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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351화 (351/412)

두 발자국.

딱 두 발자국만 더 나아갔으면 반응할 틈도 없이 이마에 바람구멍이 났다.

재빠르게 검을 들어 올려 투사체를 튕겨낼 수 있었던 귀 사냥꾼은 소름 끼치는 현실에 정신이 바짝 드는 것을 느꼈다. 평소라면 덕분에 감각이 살아났다고 좋아했겠지만 이번만큼은 타격이 너무 뼈아파서 그럴 겨를이 없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인정해야만 했다. 놈은 자신의 뒤를 밟았고, 별동대 여섯은 다 죽었으며, 그로 인해 지금 남은 건 자신을 포함해 열 명뿐이라는 것을. 어쩌면 저 투사체에 맞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죽었을지도 모를 노릇이었으나 당장 알 방법은 없었다.

그럴 여유도 없었고.

"이 미친 새끼가!!"

분노로 눈이 돌아갈 것 같았지만 최대한 냉정하게 움직이며 검을 휘둘렀다. 전면에서 쏟아지는 여섯 자루의 검들은 그간의 훈련과 실전을 증명하듯 한치의 어그러짐도 없이 엘드미아의 팔다리를 무력화시키고 복부에 치명상 직전의 상처를 입히고자 날아들었다.

철저하게 엘프를 사냥하기 위해 짜여진 협공. 갑자기 얻은 도끼에 의존하는 반푼이가 피할 수 있는 공격이 아니다. 이제야 도끼를 고쳐 잡기 시작하는 엘드미아의 모습에서 귀 사냥꾼은 승리를 엿보았다.

"좀 치네."

엘드미아의 손에 들린 도끼가 믿을 수 없는 속도로 휘둘러지기 전까지는.

놈이 반 발자국 뒤로 빠지는 것에 맞춰 부하들이 움직이면서 발생한 아주 미세한 어긋남. 사람인 이상 어쩔 수 없이 나게 되어 있는 약간의 실력과 반응의 차이. 그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틈바구니 사이로 실력이라는 불합리함이 파고들 수 있다는 걸 귀 사냥꾼은 오늘 처음 알았다.

"크컥?"

반응이 조금 늦은 대가로 검이 튕겨지고, 그로 인해 아군의 경로를 가로 막아 버린 부하 한 명의 손목과 목에서 선혈이 치솟는다. 놈의 공격은 그걸로 끝나지 않고 더 이어졌지만 다행히 다른 부하들은 아슬아슬하게 그 경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냥 피하기만 했어도 놀랄 마당에 반격을, 그것도 눈으로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저 거대한 도끼를 휘둘러 손목과 목을 베어 버리는 완력에 귀 사냥꾼은 이를 갈았다.

"이건 또 씨발 뭐 하는 괴물 새끼야?!"

지금도 오러는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저 움직임은 오롯이 근육만으로 일궈낼 수준을 아득히 넘어섰다. 방금 전까지 확신할 수 있었던 승리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장기전으로 끌고 가면 하나씩 명을 달리할 게 분명하다는 확신이 그 자리를 대신 꿰차자 귀 사냥꾼은 각오를 다지며 엘드미아의 간격으로 파고들었다.

"내가 버틴다!"

당연히 목숨은 소중하다. 하지만 실력에 확고한 자신이 생긴 이후부터는 그에 못지않게 돈벌이 수단도 소중해졌다.

그리고 그의 부하들은 어디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고급 돈벌이 수단이었다.

"뒈져 이 새끼야!!"

여기서 더 잃었다간 장사 밑천이 사라진다. 귀 사냥꾼이 엘드미아의 도끼를 피하고 막아 내는 사이 살아 있는 네 명의 부하들이 그의 움직임에 맞춰 검을 휘둘렀다.

