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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396화 (396/412)

호전적인 미소와 황소뿔이 참으로 잘 어울리는, 예카트리나 0.5같은 느낌을 지닌 여자 마족의 얼굴에 깃들어 있던 여유는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도끼날을 목도함과 동시에 사라졌다.

하지만 패닉에 빠지진 않는다. 그것만으로도 잡졸은 아니었다. 바로 귓가에서 아군의 팔이 터져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즉각 방어 자세를 취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테니까. 꼴을 보아하니 남다른 정신머리를 지녔음이 분명했고, 높은 확률로 실력자였다.

그랬기에 난 이대로 추락하는 한이 있더라도 여자 마족의 신체 어디 한 곳은 반드시 쪼개버릴 작정으로 도끼를 휘둘렀다. 두꺼운 메이스와 검이 교차했지만 충분히 쪼갤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오판이었다.

-카앙!

"염병할 마장금!"

내 검일 땐 좋았지만 적의 무기가 되니 참으로 좆같기 그지없다는 소감을 느낄 틈도 없이 난 공중에서 몸이 멈추는 진귀한 경험을 해야했다.

그래, 벽에 부딪친 것처럼. 마족 여전사가 온몸을 실어 내다 꽂아버린 내 일격을 비룡에 탄 채 상체 힘만으로 버틴 것이다!

"크아아악!"

날고 있던 비룡조차 휘청거리며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는 상황 속에서 절규에 가까운 기합과 함께 여전사의 어깨 근육이 부풀어 오른다. 동시에 도끼를 쥐고 있는 손끝에서부터 스프링의 탄성과도 같은 묘한 반동이 느껴졌다. 다행히 대가리가 멈추지 않고 일해서 뭔 상황인지 금방 이해했다.

이 년, 이대로 날 밀쳐 버릴 생각이다.

"미친!"

이번만큼은 온몸을 타고 흐르는 소름보다 본능적인 판단이 더 빨랐다

허리 춤에 있는 바늘을 케이스 째 움직여 강제로 몸을 뒤틀어 자세를 잡아 비룡 위에 오른 뒤, 허벅지에 힘을 줘서 몸을 고정시키기가 무섭게 여전사의 두 팔이 X자를 그리며 폭발하듯 휘둘러졌다. 밀리지 않기 위해 나 역시 잔뜩 힘을 주고 있었음에도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이어진 엄청난 충격에 두 팔이 뒤로 밀리며 손아귀에서 도끼가 날아갈 뻔 했다.

그 일격에 상체가 훤히 열렸지만, 그건 상대방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둘 모두 후속타를 염두에 둘 정도의 여력이 없었기에 그 빈틈을 파고드는 일은 일어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그런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서, 어깨까지 아려오는 충격에 간담이 서늘해졌음에도 주둥이가 제멋대로 움직였다.

"이거 순 괴물 새끼 아니야?!"

비록 나오는 거라고는 감탄과 경악이 섞인 욕지기 뿐이었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갑옷과 장비를 제외해도 내 몸무게만 최소 90에, 도끼와 검 그리고 갑옷과 다른 장비들까지 합치면 못해도 100kg이다. 하늘에서 떨어지면서 그만한 무게를 실었을 뿐만 아니라 마력까지 사용해 휘두른 일격을 버틴 것도 모자라 힘만으로 밀칠 생각까지 하는 적을 두고 쌍욕이 안 나오면 그게 이상한 거다. 저게 사람이냐?

누가 들어도 진심이라고 알 수 있을 만큼 아무런 필터링 없이 내뱉은 외침에 여전사의 얼굴이 분노로 일으러졌다.

"네가 할 소리냐?! 심지어 작지도 않아!!"

그리고 동시에 아래로 빠졌던 여전사의 검이 휘둘러졌다.

순간 지금 이 상황에 그딴 게 중요하냐고 반박이 나올 뻔 했지만 여유가 없었다. 하단에서 상단으로 이어지는 베기 공격은 상대적으로 힘이 빠지는 법인데, 방금 전의 일격을 겪고 나니 저거에 맞으면 살이 베이는 게 아니라 뼈째로 잘릴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것만으로도 벅찬데 메이스도 같이 휘두를 준비를 하고 있다.

