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히 귀환할 수 있을 거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음에도, 마쉬는 놀랄 만큼 무탈하게 도망칠 수 있었다.
허나 생환의 기쁨이 차오르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옷과 장비가 찢어지고 박살 난 와중에 멀쩡하기 그지없는 오른팔을 볼 때마다 차라리 죽는 게 나았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만 반복될 뿐이다.
처음엔 단순한 변덕으로 살아났다고 생각했다.
마왕군 내에서도 그런 미친놈들은 종종 있는 편이었다. 자기가 만족할 정도로 싸우면 살려주고 불완전 연소로 끝나게 되면 주변에 있는 것들까지 다 죽이려들기에 반강제로 전선에 틀어박히게 된 놈부터, 당최 알 수 없는 자신만의 기준으로 세상을 대하고 그 기준을 타인에게 물리적 폭력을 동원하여 강요하려는 년까지.
강함의 기준이 일정 궤를 벗어나면 정신 상태도 범인의 기준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일까, 유독 마왕군에는 그런 인간들이 많았다. 그러니 그런 정신병자의 변덕은 오히려 익숙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놈은 거래를 요구했다.
그에 응하여 증거라고 할 수 있는 동료들의 시체조차 내팽겨쳤을 뿐만 아니라, 막바지엔 포션을 받고 놈의 말을 전달해야 하는 입장이 된 채 귀환하다보니 자신이 정말 산 게 맞는 건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단언컨대 놈은 비룡의 등에 칼을 꽂는 게 아니라 자신의 목을 칠 수도 있었다. 살릴 이유보다 죽일 이유가 더 많았다.
그뿐인가? 말을 전하라며 포션을 던지는 그 순간이 되어서야 이용 가치를 찾았다는 듯한 반응을 보인 것을 마쉬는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직접 보고도 왜 그런 반응과 행동을 보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따지고 들어 봤자 죽을 뿐이기에 차라리 완치된 몸으로 빠르게 귀환하자는 마음으로 포션도 받았다.
그 대가로 전서구가 되었다.
끝까지 농락 당한 것 같아서 약속이고 뭐고 다 무시하고 싶었지만... 아무리 적과의 약속이라고 한들 그런 행동은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마쉬는 쓸데없는 분풀이보다 자신이 놓친 게 있진 않나 고민하는 쪽을 택했다.
그렇게 은신처에 이르기까지 걸린 3일이라는 시간을 다 써가며 고민했지만, 자신들을 다 죽일 생각으로 움직이던 놈이 대체 어디서 심경의 변화가 일어나 결정을 번복한 것인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동정심? 엘드미아는 마지막 그 순간까지 자신을 도구로 보고 있었다.
뭔가 속은 기분이 든다. 왜 그런 기분이 드는지는 결국 알 수 없었다.
몇 번을 반복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고민과 함께 걸어 온 끝에 목적지에 도달한 마쉬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도망치라니까."
이티스엘에 침투한 특수 부대의 접선 지역은 인간들의 도시에서 한참 떨어진 절벽에 위치한 바다 동굴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암초들 때문에 내부에 진입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원래 있던 암초들을 다 걷어내고 마법을 통해 임의로 만들어 낸 장애물에 불과하다. 장기 거주가 가능하다고는 빈말로도 말할 수 없는 장소였으나 어차피 이번 임무를 위한 임시 거처에 불과했기에 은닉을 우선시한 결과였다.
"실제로 성공적이었지..."
부대가 철수했으니 배를 빼내기 위해 암초들 역시 사라졌어야 했다. 하지만 절벽을 내려다보는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여전히 빽빽하게 들어선 암초였다.
부하들의 의리를 기쁘게만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에 다시 한숨이 나왔지만 일단은 움직여야 했다. 인족의 눈을 피해 귀환하는 데에만 3일이 걸렸다. 불도 지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잠조차 제대로 못 잔 그녀의 육체는 여러모로 한계였다.
어쩌면 그랬기에 더 머리가 안 돌아가는 것일지도.
그리 생각하며 마쉬는 차라리 부하들이 은폐를 위해 암초를 다시 재구성시킨 뒤 도망갔길 바라며 절벽을 타고 내려갔다.
"대장...?"
