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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329화 (329/412)

아실리에의 말대로 저녁 식사 시간이 다가오자 방어선에서 귀환하는 이들로 인해 숙영지가 잠깐 소란스러워졌다.

이에 나도 슬쩍 나가서 확인할까 했지만 내 뒷덜미를 붙잡으며 아실리에가 막아섰기에 그럴 수 없었다.

"지금 나가면 난리 난다? 누나가 식사 챙겨 올 테니까 그냥 기다려."

"그래도 사람들 얼굴 좀 보려면..."

"라그니스도, 예카트리나 씨도 알아서 오니까 그냥 기다려. 중간에 만나면 같이 올게."

졸지에 슈퍼 스타 엘드미아가 되어 버렸군. 당시엔 그 외에 선택지가 없었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막상 지나가고 나니 참 귀찮은 짓을 했다는 느낌이다.

물론 그때로 다시 돌아가도 같은 짓을 하겠지만.

그렇게 라이카를 쓰다듬으며 침대에 십여 분 정도 누워 있었을까, 인기척이 느껴지는가 싶더니 아실리에가 매우 조심스럽게 쟁반 하나에 푸짐한 식사를 담아 가지고 돌아왔다. 농담이 아니라 내 눈을 의심케 할 정도로 매우 정상적인 메뉴에 나도 모르게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스튜에 건더기가 있으면 다행이라고 여겼는데 무슨 구운 닭 한 마리에 푸짐한 스튜에 빵 등등 없는 게 없다.

"이게 대체 무슨...?"

"엘디가 깨어나기 전부터 꾸준하게 지휘부에서 챙겨 주는 음식이랍니다. 2인 분 달라니까 쟁반이 부러질 기세로 담아주던 걸?"

실제로 오는 길에 떨어트린 음식이 있지 않을까 걱정이 될 만큼 가득 쌓여 있었기에 아실리에의 말에 일말의 과장이 섞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별 대우가 너무 지나친 거 아닌가?"

"혼자서 기습을 틀어 막고 병력이 움직일 유예를 만들었는데 겨우 식사 좀 든든하게 챙겨 주는 거로 부당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신 상태부터 의심해 봐야 하지 않을까?"

이야기를 들어 보니 내게 유독 후하게 챙겨 주는 건 맞지만 이번 토벌에 참여한 이들의 배식 상황은 유례가 없을 정도로 양호한 상태라고 한다. 직접적으로 왕실의 병력이 대거 움직이지는 않았어도 이를 막기 위해 나선 이들에게 확실하게 지원은 한다는 뉘앙스를 주기 위함이라나?

거기에서 성과가 좋은 이들에게 더 좋은 대우를 해주는 것으로 사람들의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고 하니, 실로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귀족들이 끌고 온 사병들보다 오히려 모험가와 용병들이 더 잘 먹고 있는 상황이야. 라그니스도 가문의 깃발을 들고 오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라드넬반데스 경의 주도 하에 따라온 입장이라 비슷한 상황이라 하더라고."

그래서 귀족들의 회의에 없었던 거구만.

거기 앉아 있던 이들이 죄다 귀족원 소속의 고문관들이라는 걸 감안하면 알게 모르게 그런 식으로 흘러가도록 레스롬 공작이 미리 손을 쓴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라그니스하고는 마주치지 못했나보네?"

"응, 전부 돌아온 게 아니라 부상자들만 먼저 도착한 거였어. 그래도 그리 차이는 안 난다니까 금방 올 거야."

음, 등짝에 유예가 생겼군.

나중에 괜히 먹다 체할 수 있으니 이 틈에 열심히 배를 채워두겠다는 일념 하나로 아실리에와 식사를 하고 있었더니 정말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번 더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이번엔 진짜인 거 같아 식사에 속도를 붙이는 사이 조금씩 가까워진 인기척이 텐트 앞에 이르렀을 때, 나는 뜯고 있던 닭다리를 내려놓으며 손님 맞이 준비를 했다.