실로 깔끔하고, 박수받아 마땅한 연계였다. 그 연계를 얻기 위해 그들이 한 훈련이라는 게 엘프를 사냥하고 노예로 만드는 것이라는 게 흠일 뿐. 스스로의 몸에 새겨진 실력과 성능 확실한 장비가 장수의 비결인 이들이었기에 어디 하나 빠지는 구석이 없었다.

그리고 그 완성도를 증명하듯 엘드미아의 몸에 상처가 생기기 시작했다.

"넌 너무 오만했어!"

분명 뒤를 신경 쓰고 있었는데 대체 무슨 수로 자신을 따라온 것인지, 미세한 오러와 상반되는 정신 나간 무력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궁금한 것 투성이었지만 당장 해소할 방법은 없었다. 이 새끼도 그 유명한 용혈일족인가? 전달받은 정보에는 없었지만 이 정도면 의심해볼 만했다.

"끄악!"

놈의 비명이면 좋으련만, 다섯이 하나를 상대하고 있음에도 치명상을 입는 건 귀 사냥꾼 쪽이었다. 정체불명의 투사체가 꾸준히 견제하는 탓에 주의가 흐트러진 틈을 놓치지 않고 휘두른 도끼에 부하 하나가 어깨죽지까지 베이며 쓰러졌다.

이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도끼의 속도가 늦춰지지 않는 건 징그러울 정도였으나, 이제는 그 움직임도 슬슬 눈에 익었다.

'단순해.'

완력으로 어떻게든 버티지만 공격이 단조로웠다. 철저하게 육체 능력으로 부족한 기술을 무마하는 것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며 손해를 봐야 한다는 게 끔찍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여기서 물러날 테니 서로 갈 길 가자고 해서 먹힐 놈이었으면 이런 당돌한 기습 따윈 하지도 않았겠지.

결국 죽여야 끝날 문제다. 짧은 시간 동안 거기까지 결론을 내린 귀 사냥꾼은 자신의 목을 노리고 휘둘러지는 엘드미아의 도끼를 피하며 녀석의 손가락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무기를 놓지 않는 이상 손가락 몇 개는 확실히 잘려 나갈 것이 분명...

"뭔...?"

...했는데.

엘드미아는 마치 그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너무나도 거침없이 도끼를 놓아버렸다.

아니, 놓는다는 표현보단 던졌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그대로 날아간 도끼가 기어이 다른 부하의 흉갑을 찢고 갈비뼈를 쪼개버렸으니까. 그 틈을 만든 귀 사냥꾼은 명백히 이상함을 느꼈지만 부하들은 달랐다. 투사체의 방해로 인해 뒤로 크게 물러나며 검을 뽑아 드는 엘드미아를 방해할 수는 없었지만 주력으로 쓰는 무기가 사라진 빈틈을 파고들 생각으로 남은 세 부하가 거의 동시에 파고들었다.

그리고 엘드미아의 검이 빛났다.

"단순한 새끼들."

귀 사냥꾼이 뒤로 물러설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본능에 의한 것이었다. 아주 살짝 뒤에 있는 귀 사냥꾼의 시야에 조금 긴 롱소드가 휘둘러지는 모습이 고스란이 비쳤다.

왼쪽에서부터 오른쪽까지 올곧게 휘둘러진 횡 베기에 검이 잘려 나가고, 팔이 잘려 나가고, 이윽고 세 부하들의 몸통까지 잘려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귀 사냥꾼은 자신이 환각 마법에 걸린 건 아닌가 진지하게 고민해야만 했다.

동시에 저걸 예측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단순한 새끼라고 욕을 먹는 건 너무 부당한 처사라고 생각했다.

"원래 보스전은 페이즈가 나뉘는 법이거늘."

갑옷 입은 사람 셋을 통 째로 썰어놓고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반응하며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 엘드미아가 허리 춤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거..."

작은 유리병에 든 파란 액체. 설마 설마하고 있는데 엘드미아는 일말의 주저 없이 한입에 털어 넣은 뒤 인상을 찡그리며 유리병을 챙겼다.

"처음 먹어보는데 그다지 유쾌한 맛은 아니네."

