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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328화 (328/412)

엘드미아의 계획을 전부 들은 레스롬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굉장히 양식있는 행동이었다. 남들이었다면 귀가 아니라 엘드미아의 머리 상태부터 의심했을 테니까.

"지금... 그러니까, 비룡 기사들이 주술사들의 주의를 빼앗는 틈을 타 게이트가 있는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에... 뛰어내리겠다고?"

"예."

세상 둘도 없는 미친 소리를 들었는데 정작 말하는 당사자는 뭘 번거롭게 또 물어보냐는 듯 심드렁한 반응이다.

정말 어이가 없는 일이었지만, 레스롬은 엘드미아가 한없이 진심이라는 것과 성공에 대한 확신이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동시에 그에 대해 알게 된 이후부터 줄곧 품고 있었던 의문 하나가 해소되는 것 같았다.

'대체 무슨 수로 공중에서 델트를 상대했나 했더니...'

비룡에서 뛰어내린다니, 굉장히 신선한 충격이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저런 발상을 할 수 있는 것일까? 나 때는 안전장치 만들기 바빴는데.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잠깐 삶을 반추할 뻔한 레스롬은 황급히 정신을 다잡으며 엘드미아의 계획을 제대로 검토해 보았고, 실현된다는 전제하에 이번 토벌 이후로도 써먹을 수 있을 정도로 굉장히 유용한 발상이라는 점에 적잖이 놀랐다.

오러로 강화된 전사들의 육체는 강인하다. 물론 낙하의 충격으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 쓰이는 오러의 양이 상당하여 전투 지속력만큼은 평소보다 줄어들겠지만 오러 익스퍼트 이상의 기사들이라면 충분히 유효한 수준까지 작전을 이행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오러 익스퍼트 이상의 실력자들이 열 명, 최소 다섯 명이라도 무방비하게 노출된 적진의 후방에 투입하여 보급을 끊거나 방해 공작을 펼칠 수 있다면...

'전장이 바뀔 것이다.'

따뜻한 지휘소의 공기 속에서도 소름이 돋았다.

심지어 그런 거라면 굳이 비룡 기사들을 위한 전투용 비룡이 필요하지도 않을 것이다. 어차피 비룡은 병사들을 위치로 이송시키는 역할만 할 뿐이니까. 전장에 최적화된 체형의 비룡을 육성하는 데에 무시할 수 없는 비용이 들어간다는 걸 감안하면 당장 실효성을 따져 보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다.

실패와 위험을 고려하더라도 무시할 수 없는 이점을 가져다줄 게 분명했다. 거기까지 생각을 미친 레스롬은 침착함을 가장하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자네가 제안한 방법을 통해 게이트에 닿는다고 하더라도 남은 건 수천에 달하는 오크 군단일세. 거기서 다시 빠져나올 방법은 있는 건가? 비룡을 통해 다시 나올 수는 없을 텐데."

"놈들이 온전한 군대도 아니고, 결국은 무리 지어 달려드는 게 고작이지 않습니까. 비상 사태에 대한 대응도 인간과 같진 않겠죠. 상공에서 미리 병력이 가장 적게 밀집된 곳을 파악한 뒤 그 방향으로 도망칠 생각입니다."

결국은 개인의 무력만이 답이라는 이야기였다.

"...위험하지 않겠나?"

자칫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 심지어 누구를 같이 데려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그럴 생각조차 없는걸보면 홀로 시도할 생각이다. 사실은 말하지 않은 비장의 수라도 있나 싶어 떠보는 느낌으로 던진 말에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건 가 봐야 알겠죠."

사지로 걸어들어가는 건 자기 자신일 텐데도 어째 남 일처럼 대답하는 엘드미아의 반응에 잠깐 침음을 흘린 레스롬 공작은 결단을 내렸다.

"비룡 기사들이 돌아오는 건 저녁 늦게가 될 거야. 그들에게는 이야기해놓겠네. 언제 움직일 생각인가?"

"끌어 봤자 좋을 게 없으니 내일 바로 움직이려고 합니다."

"내 최대한 준비해 보지. 달리 더 필요한 건?"

마지막 점검을 위한 질문에 엘드미아는 몸을 뒤로 젖혀 의자에 기댄 채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다른 무언가를 노린다기보다 정말 순수하게 생각을 정리할 뿐인 모습은 지극히 평범하다. 겉으로 느껴지는 오러조차 지금까지 그가 보여 준 업적들과 비교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미미하다. 그리고 그런 평범한 외견과는 전혀 다른 속내와 판단 기준을 지녔기 때문에, 엘드미아는 종잡을 수 없었다.

"제 몸값이 갑자기 부풀어 오르면 귀족들 반응이 어떨 것 같습니까?"

바로 지금의 질문처럼.

그러고 보니 이용해 먹을 빌미를 주지 않는다는 목적도 가지고 있는 친구였지. 그의 질문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했기에 레스롬은 책상에 몸을 기대며 솔직히 대답해주었다.

"어떤 반응을 보고 싶나?"

이제는 귀족들이 손바닥에 놓고 꼭두각시처럼 굴리기엔 너무 판이 커졌다. 무엇보다 이번 오크 토벌은 궤를 달리한다. 평범한 피난민들의 마을을 지키기 위해 물러서지 않은 영웅이라는 건 대중적인 지지도부터 달라지는 법이니까. 오히려 애국심을 고취시킬만한 업적이나 귀족을 구했다는 이야기보다 훨씬 큰 사건이다.

