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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395화 (395/412)

가장 먼저 이변을 눈치챈 건 비룡 조종사였다.

수시로 뒤에 있는 나에게 고개 돌려 대화를 시도하는 그의 허리와 목 건강이 걱정될 무렵, 호탕한 웃음과 함께 다시 앞으로 돌아가야 할 고개가 멈칫하며 내 뒤를 주시했다. 아마 그가 내 생애 두 번째 비룡 조종사처럼 묵묵한 사람이었다면 훨씬 늦게 알아차렸을 것이다.

"손님! 예기치 못한 사태가 발생한 거 같습니다!"

고글과 함께 잔뜩 두른 방한용품 때문에 표정을 볼 수는 없었지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유쾌하던 그의 목소리에는 장난기가 쫙 빠지고 심각함만 담겨 있었다. 그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놀라면서도 뒤를 돌아보니, 저 아래에서부터 서서히 상승하는 세 마리의 비룡이 점처럼 찍혀 눈에 들어왔다.

"야생 비룡 입니까?"

도시도 아닌데 뜬금없이 저런 곳에서 비룡 조종사가 튀어나올 이유는 전혀 없다. 근처에 비룡 서식지라도 있는 건가 싶었는데 돌아온 대답은 영 달갑지 않은 내용이었다.

"아뇨! 누군가 타고 있습니다! 문제는 제식 장비를 갖추지 않았어요! 불법적으로 비룡을 수렵해 지방 귀족들에게 넘기는 사냥꾼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방에서는 종종 비룡 기사 시험을 위해 몰래 비룡을 잡아 타는 법을 익히는 귀족들도 있다고 들었다. 당연히 불법이지만, 안 들키고 비룡 기사를 배출할 수 있다면 그 가문의 평가가 수직 상승하니 일종의 사교육에 가까웠다.

비록 비룡 기사가 됨과 동시에 가문을 나간다고 한들 비룡 기사를 키워낼 능력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큰 법이다. 그치들 입장에서는 모든 편법을 다 동원하고 싶겠지.

그건 그렇다 쳐도, 진짜 저게 보인다고? 나도 눈이 나쁜 편은 아닌데 수직 상승 중인 비룡의 등에 뭐가 있는지 알아보는 건 쉽지 않았다. 기에스도 그렇고 비룡 조종사의 기본 조건은 매우 건강한 눈일지도.

하지만 비룡들이 상승을 멈추고 수평을 유지하며 우리를 쫓아오기 시작하니 과연 비룡 조종사의 말대로 그 위에 둘 씩 사람이 타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하아... 내가 앞으로 이젠 아무 일 없을 거다 라고 생각하면 개다 개."

문제는 타고 있는 게 인족이 아니라 마족이었다. 저들이 바이킹 뿔 투구 같은 것을 쓰고 있는 게 아니라면 말이지. 만에 하나의 가능성을 바라며 마력시를 사용했지만, 멀리서도 확실하게 감지할 수 있는 마력이 내 희망을 깔끔하게 박살 내주었다.

"마족입니다!"

"마?!... 이런 젠장! 꽉 잡으십시오 손님!"

과연 왕실에서 직접 관리하는 직업이라고 해야 할까, 비룡 조종사는 패닉에 빠지지 않고 바짝 몸을 낮춰 오히려 가속에 들어갔다. 조금 전까지도 결코 느린 속도가 아니었는데 그렇게 작정하고 속도를 내니 금방 뒤에 따라붙을 것만 같았던 마족들의 비룡과 거리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게 기술의 차이인가 싶어 내심 감탄했지만, 이렇게 거리가 벌어지기 시작하는데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비룡 조종사를 보아하니 쉽게 해결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제일 선두에서 날고 있던 마족이 뭔가 뒤를 돌아보며 손짓하자마자 놈들의 속도도 같이 오르면서 내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덕분에 상황이 꽤 긴박하게 돌아갔지만 난 떠오르는 의문을 참을 수가 없었다.