"...포션."

"정답."

씨발 너무하잖아 이건.

목구멍까지 치솟은 말을 강제로 삼키게 만든 것은 이어지는 엘드미아의 공격이었다. 상단 자세를 취하자마자 한달음에 파고들어 정확하게 간격을 재서 목을 노리고 휘둘러지는, 일말의 흐트러짐도 용서하지 않는 횡 베기.

너무나도 뻔한 공격이라고 비웃고 싶지만 압도적인 속도와 힘의 차이 앞에서 그 공격은 예고된 죽음과 다를 바 없게 느껴졌다.

"너 이 새끼 검이 주 무기였...!"

"그럼 주운 지 얼마 되지도 않는 도끼가 주 무기겠냐? 순 등신 새끼네 이거."

신랄한 비난이었지만 차마 반박할 수 없었다. 명백하게 상대방을 우습게 여긴 건 자신의 실책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아차 하는 사이 귀가 베이고, 아주 잠깐 늦게 반응해서 어깨 살점이 뭉텅이로 잘려 나갔다. 평생을 살아오며 이렇게까지 농락당한 적이 있나 싶을 만큼 일방적인 폭력이 이어졌다. 심지어 자기가 알고 있던 그 파란 포션이 맞는지 놈의 상처는 벌써 다 아물어 있었다.

지독하게 불합리했으나 그 상황마저도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자신의 검술은 엘드미아를 상대하기에 턱없이 부족했기에.

"사냥꾼이면 사냥꾼답게 사냥을 했어야지 병신아."

저 빌어먹을 주둥이 좀 찢어 버리고 싶은데, 정작 찢긴 건 자신의 두 팔과 복부였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재기불능이었지만 엘드미아는 무슨 편집증이라도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비틀거리며 뒤로 나자빠진 그의 두 발목까지도 일격에 베어 버리고 난 다음에야 접근하는 엘드미아를 보며 귀 사냥꾼은 진절머리가 나는 것을 느꼈다.

이미 살긴 글렀다. 어처구니가 없어 황당하기까지한 갑작스러운 결말에 헛웃음이 나왔다.

"씨발, 더럽게 깔끔해서 아픈 건 덜하네."

"천하의 씹새라 하더라도 고통주며 괴롭히는 건 취향이 아니거든."

"하, 그걸 감사해야 하나? 이제 죽음을 코앞에 둔 나에게 정보를 빼내기 위한 수작에 불과해 보이는데?"

뻔하다면 뻔한 결말이군. 코웃음을 치며 마지막으로 어떻게 엘드미아에게 좆같음을 남길 수 있을까 고민하던 귀 사냥꾼의 심장에 칼이 박혔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너에게 그럴 가치는 없어."

좆 같은 새끼.

그 한마디라도 외치고 죽고 싶었는데 엘드미아의 검이 순식간에 뽑히더니 정확히 그의 성대를 그었다.

"내가 악마 새끼의 마지막 발악에 저주받을 뻔한 적이 있어서. 혹시 모르니 가는 길은 조용히 가라."

마지막까지 사람 열 뻗치고 억울하게 만드는 놈이다...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귀 사냥꾼의 숨이 끊어졌다. 그의 죽음을 확인한 엘드미아는 사방에 널린 시체를 뒤로한 채 야영지에서 유일하게 살아 숨 쉬고 있는 이를 향해 걸어갔다.

"사, 사, 살려..."

"너? 죽일 거면 진즉 죽였지. 걱정 마. 넌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내 질문에 대답한다면 말이지."

귀 사냥꾼이 얼굴을 씻었던 자리에서 꼼짝할 엄두도 못내고 벌벌 떨고 있는 오즈월을 바라보는 엘드미아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이제 네가 모시는 귀족이라는 새끼가 누구인지 말할 준비가 되었으려나?"

방금 오러 유저 십여명을 도륙 낸 자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평범한 미소를 보며 오즈월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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