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408화 (408/412)

란제는 장담할 수 있었다.

전장에서 별의별 미친 경우는 질리도록 봐 왔지만 이건 그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미친 경우라고.

딱 봐도 범상치 않은 위력을 지닌 투창이 머리를 꿰뚫었다고 여겼는데 갑자기 투구를 쓰고 있는 것도, 성벽에 도달하자마자 저 혼자 계단이라도 있는 것처럼 대각선으로 성벽을 뛰어오르는 것도 충분히 머리가 못 따라갔지만 최고조는 그 다음이었다.

"우, 우측 성벽의 주문 간섭이 약화됐습니다!"

"뚫어!!"

마법사들의 고함 소리를 듣고 판단하는 것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란제는 강한 확신 속에서 외쳤다.

"똥강아지 새끼들아!! 좆 박을 시간이다!!"

이건 무조건 뚫을 수 있다. 그간 전장에서 쌓아온 직감이 부르짖었다. 대대장이 앞서 나가며 명령하자 다른 병사들처럼 자신들이 보고 있는 광경을 믿지 못해 얼이 빠져 있던 공성추 부대원들도 반사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성벽 한 켠에 폭격이 쏟아졌지만 거기에 엘드미아가 휘말려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도무지 믿기 힘든 일도 세 번 이어지면 뇌가 따라가길 포기하는 법이다. 그들은 엘드미아가 성벽에 오르자마자 적들의 주문 간섭이 끊긴 걸 우연이라고 여기는 대신 그의 계획이라 여겼고, 계획을 짠 인간이 멍청하게 휘말려 죽을 리가 없다는 믿음을 가졌다.

그리고 그건 엘드미아에게 싸대기를 맞은 레이널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그는 공성추 부대가 전장의 반을 가로지르는 그 순간까지 아무런 견제도 들어오지 않는 걸 보고는 주저 없이 말에 올라탔다.

"이건 무조건 뚫린다! 2연대 돌격 준비! 돌격 준비이이!!"

그런 레이널의 반응까지는 알지 못했지만, 란제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도 전장이 요동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었다.

분위기나 그런 걸 떠나서 물리적으로 대지가 울리고 있었으니 모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뒤를 바짝 쫓아오는 공성추를 한 번 흘겨본 뒤 거대한 둔기를 지지대 삼아 펄쩍 뛰어 그 위에 올라탔다.

"제기랄!"

"안 그래도 무겁고 힘든데 꼭 이러셔야합니까!?"

들고 뛰는 이를 조금도 배려하지 않은 착지에 앓는 소리가 나왔지만 란제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괘씸하게 여겼다. 단순히 분위기에 취해 공성추에 올라탄 게 아니었으니.

"불만 있는 놈은 말해라! 다음부터 공성추가 터지자마자 돌격하는 영광스러운 선봉의 자리를 맡겠다는 굳은 의지라고 받아들..."

"대대장님이 올라타시니 오히려 힘이 납니다!"

"달려 씨발!"

하여간 좆 같은 똥강아지 새끼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헛웃음을 터트린 란제는 바짝 가까워진 성문과 그럼에도 열리지 않는 쪽문을 바라보며 호쾌하게 웃었다.

"일격에 2차 성문까지 못날리면 알아서 해라!"

"그건 공성추에 달린 마도구에게 말씀하십쇼!"

그 외침을 신호탄 삼아 스무 명의 기사들은 어깨에 짊어지고 있던 공성추를 동시에 들어 올렸다. 엘드미아가 봤다면 칼 군무가 따로 없다며 박수를 쳤을 만큼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움직인 그들은 거리 가늠이 끝남과 동시에 온 힘을 다해 공성추를 휘둘렀다.

그리고 크게 반원을 그리는 시계 추처럼 휘둘러진 공성추가 바닥을 긁고, 2차 목재 성문에 부딪쳐 파편을 튀기고, 이내 철문에 막혀 묵직한 반동이 느껴진 순간 온 힘을 다해 공성추를 밀어붙이며 몸을 고정했다.