"대체 저것들이 이티스엘 어디서 비룡을 구한 걸까요?"

"비룡 기사로 쓴맛을 본 마왕군이 비룡 사육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몇 년 전에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만델리 항이 습격받을 때 몰래 들여온 게 아닐까요!"

그럼 그렇게 몰래 들여온 비룡과 함께 대기를 타고 있다가 지나가는 비룡 조종사를 습격하려고 모습을 드러냈다는 이야기인가? 심지어 전문적으로 마력을 추적하기 위해 도구까지 쓰고 돌아다니는 세네란에게서 흔적을 감출 정도로 주도면밀한 녀석들이 겨우 비룡 조종사 하나 잡으려고?

당연히 그럴 리가 없겠지. 날 찾고 있었던 것들과 저것들이 별개의 집단인 게 아닌 이상 놈들의 목표는 내가 분명하다. 이 유쾌한 친구는 거기에 재수 없게 휘말린 거고.

뭔가 마법적인 강화를 시도한 것인지 점차 줄어드는 거리를 보아하니 놈들을 뿌리치고 도망칠 가능성은 한없이 0에 수렴했기에, 난 깊은 한숨을 내쉰 뒤 비룡 조종사에게 물었다.

"혹시 배면 비행 할 줄 아십니까?"

마왕군 특무대 소속으로 꽤 오랜 시간 동안 대장 일을 맡아온 마쉬는 빠르게 가까워지는 목표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놈이 도주를 선택한 시점에서 이미 승부는 난 것과 다름없었다. 상황을 난전으로 끌고 갔으면 모를까, 이 속도면 놈이 방향 조금 트는 것만으로도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지며 제대로 된 대응조차 할 수 없다.

놈이 뒤늦게 검이라도 휘둘러 보려고 주춤거리는 순간 자신이 타고 있는 비룡이 저 비룡의 신체 한 군데는 찢어발겨 놓을 것이다.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었기에 그녀는 뒤에 타고 있던 야웰에게 명령했다.

"팔다리 한두 개 정도는 날린다고 생각하고 마법을 준비해라!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한다!"

"빙결 마법으로 준비하겠습니다!"

실상 부관이라는 지위가 없는 부대에서 부관과 다름없는 일을 해온 야웰이었기에 그녀의 의도를 파악하는 건 빨랐다. 마쉬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비룡의 안장에 걸어두었던 메이스와 검을 뽑아 들었다.

눈앞의 목표에게 변화가 일어난 건 그때였다.

"고도를... 올려?"

계속 앞으로만 도망칠 것 같았던 놈의 비룡이 갑자기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급선회해서 방향을 트는 것도 아니고, 그저 하늘 끝까지 갈 기세로 고도를 올리는 놈의 반응에 옆에서 날고 있던 부하들이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채 외쳤다.

"대장! 어떻게 합니까!?"

"씨발, 어쩌긴 뭘 어째! 따라 간다!"

어차피 활을 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놈에게 마법적인 반격 수단이 있었다면 진즉에 견제가 들어왔을 터였다. 뿐만 아니라 결국 놈이 어디로 가든 그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최대한 거리를 좁혀서 비룡을 공격하거나 마법을 갈기는 것뿐이었으니, 갑자기 위로 날아올랐다고 해서 상황을 두고 볼 수도 없었다.

결단을 마치자마자 세 마리의 비룡이 위로 치솟았다.

"야웰! 마법은?!"

"이대로 쏘는 건 위험합니다! 최소한 같은 고도에 있거나 더 가까워야...!"

"젠장, 놈도 이걸 예상한 건가! 준비되면 물어보지 말고 쏴!"

당장의 공격을 피하는 게 목적이라면 나쁘지 않은 판단이지만 결국은 발버둥에 불과했다. 정 안 되면 몸으로 부딪쳐서라도 놈을 떨어트리겠다는 생각으로 수직상승하던 마쉬의 눈에 자신을 바라보며 고개를 돌리고 있는 목표가 들어왔다.

