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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361화 (361/412)

멕켈린 영지를 떠나 이어진 일주일가량의 여정은 더할 나위 없이 평온했다.

멕켈린 백작의 복수를 다짐하며 달려드는 추격대도 없고, 내 목숨을 노리는 암살자도 없으며, 지나가던 엘프 사냥꾼이 나타나지도, 병신같은 악마 숭배자들의 사악한 계획에 얽히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냥 길가의 돌멩이처럼 빈번하게 마주치는 소규모 도적들만 있을 뿐.

"흐아악!! 도, 도망쳐! 엘드미아 에가다!"

"휘, 휘파람 악마가 나타났다!!"

일주일을 이동하며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마주하는 도적들의 등장에 난 화내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사무적인 태도로 휘파람을 불어 바늘을 날렸다. 놈들의 곡소리가 더욱 크게 울려 퍼지는 걸 보고 있자 하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와, 이티스엘은 여기에 비하면 양반이네. 뭔 도적 새끼들이 이리 많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유는 이미 알고 있다. 무슨 전국시대 일본이라도 되는 건지, 하루가 멀다 하고 박 터지게 싸워대는 서부 왕국들과 그 휘하의 귀족들 때문에 화전민 겸 도적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이 정말 우후죽순으로 생겨난다는 것을.

문제는 여기 땅덩어리가 작은 게 아니라서 그 수가 정말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점에 있었다.

변경을 벗어나면 괜찮을 거라 여겼던 내 예상과 달리 오히려 내륙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늘어나는데, 후드를 쓴 엘프들의 복장이 순례자처럼 보여서 그런지 겁대가리를 상실하고 달려드는 놈들이 태반이었다.

그리고 그걸 죄다 족치다 보니 놈들의 생태마저 알게 되어버렸다. 살려 두면 이것들이 회개하고 성실히 살려고 하는 게 아니라 무슨 고블린 새끼들처럼 다른 집단으로 기어가더라.

"...이젠 아예 자네가 누군지 알고 있군."

그 결과가 바로 방금 전 눈앞에서 펼쳐진 꼬라지다. 엊그제만 하더라도 습격까지는 무지성으로 하다가 도망치는 놈들이 나왔는데 이젠 아예 숨어 있던 곳에서 비명을 지르며 튀어 나가는 상황에 이르렀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다치거나 죽어 나가는 도적들을 보는 엘프들의 시선에는 참 많은 의미가 담긴 듯했다. 물론 그들의 감상은 내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난 나를 휘파람 악마라고 부른 놈의 어깨에 바람을 구멍을 내주며 투덜거렸다.

"사람을 바퀴벌레에 비유하고 있어 씨발놈이."

저 괴상한 별명이 퍼지는 걸 막으려면 차라리 죽여 버리는 게 나을지도 몰랐으나, 나에게 검을 뽑아 드는 놈들을 뒤로한 채 즉시 도망친 놈에게 그건 좀 과한 처사였기에 참았다. 그 꼴을 보며 헛웃음을 터트린 셀레비안이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조금 있으면 도시에 도착하는데 도적들을 마주칠 줄이야."

"...아주 개판이군요."

물론 그 '조금 있으면' 조차 엘프의 감각이긴 했지만, 인간의 기준으로도 가깝긴 했다. 평범한 사람이면 반나절만 걸어도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니까.

이제 저 멀리서 윤곽만 겨우 보이는 도시만 지나가면 셀레비안이 말했던 그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숲'에 도달할 수 있거늘. 주구장창 도적놈들을 상대하는 탓에 벌써 해가 떨어지기 직전이라 도시에서 하루 더 묵게 생겼다.

그나마 도적놈들 주머니를 털며 숙박비를 충당할 수 있었기에 화는 덜났다.

"흠, 주황 머리 마법 소녀가 왜 도적들을 털고 다녔는지 이해가 되는... 아니, 밤색 머리였나?"

이제는 긴가민가한 전생의 추억을 떠올리며 대충 보이는 금품을 회수한 나는 도시의 문이 닫히기 전에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걷는데에는 이골이 난 엘프들인터라 평범한 사람들보다는 빠르게 도착했다. 도시는 한창 검문 막바지에 이른 상태인 것 같았다. 모험가와 상단 마차, 그리고 마을의 부산물을 팔러 온 농민들로 이루어진 행렬은 내 예상보다는 많이 긴 편이었다.

