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신출내기들처럼 겁없이 모험가 업계에 머리를 들이민 것치고 굉장히 빠르게 자리 잡은 발루스는 꽤 괜찮은 인재였다. 저렇게 엘드미아 흉내 내는 인간들을 보면 게거품을 문다는 게 단점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사기꾼을 용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의감이 투철하다고 좋게 보는 이들이 꽤 있는 편이었으나... 길드에서 파악한 사기꾼들만 스무 명이 넘어가고 지금 저 자리에 있는 사기꾼들만 일곱이었으니 정의감보다 분노조절 장애의 가능성을 염두하는 쪽이 더 타당할지도 모른다는 의견도 적지 않긴 했다.
물론 그런 걸 다 떠나서 발루스의 행동은 정당했다. 길드에서도 그의 행동에 불만을 가지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한바탕 투닥거리고 나면 은근슬쩍 저렴한 회복제 하나 쥐어 줄 정도로 응원하는 편이다.
어찌 보면 길드가 직접 나서서 저런 사기 행위를 제재해야 하는데 모험가를 앞세워 적당히 해 먹는다는 인상을 주기 딱 좋은 상황이었으나, 길드라고 좋아서 그들을 방치하는 게 아니었다.
애당초 엘드미아가 사라지고 저런 인간들이 나타나기가 무섭게 가장 먼저 열심히 제재를 가하고 막아온 게 길드였다. 아무리 하는 짓이 쓰레기라고 한들 아쉬울 땐 써먹어야 하는 인력이 겁대가리 없이 멍청한 짓을 하다가 죽어 나가는 건 길드 입장에서도 엄청난 손해였으니 당연했다.
굳이 따지면 겨울에 대륙 횡단하지 못하게 막는 거랑 같은 이치였다. 인성에 하자가 있더라도 일정 등급 이상의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게 모험가였으니까.
하다못해 겨울에 도시를 이동하는 건 무사할 가능성이라도 있지, 엘드미아 사칭범은 본인에게 발각될 경우 높은 확률로 반 병신이 되거나 죽을 게 분명했다. 길드는 일부러 사칭범을 제보하는 이들에게 보상금까지 뿌려가며 매우 열심히 그들의 범죄행위에 압박을 가했다.
하지만 제재라는 건 어디까지나 목격자가 확실하거나 피해자가 증거를 들고 나타났을 때나 가능한 이야기였다. 수도는 넓었고, 길드는 좁았다. 그들이 밖에서 몰래 몰래 헛짓을 하고 다니는 것까지 전부 잡아 올 방법은 전무했다.
그렇다고 해서 증거도 없는데 단순히 검 하나 들고 개 한 마리 끌고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사칭범이라 제재를 가하면 마수 조련사 같은 특이한 이들은 발도 못 붙이는 사태가 일어난다. 정말 개를 데리고 다니는 사냥꾼에 불과한데 무고하게 신고를 받고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당장 게시판 앞에 모여 있는 저들의 의도가 아무리 뻔하다고 한들 길드 입장에서는 갑자기 늘어난 애견인에 불과하다는 그들의 빈약한 변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꼴같잖아서 없애버리고 싶어도 편법을 쓰며 당당하게 굴고 있는 이들에게 하루가 멀다 하고 시비를 걸며 조금이나마 억제 시키는 역할을 자진하는 발루스에 대한 길드 접수원들의 평가가 좋은 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사실 발루스의 행동은 스스로에게 독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수도에서 제대로 활동하는 이들 중 엘드미아를 사칭하는 자살 희망자들은 손에 꼽았기에, 사칭범 대부분은 오크 게이트로 수도에 왔다가 엘드미아의 소문을 듣고 이용해 먹기 좋다고 여긴 외지인들이었으며 그런 간 큰 짓을 한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 발루스보다는 경험이 풍부한 모험가들이었으니까.
당연히 패는 것보다 얻어 맞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럼에도 발루스는 여전히 가짜 엘드미아를 보면 경기를 일으키며 달려들었다. 실제로 그런 발루스 때문에 흉내 내는 걸 포기한 애송이들도 적지 않았으나...
