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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284화 (284/412)

'엘드미아야. 네가 지금 이게 얼마나 이상한 건지 진짜 감도 못 잡고 있어서 하는 설명이니까 잘 들어.'

통로를 내려가는 동안 어두워졌다가 마법이 걸려 있는 영역에 이르면서 점차 시야가 밝아지는 것을 느끼며 내가 떠올린 것은 나를 지각생으로 만들어 버린 세네란의 조언이었다.

'마장금은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마도구야. 아예 마력에 반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니까. 거기에 네가 마력을 덧씌우거나 허공에 날리는 것도 충분히 놀랍다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그건 이론 상 가능은 하다는 영역에 가까워.'

얼추 거의 다 내려온 거 같아 가볍게 뛰어내려 살펴본 주변은 고요하다. 동굴 특유의 소리 울림만 느껴질 뿐 별다른 이상 징후를 느낄 수는 없었기에, 나는 바늘을 뽑아 왼쪽 통로로 향했다는 표식을 남긴 뒤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마력을 이용해 타인 혹은 물체에 개입하는 건 별개의 문제야.'

기억 속의 세네란은 세상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건 스승님도 마찬가지였니 그녀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은 충분히 직감할 수 있었다. 근데 짐작하는 거랑 이해하는 건 별개지. 난 일 더하기 일과 1 + 1 이 다른 거라는 말을 들은 것처럼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왜 달라요?'

당장 평범한 검조차 내구성의 차이가 있을 뿐 어느 정도는 마력을 감당하던 게 떠올라서 던진 질문에, 세네란은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놈을 봤다는 듯이 눈을 질끈 감거나 이마를 치거나 하지는 않았다. 대신 한없이 진중한 태도로 고민하여 나도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예시를 찾아냈다.

'사람의 몸은 대부분 수분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거 알고 있니?'

'예, 뭐... 그건 알죠.'

'그런데 왜 수속성 마법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은 사람 몸에 있는 수분에는 손을 대지 못할까?'

'...어?'

통로에 있는 흔적들을 살펴보며 최근 것과 오래된 것을 구분하고, 반역자들이 남겨 놓은 표식같은 게 없는지 확인하며 움직이는 과정은 고요하다. 나는 정말 오랜만에 맞이하는 정적 속에서 몸에 익은 대로 추적을 하면서도 세네란이 마지막으로 해준 조언을 되새겼다.

'그나마 너 이해하라고 든 예시인데 사실은 이 정도로도 부족해. 갔다오면 제대로 설명해줄 테니까 일단 그거 다른 사람들 보는 곳에서는 절대 쓰지 마.'

'악마 나오면 이거 무조건 써야 하는데...'

'이이익! 그럼 하다못해 마법사나 성직자 앞에서는 쓰지 마! 그건 바늘처럼 눈속임으로 넘어갈 수준이 아니니까! '

한 켠으로는 음속의 발검술인 척하면 그럴싸하게 먹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었다. 세네란이 경기를 일으키는 걸 더 보고 있다간 5분 지각으로 끝나지 않을 게 확실했을 뿐만 아니라 전문가의 조언을 무시하고 보는 꼰대같은 마인드로 반응하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네란의 조언을 온전히 따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당장 제국 신성회의 성녀에, 마법사인 에셀루아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 데다가 내 기억이 맞다면 4등이랑 5등도 마법사였거든.

결국 이래저래 혼자 움직일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하다못해 빨리 악마와 연관 있는 새끼들만이라도 싹 다 쳐 죽이고 시작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에파가 님께 기도드리던 내 눈에 최근에 생긴 듯한 흔적이 눈에 들어왔다.

"흠... 아직 마르지 않은 거 보면 놈들의 흔적이 맞는 거 같은데."

신발 모양으로 어설프게 남아 있는 흙 발자국은 지하라는 여건을 따지고 봐도 축축했다. 어디 토굴이라도 파고 있는 건가? 지하 수로의 어딘가가 붕괴된 게 아닌 이상 이렇게까지 흙발로 돌아다닐 일이 없어서 좀 많이 의아했다.