공성추 끝에 달린 마도구가 일으키는 폭발을 견디지 못하고 뒤로 날아가지 않기 위해.

-콰아아앙!

굉음과 불꽃과 비산하는 성문 파편 속에서, 란제는 철장으로 된 성문이 크게 우그러지며 꺾이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일말의 주저도 없이 공성추 끝을 향해 달려 나갔다.

공성추에서 피어오르는 자욱한 연기와 후끈한 열기를 신경 쓸 틈은 없었다. 그녀는 이번에도 공성추 끄트머리에서 둔기를 지지대 삼아 크게 도약했고, 즉시 자신이 노려야 하는 적이 누구인지 파악했다. 다른 때였으면 어떤 놈이 강한 놈인지 따져야 해서 조금 시간이 걸렸겠지만 이번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성벽의 파편으로 보이는 거대한 바위 하나를 낀 채 엘드미아와 대치하고 있던 놈이 딱 봐도 제일 강했기에.

"개 같은 은수리 여단 만세!!"

경악과 허무함이 가득한 시선으로 올려다보는 반쪽짜리 뿔을 지닌 마족의 머리 위로 그녀의 둔기가 휘둘러졌다.

씨발 세상에. 역시 기습은 존나 옳다.

무슨 대포라도 쏜 것처럼 공성추가 터지며 성문이 작살나고, 매캐한 연기가 솟아나기가 무섭게 갑자기 뛰쳐나온 란제가 휘두른 둔기는 정확하게 반쪽이의 정수리를 내려찍었다.

수준급의 오러를 지닌 기사가 기교따위 다 내던지고 전력으로 휘두른 둔기는 그 거대한 크기가 무색하게 더럽게 빨랐다. 옆에서 봐도 이 정도인데 당사자는 말할 것도 없지.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수준의 결과물이 머리가 있던 곳을 대체하게 되어 버린 반쪽이의 몸뚱이가 허망하게 쓰러지는 것과 동시에 마왕군들 사이에 공포와 혼란이 퍼졌다. 거기에 공성추를 타고 넘어온 스무 명의 기사들이 일대를 정리하기 시작하니, 칼질 몇 번 하는 것만으로 굉장히 허무하게 도망치는 놈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외성에 있는 적들은 거점 방어 병력으로 확인! 위험도 중하! 일반 보병 투입 가능!"

"일반 보병 투입 가능! 신호 보내겠습니다!"

그 속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기사들은 과연 전선의 베테랑들이었다. 대체 어떤 싸움을 해왔던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들의 행동은 군인보다는 현대의 특수 부대원에 가깝지 않나 싶을 정도였다.

"위험도를 구분짓습니까?"

빠르게 정리되는 주변과 터져 나가는 성벽 위의 적들을 배경 삼아 굉장히 위풍당당하게 걸어오는 란제에게 물어보니, 덤덤히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해주었다.

"마왕군은 그런 면에서 철저하거든요. 주력으로 움직이는 공격 병력과 방어 병력의 격차가 꽤 크기 때문에 미리 알리지 않으면 병사들이 개죽음 당합니다. 당장 지금도... 제기랄, 비룡 발견! 비룡 발견! 적기 스물! 엄폐해라!"

무심하게 주변을 둘러보면서도 긴장을 늦추지 않던 란제가 내 뒤쪽 하늘을 바라보며 외쳤다. 순식간에 산개하면서 일부는 건물들 사이로, 일부는 대담하게도 죽은 적의 시체를 들어 올림으로써 경계하는 모습에 감탄하며 고개를 돌리니 저 멀리 내성 근처에서부터 날아오는 스물 가량의 비룡들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높이 날아오르고 있던 놈들이 점차 고도를 낮추는 꼴이 아무래도 본대를 치려다가 계획을 수정하고 우리를 노리기로 한 모양이었다.

"에가 경! 저희는 놈들의 비룡을 견제할 수단이 마땅치 않습니다! 일단 물러나서 엄폐를..."