그리고 희망 가득 찬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부하들을 보며 결국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모질지 못한 녀석들.
"미안하다. 살아 돌아왔다."
"제기랄, 내가 말했지! 돌아올 거라고!"
"알았으니 좀 닥쳐. 소리가 울리잖아."
꼴을 보아하니 짐을 다 실어놓고도 며칠 더 기다려보자는 식으로 움직이지 않은 게 분명했다.
생활의 흔적이 넘치던 동굴은 깔끔하게 비워져 있었고, 배에 실려 있던 세 개의 비룡 우리 중 두 개는 바다에 버리기라도 한 것인지 자취를 감췄다. 하나 남은 우리 안에서 자고 있던 비룡은 소란에 놀라 잠깐 고개를 들었다가 신경질적으로 꼬리를 흔들며 으르렁 거릴 뿐이다.
하지만 놈이 그러거나 말거나 살아서 돌아온 마족 부하 둘은 물론이고, 후방 요원으로서 함께한 인족 부하 다섯 역시 화색을 띠며 이제 막 배에 오른 그녀에게로 다가왔다.
"어떻게 된 겁니까 대장? 놈을 떨쳐 내신 겁니까?"
"조금... 복잡하다. 일단 보고부터 하고 이야기하지. 그 후 바로 귀환할 거니까 출항 준비부터 해라."
귀환이라는 말에 분위기도 부하들의 얼굴도 한층 밝아졌지만 마쉬는 그걸 보고 웃을 만큼 여유롭지 못했다. 그랬기에 그녀는 부하들이 자신의 심각함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서둘러 선장실에 들어가 통신용 수정구를 꺼내 들었다.
사실 선장실이라고 해봤자 제 몸 하나 겨우 뉘일 해먹과 보고서 작성을 위한 탁자가 겨우 들어가는 작은 공간에 불과했지만, 방에 들어서자마자 마쉬는 집에 온 것처럼 긴장이 풀리는 걸 느꼈다.
며칠 전이었으면 상상도 못 했을 감정의 변화 속에서 씁쓸함을 느낀 그녀는 이내 표정을 다잡고 수정구에 마력을 주입했다.
연결은 바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정갈하게 머리를 빗어넘긴 익숙한 얼굴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뿔의 형태가 조금 특이해 귀가 아니라 뿔에 안경을 걸친 그는 마쉬의 얼굴과 수정구 너머의 어딘가를 훑어본 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제 23 특수소대 소대장 마쉬. 신원 확인했습니다. 정기 보고입니까?
감정의 변화가 없는 억양. 언제나 들어온 말.
"긴급 보고입니다."
그리고 평소와 다른 대답. 그 뒤로 평소와는 조금 다른 놀란 반응과 확인 절차가 이어졌다.
-...귀하의 긴급 보고는 대장급을 거치지 않고 즉시 지휘부로 연결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확실합니까?
오는 내내 고심하며 결정내린 문제였는데 막상 상황이 닥치니 또 고민할 뻔 했다. 수정구 너머의 얼굴이 덤덤함에서 진중함으로 바뀌는 걸 처음 봐서 그럴지도 몰랐다.
"...확실합니다. 작전 명 작은 엘드미아. 긴급으로."
하지만 긴장으로 대답이 조금 늦게 나왔을 뿐, 변하는 건 없었다. 수정구를 연결해주던 통신 마법사도 또 되묻지 않았다. 그가 손짓하자 화면이 일렁이며 사라졌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지나 마쉬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얼굴을 대면하게 되었다.
책상 근무가 주된 업무라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깔끔하기 그지없는 제복에 다양한 훈장이 수놓아진 인물이 누구인지 모르는 마왕군은 없었다. 입단식 이후로 반드시 한 번은 보게 되는 존재였으니.
"사, 사령관님!"
지휘부라고는 했으나 마왕군 특수작전사령부의 사령관을 직접 보게 될 줄은 몰랐던 마쉬는 저도 모르게 자세를 고쳐 잡으며 경례하려고 했다. 하지만 수정구에 비춰진 남성은 가볍게 손을 들어 올리는 것으로 그녀의 행동을 막으며 짧게 말했다.
-인사는 생략하고 바로 보고하도록.
