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크들을 요격하기 위해 저공 비행을 하고 있던 헤이리의 귓가에 묘한 소리가 포착된 건 오크 기병들의 일부가 지상의 병력과 충돌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뒤였다.
휘파람 소리에 이은, 마치 여러 가닥의 채찍이 공기를 찢는 듯한 파공음. 모험가 중 누군가가 채찍을 쓴다고 하더라도 기이하리만큼 큰 소리에 헤이리는 저도 모르게 시선을 돌렸고, 이내 귀를 의심했던 것만큼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만 했다.
“저게, 무슨...?”
대체 뭐에 당하고 있는 것인지조차 알 수 없는 와중에 십 수마리의 오크 기병들의 대가리가 타고 있던 마수와 함께 깨져나가는 광경은,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개가 숲과 오크들의 전열을 동시에 박살 내는 모습과 함께 어우러져 초현실적이기까지 했다.
마치 강력한 석궁... 아니, 발리스타에 꿰뚫리기라도 한 것처럼 사방팔방 튕겨 날아가는 오크들 중 살아남은 놈들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놈들을 공격하는 게 무엇인지 보이지 않았다. 종종 위치를 파악할 수 없는 곳에서 산발적인 파공음이 울려오는 것으로 보아 무언가의의 투사체라고 짐작할 뿐.
그래서 더 의문이었다. 마나도 느껴지지 않는데 저런 마법 같은 공격이 가능한 건 고가의 아티팩트 정도밖에 없다. 용병이나 적급 모험가들은 결코 넘볼 수 없는 고가의 아티팩트.
하지만 놀라움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엘드미아?”
홀로 숙영지를 이탈해 검을 휘두르는 자가 있었다. 더없이 정상인처럼 보이나 누구보다 광인처럼 행동하던 이는 전장에서조차 광인이었다.
돌격하는 기병들과 정면으로 맞서는 검사라니? 헤이리가 처음부터 그 모습을 봤다면 시장에서 파는 삼류 소설과 영웅담을 너무 많이 접한 나머지 현실 감각이 사라진 머저리라 여겼을 것이다.
문제는 그 머저리 같은 행동을 한 이가 순식간에 오크 기병 다섯을 썰어 버렸다는 점에 있었다. 심지어 그게 처음이자 끝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엘드미아는 멈출 줄 모르고 검을 휘둘렀다. 진득하게 바닥에 두 발을 붙이고 휘두르는 검에 굵직한 마수의 목이 떨어지고 오크의 몸통이 양단되는 모습은 직접 보고도 믿기 힘들었다.
스스로의 실력에 자부심이 있는 헤이리였으나 자신은 저런 묘기를 세 번만 부려도 지칠 것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뼈와 뼈 사이를 정확히 가르지 못하면 검도 버티지 못할 것이고, 그런 노력을 할 바에야 적들의 안면에 불덩이 하나 더 던지는 편이 효율적이었다. 기술적으로는 분명 감탄할만 하나 실용성과는 거리가 먼 기술이다.
저렇게까지 물 흐르듯이 이어지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저건 명백히 엘드미아가 이상한 거였다.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실전에서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묘기를 숨 쉬듯이 부릴 수 있겠는가.
“심지어 군대를 상대로 홀로 버틴다고...?"
아무런 전술 전략없이 그저 달려들기만 하는 오크들에, 기수의 명령보다 자신의 생명을 우선시하는 마수가 상대라고 한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와 합을 맞추듯이 날뛰는 거대한 개와 오크들의 머리를 꿰뚫는 정체불명의 공격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평가절하할 수도 없었다.
거대한 개의 위용에 압도된 오크들과 마수들은 이미 그쪽을 피하기 시작했고 정체불명의 공격은 인지조차 못하고 있었으니까.
오크라는 종에게 있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진 공격이라는 것은 그저 비겁한 것에 불과할 뿐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분노를 자극하여 눈앞의 대상을 향한 적의만 불태울 뿐. 원거리에서 이루어진 공격으로 대다수를 쓸어 버리지 않는 한 오크를 막아서야 하는 이들의 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뀌이익!!"
"비거판 잉간!!"
바로 지금 보여주는 저 모습처럼. 모든 오크가 엘드미아를 노리는 건 아니어도 한 명이 감당하기에 과도하게 많은 숫자라는 건 변함없었다.
정작 그런 와중에도 크기에서 압도당한 개에게는 다가가지 않는 것이 참으로 강약약강의 본능을 지닌 몬스터다웠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공중에서 객관적인 시점으로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에 불과한 감상이라는 것을 헤이리는 잘 알았다.
정면에서 저들을 마주한다면 공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게 자신이라 하여도 그랬을 것이다. 저런 물량 공세 앞에서는 마법조차 만능이 아니다.
하지만 엘드미아는 물러서지 않는다. 그와 같은 실력을 지닌 이들이 세상에 다수 존재하는 것은 맞으나, 아직 성인식도 치르지 못한 소년의 몸으로 그 경지에 이른 이는 대륙을 통 틀어도 한 손 안에 들 것이 분명하다.
그 모습은 아군임에도 불구하고 경이로움을 넘어서 묘한 두려움마저 불러일으켰다.
◈
기묘하게 느껴지던 감각은 신기한 감각으로 바뀌고, 머리를 쥐고 흔드는 것만 같았던 어지럼증이 유발하던 메스꺼움은 묘하게 일정 수준을 유지할 뿐 더 심해지지 않은 지 오래다.
몸에 난 솜털 하나하나가 마력과 연결되어 거대한 천에 휩쓸린 듯한 감각은 분명 과거 게이트를 지날 때 느꼈던 것과 흡사했으나 이번엔 제멋대로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바늘들과 이어져 있었다. 직접 움직이고 있음에도 이해할 수 없는 감각이었다.
