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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330화 (330/412)

주술은 아실리에도 아는 게 많지 않은 분야였기에, 나도 오가토르프 가문의 서재를 뻔질나게 드나들며 책으로 읽은 게 전부였다.

산 것과 죽은 것을 대가 삼아 발현하는 이능異能이 불러오는 결과는 마법과는 사뭇 다른 형태지만, 최종적으로는 마력의 형태로 발현된다는 것 정도?

그 대가라는 것이 하나의 생명에 준하는 것인 경우가 대부분인지라 주술은 단순하면서도 강력하다. 당장 저 무식한 오크들마저도 주술사로 대공 방어가 가능할 정도니 말 다 했지.

대체 어떻게 하면 시체나 영혼을 마력으로 변환한다는 기적의 교환법이 성립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 원리까지는 내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기에 대충 넘어갔었다.

중요한 건 단순하면서 강력하고 그만큼 리스크도 큰 기술이라는 것.

영혼을 매개체로 공격 주술을 펼치면 혼이 품고 있던 원한이 반작용처럼 시전자에게 작용해 어떤 이상 증상을 불러 올지 알 수 없고, 규모가 큰 주술일수록 많은 제물을 대가로 치러야하다 보니 시전자가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짧은 기간 내에 성취를 이루기엔 좋아 보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 봤을 땐 결국 제살 깎아 먹기와 다를 바 없기 때문에 일반적인 종족들은 잘 쓰지 않는다.

그나마 가장 주술이 활성화 되어 있는 종족이라 할 수 있는 수인들이 쓰는 주술도 공격이나 저주 같은 원한을 야기할 수 있는 게 아닌, 순수하게 후손들의 안녕을 바라거나 그들을 지키고자하는 선조의 혼에 도움을 요청해 자신들을 보호하는 형태에 가깝다.

하지만 오크는 다르다.

파괴와 예지를 위해 거리낌 없이 영혼을 갈아 넣고, 그 위력은 왕국의 자랑이라 할 수 있는 비룡 기사들조차 온전히 버티지 못할 수준으로 강력하다. 당연히 놈들도 그런 짓을 반복하면서 멀쩡한 상태를 유지할 수는 없다는 걸 모두가 알지만 수천이나 되는 오크들 안에 얼마나 많은 주술사가 있을지 알 수 없으니 무작정 꼴아박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다가 자칫 잘못해 비룡 하나라도 잃으면 망신도 그런 개망신이 없다고.

물론 잠깐 치고 빠지는 건 별개다. 유효타를 넣지 못하더라도 시선만 분산시킬 수 있으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걸 제대로 이해했기에, 늦은 시간 복귀하여 레스롬 공작에게 설명을 듣고 즉시 계획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헤이리와 다른 비룡 기사들은 자신들의 안위에 대해서는 조금도 불안해 하지 않았다.

이미 라그니스와 예카트리나도 자신들이 묵는 곳으로 돌아간 뒤라 안으로 안내하려고 했으나, 정중하게 거절하는 탓에 텐트 밖에서 짧게 작전에 대해 대화를 나눈 그들에게는 오직 자신감만이 있을 뿐이었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하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내 안전에 대해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태도를 보여줬다. 아무래도 오크들을 목전에 두고 물러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혁혁한 공까지 세운 내게 굉장히 깊은 감명을 받은 눈치였다.

헤이리를 제외하고는 말도 섞지 않았던 비룡 기사들이 그야말로 기사의 귀감이었다며 먼저 악수를 권했을 땐 솔직히 조금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모든 일이 계획대로 흘러가진 않겠지만,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괜히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다.' 같은 말을 했다간 더 부담스러워질 것 같아서 적당히 대답했는데도 어째서인지 돌아오는 시선은 부담스러웠다.

이후 동이 틀 시간에 맞춰 작전을 결행하기로 결정되었다는 통보를 마지막으로 정중하게 물러나는 비룡 기사들을 뒤로한 채 안으로 들어 온 나를 보며 아실리에가 도끼눈을 떴다.

"가장 비룡에 대해서 잘 아는 비룡 기사들조차 엘디의 계획을 듣고 괜찮냐고 물어볼 정도네."

왜 그러나 했더니 밝은 귀로 들은 내용 때문에 영 불안했던 모양이다. 그 마음을 모를 수도, 무시할 수도 없었기에 난 웃으며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비룡에서 뛰어내리는 것에 대해서는 내가 더 전문가이지 않을까?"

공수부대의 개념이 있는 것도 아닌 세상에 자살 목적이 아닌 이상 굳이 비룡에서 뛰어내리려는 놈은 없을 테니까 말이야.

그리 말하자마자 어깨를 한 대 맞아야 했다.

그 후로 얼마 있지도 않은 긴장이라도 마저 풀 겸 아실리에와 잠깐 농담이나 주고받으며 잠들었는데, 정작 눈을 뜬 것은 아직 날이 밝아오지 않은 새벽이었다.

혹시나 싶어서 귀를 귀울여보았지만 주변에는 적막만이 흐르고 있었다. 이따금 들려오는 것은 인근의 횃불 타들어 가는 소리와 텐트 중앙에 있는 마력 난로가 작게 웅웅 대며 가동하는 소리 뿐. 나도 모르는 사이 긴장을 해서 깬 건가 싶은 생각이 잠깐 스쳐 지나갔지만 그런 것치고는 머리도 몸도 너무 상쾌했다.

하긴, 사흘간 퍼질러 잤으니 몸 상태가 좋을 수밖에. 당장 잠이 올 것 같지도 않아서 아실리에가 깨지 않게 조심히 일어나 텐트처럼 무상으로 지급받은 두툼한 털 외투를 두르니, 발치에서 정신없이 자고 있던 라이카가 살짝 반응하며 고개를 들었다.