공격이 시작되고 나면 늦으니 일단 먼저 휘둘러야 한다. 그리 판단이 선 순간 이미 도끼를 휘두르고 있었다.

-쩌엉!

전력전심으로 정수리를 쪼개기 위해 휘두른 일격은 다행히 여전사의 공격보다 빨랐으나, 그녀가 공세에서 방어로 전환하는 것보다는 빠르지 못했다.

다행히 급하게 공방을 바꾸느라 그녀의 반응도, 방어도 완벽하지 못했다. 내가 느꼈을 저릿함을 비슷하게 느끼고 있을 여전사의 얼굴에 낭패감이 떠올랐다.

"인족이... 어째서!"

글쎄, 나도 아직 대답을 못 들어서 모르는 문제라 대답할 수가 없네. 알아도 대답하진 않았겠지만.

바짝 긴장한 신경이 잠깐의 틈을 이용해 주변 상황을 눈에 담고, 그로 인해 그녀의 뒤편으로 날아오는 두 마리의 비룡이 보였다.

갑자기 내가 올라타서 제대로 방향을 못 잡고 우왕좌왕하고 있는 비룡과 달리 아주 정직하고 똑바로 날아오는 비룡 위엔 두 명의 마족들이 짝을 이루어 타고 있었다. 대체 어느새 저리 가까워졌나 싶을 만큼 빠르게 거리를 좁힌 탓에 놈들의 긴박한 표정까지 다 눈에 들어올 지경이다.

무슨 공격 수단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인만큼 머릿수를 줄일 필요가 있다.

"일단 하나."

그랬기에 이제는 익숙해진 감각에 의지하여 곧게 날아오는 비룡 한 마리의 미간을 노리고 도끼를 집어 던졌다.

놈의 손에서 도끼가 사라졌다.

이어질 공격을 대비해 바짝 긴장하고 있었기에, 이번에는 마쉬도 그 도끼의 행방을 놓치지 않았다. 사실 놓쳤어도 자연스럽게 알아차렸을 것이다. 엄청난 풍압을 일으키며 왼쪽 어깨를 스쳐 지나가는 도끼는 갑자기 사라지기엔 너무 존재감이 컸으니까.

첫 교전과 달리 이번엔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목이 부러져라 다급하게 고개를 돌린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미간에 거대한 양손 도끼가 박혀 실 끊어진 꼭두각시 인형처럼 날갯짓을 멈춘 채 추락하기 직전인 비룡과 다가올 미래에 절망하는 부하들의 모습이었다.

"빌어먹을!"

구할 수 없다.

비행 마법을 쓸 수 있는 건 그나마 야웰 한 명뿐이었다. 그리고 야웰은 이미 가장 먼저 떨어져 시체조차 찾을 수 없는 상황이다.

부하들의 마지막을 보기 위해 고개를 돌리는 것만으로도 생사의 위기였기에 마쉬는 빠르게 자세를 고쳐 잡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 잠깐 사이 눈앞의 괴물은 벌써 허리춤의 검을 뽑아 들고 공격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 동작은 더럽게 신속했다. 적이 아니었다면 박수를 쳤을 거다.

-카앙!

정확히 자신의 목을 노리고 날아드는 검을 다급하게 막아 냈다. 공격의 묵직함은 도끼에 비할 바가 못 되었으나, 문제는 일회성 공격으로 끝나던 도끼와 달리 공격이 이어진다는 점에 있었다.

소름 끼치도록 빠르고, 정확하다. 저만한 도끼를 한낱 투척 무기처럼 던진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전장에서나 겪을 법한 움직임에 놀랄 틈도 없이 공세로 전환하지도 못한 채 방어하는 것만으로도 급급 할 정도로 놈은 숙련된 전사였다.

오히려 그래서 의문이 생겼다. 불의의 기습으로 야웰의 팔을 날려 버린 투사체와 도끼 그리고 검술 뭐 하나 빠질 것 없이 위협적이었지만, 결국은 물리력이다. 그것만으로는 저주 속에서 죽지 못해 살아가던 그 퇴물을 죽일 수 없다.

이 기묘한 인간은 아직도 뭔가 숨겨둔 수가 존재했다.

그러나 마쉬는 그게 뭔지 이 싸움에서 알아낼 자신이 없었다. 그랬기에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도망쳐!!"

"대, 대장?!"