바늘들은 마치 새로 추가된 수족처럼 수월하게 움직인다. 피아식별까지는 할 수 없었기에 나를 지나친 오크들까지는 노릴 수 없었지만 시야에 들어오는 놈들은 어김없이 미간에 바람구멍을 내 줄 정도로 정확하다.
전투를 이어 나갈 때마다 온몸이 타오르고 삐걱거리는 기분이었지만 그와 별개로 적을 베는 움직임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하지만 그런 모든 증상들보다도 부족함이 없이 펑펑 쓰이고 있는 마력이 가장 큰 의문으로 다가왔다.
차이는 명확하게 느껴진다. 이제까지는 마력이라는 이름의 강물을 바가지로 퍼다가 사용하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그 강에서 헤엄을 치며 제멋대로 물놀이를 하는 감각에 가까웠으니까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다.
문제는 이게 왜 가능한 것인지 조금도 이해가 안 된다는 점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아무리 마력 기관을 이용해 효율적으로 마력을 연소시켜 쓴다고 해도 이럴 수 없다. 지금의 내 마력 기관은 10의 마력을 15의 효율로 쓸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에 불과하지 총량을 20, 30으로 늘려주는 게 아니었다.
마력 기관에 과도하게 부하를 준 게 기폭제가 된 것일까? 여러 가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당장은 깊게 생각할 여력도 없었고, 정답이 나올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최대한 빨리 머리를 비워 버렸다.
다행히 그건 어렵지 않았다. 내 머리통을 물어뜯기 위해 아가리를 벌리고 달려드는 마수와 대면하는 것만으로도 잡생각은 순식간에 사라졌으니까.
"...!"
마수가 짖은 거 같지만 귀가 들리지 않아 장담은 못 하겠다. 정교하게 퍼져나가는 마력을 느끼며 검을 휘두르자 잔뜩 아가리를 벌린 마수가 그대로 양단되었다. 이마저도 평소와 다르다. 절삭력은 원래부터 뛰어났지만 이를 위해 검에 둘러야 하는 마력은 지금의 두 배 이상 들어가야 정상이었다.
하다못해 감각만이라도 좀 정상적이었다면 면밀히 살펴볼 수 있었을 텐데, 가장 맛이 간 것 중 하나이다 보니 내가 직접 저질러 놓고도 어떻게 한 것인지 감이 안 온다. 애초에 뭘 더 미세하게 조정할 여력이 없는 상황이라 그냥 평소대로 움직이는데도 이러니 점점 호전되는 상황과 별개로 내 속은 타들어 갔다.
분명 내가 앞으로 강해지기 위한 가장 큰 힌트 중 하나일 거라는 확신이 드는데 그 힌트를 코앞에서 놓치게 생겼으니 환장할 수밖에.
그래도 일단 방금 죽은 마수를 마지막으로 오크들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하며 바늘들을 회수하고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러자 그에 맞춰 뒤에 있던 아군들이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내가 앞에서 싸우는 것을 구경만 하고 있다가 슬쩍 튀어나온 건 아니었다. 아무리 바늘과 라이카를 다 동원했다고 하더라도 오크들을 다 막는 건 불가능했기에 숙영지로 달려든 오크들도 적지 않다. 오히려 내가 일방적인 학살을 자행한 뒤부터는 라이카를 피하는 것처럼 나를 피해 뒤로 달려가는 오크들도 있었다.
그것들을 죄다 처리하는 과정에서 모랄빵을 향해 달려가던 아군의 사기가 회복되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와 반대로 오크 기병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는지 처음의 공격적인 태도는 온데 간데없이 극도로 경계하며 주춤거렸다.
오크 뿐만 아니라 놈들이 타고 있는 마수도 마찬가지였다. 누가 오크가 키우는 것들 아니랄까 봐 탈 것조차 자기보다 강한 것 같은 생물에게서는 재빨리 도망치며 약한 것 같은 놈들만 노리려는 약자 멸시를 패시브로 지니고 있었다.
참으로 같잖은 모습이었지만 이 싸움의 끝이 보이는 것 같아 마음은 편했다. 비록 이놈들이 전부가 아닐지라도 당장의 위기를 모면한 것은 분명했으니까.
십 초가량을 대치하고 있음에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어 나와 똑바로 눈을 마주치며 으르렁 거리던 마수의 미간에 바늘을 때려 박아줬더니 방금 전까지의 대치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오크들의 다급한 도주가 시작됐다. 진즉에 의지가 꺾여 있었으나 뒤에서 쏟아지는 포격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뒤를 쫓을 필요는 없었다. 놈들은 지난번의 오크들이 그랬듯이 연어마냥 지들이 왔던 길을 그대로 되짚으며 도망쳤고, 비룡 기사들은 여전히 그 위로 맹렬한 포격을 떨구는 중이었기에 알아서 죽어 나갔다. 저 정도면 살아서 도망쳐도 큰 전력은 아닐 것이다.
저 포격 너머로 달려오려던 녀석들도 덩달아 방향을 돌려 도망치는 모습까지 본 뒤에야 긴장의 끈을 놓은 나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
여전히 귀는 들리지 않았지만 피부로 느껴지는 진동이 뒤에서 함성이 터져 나오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불길 속으로 멀어져 가는 오크들을 바라보며 마력 운용을 멈추자 방전된 기계처럼 온몸에 힘이 풀렸다. 조금이라도 더 정신을 붙잡고 지금 내 몸의 상태를 이해하기 위해 시간을 쏟고 싶었지만 이미 육신도 정신도 한계였다.
그래도 어떻게든 정신을 유지해보려 했지만,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손길이 어깨에 닿기가 무섭게 나는 기절하듯이 쓰러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