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가들의 참 재밌는 능력 중 하나는, 아무리 소란스러워도 누가 처맞는 소리만큼은 귀신같이 주워 듣고 반응한다는 점이다.
"씹새가 되도 않는 흉내 내면서 좆같게 하고 있어!"
굳이 마력을 두르지 않아도 고개조차 돌아가지 않는 평범한 펀치였지만, 일단 내가 맞았다는 걸 알리기 위해 일부러 고개를 돌린 자세를 유지했다. 당연히 주변에 있던 모험가들이 일제히 반응하며 움직이기 시작했고, 나를 때린 놈과 나를 두고 공간이 생기기 시작했다.
"뭐야? 싸움이야?"
"또 싸워? 심심할 틈이 없네!"
주먹다짐만 일어났다 하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순식간에 거리를 벌리며 관전 모드로 들어가는 모험가의 습성은 변하질 않나보다. 겨울이라 죽치고 앉아 돈 쓰는 일밖에 남지 않은 모험가가 많은 탓이기도 하겠지. 이쯤 하면 됐겠거니 싶어 고개를 돌리자 인상이란 인상은 다 쓰고 있는 사내 놈 하나가 날 바라보고 있었다. 나보다 한 10센티 정도 작으려나? 키도 그렇고 덩치도 그렇고 어디서 꿀린 적은 없었을 체격이다.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되새겨 보아도 모르는 얼굴이다. 하기야 아는 얼굴이었으면 대뜸 주먹을 날리지는 않았겠지. 잠깐 녀석을 살피는 사이 모험가로 이루어진 울타리가 형성되자 멀리 있던 몇몇 모험가들도 마시던 술병을 옆구리에 챙겨든 채 허겁지겁 달려오기 시작하는 게 눈에 보였다.
"이야, 요즘 애들은 힘이 넘치나? 뭔 의뢰 하나에 목숨을...목숨...을..."
"오, 큰 친구들끼리 붙었는데?"
"누군데? 누가 또 싸...오, 이런."
반응이 제각각이다. 나를 알아보고 경악하는 사람, 전혀 모르는 사람 등등. 어쩌면 내가 모르는 사이 또 어디 도시 하나가 날아가서 당텔과도 같은 신규 유입이 늘어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벙어리냐? 처맞고 나니까 말이 안 나와? 왜? 또 아까처럼 어깨로 사람 좀 쳐보지 그래?"
그러거나 말거나 날 때린 놈은 내가 아무 반응도 하지 않자 기세가 올랐는지 더욱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그 태도가 너무 당당해서 오히려 내가 없는 사이 의뢰 게시판의 문화가 바뀐 게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하게 될 정도였다.
당연히 그럴 리는 없다. 이미 뒤에서 다 보고 들어간 거니까. 그래도 이놈이 하도 당당한 탓에 나는 내가 미처 이해하지 못한 이유가 존재하지 않을까 싶어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왜 때렸냐?"
"뭐? 왜 때렸냐고? 씨발 사람을 그렇게 밀쳐 놓고 뭐? 왜 때리냐고?"
음, 역시 이유는 없군. 일을 치르기 전에 마지막으로 접수대를 향해 시선을 옮기니 바쁜 와중에도 몇몇 접수원들이 소란을 인지하고 또 무슨 일이 일어났나 싶은 표정으로 살펴보고 있었다. 일부는 이해를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일부는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하고 경악하며, 그중 한 명은 황급히 접수대를 뛰어 넘으려다가 자빠지기까지 했다. 어우, 저건 좀 아프겠는데.
"나한테 따로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밀치니까 쳤다?"
"왜? 원한 있으면 뭐 달라져?"
"그럼, 많이 달라지지."
분위기를 안 잡고 말해서 그런가, 아니면 이놈이 눈치가 없는 것일까. 꽤나 친절하게 설명해줬음에도 녀석은 사태를 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작 주변 사람들 일부는 심각한 걸 눈치채기 시작했는데.
어쨌든 딱히 날 노린 게 아니라는 건 확실했기에 나는 여유롭게 라이카를 오른손만으로 받쳐 들며 나에게 죽빵을 선물한 녀석을 바라보았다.
"하, 웃기는 새끼일세 이거? 까짓거 있다고 치..."