오히려 적이 줄어들 수 있는 상황인데도 엘드미아의 눈빛이 더욱 날카로워지며 마쉬의 어깨너머에 있을 부하들에게 시선을 흘렸다. 이 상황이 매우 지랄같다고 여기면서도 마쉬는 자신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자식은 다 죽일 생각이고, 실제로 가능하기까지 하다.

그렇게 둘 수는 없었다. 마쉬는 마력을 폭주시켜 육체를 강화함과 동시에 억지로 엘드미아의 공격을 비집고 들어가 공격을 퍼부었다. 그 과정에서 어깨에 큼지막한 상처가 났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상처 없이 이길 수 있는 놈도 아니고, 이러지 않으면 죽는 건 매한가지였다.

"작전 실패! 포획 불가! 사살 불가!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쳐! 접선 지역에 도착하자마자 귀환해! 부대에 알려야 한다! 목표의 실력은 백병장 이상! 상한 측정 불가! 마력 기관 사용!"

"어딜!"

엘드미아의 허리춤에서 야웰의 팔을 박살 낸 투사체가 튀어나왔지만 이번엔 확실히 볼 수 있었다. 그 수가 열 개나 될 줄은 몰랐다는 게 참으로 지랄 맞았지만, 이번엔 넋 놓고 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마쉬는 오른팔을 뻗어 투사체의 경로를 막아섰다.

끔찍한 격통에 비명이 절로 터져나왔지만 마쉬는 모든 투사체를 제 팔로 막아낼 수 있었다.

"이런 미친..."

막힐 거라 예상하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이렇게까지 할 줄 몰랐던 것일까. 뭐가 됐든 엘드미아가 당황한 건 그녀에게 좋은 징조였다. 비록 오른팔이 아작이 났지만, 그것만으로도 마쉬는 웃을 수 있었다.

"너는. 내가 목숨을 걸고 막는다."

거칠게 불어오는 바람 소리를 뚫고 부하들이 타고 있던 비룡이 방향을 돌려 멀어져 가는 소리가 뚜렷하게 들려올 때마다 마쉬의 미소는 짙어졌다. 그럴수록 반대로 엘드미아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빌어먹을 마왕군 새끼들. 사명감만큼은 하나같이 영웅적이군."

불만이 가득해서 삐딱해진 입에서 나온 예상치 못한 발언에 마쉬는 웃음을 터트렸다. 영웅적이라, 정작 마왕군 내에서는 적들 똥구멍이나 갉아먹는 쥐새끼라며 놀림당하는 게 일상이었는데 여기서 저런 말을 듣게 될 줄이야.

어쨌든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하, 당연하지. 우리가 뭘 위해 싸우고 있다고 생각하냐?"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씨발. 뭘 위해 싸우는데?"

워낙 거친 말이 튀어나와 비꼬는 건가 싶었는데, 어째 표정은 정말 모르는 놈의 그것이었다. 어차피 목적은 부하들이 도망칠 수 있도록 시간을 끄는 것이었기에, 마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오른팔에서 튀어 나가려는 투사체들을 힘으로 막아내며 씹어 내뱉듯이 대답했다.

"자유."

"...하아, 어이가 없네."

비아냥이라기보단 허탈감에 가까운 반응이었다. 갈 곳을 잃고 제멋대로 나는 비룡 위에서 마쉬를 노려보던 엘드미아가 다시 입을 열었을 때, 거기서 튀어나온 건 의미를 알 수 없는 질문이었다.

"이티스엘 서부 오그웬 인근. 이름조차 없는 작은 마을을 박살 낸 거랑 마족들 자유가 뭔 연관인데?"

무슨 소리지?

저도 모르게 의문이 얼굴에 드러났다고 여긴 순간 엘드미아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꽝이군."

그리고 검을 역수로 쥐더니 일말의 주저도 없이 비룡의 등을 찔렀다.

아무런 저항 없이 크로스 가드가 비늘에 닿을 때까지 깊숙이 박힌 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눈으로 보고 머리로 이해를 했음에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비룡의 등에 박힌 검과 심드렁한 표정의 엘드미아를 수 차례 번갈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 미친 새...!"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온 문장이 완성되는 것보다 빠르게, 급소를 제대로 찔린 비룡이 한 차례 날개를 파르르 떨고는 그대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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