"금방 들어갈 수 있겠군."

"...그렇죠."

물론 엘프 기준에서는 '금방'이었지만 말이다. 참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세상 구경나온지 얼마 되지도 않은 엘프 붙잡고 그런 거 따지기도 뭣해서 적당히 넘긴 뒤 줄 맨 뒤에 서자, 무심한 표정으로 늘어지게 하품을 하던 우리 앞의 마차 주인이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어이쿠, 안녕하십니까? 도시가 닫히기 전에 오셔서 다행이구만."

그 태도는 다른 사심이 있다기보단 새로운 이야기 상대가 생겨 기분이 좋은 것에 가까웠기에 나 역시 웃으며 화답했다.

"오기 전에 도적놈들을 만났던 터라 그다지 다행은 아니라고 여겼는데, 말씀을 듣고 보니 다행인 점도 있군요."

"아! 그 빌어먹을 놈들이 있는 곳으로 오셨구먼? 사실 나도 오는 길에 마주쳤다우. 그래도 통행료를 받는 놈들이라 다행이었지, 그때 흘린 식은땀이 아직도 마르질 않는다니까."

이런, 내 주머니에 들어 있는 돈에 지분이 있는 사람이었군. 엘프들의 시선이 내 돈주머니가 있는 위치로 향하는 사이 적당히 그의 말을 받아주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도착하신지 얼마 안 되셨나봅니다?"

"그렇지도 않수. 행렬이 엄청 길었던 거지. 그래도 여기가 이 인근에서는 나름 큰 도시거든. 근데 방금 전까진 줄이 잘 줄어들더니 갑자기 꽉 막혀서는 움직이질 않네."

"진상이라도 있는 걸까요?"

"안 그래도 좀 소란스러운 거 같긴 하던데... 어이, 포도주 친구! 뭐 들려오는 거 없수?"

아무래도 나한테만 말을 건 게 아닌지 그는 자기보다 네 다섯 팀은 앞에 있어 보이는 사람을 향해 손을 흔들며 큰 소리로 물었다. 아니, 중간에 한번 다 같이 모여서 식사라도 한 건가? 저 앞에 있는 사람하고는 뭔 수로 대화했지?

어찌 됐건 포도주라 불린 남자는 그의 부름에 고개를 돌리더니 두 손을 입에 모아 대답했다.

"경비대가 아주 난리가 났어! 뭐 엄청난 사람이 나타난 모양이던데!"

하, 씻팔 귀족인가. 그럼 꼬장꼬장 지랄을 쳐서 막히는 것도 말이 됐다. 마차 주인도 나와 같은 생각했는지 잠깐 눈을 마주치고 어깨를 으쓱이더니 한 번 더 물었다.

"귀족이라도 나타났나!"

사이에 낀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지랄할 법도 하지만 다들 호기심이 생긴 건지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일 뿐이었다. 그 모습이 퍽 우스워서 짧게 웃는 사이 포도주의 입에서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 튀어나왔다.

"몰라! 엘드뮈아 데가라나 에가라나!"

"...씨발?"

나도 모르게 육성으로 욕이 튀어나왔다. 그러자 살짝 놀란 마차 주인이 의아함과 호기심이 공존하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는 이름이우?"

"...아주... 잘... 알죠."

나니까요 씻팔.

순간 이티스엘 모험가 길드에서 겪었던 좆같은 사칭범의 기억이 떠올라 인상이 팍 썩어 버렸다.

아니, 근데 뭐 얻어먹을 게 있다고 여기서 사칭범이 생겨?

"아무래도 좀 보고 오는 게 낫겠네요."

"어어, 조심하슈!"

초면인데도 참으로 정겹게 대해주는 마차 주인의 걱정에 적당히 응대하며 앞으로 나아가자 불만스럽게 줄을 서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가, 못 볼 걸 봤다는 듯 빠른 속도로 돌아갔다.

그만큼 내 지금 얼굴은 완벽하게 내 기분을 대변하고 있었다. 굳이 감출 생각도 없었고 말이지.

"...기서도 똑같이 해 주길 바라나?"