그리고 장막을 들추며 들어오는 라그니스의 예상치 못한 모습에 살짝 놀랐다.

"하아, 오늘은 좀 늦었어요 아실리에으아아악?!"

붉은빛이 도는 경갑을 갖춰 입은 채 방패와 기창을 들고 들어오는 포니테일의 여전사가 그녀라는 걸 이해하기까지 약간의 딜레이를 겪는 동안 깊은 한숨을 내쉬며 안으로 들어온 라그니스는 뒤로 예카트리나가 들어오기 편하게 도와주다가 뒤늦게 나를 발견하고는 비명을 질렀다.

"에, 엘드미아?!"

"이야, 전사 다 됐는데 라그니스. 아니, 전사가 아니라 배틀 메이지인가?"

그 모습이 퍽 우스워서 등짝의 위협마저 망각한 나는 너스레를 떨며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내가 멀쩡하다는 것에 놀라면서도 기뻐해주는 두 사람과 이야기하며 내 몸이 멀쩡하다는 걸 설파하며 내일 있을 작전을 이야기했다가 두 배로 얻어맞아야 했다.

"미친 거 아니야?! 그 짓을 또 한다고?!"

"하, 할 만 해서 하는 거라니까 그러네. 그보다 너무 아파. 제발 그만 때려."

그 몇 개월 사이 정말 엄청나게 근육이 붙은 라그니스의 손바닥은 내 마지막 기억과는 비교했을 때 차원이 다른 수준으로 매웠다. 오히려 정령님의 도움으로 멀쩡히 일어났다가 얘 때문에 피멍이 드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호되게 얻어맞는 동안 세상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하던 예카트리나가 조심스럽게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많이 정신 나간 계획 아닐까...?"

정작 그 태도와 달리 단어 선택은 직설적이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그녀의 의견에 태클을 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졸지에 의심 가득한 눈초리에 휩싸이게 된 나는 분명 확신이 있었음에도 쫄리기 시작하는 마음을 다잡으며 차분하게 설명했다.

"무슨 수를 썼는지 몰라도 놈들이 게이트를 제멋대로 이용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놈들의 지원 병력이 바닥날 때까지 싸움을 이어 간다는 게 더 정신 나간 상황 아닐까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붉은색 퍼스널 컬러로 점철된 라그니스가 기어이 분을 참지 못하고 얼굴까지 시뻘겋게 붉히며 외쳤다.

"그걸 왜 네가 막는데!!"

"다, 달리 할 사람이 없잖아. 이대로 가다가 기껏 구해 놓은 마을에 피해가 가면 찜찜하기도 하고..."

혹여 계속 샤우팅이 이어질까 걱정했지만 놀랍게도 라그니스는 내 대답을 듣자마자 눈을 질끈 감으며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후우. 그래, 나도 그렇게 도움을 받은 입장에서 이제 와서 그러지 말라는 것도 꼴이 우습긴 해.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혼자서 수천의 오크 군단 한복판에 뛰어들었다가 목적만 달성하고 유유히 빠져나온다는 계획을 받아들이긴 무리가 있잖아. 정말 그거 말고는 방법이 없는 거야?"

"어, 없진 않지. 최소 기사급 둘셋 정도랑 같이 뛰어들어가면 무조건 생환해서 나올 테니까."

"뛰어내린다는 게 전제인 거냐고..."

사흘 동안 비룡 기사들조차 뚫지 못해 방치하고 있는 오크 주술사들의 대공 경계를 상대로 다른 수가 있을 리 있겠는가. 쐐기 대형으로 오크 군단을 뚫고 방어선에서부터 들어가는 것도 시도해볼 수는 있겠으나 왕복하는 동안 쉴 틈 없이 싸워야하니 오히려 더 위험하다.