그리고 그대로 왼 주먹을 휘둘러 녀석의 턱을 후려쳤다.
몸을 크게 움직일 필요도 없었다. 잽과 다를 바 없는 동작만으로도 충분한 위력이 나왔으니까. 관절이 빠지면서 나는 딱! 하는 감각이 주먹을 타고 올라온 탓에 녀석의 턱이 깔끔하게 빠졌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깔끔하게 조절될 줄은 몰랐기에 내심 뿌듯하다. 턱뼈가 작살나지 않게 조심한 거였는데 말이야. 스스로의 힘 조절에 가볍게 감탄하는 사이 제대로 반응조차 못 한 놈은 돌아갔던 고개가 제자리를 되찾자마자 눈을 까뒤집고 주저앉기 시작했다.
번거롭게 쓰러진 놈을 다시 주워 끌고 갈 생각은 없었기에, 그대로 머리카락을 쥐어 잡아 멈춰 세우기까지 걸린 시간이 2초 남짓. 순식간에 상황이 정리된 탓에 뭔가 벌어진다고 기대하며 소란스럽던 모험가들 사이에는 거짓말같은 정적만이 흘렀다.
아무래도 길드에 오지 않는 사이 뭔가 변화가 있긴 했던 모양이다. 내가 사람 패는 걸 보고 저런 반응이 나오다니.
"내가 얘 친구이거나, 연인이거나, 복수를 해 줄 정도로 돈독한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 거수."
당텔 새끼도 엉겨 붙는 패거리가 있었는데 이 녀석은 교우 관계가 좋지 못한 것인지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혹시 몰라 잠깐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추가로 덤빌만한 녀석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기에 그대로 녀석을 질질 끌며 접수대로 향했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주먹부터 휘두른 놈의 팔다리 네 개 정도는 분질러 놓고 시작하고 싶기도 했지만 이제는 사사로운 일에 과민반응하기보다 간결하게 끝내놓은 뒤 주변의 입소문을 이용하는 편이 더 나은 시기이기도 했고, 길드장과의 면담을 위한 구실이이었다는 명목을 세우기 위해서라도 이 정도 선에서 끝내는 편이 보기 좋을 거다.
무엇보다 이놈이 생긴 거랑 달리 모험가가 된 지 얼마 안 된 놈인 게 확실하다 보니, 나하고는 너무 급이 안 맞아서 언성을 높일 가치조차 없다. 규칙이라도 아는 놈이었다면 모를까, 제대로 파악 못한 풋내기한테 지랄하는 건 좀 없어 보이잖아.
"에, 엘드미아 님! 잠...아."
접수대를 넘다가 안면 낙법을 시도했음에도 투철한 직업정신을 발휘하며 일어나 허겁지겁 달려오려던 접수원이 뒤늦게 몸을 일으켜 세우며 짧은 단말마를 터트렸다. 강한 안타까움과 자신이 늦었다는 깨달음이 공존하는 얼굴은 자신의 업무에 충실하고자 하는 접수원답다고 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 그의 직업정신을 높이 사서 밝은 미소와 함께 새로운 업무를 만들어 주기로 했다.
"오랜만입니다. 방금 겪은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은데요."
나와 손에 들린 머저리를 두고 열심히 눈을 굴리던 접수원이 투철한 직업 정신을 다시금 불태우며 업무용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위, 위로 올라가실까요? 무, 물론 엘드미아 님이 당당하다는 건 알지만! 지금은 주변이 워낙 소란스러우니까요!"
뜬금없이 뭔 소린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가, 뒤늦게 그의 의도를 파악하고 나도 모르게 웃어 버렸다. 이 친구 내가 관문 도시 라비엘에서 거기 길드장한테 깽판친 걸 들었나 보네.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의뢰지 역할을 대신해 준 머저리를 내버려둔 채 접수원을 따라 위로 올라갔다. 그렇게 안내 받은 곳은 몇 번 와본 길드장의 개인실이었고, 옌 티에의 능력에 다시 한번 감탄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안 그래도 한 번 뵙고자 했습니다만, 이런 형태로 뵙게 될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 애완견인가요?"
