동으로 공급되니 연료가 부족할 일도 없다. 제국에서 모가지를 병뚜껑처럼 따버렸던 마족 놈이 왜 그 지랄염병을 하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했는지 납득이 될 정도로 무지막지한 차이가 존재했던 것이다.

"많은... 희생이 있었지."

너무나도 압도적인 격차. 스승님이 말한 침식 마법이 만들어지고, 시간이 흘러 성광십자회의 문서처럼 인간들의 강함이 비약적으로 향상하기 훨씬 이전에 이미 전쟁이 끝났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자동차로 아이언맨을 어떻게 잡냐고.

근데 그걸 해낸 것이다. 반만년을 수련한 창병이 이기어창을 사용해 탱크를 이겨도 이것보다 놀랍지는 않을 것이다. 절로 감탄이 나오는 와중에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새로운 의문이 치솟았다.

"잠시만요. 그럼 대체 이전 시대의 마왕군은 어떻게 물리치고 버틸 수 있었던 겁니까?"

용사와 마왕의 대립은 대륙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기록이 사라진 고대 시절부터 상당히 오랜 시간 이어져 온 유구한 전통과도 같은 대립이다. 그 과정에서 나라가 망하고, 마족령이 넓어지거나 좁혀지며 여러 변화가 있었다고는 하나 대륙이 완전히 마왕의 손에 넘어간 역사는 없다.

말 그대로 어택땅만 찍어도 이길 스펙으로 대륙 통일 한 번 못했다는 건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잖아? 내 자연스러운 의문에 세네란이 어깨를 으쓱이며 심드렁하게 대답해주었다.

"마족들도 처음부터 마력 기관의 개념을 지닌 게 아니기도 했고, 어느 시대에나 영웅이라 불리는 인물들이 활약하는 법이지. 무엇보다 용사가 있잖아."

"약하던데요?"

물론 내 평생의 수련을 몇 달짜리 훈련만으로 버틴 더러운 재능충이었지만 난 그 사실을 쏙 빼고 정정당당하게 선동과 날조를 시도했다.

"네가 이상한 거야. 아니면 지금의 용사가 이상하거나. 그리고 기록을 살펴보면 용사의 힘은 단순히 개인의 무력만이 아니라고 해."

"...뭐 신관들의 축복처럼 광범위 지원기술이라도 있답니까?"

"어, 맞아. 그런 게 있어."

세상 참 놀라워라. 아카데미에서는 학생들의 사기를 떨구던 지크프리트가 전장에서는 아군에게 버프를 걸어 줄 수 있는 존재라니. 그것만으로 모든 것을 납득하긴 힘들었지만 딱히 더 파고들어 봤자 내 마력 기관 생성에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닌지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세네란의 말대로 마족들의 마력 기관 역시 발전해 왔다. 과거에는 무리한 출력을 시도하여 목숨을 태워가면서까지 강함을 추구하는 마족들도 있었다고 하나, 현재에 이르러서 마족들의 마력 기관은 철저하게 안정성을 추구하지."

어차피 출력은 강하니 오래 버티기만 하자는 발상으로 온갖 안전장치를 만들었다는 소리다. 칠판에 굴렝의 마력 역류 방지식이라던가, 페넬드로아의 압축식같은 도무지 알아먹을 수 없는 마력 기관 안전장치 개념들을 몇 개 적어보인 스승님이 내게로 시선을 돌리며 설명을 이어 나갔다.

"마족들이 마력 폭주로 인한 죽음을 피하고자 만든 안전장치 중 필수라고 여겨지는 것만 15가지가 넘는다. 자잘하게 파고들면 더 많고, 이를 응용해서 폭발적인 힘을 얻는 방법 또한 많이 연구되었지. 강한 마족이라는 건 마력 기관에 이러한 안전장치를 더 많이 설치한 녀석들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우리에게도 타고난 재능의 차이가 있는 것처럼 그들 역시 차이는 있지만, 천재란 항상 소수인 법. 그런 일반적이지 않은 경우의 수를 지금 염두에 둘 필요는 없지."

칠판에 적힌 다섯 개가 끝이 아니라고? 당장 오러 유저들조차 주먹구구식으로 훈련하는 게 태반인데 마족은 저 정도가 기본인 건가? 마족령은 사실 교육 문화가 엄청나게 현대화된 곳 아닐까?

"네게는 좋은 소식임과 동시에 나쁜 소식이기도 하다. 좋은 소식은 네 몸에 마력 기관이 자리 잡기만 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마력을 연소시키며 강한 힘을 뽑아내는 방법까지 같이 익힐 수 있다는 것과 그 과정에서 마력의 폭주로 위험에 빠질 걱정이 거의 없다는 점이고, 나쁜 소식은 그 모든 과정을 나와 세네란도 이론으로만 도와줄 수 있을 뿐이기에 실질적으로 너 혼자서 뚫어야 하는 상황이라는 점이지."

미지의 영역이란 언제나 좆같음을 유발하는 법인가.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수도 없는 입장인지라 눈앞이 깜깜해지는 와중에 세네란이 한 마디 거들었다.

"너무 그렇게 막막한 표정 짓지마. 내가 그래도 아는 마족들에게 물어가며 이것저것 주워 놓은 게 많아. 도움이 될 거야."

"제발 그 신나 보이는 웃음기부터 좀 지우고 말해주시죠."

"에이, 내가 너 죽으라고 이런 소리 하겠어? 네가 살아야 내 연구도 지속되는 거라고."

이상하지만 좋은 사람이었던 평가가 이상한데다가 좋은지 나쁜지도 알 수 없는 사람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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