"하아, 저 미친 새끼 진짜. 넌 이번 주 내내 못 일어날 각오해라."
...지금 모인 인간들 대부분은 그런 애송이가 아니었다.
딱 봐도 성질 사나워 보이는 사냥개를 끌고 다니던 모험가 하나가 관절을 풀며 발루스에게 다가 갔다. 생긴 건 전혀 달랐지만 그래도 나름 구색을 맞추고 실력도 조금은 있는 편에 속하는 사기꾼이었다. 서로를 향해 험악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다가간 두 사람은 거리가 좁혀지자마자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주먹을 뻗었다.
"크헉!"
아쉽게도 맞은 건 발루스였다. 비록 사기꾼이라고 할지언정 남자는 청급 중견 모험가였다.
"내가! 엘드미아 라는데! 왜! 니가! 지랄이야! 이! 씹새야!"
뒷골목에서 주먹질 좀 했던 것인지 제법 폼이 나오는 사기꾼의 공격이 묵직하게 들어갈 때마다 발루스가 휘청거린다. 이를 막으려는 모험가들도 있었지만 오히려 다른 모험가들이 그들을 막아섰다.
발루스가 싫거나 사기꾼을 옹호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되려 발루스의 자존심을 위해 모험가 나름대로 배려하는 것에 가까웠다.
발루스는 자신의 실력이 그들보다 부족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럼에도 이 짓을 포기하지 못 하는 건 직접 엘드미아를 만난 그 짧은 시간의 인상이 워낙 강렬했던 탓이었다. 저런 꼴을 방치하는 것조차 그들에게 가담하는 거라 여겨, 지더라도 주먹을 휘두를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런 발루스에게 도움받을 걸 예상하고 나댈 뿐이라는 오명을 씌워줄 수는 없었기에, 일부 모험가들은 사건이 정리되면 술 한 잔 사거나 식사 한 끼 사주는 식의 배려만 해왔다.
"어휴... 저러다가 아주 그대로 길드 밖으로 나가...겠..."
속은 쓰리지만 어쩔 수 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며 초콜릿을 주워 입에 넣으려던 가룬이 저도 모르게 초콜릿을 떨구며 말끝을 흐렸다.
안 그래도 심기가 불편한데 그 비싼 초콜릿을 떨어뜨리기까지 한 가룬을 살짝 노려본 엔그림은 그의 표정이 범상찮음을 깨닫고 그가 바라보는 곳으로 시선을 향했다.
그리고 가룬을 이해했다. 동시에 빠진 머리카락이 다시 솓아나는 기분을 느꼈다.
"내가! 엘드미아! 에가라고 이 새끼야!"
큼직한 풀 스윙이 기어이 발루스의 턱에 제대로 꽂히며 휘청거리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발루스는 어떻게든 발을 움직여 쓰러지지 않으려고 했다. 뒤로 다섯 걸음이나 휘청거린 그의 등에 툭 하고 누군가가 부딪치지 않았다면 그대로 쓰러졌을지도 몰랐다.
그때, 그와 부딪친 누군가가 말했다.
"니가 엘드미아 에가라고?"
얻어맞아 생긴 어지러움과 통증조차 잊을 정도로 놀란 발루스가 황급히 고개를 뒤로 돌리다가 제대로 균형을 잡지 못한 탓에 결국 뒤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하지만 발루스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하아, 그래. 내가 엘드미아 에가다. 넌... 씨발 그건 또 뭔 개새끼야?"
순박하게 헥헥 거리며 엉덩이를 흔드는 목동견을 옆에 대동한 채, 빛을 등지고 서 있는 사내가 누구인지 알아챈 모험가들 일부가 순식간에 우르르 움직이며 한쪽 벽면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게시판 쪽에 모여 있는 가짜 엘드미아들과 정반대로.