하지만 고민에 빠진 머리와 별개로 몸은 쉽게 검을 뽑을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한 뒤, 잘 보이지도 않는 발자취를 따라 움직였다.

따라가보면 알겠지.

처음 지하 수로에 발을 디뎠을 때, 셰릴은 솔직히 제국 신성회의 성녀가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 여겼었다. 시종일관 바들바들 떨면서 위태로운 모습을 보여줬으니 아무리 용사의 일행이라고 한들 믿음이 가지 않을 수밖에. 심지어 용사는 시큰둥한 태도로 일관하며 통성명조차 시켜 주지 않아 셰릴은 파티원의 이름을 하나도 모르는 상태로 움직이는 중이었다.

먼저 물어보기도 애매한 게, 하필 상대가 성녀이자 용사파티의 일원이다. 신분이 높은 쪽에서 물어보지 않으면 먼저 물어보는 게 예의가 아닌 귀족 예법이 매우 귀찮다고 생각하면서 셰릴은 유독 불안한 성녀를 예의 주시했다.

하지만 성녀는 그녀의 예상과 달리 굉장히 특이한 인물이었다.

"이쪽으로. 사이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뭐가 그리 무서운지 사시나무처럼 벌벌 떨면서도 행동하는데 있어 주저함이 없고, 사주 경계를 비롯해 제 역할을 다 한다. 오히려 능숙한 것만 놓고 보면 이름도 모르는 4등과 6등보다도 나았다. 의외로 이런 일에 익숙한 것일까? 단순히 치료를 위한 휴대용 포션으로만 여겨졌던 성녀가 정상적인 인물로 보이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굉장히... 미약하군요. 동시에 다방면으로 펼쳐져 있습니다. 소환진이라도 준비하는 것일까요?"

그러다가도 저 떨리는 목소리만 들으면 조금씩 생기던 믿음이 사르르 녹아 사라지는 거 같았지만 어쨌든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게 중요했기에 셰릴은 개의치 않기로 했다. 성녀의 질문에 잠깐 고민하던 엘프가 대답했다.

"그러기엔 준비하는 시간이 촉박했다고 생각해. 놈들도 우리한테 쫓겨 온 지 얼마 안 됐잖아. 다른 꿍꿍이가 있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최대한 움직이기 편한 경갑을 걸친 채 롱소드와 방패를 들고 있던 엘프가 내놓은 대답은 분명 타당했으나 많은 사건에 연루되어 있는 엔벨데를 간과한 의견이기도 했다. 만약 저 악마 숭배자들과 엔벨데가 모종의 거래를 했다면 반란을 일으켰을 때 혼란을 야기하기 위해 무언가 사술을 준비해놨어도 이상할 게 없다고, 셰릴은 생각했다.

아무리 용사 일행이라고는 하나 결국 다른 나라 사람인 둘에게 과연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될까 고민하던 셰릴이 짧게 고개를 내젓고는 둘에게 말했다.

"죽어 버린 반역자와 손을 잡았다면 미리 준비해 놨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반란 중 혼란을 야기하기엔 최적의 조건이었을 테니까요."

왕국 내부 사정을 이야기하는 게 내키지 않았지만 어차피 이 지경까지 왔는데 이제 와서 그런 점을 신경 쓴다는 것도 새삼스러운 일이었다. 도움받는 입장에서 제 편의대로 정보를 숨겨서 괜히 시간을 빼앗기게 만든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셰릴은 이후로도 몇 차례 의견을 조율하며 두 사람이 놓치고 있던 점들을 바로잡아주었다.

딱히 그녀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 그로 인해 두 사람 안에서 셰릴에 대한 평가가 꽤 상승했다.

"마족으로 인해 혼란스러운 이런 시기에 악마와 손을 잡고 반역을 일으키려고 했을 가능성이 있다니, 참으로 끔찍한 일입니다."