문을 열자마자 익숙한 초콜릿 보관함과 찻잔을 준비하고 있던 길드장 엔그림이 미소와 함께 자연스럽게 자리를 권하며 말을 걸어왔다. 보고받을 틈은 없었으니 뒤에 있는 창가를 통해 방금 일어난 소란을 본 모양이다.
그렇게 방음이 부실해서야 일할 때 집중하기 힘들 텐데... 뭐, 내가 굳이 나서서 걱정할 일은 아니었기에 자연스럽게 대답하며 자리에 앉았다.
"네, 훈련을 잘 받은 녀석이니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나저나 저도 이런 형태로 뵐 생각은 없었는데... 저 친구가 의뢰지 역할을 대신 해주더군요."
그리고 내 대답만으로 엔그림의 미소가 살짝 굳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라이카가 똥오줌을 지릴까봐 걱정돼서 그러는 건 아니었다.
"다른 형태로 만남을 가지고 싶으셨다는 의미로 들리는군요."
구태여 대답하기보다 침묵으로 일관하는 게 나을 거 같아 라이카를 무릎에 올려둔 채 입 다물고 그를 바라보자, 잠시 시선을 마주하던 엔그림이 옅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내저으며 초콜릿 보관함의 뚜껑을 열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과연, 옌 티에는 유능했다. 솔직히 여기까지 해 놓고 전혀 모르겠다는 반응이 나왔으면 뻘쭘했을 텐데 말이야. 일단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감사를 표한 뒤 초콜릿부터 하나 주워 먹었다. 입에 넣자마자 익숙하지 않은 강렬한 단맛이 미각을 자극하며 도파민을 분비시키기 시작한다. 역시 비싼 건 남의 돈으로 먹어야 제맛이라니까.
"솔직히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쪽 방면으로 저보다 유능한 사람이 언질만 준 거라서."
딱히 감출 것도, 그에게 악감정을 가진 것도 아닌지라 솔직하게 대답하며 찻잔을 들어 올리자 엔그림 역시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차를 홀짝였다. 덕분에 잠깐 정적이 흐르기 시작했지만, 아무래도 갑작스러운 방문에 자연스럽게 대응하긴 했으나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 듯하여 재촉하지 않고 초콜릿이나 하나 더 먹기로 했다.
이 비싼 걸 훅훅 주워 먹는 게 가장 큰 압박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 건 기회 있을 때 먹어 둬야지. 아무리 요즘 주머니 사정이 두둑하다고는 해도 아직 이런 사치를 막 부릴 정도는 아니다.
"뵙고자 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우선은 진급과 관련된 이야기부터 해야 할 거 같군요."
"...진급이요?"
"예. 설마 진급 시험도, 그에 준하는 능력 검증도 거치지 않았는데 왜 진급 이야기가 나오냐고 둘러댈 생각은 아니시겠죠?"
솔직히 철면피 깔고 엔그림이 말한 것과 똑같이 말해볼까 고민하기도 했지만, 나도 거기까지 뻔뻔하게 굴긴 힘들어서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만족한 듯 웃어보인 엔그림이 천천히 설명을 이어나갔다.
"업적만 놓고 보면... 사실 자급이 안 될 것도 없죠. 허나 등급을 건너뛰는 사례는 길드의 입장에서도 좋지 않은 선례로 남게 되는 터라 힘든 상황입니다."
이해 못 할 내용은 아니었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그런 선례가 남아버리면 제 능력을 과신한 놈들이 왜 자기는 안되냐며 업무에 방해되는 일을 만들 수도 있으니까. 이번에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자 엔그림은 더욱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래도 이는 어디까지나 형식상의 문제에 불과하고, 적급을 달자마자 자급 신청을 하셔도 자연스럽게 통과되도록 조치를 취할 것입니다. 일종의 보여주기 식 절차죠. 이 점은 미리 양해를 구하고 싶습니다."
"형식과 절차는 중요하죠. 충분히 이해합니다."
진심을 담아 대답했는데 의외로 엔그림의 반응이 영 탐탁지 않다. 그 모습은... 마치 '니가 그런 말을 해?' 라는 반응과도 같아서 아주 살짝 어이가 없었다.
나는 항상 형식과 절차를 중요시 여기는 사람인데 왜 저런 부당한 시선을 보내는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