조금씩 관문에 가까워질수록 웅성거림도 커져간다. 그리고 평범하게 이어졌던 줄이 마치 위험물을 둔 것처럼 관문과 멀찍이 거리를 둔 상태로 끊긴 것을 내 눈으로 확인할 때쯤, 나는 십 수명의 경비병들과 대치하고 있는 정체불명의 뒤통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덩치는 크고, 등에 메고 있던 도끼와 검도 그에 걸맞게 컸다. 그래봤자 한손 도끼와 한손 검이었지만 저 덩치에 맞춰 제작된 것인지 큼직하긴 했다

"기, 기다리시오! 처음부터 말했지만 하다못해 켈바스트 영주의 신원보증패만이라도 보여 줘야..."

"멕켈린 백작의 기사들과 싸우면서 잃어 버린 걸 찾으러 다시 돌아가라고? 차라리 여길 뚫고 지나가는 게 더 빠르겠군."

허, 그게 소문이 벌써 퍼져? 난 솔직히 켈바스트에서 있었던 일로 사기를 치는 씹새일 줄 알았는데 정보력만큼은 남다른 씹새였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놈이 인상을 쓴 것인지 경비들의 안색이 파리해지며 창을 고져잡는 꼴이 참으로 꼴같잖았다. 하지만 더 가관인 건 그들 앞에 서 있는 두 기사들이었다.

저 새끼들도 쫄고 있었거든.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대놓고 욕이 튀어 나갔다.

"에라이 병신들아. 기사 씩이나 되는 것들이 애새끼 이름만 듣고 팍 쪼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이냐?"

그 순간 내가 앞으로 나서면서 발생했던 웅성거림도, 짭드미아를 대치하며 바들바들 떨던 도시 병력들의 움직임도 멈췄다.

"...애새끼?"

거기서 유일하게 움직이는 건 덩치 큰 짭드미아였다. 위압감을 주는 게 목적인지 천천히 몸을 돌리는 녀석의 얼굴은 아주 험악했다.

그리고 나보다 한참 못 생겼다.

"씨발, 그 얼굴로 애새끼는 좀 그렇다. 산적 두목같은 새끼라고 해야 했네."

"...내가 지금 엘드미아 에가라는 걸 알고 하는 소리냐?"

놈이 몸을 돌려 나를 응시하자 안 그래도 뒤로 밀려 있던 줄이 더 뒤로 밀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싶어서 돌아보니 다들 짭드미아의 말을 믿고 세상 무서운 걸 봤다는 듯 물러난 상태였다.

그 안에는 느긋하게 따라와서 세상 재밌는 걸 구경한다는 듯 흥미롭게 보고 있는 셀레비안 일행도 있었다. 돌겠네 진짜.

"니가 엘드미아 에가가 아니다에 내 손 모가지를 건다. 넌 뭘 걸 수 있냐? 목숨?"

"하, 카큘라의 도끼가 기사의 피에 이어 겁대가리를 상실한 애송이의 피도 마시게 되겠군."

이 새끼, 생긴 게 저래서 그렇지 사실 배우인 게 아닐까? 저 정도면 진짜 자신이 나라고 믿고 있는 정신병자 혹은 메소드 연기에 심취한 연극 배우라고 봐야 했다. 놈이 제 등 뒤에서 도끼를 꺼내보이자 그게 무슨 마법이라도 뿌릴 것처럼 경비와 기사들조차 뒤로 물러났다.

"하아..."

아무리 카쿨라가 오크 새끼여도 그렇지, 하다못해 배틀 액스라도 들던가.

좀 큰 벌목 도끼가지고 카쿨라 운운하는 건 어이가 없어서 웃음조차 안 나올 지경이다.

"저기요... 짭드미아씨. 일단 이 도끼는 카큘라가 아니라 카쿨라한테 뜯어낸 거구요. 그보다 내가 싫어하는 게 존나 많은데, 아주 최근에 거기에 새롭게 추가된 게 있어요. 그게 뭔지 아세요?"

"짭...뭐?"

등에 메고 있던 진짜 카쿨라의 도끼를 쥐며 말하자, 놈의 시선이 도끼로 향했다. 나를 사칭하고 다니면서 정작 도끼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제대로 알지 못했는지 그 얼굴에 떠오른 건 의문도 뭣도 아닌 '진짜 덤비려고?' 정도의 감상이었다.

"그건 바로 사칭범이야 이 씨발놈아!"

그리고 그게 놈이 살면서 느낀 마지막 감정이 되었다.

난 냅다 거리를 좁히며 달려들어 분노를 담아 놈의 정수리에 도끼를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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