당황하지도 않고, 두려움에 떨지도 않으며 오롯이 적을 노려보는 그 모습은 포기하고 도망치는 겁쟁이의 것이 아니라 기회를 노리는 전사의 것이었다.

"하! 아까운 남자네!"

다른 형태로 만났으면 꽤 마음에 들었을 텐데 말이지.

그리 생각하며 줄어드는 거리를 파악하는 사이, 상대가 다음 행동을 취했다. 그리고 어떤 형태의 반격이 있더라도 모조리 대응하겠다고 마음먹은 그녀의 다짐과 달리 그 행동으로 인해 마쉬의 사고가 일순간 멈춰버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몸을 뒤집는 비룡에서 추락한다는 건 예측의 범주 안에 들어가 있지 않았으니까.

'실수로 떨어진 건가? 아니면 다른 수작질을 꾸미고 있나? 하지만 이 하늘 위에서 무슨 수작질이 가능하지?'

예기치 못한 상황을 생각이 따라가지 못하는 사이 그녀의 뒤쪽에서 손이 뻗어 나왔다. 대장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 충분히 맞출 수 있다는 판단이 서자마자 얼음 화살을 만들어 낸 야웰이 마법을 시전한 것이었다. 덕분에 마쉬도 당혹감을 떨쳐 내며 자기 다음 행동을 정할 수 있었다.

고도는 충분히 높다. 놈이 저 공격에 맞고 떨어져도 바닥에 떨어져 형체도 찾아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 전에 충분히 잡아낼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혹여 저놈이 떨어지며 비룡과 부딪쳐 같이 추락하는 일이 없도록 신경 써야 했다.

그렇게 마쉬가 자기 일이 '전투'가 아니라고 판단하기가 무섭게, 사내의 허리 춤에서 무언가가 쏘아졌다.

잔뜩 긴장하고 있었음에도 마쉬는 그게 무엇인지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녀가 볼 수 있었던 것은 비산하는 얼음 조각과 자기 귓가로 뻗어 나온 야웰의 팔이 기괴하게 뒤틀리다가 이내 상한 과일처럼 터져 버리는 광경뿐이었다.

그게 적이 던진 정체불명의 투사체로 인한 피해라는 것도, 그 한 방에 야웰의 팔 뿐만 아니라 어깨까지 뜯겨 나가 버렸다는 것도, 그 격통과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야웰이 비룡의 등에서 떨어져 나갔다는 것도 한참 뒤에 알아차렸다.

아니, 정확히는 몇 초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영겁과도 같게 느껴졌을 뿐이다.

본능적으로 뒤로 고개를 돌려 상황을 파악할 뻔한 마쉬는 인내심을 발휘해 시선을 고정하고는 양손에 든 무기를 교차하며 방어에 들어갔다.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는 저 미친놈이 겨우 투사체 하나 날리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등에 지고 있던 도끼를 꺼내 드는 게 뭘 의미하는지, 알고 싶지 않아도 알 수밖에 없었기에.

놈은 말 그대로 '공중전'을 치를 작정이었다.

"개 씨발, 미친 새끼 같으니!"

조금 전까지 마음가짐 좋은 전사로 보였던 적이 광기 어린 미친놈으로 보이기 시작하며 그녀의 내면에 있던 두려움을 자극했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느낀 마쉬는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공포를 이겨 내기 위해 있는 힘껏 적의 이름을 외치며 투지를 불태웠다.

"엘드미아아아!"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놈과의 충돌 후 밑도 끝도 없이 추락하게 될지도 모르는 현실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싸우다 죽는 것과 비정상적인 높이에서 추락해 죽는 건 전혀 달랐기에, 그녀는 그 현실이 두려웠다.

돌아온 대답은 우악스러운 도끼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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