그에 반해 공중에서 내가 뛰어내리는 건 진입각 만큼은 확실하게 잡을 수 있으니 도주까지 무난하게 성공할 가능성도 높고, 그냥 무작정 달려가는 게 아니라 대비를 하고 들어가는 거라 훨씬 안전한 것도 빈말이 아니다.

"나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이러는 게 아니라니까? 이거 건틀릿 제국에서 받아온 거, 나 이거 쓸 수 있어. 주술사들이 공격용 주술을 펼쳐도 이거로 방어하면 돼. 어차피 뛰어내리는 거라서 걔들이 날 여러 번 공격할 수도 없을 거고 기껏 해봤자 한 번 제대로 맞추는 게 고작일 거야."

일부러 과시하듯 지금까지는 쓸 일이 없었던 건틀릿의 보호막 기능을 활성화하기 위해 마력을 주입하자 건틀릿 양쪽으로 원형의 푸른 방벽이 생성 되었다. 이게 이런 형태였구나 하고 놀랐다간 나를 향한 미심쩍은 시선들이 더욱 짙어질 상황인지라 마치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태연함을 가장하니 라그니스를 제외한 이들의 눈에서 불신이 조금 사그라들었다.

사실 라그니스도 눈에 힘만 빼지 않을 뿐 기세가 살짝 죽은 게 느껴졌다. 이 중에서는 가장 마법에 밝은 사람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게 가능한 사람이 따로 없으니까 혼자 가려는 거네."

"그렇지. 같이 뛰어드는 거야 뭐... 예카트리나도 충분히 가능은 하겠지만."

고소공포증 문명전사 예카트리나가 움찔거렸지만 어차피 그녀에게 부탁할 수 없었다. 어지간한 방호 마법으로 저항할 수 있는 수준이었으면 이미 진즉에 비룡기사들이 버티면서 폭격을 때렸을 거다. 누군가 예카트리나에게 방호 마법을 걸어 준다고 하더라도 그게 우리가 예상한 것만큼 확실한 안전성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내가 이 건틀릿의 성능을 믿는 건 순전히 마력을 통해 출력을 강제로 뽑아 올릴 수 있다는 점에 있었다. 프로토타입은 가성비는 병신이어도 성능만큼은 확실한 게 국룰 아니겠어?

건틀릿을 선물로 준 제국의 벤데 후작과 이걸 점검한 장인 발쿤 씨도 성능에는 태클을 걸지는 않았으니 실제로도 믿을 만 할 거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없는 거야?"

"있지. 방어에서 공세로 전환하는 거. 그건 이미 지휘부와 이야기를 끝냈어."

나와 비룡 기사들이 출발하면 마도구를 통해 모든 방어선이 동시다발적으로 공격에 나선다. 그걸로 오크들의 병력이 조금이라도 더 외곽으로 빠질 수 있다면 그만큼 내가 게이트를 파괴하는 과정도 안정적이게 될 것이고, 상공에서 오크들이 적게 밀집해있는 지역을 알아보기도 쉬워질 테니까.

침울한 얼굴로 이야기를 들은 라그니스는 뭔가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 주저하는 듯 하다가 결국 입을 다물고 고개만 끄덕였다. 조금은 침체된 분위기 속에서 잠깐 눈을 굴리던 예카트리나는 그 사흘간 라그니스와 굉장히 친해지기라도 한 것인지 자연스럽게 어깨동무를 하며 짐짓 쾌활하게 말을 꺼냈다.

"뭐, 엘드미아는 할 수 없는걸 할 수 있다고 우기는 부류는 아니니까 말이야! 내일 우리가 오크들을 많이 죽일 수록 그의 안전이 확보된다는 말이니 최선을 다해 돕자고!"

"...그래야지."

대체 언제 말까지 놓았냐고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지금 내가 꺼낼 수 있는 주제는 아니었기에 그저 조용히 뜯다만 닭다리를 다시 집어 들었다.

이번엔 정말 무사히 돌아오지 않으면 등가죽이 다 벗겨질 때까지 맞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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