"사리사욕이란 게 다 그렇지 뭐. 그러고 보니 당신, 엘드미아 님이랑 친한 거 같던데. 잘 아는 사이야?"

'...님?'

생각도 못 한 존칭에 잠깐 고개를 갸웃거리며 엘프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발언에 아무런 위화감도 못 느낀다는 반응으로 대답을 기다릴 뿐이었다. 뭐지?

"...예, 2년 정도 저희 가문에서 식솔로 지냈습니다."

대답하면서 적당히 눈치를 봤지만 엘프는 그냥 그렇구나 라는 정도의 반응을 보일 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아실리에의 지인이라 그녀를 존중해주는 의미에서 존칭을 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이어지는 성녀의 지시를 따라 이동하는 데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특별할 거 없는 지하수로임에도 괜히 불쾌해지는 공간이었다. 엘드미아와 간간이 모험가 의뢰를 하러 던전에 들어간 적도 있었지만, 아무리 퀴퀴하고 지저분한 고블린의 소굴이라 하더라도 이 정도로 불쾌하진 않았는데. 고개를 돌려보았지만 경계를 지속하고 있는 4, 6등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 하는 눈치였다.

"성녀님? 묘하게 공기가 무겁고 불쾌한 기분이 듭니다만..."

저도 모르게 성질이 날 정도로 불쾌감이 스멀스멀 기어올라 일단 성녀에게 말을 건넸더니 의외의 반응이 돌아왔다.

"가, 감이 굉장히 예민하신 편이가보군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깜짝 놀란 성녀가 제국 신성회 식으로 약식 기도를 올리자마자 거짓말처럼 불쾌감이 사라져서 셰릴은 표정 관리를 하는 것조차 잊어 버린 채 놀라고 말았다. 그런 그녀를 보며 작게 웃어 보인 성녀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검지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리며 설명했다.

"종종 악마 숭배자들의 기척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딱히 위험한 것도 아니고, 저주에 걸리는 것도 아니지만 굉장히 거슬리죠."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는데 이렇게나 불쾌하다니 뭔가 손해 보는 기분이군요."

"익숙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성기사분들 중에서도 그런 감을 지닌 분들이 계시거든요. 익숙해지면 오감을 자극하는 다른 형태로 느끼게 되면서 불쾌감이 격감한다고 해요."

평생 살면서 이런 감각을 느끼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기에 잠깐 당황하는 사이 마찬가지로 신기하다는 듯이 셰릴을 보고 있던 엘프가 갑자기 성녀의 입을 막았다.

"있다."

그 작은 한 마디만으로 모두가 상황을 파악하고 자세를 낮췄다. 금방 성녀에게서 손을 뗀 엘프의 귀가 움찔거리며 반응하는 모습에 모두가 숨소리마저 죽인 채 기다리는 사이 그녀의 작은 입이 불만이 튀어나왔다.

"젠장. 둘 정도가 서로 떠드는 건 알겠는데, 나머지는 잘 모르겠어."

"그, 그러니까 훈련 좀 잘 받으라니까. 남들은 돈 주고도 못 배우는 엘프의 기술을 대체 왜 엘프가 안 배우는 거야..."

사뭇 김빠지는 대화에, 셰릴은 성녀가 아니라 엘프에게 하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검을 뽑아 들었다.

"성녀님. 혹시 악마가 있는지 알 수 있습니까?"

"아, 아뇨. 악마는 없습니다. 악마 숭배자들의 기운도 먼 것을 보면 반역자 무리일 가능성이 높겠네요."

"그럼 제가 먼저 진입할 테니 엄호를 부탁드립니다."

"예? 하, 하지만 위험할 수가..."

"안 위험합니다."

사실 엄호도 필요 없었지만 그냥 뛰쳐나가는 건 예의가 아닌 거 같아 한 말에 불과했다.

교수도 아닌 학생에게 질 정도로 셰릴은 만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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