머리가 핑핑 도는 기분속에서 마쉬는 침착하게 경과 보고를 시작했다.
결국 임무 실패에 대한 내용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기분이었지만 체계가 그러니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자신의 처참한 실패를 보고 받는 사령관의 표정에 변화가 없다는 게 마쉬의 유일한 위안이었다.
"...하여, 엘드미아 에가의 생포 및 사살은 저희 부대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했습니다. 목표와 직접 교전으로 2기의 비룡과 전투원 2명을 잃었으나 경미한 피해조차 입히지 못했습니다. 이후 부하들의 생환을 위해 직접 엘드미아를 저지, 실패했으나 모종의 제안을 받아 귀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부분만큼은 아무리 침착하게 말하려고 해도 식은땀이 흘렀다. 이 상황에서 적에게 제안을 받고 귀환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녀가 예상했던 것과 달리 사령관은 훨씬 침착한 태도로도 일관하며 되물을 뿐이었다.
-모종의 제안?
"...목숨을 살려주는 대가로, 전서구 취급을 받았습니다."
정확히 따지면 목숨을 살려 준 것과 전서구 제안을 받은 건 별개의 일이었지만... 상대가 상대였기에 마쉬는 두려움에 굴복하고 거짓말을 입에 담았다.
-흠... 내용은?
"...그게..."
마쉬가 주춤거리자 처음으로 사령관의 얼굴에 변화가 일어났다. 감정적인 변화라기보단 눈을 살짝 게슴츠레하게 뜨며 마쉬를 확인하는 것에 가까웠지만, 그녀의 입장에서는 피가 마르는 수준의 변화였다.
다행히 이어진 말은 질타가 아니었다.
-적군에게 갑작스러운 편지를 받는 일은 생각보다 비일비재하다. 그리고 그 안에 담겨 있는 내용은 보통 품위가 없지. 귀관이 주춤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 때문일 터. 괘념치 말고 그대로 전달하게.
마치 자신의 심중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것 같은 한 마디에, 마쉬는 눈을 질끈 감고는 명령에 따랐다. 속으로는 개뿔도 알 수 없는 내용을 전하라고 한 엘드미아를 욕하면서.
"씨발놈인지 년인지는 모르겠지만 헛지랄 말고 기다려라. 어차피 서쪽에서 있었던 만행의 대가를 받으러 내가 곧 찾아갈 테니까. 억울해하지는 마라. 그딴 짓거리를 저지르고 8년 간 무탈했으면 오래 산 거 아니겠냐?... 이상입니다."
그리고 절대 사심이 들어간 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방금보다 더 각을 잡았다.
-......
묘한 정적 속에서 사령관의 반응을 확인하기 위해 살짝 위로 올렸던 시선을 내린 마쉬가 본 것은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막고 고민에 빠진 사령관의 모습이었다. 그녀가 사령관을 자주 본 건 아니나, 철가면이라는 별명이 있을만큼 철저하게 감정을 감추기로 유명한 인물이었기에 적잖이 당황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를 당혹케 만든 것은 사령관의 시선이었다. 여전히 자신을 보고 있었지만 어쩐지 방금 전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면서 자신을 죽일지 살릴지 고민하던 엘드미아와 같은 시선이었다.
-그 외엔?
"그, 그걸로 마지막이었습니다!"
-알았다. 예정대로 귀환하도록.
픽. 하고 꺼진 수정구의 화면과 함께 긴장의 끈을 놓아버린 마쉬는 저도 모르게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임무 실패를 직접 보고 했는데도... 처벌 예고조차 없다고?"
그녀는 특수 부대다. 그리고 마왕군 특수부대는 임무의 지휘권을 지니고 있는 이가 경과에 따른 상벌을 그 즉시 통보한다. 임무 수행 중이니 통보받는다고 해서 바로 이행하는 건 아니지만,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명확하게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노력하라는 의미에서.
그게 없다는 건 보통 둘 중 하나였다.
사령관이 매우 관대하여 이번 임무 실패를 불문에 붙이거나.
돌아가자마자 입막음을 위해 죽거나.
절차를 깜빡한다는 경우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기에, 마쉬는 바닥에 앉은 채 머리를 쥐어 짜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