차라리 그거 하나뿐이라면 대중에게 잘 먹히는 허수아비라고 좋아할 이들도 있었겠으나, 그 앞에 쌓인 업적들이 너무 거대했다.

"레비엥 변경백 귀환의 공로자, 제국 황녀를 구한 영웅, 용사 지크프리트와 겨룰 수 있는 자, 성광십자회의 성녀 구출, 사룡 토벌, 내일의 계획까지 성공시킨다면 숨겨졌던 게이트로 인한 갑작스러운 오크 대군의 습격을 막아 낸 최대 공로자가 되겠군. 자네가 원하는 대로 반응하게 만들어 주겠네."

누가 이를 15살이 내세운 업적이라고 여길까. 평범한 중견 기사들이라도 감히 넘볼 수 없는 수준이다.

심지어 엘드미아는 최초의 마족 습격이 있었던 오그웬의 유일한 생존자다. 레스롬 자신부터가 직접 조사하고 보지 않았으면 누군가 대외적인 인기를 위해 각본을 써서 만들어낸 존재라고 여겼을 정도로 그는 영웅적인 행보를 이어 나가고 있다.

그 명성을 소화할 수 있는 귀족들은 왕국에 얼마 있지도 않다. 그마저도 수 틀리면 언제든지 목을 물어버릴 수 있는 인물을 굳이 품고자 하는 이는 없다.

그렇기에 레스롬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그냥 방랑 기사가 될 때까지 방치해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왕국 유이有二의 공작이 웃음기 없는 진지한 얼굴로 던진 제안이었음에도 엘드미아의 반응은 평범했다. 참으로 한결 같은 소년의 모습에, 레스롬도 표정을 풀고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그건 오히려 그들이 바라는 바일 테니 걱정하지 말게."

당장이라도 작위를 달고 사람들의 인기를 한 몸에 담으며 제 세력을 불린다고 하여도 쉬이 견제할 방법이 없는 게 엘드미아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본인이 가장 잘 알 텐데 자진해서 권력과 거리가 먼 방랑 기사 서임을 받겠다고 하니 굳이 말릴 이유가 없었다.

대부분의 귀족들은 자신의 것을 지킬 수 있는 것으로 만족하니까. 레스롬에게도 좋은 이야기였기에, 그는 만족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찻잔을 준비했다.

"괜찮으면 차 좀 마시고 가겠나? 사흘간 누워 있던 사람에게 좋은 차는 없어도 속을 좀 편하게 해주는 차는 준비되어 있네만."

"...그럼 사양하지 않고."

처음 만났을 때와 달리 자연스럽게 권유를 받아주는 엘드미아를 보며 레스롬은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왕국에서 손에 꼽히는 권력을 지니고 있는 자신을 마치 뒷집 귀찮은 할아버지 보듯 대한다니.

부딪칠 일만 없으면 참 재밌는 친구라니까.

레스롬 공작과의 담소는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사실 담소라고 하기도 애매했다. 결국은 오크들의 거점을 처음 발견했을 때부터 시작해 내가 알고 있는 조금 더 디테일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시간에 불과했으니까.

결국 그가 왜 직접 행차했는지까지는 물어볼 수 없었지만, 원래의 목적은 달성했기에 아쉬워하지 않고 지휘소를 벗어난 나는 그대로 아실리에가 있는 텐트로 돌아와 상황을 설명했다.

"또, 또! 또 비룡에서 뛰어내린다고!"

듣는 것만으로도 아찔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등짝을 맞아야 했지만 결국 아실리에는 날 막지 않았다. 대신 원망 가득한 시선으로 나를 노려보며 한 마디 덧붙일 뿐이었다.

"몰라, 라그니스한테도 가서 똑같이 말해."

"수도까지 돌아가서 말하고 오는 건 조금..."

"여기 와 있으니까 하는 말이야."

"...엥?"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걔가 여길 왜 와? 얼굴로 질문을 던지자 아실리에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해주었다.

"라드넬반데스 경을 따라서 왔다고 하더라. 일종의 실전 훈련인가 봐."

"아니, 너무 빡빡한 실전 아닌가? 아무리 그래도 오크를 상대로 훈련을?"

암만 무식하다고 한들 밥 먹고 싸움만 해대고 전투력 평균은 적급 모험가인 놈들이다. 첫 실전이라는 행사에 어울리는 제물은 결코 아닌데?

내 표정이 어지간히도 기괴했는지 뾰로통해 있던 아실리에가 불현듯 웃음을 터트리며 추가 설명을 이어 나갔다.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는데... 대체 몇 개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도 잘 싸운다고 소문이 자자해. 아마 직접 보면 깜짝 놀랄 걸?"

"...진짜?"

"응. 오늘은 예카트리나 씨와 함께 방어선 주변을 수색하고 있을 거야. 평소대로라면 저녁 무렵에는 돌아오겠지."

"수색 작업을 적급 중에서도 최상급에 속하는 예카트리나랑 함께 한다고...?"

그 라그니스가...?

제국에서 보여 준 무영창이라는 게 굉장히 대단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성장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난 그저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거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늘 등짝이 남아나질 않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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