게시판 앞에 서 있는 이들 중 그 이동이 시작되는 걸 눈치챈 이들은 얼마 없었으나, 정작 눈치챈 이들도 저게 뭐 하는 짓거린가 하는 시선만 보낼 뿐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채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건 방금 전까지 발루스에게 주먹을 휘두르던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목동견과 남자를 번갈아 보고는 코웃음을 쳤다.
"내 진짜 어이가 없어서. 흉내 낼 거면 좀 제대로 된 개를 데리고 다니지 그러냐?"
사기꾼이 일으킨 소란으로 인해 한 차례 소강상태에 이르게 된 게시판 앞의 모험가들 사이에서도 새로운 구경거리를 향한 비웃음을 터져 나왔다.
그래도 내가 끌고 온 똥개가 저거 보단 낫지. 그런 의미로 웃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만큼 방금 길드에 들어온 이가 데리고 있는 개는 순박하게 생겼다. 지금 이 순간도 헥헥 거리고 있는 게 묘하게 웃는 상이라서 귀여우면 귀여웠지, 조금도 위협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발루스와 부딪친 사내는 그런 반응을 무표정하게 훑어본 뒤 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라이카. 저 개들 한 곳에 몰아."
"멍!"
순박하게 헥헥거리던 목동견이 그의 명령을 듣자마자 대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한 번 짓고는 곧장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아르르르르...!"
그리고 그것만으로 순식간에 공기가 바뀌었다.
사납게 생긴 사냥개든, 얼빵하게 생긴 똥개든 할 것 없이 그 으르렁거림 한 번에 죄다 꼬리와 머리를 내리며 낑낑거리는 걸 본 모험가들의 표정이 대번 심각해졌다. 모든 개들이 방금 전까지 순박하기 그지없던 저 목동견에게서 조금이라도 더 멀어지고자 길드 한 켠으로 몰려가는 모습은 결코 자연스러운 광경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꼴을 만들어 낸 당사자는 당연하다는 듯 태연하게 길드로 걸어 들어오며 나직이 읊조렸다.
"겨우 한 달 정도 자리 비운 사이에 아주 지랄났구나."
신나게 발루스에게 주먹을 날리던 남자는 깨갱 거리며 뒤로 도망치는 자신의 개에게서 시선을 돌려 뒤늦게 사내를 바라보았다.
개가 우스워서 신경을 덜 썼는데 지금 보니 덩치가 장난 아니었다. 끼고 있는 건틀릿도 고급품 같았고, 허리에 차고 있는 검도 검이었지만 그가 등에 메고 있는 양손 도끼는 보는 것만으로도 무게가 느껴지는 기분이 들었다.
한걸음 한걸음 가까워질 때마다 그 모든 게 압박감으로 다가와 남자는 저도 모르게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사내의 말과 반응이 더 빨랐다.
"도시 안에서 만난 걸 신께 감사드려라."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할 틈조차 주지 않고 사내의 주먹이 번개처럼 날아들었다. 콰드득! 거리는 소리와 강한 충격 속에서 남자는 자신의 턱 한쪽이 제대로 박살 났음을 확신했다.
"밖이었으면 두개골을 반으로 쪼개버렸을 테니까."
격통 속에서 이어진 사내의 말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미 쪼개진 거 같은데.
몽롱해지는 의식 속에서 그런 감상을 떠올린 사내는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 갑작스러운 광경에 모두가 침묵하는 와중에, 게시판에 몰려 있는 이들을 바라보며 사내가 말했다.
"내가, 엘드미아 에가다."
저건 진짜다.
그제서야 홀에서 쉬고 있던 모험가들이 왜 한쪽으로 붙었는지 이해한 사칭범들의 인상이 팍 일그러졌다.
"이 자리에 있는 짭드미아들에게 좋은 걸 알려주지."
약속을 한 것도 아닌데 사내의 말을 듣자마자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사칭범들의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그간 들어왔던 엘드미아에 대한 소문이 되새겨졌다. 덕분에 그 소문 중 단 하나라도 사실일 경우, 사칭범들은 자신들이 좆될 거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직감할 수 있었다.
"엘드미아 에가는 사칭범을 찢어."
애석하게도 그들이 들어온 소문은 대부분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