"아, 괜찮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으니까요. 어느 정도 접근하면 무리 없이 공격할 수 있습니다."

"예?"

저 멀리서 견제한답시고 마법만 갈기면 모르겠는데, 그게 아닌 이상 바늘로 충분히 상대 가능하지.

보는 눈을 신경 써서 휘파람을 부르며 대바늘 하나를 뽑으니 옆에서 보고 있던 란제가 놀라움을 감추지 않으며 물었다.

"이런 미친. 그건 또 무슨... 설마 아까 성벽을 뛰올라갈 수 있었던 게 그거 때문입니까?"

"눈치가 엄청 빠르시군요."

"아니, 그냥 해 본 말인데 진짜라구요? 그 가느다란 걸 밟으면서 그렇게 뛰었다고?"

"뭐, 두 개 정도 합쳐서 요령껏 하면 됩니다."

어제부터 느낀 거지만 여러모로 긴장감과는 담을 쌓은 여자였다. 잠깐 그렇게 떠들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반응을 보인 그녀는 다른 기사들처럼 엄폐할 거라 여겼던 내 예상과 달리 우리 쪽으로 급강하 비스무리한 걸 시도하는 비룡을 똑바로 바라보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둔기를 고쳐쥐었다.

"못 믿는 건 아닌데 혹시 모르잖습니까."

그 모습을 멀뚱히 봤더니 시큰둥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이고는 딱 한 마디 더 보탤 뿐이었다. 바늘로 공격하는 게 실패하면 저 몽둥이로 비룡의 대가리를 깨겠다는 건가? 예카트리나하고는 또 다른 듬직함이군.

하지만 내 예상이 맞으면 빗나갈 일은 없을 것이다. 애초에 처음 내려오는 비룡은 바늘이 아니라 도끼로 잡을 거니까.

-키에에엑!

빈말로도 곱다고 하기 힘든 소리를 지르며 머리부터 떨어지던 비룡이 크게 날개를 펼치며 고개를 치켜세운다. 그것만으로도 비룡과 비룡을 타고 있는 마족의 위험도가 대폭 하락했다.

비룡 기사가 무서운 이유는 비룡이 공격하기 때문이 아니다. 타고 있는 비룡 기사가 기동성을 살리며 마법을 쏟아붓고 그로 인해 생겨난 빈틈을 물리적으로 파고들기 때문에 위협적인 거지. 오히려 저렇게 비룡이 방향을 틀어 발톱부터 들이밀면 피탄 면적만 넓어져서 그대로 황천길 가기 십상이다.

지난번에도 느꼈지만, 역시 놈들의 비룡은 이티스엘의 그것에 비해 훈련이 덜됐다.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비룡에게 도끼를 선물했다.

-키에...엩?!

마족이라면 모를까 한낱 비룡이 전력으로 던진 양손 도끼를 피할 수 있을 리 없다.

치켜든 턱주가리 아래로 날아든 도끼날이 그대로 놈의 두개골을 쪼개 틀어박히자 비룡의 고개가 그대로 뒤로 넘어가며 고꾸라진다.비룡의 배가 하늘로 향하며 그대로 추락하기 시작하자 등에 타고 있던 마족이 당혹스러움과 두려움이 가득 찬 비명을 질렀지만, 어차피 알아서 깔려 죽을 놈에겐 관심이 없었기에 그대로 뛰어올라 떨어지는 비룡을 밟았다.

그리고 아카데미 지하에서 짭드래곤으로 변신했던 대악마의 등을 타고 달리던 감각을 살려 도움닫기를 시도했다.

"무슨?!"

애초에 내 목표는 방금 죽어 버린 비룡 뒤에서 제트 스트림 어택을 시도하기 위해 따라오는 후발주자였다.

아직 발톱을 세우지 못해 머리부터 떨어지고 있는 비룡 위에서 당황하는 마족에게 대바늘을 날린 나는, 놈이 저항도 못 하고 죽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그대로 비룡의 얼굴에 죽빵을 꽂았다.

