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준비는 빠르게 끝났지만 바로 날아오를 수는 없었다. 비룡이 날아가는 속도가 워낙 빨라서 왕실의 지원으로 파견된 마법사들이 마도구로 방어선에 공격 명령을 내릴 때까지 조금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결국엔 치고 빠지는 계획인 만큼 우리가 아군의 공격보다 먼저 움직여서 좋을 건 없으니 곱게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서도 한켠으로는 '그럼 좀 더 늦게 출발해도 되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도 잠시.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출발 신호가 떨어졌고, 우리는 전선을 향해 날아올랐다.
졸지에 전선에 투입되어버린 기에스는 바짝 긴장했는지 말수가 줄어들었기에 가는 길은 조용했다. 운송용 비룡인 탓에 다른 장비를 갖출 수 없어 비룡 기사들보다 좀 더 고도를 높게 잡고 그 아래에서 비룡 기사들이 몸으로 막아주는 형태로 날게 되었음에도 이 일을 만만하게 보지 않는 건 참 바람직한 자세였다.
그런 기에스에게서 발아래에 펼쳐지는 광경으로 시선을 돌리자 빠르게 흘러가는 풍경 속에 점차 함성이 섞이기 시작한다. 워낙 빠르다 보니 그마저도 순식간에 흘러간다. 숲과 인간 그리고 오크가 섞여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를 자아내는 곳을 지나자 숲과 오크들 뿐인 풍경이 펼쳐지고, 분명 내 기억으로는 아직 멀쩡히 나무가 존재했던 장소에 이르러서는 허허벌판과 오크들 뿐인 풍경이 새롭게 펼쳐졌다.
그야말로 혼돈과 파괴다. 사나흘 사이에 일대를 저렇게까지 초토화시키다니, 오크 놈들이 얼마나 많은지 저절로 실감하게 되었다. 심지어 중앙에 있는 군락이 마왕성처럼 느껴질 정도다.
"저, 정말 괜찮으신 거 맞습니까? 저렇게나 많은데?"
그 모습이 바퀴벌레가 득실 거리는 것 같아서 절로 표정이 찡그려지는 와중에 기에스가 질린 목소리로 물어왔다. 이 와중에 내 걱정을 해주다니 참으로 착한 친구다.
"난 자살하는 취미 없다."
"후우... 알겠습니다. 곧 계획한 위치에 들어서니 준비하세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배면 비행으로 떨어트릴 거니 지난번처럼 괜히 뛰지 말라는 거 잘 기억하고 있어. 긴장하지 말고, 잘 부탁한다."
누가 뭐라해도 내가 가장 신임하는 비룡 조종사 아니겠는가.
얘 말고는 비룡 조종사의 뒤에 탈 일이 없었기도 하지만.
비단 추위 때문은 아닌 것 같은 떨림이 느껴졌지만 기에스는 침착했다. 그리고 우리가 미리 약속했던 위치에 다다르자 아래에서 날고 있던 비룡 기사들이 오크들의 부락을 향해 화염구를 투척했다.
주술은 마법과 달리 상시 발동이 없다. 그랬다간 제물이 된 혼이 폭주하기 때문이라던가? 즉, 비룡 기사들의 마법이 떨어지면 아래에 있는 주술사들이 즉각적으로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이야기다. 운이 좋으면 방심한 틈을 노릴 수도 있었겠지만 꼴에 전쟁이라고 놈들도 긴장하고 있는 것인지 화염구를 노린 정체불명의 주술이 순식간에 하늘로 솟구치며 거대한 방벽을 만들어냈다.
방벽이라는 표현이 맞기는 할까? 마치 걸쭉한 반죽이 아가리를 벌려 화염구를 주워 먹는 광경은 그다지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놈들의 주술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마찬가지로 걸쭉한 무언가를 쏘아 비룡 기사들을 노리기 시작했으나, 유효타를 내지는 못했다.
거대한 투창과도 같은 주술을 다섯 번 정도 막아 낸 비룡 기사들이 이번에는 아래가 아니라 전진 방향의 대각선 위로 작은 불꽃을 쏘아 올렸다.
