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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332화 (332/412)

갑자기 미친 오크 새끼 하나가 달려드는 탓에 안정적 착지에 대한 모든 계획이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갑자기 휘둘러지는 도끼에 정수리가 쪼개질 뻔한 위협을 막아 낸 뒤 놈에게 달려들면서 내가 느낀 건 두 가지 의문이었다.

하나는 내 몸에 느껴지는 부담이 생각보다 없었다는 것.

거의 급제동에 가까운 형태로 바늘을 띄우며 멈춘 탓에 어깨에 포션을 뿌릴 각오까지 했지만 살짝 뻐근할 뿐. 관절이 상하지 않았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고, 실제로도 잘 움직였다. 이 역시 무리해서 마력을 사용한 결과인지 알 수 없었지만 덕분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상태로 싸움에 임할 수 있었다.

나머지 하나는 '왜 족장이라는 새끼가 직접 달려와서 도끼를 휘두르는가?' 였다.

판단력과 실력만큼은 인정할 만했다. 오크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똑똑한 결정이었지. 아마 놈이 안 오고 날 방치했었다면 착지와 동시에 주변 오크들을 바늘로 정리하고 게이트를 향해 뛰어갔을 것이다. 그게 오크 특유의 호승심에서 비롯된 것인지 뭔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대단한 것으로 쳐줄 의향이 있다.

그래도 보통 족장이 직접 나서나...?

다른 오크들이었으면 싸움에 눈이 멀어 빡대가리 짓거리 거하게 했다고 여길 텐데, 이 새끼의 판단력과 실력 그리고 장비를 보아하니 오크여도 생각을 조금 달리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장비는 왜 들어가냐고? 조절은 했다고 하지만 마력까지 두른 검을 막았거든. 대체 뭘로 만들어진 것인지 몰라도 오크 놈들의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건 분명했다.

"엘두미아! 너를 죽여 하늘의 대초원까지 내 노래가 울려 퍼지도록 만들겠다!"

"혓바닥이 길다!"

발음이 병신같은 것만 좀 차치하면 다른 오크들과 달리 공용어가 무척이나 능숙하다. 썩어도 준치라고 장수한 만큼 지능은 올라간 것인가? 원래 주술사였다고 하니 일반적인 오크들보다 똑똑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음에 들진 않는다. 몬스터의 지능이 높아서 인간에게 이로울 건 하나도 없으니까. 주변 모든 상황을 무시하고 전투광같은 면모를 보이고 있는 저놈의 반응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난 바빠 죽겠는데 저 혼자 즐기는 꼴을 보아하니 더욱 격렬하게 게이트를 찾아 박살 내고 싶어진다.

"그럼 또 잘라보아라!"

뭐라는 거야? 냄새 나는 오크 혓바닥을 내가 언제 잘랐다고 또 잘라보래? 주술사라더니 어디서 혓바닥 잘린 일족의 원귀라도 씌인 건가?

차라리 정말 미친놈이었다면 상대하기 편해서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잠깐의 헛소리를 제외하고 녀석은 너무나도 정상적이었다.

어차피 보는 사람도 없으니 굳이 휘파람을 불 필요 없이 바늘을 운용하고 있는데도 귀신같이 막아 낼 뿐만 아니라 중간중간 주술마저 쏟아 낸다. 장담컨데 이 새끼의 손에 활이 있었다면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는 나를 향해 화살까지 날렸을 게 분명하다.

오크 주제에 싸움법에 자기만의 체계가 잡혀 있다. 쓸 수 있는 것들을 모든 것을 이용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런 엄청난 규모의 오크들을 이끌고 있다는 건, 그런 잡다한 기술들을 제외한 순수 근접전만으로도 경쟁자들의 두개골을 싹 다 쪼개놓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오크끼리 이렇게 싸웠다면 비겁하다고 몰매를 맞았을 테니까. 정확히 네 번의 공방을 주고받은 다음에야 좀 더 빠르게 상황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여긴 나는 검에 코팅한 마력의 농도를 조금 더 높혔다.

이거면 찌르기조차 놈의 도끼를 쪼갤 수 있다.

그런 확신이 들 정도로 코팅한 뒤, 내 발을 붙잡기 위해 늘러붙듯이 다가오는 주술을 피하며 놈의 품으로 다시 한번 파고들었다.

"빠르군!"

어지간한 인간들이라면 제대로 반응조차 못하고 당황할 속도였음에도 오크는 정확하게 나에게 시선을 고정한다. 심지어 그냥 도착 지점을 예측하고 바라본 게 아니라 움직이는 내내 눈동자가 따라 움직였다.

한낱 오크마저 오래 살면 이렇게까지 발달하는 건가? 새삼 내가 모르는 게 많은 세상이라는 것을 실감하며 놈의 심장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놈은 그마저도 재빠르게 반응하며 두툼한 양손 도끼날의 면으로 제 심장을 보호했지만 상관없었다.

