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상성 악마 새끼가 건방지게 폼을 잡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번엔 그럴 수 없었다. 내가 오러나 마나는 못 느껴도 마력은 느껴진다. 심지어 보이기까지 하다 보니 모를 수가 없다.
[이 빌어먹을 새끼가!!]
"그 꼴로 말은 참 잘하네."
대가리를 뽑는 게 가능하다면 쑤셔 넣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서 시도해 본 기술에 맞고 졸지에 목이 없어진 악마 새끼의 몸은 잉글라디우따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마력이 넘쳐흘렀다. 원래의 목적은 아예 머리통을 배까지 쑤셔 박는 거였는데 어중간하게 박혀 버린 머리를 보아하니 대상이 지닌 마력에 따라 기술이 먹히는 정도가 달라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대체 무슨 수작을...!]
즉, 지금 눈앞에서 머리를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머저리처럼 굴고 있는 이 악마는 나름 급이 있다는 말이며 극상성인 악마와 나의 격차를 조금은 커버할 정도의 무언가가 있다는 소리다. 이는 제 주둥이로 대공이니 뭐니 떠들 정도는 된다는 말이기도 하고, 일반적인 악마들보다 더욱 인류에게 해로운 폐기물이라는 말이기도 했다.
"알아서 뭐 하게? 어차피 죽을 텐데."
[주제를 알아라 인간!]
녀석이 제 손으로 머리를 뽑자마자 징그러울 정도로 빠르게 회복되기 시작한다. 당연히 친절하게 보고 있어 줄 생각 따윈 없었기에 그 틈을 타 검에 마력을 두르고 달려들었다.
그런 나에게 반응해 녀석 주변으로 마력이 휘몰아친다. 저런 꼴로도 마법을 시전할 수 있다니 쓰잘데기 없이 재주만 다양한 폐기물이었다. 하지만 상처 회복을 병행하는 탓인지 그리 빠르지 못했고, 나는 안쪽으로 파고드는 동안 여유롭게 마력을 잘라 녀석의 마법을 방해할 수 있었다.
콰앙! 꽤 큰 마법이었는지 악마의 좌우 어깨 위로 적잖은 폭발이 일어났고, 녀석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너, 너였구나!!]
"어디 바퀴벌레 새끼가 시도 때도 없이 반말이야."
다행히 좀 더 강한 폐기물이라고 해서 칼이 안 들어가지는 않았다. 폭발에 휘청거리는 녀석의 두 다리와 왼팔을 베어내는 과정에서 검에 느껴지는 저항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카아아악!]
남은 팔 하나도 마저 잘라 내려던 찰나 갑자기 악마의 몸이 안개처럼 흩어졌다. 흡혈귀나 부릴 만한 개짓거리를 악마가 시전했다는 점에 조금 놀랐지만, 어차피 안개가 되었다 한들 그 마력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기에 난 가장 마력이 많이 뭉쳐 있는 곳을 노려 검을 찔러넣었다.
[끼야아아악!]
"더럽게 시끄럽네. 잉글라디우를 좀 본받아라. 그 새끼는 대가리가 반쯤 박살 나도 조용했다."
물론 대가리가 반이나 박살 났기에 조용할 수밖에 없었던 거지만, 그런 사소한 문제는 굳이 디테일하게 짚고 넘어가지 않기로 했다. 내 검이 찔린 부위를 중점으로 다시 원래의 모습을 되찾기 시작한 악마가 두 눈을 부릅뜨며 날 노려보았다.
[잉글라디우?! 너! 엘드미아 에가로구나!]
"에가'님'이라고 불러라 바퀴벌레."
[키아아악! 감히 한낱 인간 나부랭이가!!]
의지만큼은 굳세다고 해야 할까. 안개화를 해제하며 순식간에 잘려 나간 팔다리도 복구한 악마가 내 머리를 노리며 두 팔을 휘둘렀다. 녀석의 새로운 팔을 검에 씌운 마력을 최대로 방출하며 뽑아 휘두르는 것으로 잘라 내 공격을 무마시키고 있는 힘껏 복부를 걷어차자, 억 하는 소리와 함께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악마가 날아갔다.