[주인? 나가?]

"잠깐 바람만 쐬고 올 거야. 그냥 자고 있어라."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는 것만으로 다시 스르르 눈을 감는 녀석을 보니 기가 찼다. 어차피 수면이 필요하지도 않을 텐데 참 잘도 잔다.

녀석을 뒤로하고 천막을 걷고 나오자 텐트 앞에 피워진 횃불이 무색할 정도로 찬 바람이 불어오며 나를 반긴다. 불침번이 왔다 간 게 한참 전인지 장작은 대부분 타고 바스러져 있을지언정 불씨가 약해진 건 아니었는데도 무시할 수 없는 새벽 공기였다.

이 공기가 데워지기도 전에 비룡을 타고 날아가야 한다 이거지? 이번에도 어김없이 정령님께 한 줌의 온기를 부탁드려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하며 팔뚝을 한번 쓸다가, 뒤늦게 내 몸의 어딘가가 미묘하게 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제는 그걸 자각했음에도 뭐가 어떻게 달라진 것인지 긴가민가하다는 점이었다.

깨어 나자마자 정신없이 흘러간 하루였기에 딱히 마력을 활용할 틈이 없었지만, 몸에 자리 잡은 마력 기관과 그걸 타고 자연스럽게 흐르는 마력은 내가 기절하기 전과 분명히 달라져 있었다. 조금 더 빨리 깨달았다면 세네란과 면담이라도 가졌을 텐데, 아쉽기 그지없군.

"흐으음, 별일 없겠지...?"

딱히 나쁜 느낌은 아니니까. 마력 기관을 구성하면서 좀 더 근육 사이사이에 촘촘히 파고들었던 마력이, 이제는 혈관에 타고 흐르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혹시나 싶어 간단하게 몸도 움직이고 마력시도 사용해 보았지만 무언가 더 향상되었다는 느낌까지는 들지 않았다.

그저... 알게 모르게 편해졌다. 효율 면에서도, 운용 면에서도.

적진 한가운데에서 슈퍼히어로 랜딩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입장으로서는 참으로 달가운 일이었기에, 난 만족하며 조금 더 새벽 공기를 마신 뒤  침대로 기어 들어갔다.

잠이 오진 않아도 굳이 미리 힘 뺄 필요는 없었으니까. 괜히 찬 공기를 쐬서 정신을 차린 게 아닌가 하는 후회 밀려왔지만, 오히려 따뜻한 이불 덮고 에어컨을 킨 것과 같은 묘한 만족감 속에서 훨씬 쉽게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기분 좋게 새벽 잠에 빠진 나를 깨운 것은 매우 불행하게도 이세계 기상 나팔이었다.

-빠바바 밤! 빠바바 밤!

"씨이이이바아알..."

피곤한 것도 아니고, 듣자마자 정신은 또랑또랑해졌는데 기분이 한없이 더럽다. 이세계에도 기상 나팔이 있다는 사실에 진절머리를 치며 자리에서 일어나니 베개를 뒤집어 머리를 덮고 있는 아실리에가 눈에 들어왔다.

"인간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게 너무 많아..."

저 소리를 오늘 처음 듣는 것도 아닐 텐데 매번 이렇게 고통스러워 했을걸 생각하니 내 가슴이 다 아프다. 나는 평소보다 확연하게 빠른 속도로 정신을 차리고 비틀비틀 일어나는 아실리에를 보며 나중에 집에서도 반드시 써먹어 봐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장비를 챙겼다.

그렇게 텐트를 벗어나니 기상 나팔에 대한 우리의 부정적이고 심드렁한 반응과 달리 숙영지는 바짝 긴장한 상태로 굴러가고 있었다. 딱히 아침점호같은 게 있는 건 아닌지, 모험가와 사병들 그리고 용병들은 어딘가로 모이는 일 없이 각자 알아서 전투 준비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나도 아실리에를 따라 아침 식사를 타 가는 이들 사이에 섞여 식사했지만, 어제와 같은 과잉반응은 일어나지 않았다.

모두의 이목은 잠깐 집중되었으나 딱 그 정도까지였다. 그들은 묵묵히 식사를 이어 나가며 눈빛만으로 내게 기대와 응원을 보내며 오합지졸이 아니라는 걸 증명했고, 난 만족스럽게 식사를 마친 뒤 헤이리와 합류하기 위해 움직일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안 만나고 가도 돼?"

"어차피 전투 끝나면 바로 볼 텐데 뭐."

"...그러네. 나도 오늘은 라그니스와 합류해서 도울 거야. 열심히 숫자를 줄여놓을 테니 잘 도망쳐야 한다?"

"한낱 오크들이 나를 막을 수는 없지. 걱정 마."

애써 태연한 척 웃으며 멀어져 가는 아실리에와 그 옆에 함께하는 라이카를 배웅하고 걸음을 옮기니 얼마 지나지 않아 조금씩 긴장이 올라오긴 했다.

비룡들이 모여 있는 곳에 다가갈 때마다 주변의 시선이 조금씩 무거워진다.

인간 대 인간의 전쟁이 아니다 보니 비밀리에 움직일 필요도 없어서 아예 대대적으로 오늘 있을 작전을 광고한 모양이다. 끝을 알 수 없는 적들이 튀어나오는 통로를 박살 내러 간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사기는 상승세를 타고 있었고, 동시에 나에게 얹혀지는 기대감도 곱절로 늘어나는 중이었다.

실패할 생각은 없는데 괜히 부담되긴 하네.

"어서 오십시오 에가 경. 오늘의 작전을 함께 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다른 누구보다 그 효과를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비룡 기사들의 부담스러운 마중에 헛웃음이 나올 뻔 했지만, 난 일부러 유쾌하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협력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문 닫으러 가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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