빠르지도 않고 그저 푸르게 빛나는 신호탄 같은 불빛. 생긴 것처럼 그게 신호였다.
따로 예행 연습을 한 것도 아닌데 기에스와 비룡기사들은 불꽃을 기점 삼아 곡예 비행과도 같은 움직임을 보여 주며 급강하에 들어간다. 그러자 계속 날아올 것만 같았던 주술 투창이 끊기고 처음 봤던 방벽이 스멀스멀 퍼지기 시작했다.
한두 번 막아보는 솜씨가 아니다. 그만큼 비룡 기사들도 틈을 노리기 위해 부단히 공격했다는 의미겠지. 하지만 그런 걸 다 떠나서 저 오크 주술사들이 이렇게 즉각적인 반응을 하고 말 그대로 '현명한' 대처를 할 정도의 능력이 있다는 점이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오크 새끼들이 전부 저 정도로만 똑똑했어도 대륙의 지도가 바뀌었을 거다.
"무운을 빕니다!"
주술사들에게 감탄하는 동안 기에스가 외치고, 비룡이 거꾸로 뒤집혔다. 그리고 기에스의 비룡이 배면 비행을 시도함과 동시에 아래에서 몸으로 막아 주고 있던 비룡 기사들이 좌우로 갈라졌다. 그들의 시선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나에게로 향했고, 비록 투구 때문에 표정을 알 수는 없었으나 천천히 비룡의 등에서 떨어지는 나를 향해 약식 경례를 했다.
그들은 나름 비장하고 웅장한 마음가짐으로 존경을 담아 취한 행동이었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폭격기의 해치가 열리며 미사일을 떨구는 듯한 꼴이었기에 괜히 웃기기만 했다.
물론 정말로 웃을 여유는 없었다. 내가 계획하고 자의로 실행에 옮기는 일이라고 한들 머리부터 거꾸로 떨어지는 건 좀 많이 쫄리는 경험이니까.
대충 아카데미 하늘 위에서 대악마의 목을 땄을 때와 비슷한 수준의 높이인 거 같은데 세상이 거꾸로 되어 버리니 느껴지는 게 또 색다르군. 다행히 공중에서 몸을 돌려 자세를 바로잡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감속.
지크프리트의 말마따나 메리 포핀스처럼 여유롭게 내려갔다가는 뭘 어떻게 처맞을지 알 수 없으니 아슬아슬한 선까지는 이대로 추락할 수밖에 없는데, 아무리 나라고 하더라도 대체 어디가 적정 감속 높이인지 알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그 문제로 오래 고민할 틈도 없었다. 그냥 실수로 떨어진 거라 믿어 주면 좋을 텐데 성실하기 그지없는 오크 주술사들이 나를 노리고 주술 투창을 던졌기 떄문이다.
-끼이이이익!
씨벌 진짜 혼령인가 봐. 마법이 비명을 지르네.
유도 성능이 있는 것인지 열심히 떨어지는 나를 정확하게 노리며 날아드는 투창이 일으키는 불쾌감을 외면하며 건틀릿에 마력을 주입한다. 방호벽은 눈 깜짝할 새에 완성되었지만 똑바로 날아오는 주술 투창 역시 더럽게 빨랐기에 살짝 아슬아슬하게 막아 낼 수 있었다.
묵직한 충격과 함께 몸이 크게 휘청거리고, 성능 확실한 방호벽에 갈려 나가며 투창과 투창에서 흘러나오던 비명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며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만족스러운 성능과 부담없는 마력 소비. 이 프로토타입 건틀릿은 나를 위한 물건이었다.
◈
하늘에서 떨어지는 인간에게 날아간 절규의 창이라 불리는 주술이 무언가에 막혀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카쿨라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며 주술사들에게 손짓 했다. 그러자 동시에 다섯 개의 주술이 발현되어 다시금 인간을 향해 날아갔고, 떨어지는 방향을 약간 바꾸는 것에 그쳤을 뿐 제대로 된 피해를 주지 못한 채 사라졌다.
저건 위험하다. 평생을 갈고 닦은 직감이 보내는 경고를 결코 가벼이 여기지 않은 카쿨라가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계속 공격해라!"