[크헉, 이, 이건 말도 안 돼! 아무리 완전하지 못하다고 한들...!]
진흙같은 몸뚱이와 달리 징그럽게 눈깔만큼은 사실적인 악마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지만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악마 새끼들의 변명 레퍼토리는 다 똑같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만 들 뿐. 마음 같아서는 심장을 노리고 싶은데 어째서인지 잉글라디우와 달리 심장이 보이지 않아서 그러지 못하는 게 아쉽다.
빨리 무력화시켜서 심장은 어쨌는지 물어보려고 다가가니, 악마가 몸을 벌떡 일으키며 외쳤다.
[나는! 지식을 탐미하는 자! 크루멜리아다!]
'어쩌라고.'라는 반박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입 밖으로 낼 틈은 없었다.
건방지게 남의 시그니처 대사를 가져간 악마의 머리를 한 번 더 분리시켜 주려고 다가가는 순간 녀석의 몸이 또다시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타인의 접근을 허용치 않으려는 건지 기분 나쁜 가시 같은 게 사방팔방 튀어나와 그거 피하고 파괴하기도 급급해져 버렸다.
"엘드미아!"
그 틈을 타 지금까지는 내가 말한 대로 뒤에서 잘 대기하고 있던 일행들이 뛰쳐나왔다. 다른 때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꽤 고마운 행동이었다. 일일이 베야 하는 나와 달리 지크프리트에게는 마법과 정령술이라는 편리한 범위기가 있으니까.
내 곁에 도착하자마자 최대한 넓게 바람의 칼날을 펼친 지크프리트가 악마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외쳤다.
"내가 진짜 물어보고 싶은 게 엄청 많은데 일단 참는다!"
"나중에 정리되면 최대한 대답해드리죠. 그보다 성녀님? 혹시 심장없는 악마에 대해 뭐 아는 거 있으십니까?"
"시, 심장이 없는 악마요?"
처음엔 마력의 밀도가 너무 높아 안 보이는 건가 싶었지만 이제는 확실했다. 저 새끼의 심장은 여기에 없다.
버벅이고, 당황하지만 눈동자만큼은 또렷하게 상황을 인지하는 성녀가 미간을 찡그리며 고민에 빠졌다. 다행히 당장은 그리 다급할 게 없었기에 난 차분히 기다렸다. 저 기분 나쁜 고깃덩어리가 아무리 가시를 뽑아낸다한들 지크프리트가 펼친 정령술이 완벽하게 막아 내고 있었다. 저게 뭘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저렇게 가시를 뽑아내는 것도 다 지 힘을 쓰는 일일 테니 장기적으로 봤을 때 손해는 아닐 것이다.
"기록된 내용 중에 악마의 심장이 없는 경우는 한 가지뿐입니다. 그들이 이곳에 존재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을 무시하거나 등한시했을 때."
"과정? 제물을 바치거나, 뭐 그런 거 말입니까?"
"네. 악마 숭배자들과 악마들이 수많은 세월에 걸쳐 정립한, 세상을 속이기 위한 방법이죠. 그 과정을 거치지 않은 악마는 심장이 없습니다."
심장이 약점인 놈이 규칙을 어기고 받는 페널티라는 게 심장 없이 나타나는 거라고? 뭔가 앞뒤가 안 맞는 거 같아 고개를 갸웃거리니 금방 추가 설명이 이어졌다.
"심장만이 악마들의 세상인 만마전에 남게 되는 겁니다. 아무런 보호도 받을 수 없는 상태로 가장 무방비하게 남아 다른 악마들의 먹잇감이 되는 거죠. 설령 심장을 안전하게 보호할 방법이 있다 하더라도 육체와 떨어짐과 동시에 급격하게 쇠약해지며, 심장없이 이곳에 현신한 탓에 제힘을 온전히 발휘할 수도 없습니다."
과연 공공장소에서 용사에게 엉덩이를 주물러진다 하더라도 성녀는 성녀라는 건가. 나도 꽤 열심히 책을 읽으며 살아왔지만 전혀 몰랐던 정보가 아무렇지도 않게 튀어나온다.