찌르고, 그대로 정수리까지 올려 벤다. 이 정도로 강한 몬스터라면 명줄도 질길 것이 분명하니 결코 과하지 않았다.

-카앙!

"미친?!"

문제는 내 예상을 완전히 깨버리고 검이 저 도끼날에 막혔다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녀석도 편히 막지는 못했다는 점이었다. 일격필살을 노리고 시도한 찌르기를 막아 낸 놈은 그 거구에도 불구하고 뒤로 두 걸음이나 밀려났고, 내 빈틈을 노릴 수 없었다.

부르르 떨리는 양손 도끼를 고쳐 잡으며 놈이 외쳤다.

"나약한 무기인 줄 알았는데 뭔가 다르구나!"

"지도 씨발 좆같은 도끼 쓰면서 내 무기를 논해?"

나 역시 자세를 고쳐 잡으며 바늘을 날려 주변의 오크를 한번 휩쓸어 봤다. 마력을 운용하는 데에 아무런 불편함도 없을 뿐만 아니라 바늘은 멍때리고 구경이나 하고 있던 오크들의 머리통 역시 아무렇지도 않게 관통했다.

내 마력은 아무 문제없다. 즉, 놈이 들고 있는 심플하면서도 거대한 양손 도끼가 돈 주고도 구할 수 없는 좋은 무기라는 의미였다.

순 고생만 하고 겨우 벗어나게 될 거라 여겼던 곳에서 예상을 한참 벗어난 보상을 만나니 기분이 조금 좋아지며 힘이 나기 시작했다.

"전사의 도끼를 가졌군... 내가 가져가겠다!"

저건 반드시 챙긴다.

카쿨라는 생각했다.

엘두미아에겐 묘하게 동족의 냄새가 난다고.

자랑스러운 양손 도끼의 가치를 순식간에 알아보고 탐욕에 물든 시선을 보낼 때에는 살짝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 이렇게나 즐거운 전투를 하는 와중에도 탐욕을 잃지 않다니. 강자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엘두미아였다.

어쩌면 정말 전쟁의 신이 인간에게 깃든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카쿨라는 주술을 시전했다. 속박과 탈력의 주술은 닿기만 해도 확실한 효과를 발휘할 테지만 엘두미아에게는 별 의미가 없었다. 공격을 위한 주술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마법으로 막아 내고, 육신을 속박하기 위한 주술은 귀신같이 피한다. 지금까지 만나온 그 어떤 적수들도 저러지 못했기에 카쿨라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그야말로 호적수. 이대로 늙어 죽게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후손을 위해 하늘의 대초원에 있는 선조들이 내려 준 축복임이 분명했다.

"뀌이이익!"

느낌이 좋을 땐 강인한 오크마저 세로로 양단하는 자신의 공격조차 엘두미아를 가를 수는 없었다. 자신의 도끼만큼이나 좋은 무기를 쓰는 엘두미아는 때로는 피하고, 때로는 막으며 정신없이 움직였다. 그러면서도 기이한 바늘 같은 것을 사용해 주변의 동족들을 손도 대지 않고 죽이는 것을 잊지 않고, 자신을 향한 공격은 매섭기 그지없다.

실로 대단하다. 전쟁의 신이 이 정도인데 전쟁의 여신은 과연 어떤 존재였을까. 이 전투에서 이기면 전쟁의 여신에게도 도전할 수 있겠지만, 어쩐지 그럴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평생동안 얼마 느껴보지 못했던 아쉬움이라는 감정 속에서 카쿨라의 도끼가 한 번 더 벼락이 되어 휘둘러졌으나, 마치 바람처럼 그 공격을 흘러넘긴 엘두미아의 손과 검이 현란하게 움직이더니 순식간에 카쿨라의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좀스러울만큼 작은 동작이었지만 그 공격을 허용할 경우 죽음에 이른다는 것을 알았기에 카쿨라는 주저하지 않고 몸을 뒤로 뺐다. 공방은 격렬했음에도 쉬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그럴 수록 카쿨라의 몸이 뜨거워지며 점점 활력이 넘치기 시작했다.

얼마 만에 느끼는 전투의 희열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다. 대초원에서 가장 큰 부족을 이끄는 족장으로서의 30년이 불만족스러웠던 것은 아니지만, 역시 전투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부족하다! 그걸로는 나 카쿨라를 죽일 수 없어!"

다른 오크들조차 열광시키는 전투에 흥이 차올라 카쿨라가 외친 한 마디에 엘두미아가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나직이 읊조렸다.

"병신."

그러더니 뜬금없이 천천히 뒤로 물러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설마 도망을 친다고? 방금 전까지 잘만 싸워 놓고서 갑자기 왜?

갑자기 차게 식는 열기 속에서 카쿨라는 이제서야 자신과 엘두미아가 어디에서 싸우고 있는지 인지했다.

"네, 네놈!!"

그리고 분노에 차서 외쳤다.