그냥 떨어지면 죽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오크들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반박은 없었다. 그랬다간 카쿨라의 양손 도끼에 정수리가 쪼개질 테니까.
성실하게 명령을 이행하는 주술사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은 채 카쿨라는 그대로 인간이 떨어지고 있는 곳을 향해 달려 나갔다.
"조, 족장?!"
그 돌발 행동에 그의 호위대와 주변의 모든 오크들이 놀랐지만 카쿨라는 개의치 않고 자신의 양손 도끼를 고쳐 쥐었다. 분명히 봤다. 저 인간이 떨어지기 직전 비룡을 탄 인간들이 일부러 비키는 것을.
놈들은 '저게' 이 상황을 뒤엎을 무언가라는 확신을 가지고 행동한 거다.
"비-켜라!!"
군락을 가득 채우다시피 한 오크들이 그의 외침에 마치 용암이라도 마주한 것처럼 다급하게 길을 비운다.
수십년간 잠잠했던 그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 자신의 군대로 인간들의 왕국마저 무너뜨렸었다. 그런 오크들을 두고 저 인간 하나가 무언가 해낼 것이라 믿었다고?
만약 인간들이었다면 적들의 오만함을 비웃거나 어처구니없어하며 인간이 떨어져 죽는 것을 구경하려고 했겠지. 하지만 카쿨라는 상대가 멍청할 거라고 믿기보다 정말로 그만큼 강하길 빌었다.
그래야 제대로 된 '전투'를 할 수 있을 테니까.
"내가!! 대족장 카-쿨-라-다!!"
쩌렁쩌렁한 외침에 이제는 모든 오크들이 그와 하늘에서 추락하는 인간을 바라보았다. 인간도, 카쿨라도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는 와중에 그는 인간의 몸이 땅에 닿자마자 정수리에 도끼를 박아넣을 수 있을 위치에서 일말의 주저도 없이 크게 도약했다.
그 순간, 떨어지던 인간의 속도가 갑자기 무언가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덜컥 줄어들었다.
역시 뭔가 있었군. 자신의 직감에 뿌듯해하며 카쿨라는 자신과 똑바로 눈을 마주치며 쥐고 있던 막대기 같은 것에서 손을 떼는 인간을 바라보았다. 인간치고는 컸다. 이상한 기운이나 두르고 덤비는 약골들과 달리 전사의 몸이었다. 그 덩치답게 들고 있는 검도 나름 큰 편이었지만 그래 봤자 자신의 도끼에 비할 바는 되지 못했다.
검째로 쪼갠다. 그렇게 생각하며 두 팔에 힘을 준 순간 카쿨라의 도끼가 벼락처럼 휘둘러졌다.
-까아아앙!
필살의 일격이었으나 놀랍게도 인간은 공중에서 정확하게 그의 도끼를 받아 냈을 뿐만 아니라 그대로 옆으로 흘리며 멀쩡하게 착지했다. 그래도 그 충격까지는 어떻게 할 수 없었기에 안정적인 착지와는 거리가 먼 모습을 보여줬으나, 그가 저 높은 하늘에서부터 떨어졌다는 점과 착지 직전에 도끼까지 막아 내야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안정적이다 못해 완벽한 착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는!"
인간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두 발을 대지에 딛기가 무섭게 카쿨라를 향해 돌격했다.
그가 지금까지 상대해왔던 그 어떤 오크와 인간들보다도 빠른 움직임에 카쿨라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그 미소는 인간이 검을 휘두르며 내뱉은 외침을 듣고 더욱 짙어졌다.
"엘드미아 에가다!"
자신의 일격을 막아 낸, 인간들의 빈약한 무기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튼튼한 검을 도끼 자루로 막아 내며 카쿨라는 사납게 웃었다.
엘두미아 에가! 혼령들이 말했던 전쟁의 신! 대족장으로서 죽거나, 전쟁의 신을 죽이거나 선택하는 것인가?
죽은 자식에 대한 슬픔과 분노가 머릿속에서 사라질 정도로 멋진 날이로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