하지만 좋기만 한 건 아니었다. 지금 당장 저 새끼를 죽일 방법이 없다는 소리와 마찬가지였으니까.
이 무슨 불합리한 바퀴벌레란 말인가.
"아, 아뇨! 다릅니다! 심장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목을 베거나 머리를 박살 내면 육체를 유지하지 못합니다! 만마전으로 퇴출당하죠!"
그런데 이게 왠걸? 성녀가 급하게 손을 내저으며 내 섣부른 결론을 부정했다.
"예? 정말요?"
"확실합니다. 악마들만 가능한 형태인지라 정확한 설명은 힘들지만... 저 악마는 심장이 이곳에 없기에 계속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고자 그와 관련된 마법을 써야 하는 상황입니다. 힘의 근원은 심장이라한들 결국 그걸 사용하는 건 머리이고, 파괴되면 시전도 멈추는 법이죠. 과거의 악마들은 실제로 그런 식으로 만마전으로 퇴출되었습니다."
"그거 정말 다행이로군요."
덕분에 눈앞에 악마를 두고도 죽이지 못 할지도 모른다는 좆같음이 순식간에 가라앉으며 속이 편안해졌다. 고구마 백만개는 처먹는 기분이었네 진짜.
어쩌면 저놈이 잉글라디우나 다른 악마보다 월등히 강하기 때문에 내 기술에 저항했다기보다, 대가리가 떨어지면 확실하게 사라지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지켰다고 보는 편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한 번 정도는 더 시도해볼 걸 후회되기 시작했지만 어쩌겠는가. 아무리 마력 기관을 만들면서 훨씬 수월해졌다고는 해도 마력을 연결해 목을 따는 건 나에게도 더럽게 부담되는 기술이다. 솔직히 처음에 싹 다 머리통을 날려 버리는 것으로 끝낼 요량이었는데, 저게 유독 질겨서 두 번이나 더 쓰다 보니 이젠 멀쩡히 움직이려면 함부로 쓸 수가 없다.
별 수 있어? 마력이 안되면 물리력으로 해야지. 저 개짓거리가 끝나자마자 목을 따버리겠다는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악마의 외침이 들려왔다.
[콰라라라라!]
"이젠 말도 못...뭐야 저게."
대화를 마치고 고개를 돌려보니 부풀어 오른 덩어리는 줄어들기는커녕 더욱 커져 있었다. 점점 비대해지며 인간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형태를 바꾸기 시작한 덩어리가 점차 구체적인 형상을 취할 수록 나를 비롯한 모두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요, 요, 요!"
제대로 말도 못 하는 성녀를 대신에 떨떠름한 얼굴의 지크프리트가 내게 물었다.
"동생? 저거 혹시 용이야?"
드래곤 슬레이어까지 들고 있던 니가 나한테 물어보면 어떡합니까. 나도 본적 없는데.
"마법 잘못 맞아 비대해진 도마뱀이 아니면 용이 맞겠죠."
여전히 진흙으로 빚은 거 같은 몰골이었지만, 이리보고 저리봐도 악마 새끼가 변신한 건 드래곤하면 떠오르는 그 형태가 맞았다. 나름 크기를 조절한 것인지 아니면 원래 이세계의 용은 다 저 크기인 것인지 모르겠지만 꽤 넓었던 공간을 반절 이상 채울 정도로 비대한 몸을 이끈 악마 새끼가 이를 드러내며 선언했다.
[다 짓이겨 없애주마!]
위압감을 느낀다던가, 말할 수 있으면서 왜 아까는 괴성을 질렀는가 라던가, 저 새끼의 악마악마 능력은 몽순이의 상위 호환인 것인가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당장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저거 목은 용사님이 따야겠는데요?"
마력을 두르든 뭘 하든 아까 녀석이 보여 준 회복력이 계속 유지된다면 내 검으로 저 용의 목을 깔끔하게 양단하는 건 힘들다는 게 문제였지.
다행히 지크프리트는 보기 드문 진지한 표정으로 대검을 고쳐쥘 뿐, 앓는 소리를 내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