어느새 엘두미아의 뒤에는 고대의 신비로 이어지는 토굴이 위치해 있었고, 한 차례 작은 쇳덩이로 그 주변의 동족들을 죽인 엘두미아는 아무런 미련 없이 토굴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자신을 향해 주먹을 내민 채 가운데 손가락을 세우는 알 수 없는 동작을 취하면서.

어째서인지 몰라도 카쿨라는 그 행동에 굉장한 모멸감을, 그리고 애초부터 놈의 목적은 신비의 파괴였다는 사실에는 허탈함을 느꼈다.

"뀌이이이익!!"

순식간에 차오르는 분노를 원동력 삼아 카쿨라의 육중한 몸이 전차처럼 튀어 나갔다. 그의 머릿속에는 이대로 비겁한 엘두미아의 등을 들이받아 죽여 버릴 생각뿐이었다. 역시 인간은 인간이다. 이대로 허리를 꺾어 고통스럽게 죽여 버릴 것이다.

그 생각은 어두운 토굴 안에 들어섬과 동시에 오른쪽 어깨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통증과 함께 사라졌다. 미처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그의 귓가에 엘두미아의 비웃음이 들려왔다.

"단순한 새끼."

느닷없이 위에서부터 뛰어내린 엘두미아가 자신의 어깨 위에 안착하며 정확하게 빈틈을 노리고 검을 찔렀다는 깨달음과 아찔한 통증은 동시에 밀려왔다. 그리고 카쿨라는 오크답지 않게 겸허히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동시에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간악한 인간이지만 전투를 피하지는 않나보군!"

"지랄!"

엘두미아가 파고든 검을 비틀어 뽑으려는 순간, 평생에 걸쳐 가장 빠르게 회전한 머리로 판단을 마친 카쿨라는 뽑혀 나가려는 엘두미아의 칼날을 제 손으로 움켜쥐었다. 이 정도로는 다치지 않을 거라 여긴 것과 달리 짜릿한 통증이 손아귀에서 퍼져나가는 건 좀 놀라웠으나, 이로 인해 이 전투에서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그마저도 유쾌했다.

"뀌이이이익!!"

그리고 카쿨라는 다시 달렸다. 저 너머에서 빛나고 있는 고대의 신비와 그 신비에서부터 아직도 넘어오고 있는 오크들을 향해서.

목표는 신비를 지탱하는 건축물. 아무리 튼튼해도 결국 인간인 이상 이대로 건축물과 카쿨라의 단단한 어깨 사이에 짓눌리면 치명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달리는 와중에 엘두미아를 흘깃 바라보니 뽑히지 않는 검과 뒤에 있는 건축물을 번갈아 보며 상황을 파악한 듯했다.

"이 무식하게 힘만 센 새끼가!"

그 순간, 지금까지 많은 동족들을 죽인 바늘이 카쿨라의 왼쪽 눈으로 날아들었다. 반사적으로 그 공격을 피할 뻔 했으나, 카쿨라는 자신의 몸을 억지로 부여잡으며 크게 웃었다. 그 위력이 범상치 않았던 걸 떠올리며 아예 머리가 꿰뚫리는 것은 막고자 최대한 머리를 비틀었으나 눈은 포기하기로 했다.

눈 하나는 준다. 그 정도 가치가 있는 적이다. 그렇게 각오를 다지기가 무섭게 바늘이 그의 눈을 꿰뚫었으나 전투의 흥분 탓에 예상보다 통증은 적었다. 그래도 덕분에 건축물과의 거리는 빠르게 좁혀졌고, 카쿨라는 승리를 예감하며 외쳤다.

"죽어라 엘두미아아!"

발에 치이듯이 밀려 나가는 오크들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달려들어 이제 충돌만이 남은 찰나의 순간.

"좆이나 까잡숴!"

끝까지 검을 놓지 않는 대신 엘두미아의 주먹이 카쿨라의 안면에 날아들었다.

그 모습에 카쿨라는 속으로도, 겉으로도 웃었다. 겨우 인간의 주먹으로? 마지막 발악치고는 아쉬웠...

-쾅!

"뀍?"

그리고 자신의 의지와 달리 크게 옆으로 꺾이는 고개와 기울어지는 몸을 느끼며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방금 주먹으로 맞은 게 맞나?'

뭔가 발견하지 못한 무기가 있었던 게 아닐까? 작은 망치라던가.

영원히 이어질 것 같은 의문 속에서 카쿨라의 몸이 방향을 잃고 크게 기울어진다. 건축물을 노리고 달려들었던 그의 몸은 그대로 신비 너머의 고향을 향해 쓰러지기 시작했고, 여전히 그의 어깨에 박힌 검을 부여잡고 있던 엘두미아는 깊은 한숨과 함께 중얼거렸다.

"게이트랑 엮이면 항상 지랄이 나는구나."

뭔가 손을 쓸 틈도 없이 쓰러진 둘은 고대의 신비를 지나 대초원의 바닥 위를 구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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