얼마나 줘패야 내 말을 듣는지 이 기회에 한 번 확인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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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서 선천적으로 타고난 마력과 이를 통해 단련한 몸뚱이를 제외할 경우 이 세계에서 남들보다 잘났다고 여기거나 남들 만큼 잘났다고 말할 수 있는 게 뭐냐는 질문이 들어왔을 때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게 딱 두 가지 있다.

검술 그리고 비룡에서 뛰어내리기. 검술은 어지간해서는 상위권이고, 비룡에서 뛰어내리는 건 대륙 전체를 둘러봐도 독보적인 일인자일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비룡에서 뛰어내리기는 비룡에 오르지 않으면 시도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존재하지. 마침 이런 기회가 왔으니 오늘 그 문제를 해결해 보자고.

-키엩! 켙! 케에에엑!

그래도 꼴에 '용龍'이 들어가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비룡은 의외로 튼튼한 편이다. 가죽은 두껍고 근육은 질기며 다른 뼈는 어떨지 몰라도 두개골은 퍽 단단하다. 델트 잡겠다고 다이빙 했을 때 확실하게 체감할 수 있었지. 덕분에 난 비룡의 두개골이 부서지지 않을 정도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대충 감을 잡은 상태다.

물론 이유 없는 폭력에 노출된 비룡도 생존 본능은 있었기에 첫 죽빵을 맞고 바닥에 추락하자마자 도망치려고 발버둥 쳤지만, 목이 길어서 슬픈 몬스터의 발악은 적당히 목에 올라타 마운트를 거는 것만으로도 쉽게 무력화되었다.

"아니 진짜 또라이인가?! 이런 상황에 대체 뭘 하는 겁니까!"

내 딴에는 매우 합리적인 판단으로 시작한 이동 수단 탈취의 현장을 목격하던 란제가 버럭 소리 질렀다. 고개를 돌려보니 이제 막 하강을 시도하며 발톱을 세우던 세 번째 비룡의 발을 일격에 으깨놓는 란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뭔가 생명체의 몸속에서 나면 안 될 것 같은 소리와 함께 비명을 내지르며 추락하는 비룡의 흉부를 깔끔한 풀스윙으로 후려친 그녀는 그대로 절명한 비룡과 그 아래 깔린 마족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나를 바라보며 일갈했다.

"아 진짜! 그냥 죽여요! 대체 그게 뭔 짓이야!"

"잠깐 기다려보세요. 비룡 조종사가 알려 준 건데, 비룡은 폭력으로도 충분히 길들일 수 있다고 합니다."

"세상에 대체 그딴 무식한 방법이 말이나...응? 아닌가? 그러고 보니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 거 같기도 하고..."

당연히 들어 봤겠지. 왕실에서 인정한 비룡 조종사가 해준 이야기인데.

다행히 순식간에 비룡 두 마리가 황천길에 오르고 한 마리가 꼼짝도 못 하는 상황에 이르자 기세 좋게 달려들던 남은 비룡들이 급정지를 하며 공중을 맴돌았기에 나는 마음 놓고 비룡에게 훈육(물리)를 시도할 수 있었고, 정확히 여섯 대를 더 때리고 나니 악을 쓰며 발버둥 치고 비명을 지르던 비룡의 반응이 바뀌었다.

-키르르르! 키르르!

"미친 세상에..."

뒤에서 어이가 없다는 듯한 란제의 반응이 이어졌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굳이 따지면 개들의 낑낑거림과 비슷한 느낌의 소리를 내면서 발버둥을 멈추고 바닥에 납작 엎드린 비룡의 모습이 뭘 의미하는지, 너무나도 뻔했으니까.

"앉아."

주먹을 멈추고 명령하자 목이 붙잡힌 터라 바둥거리면서도 어떻게든 앉는 자세를 취하는 비룡. 역시 동물 기를 때 기본 명령어부터 입력하는 건 차원과 종족을 가리지 않는구나.

아주 만족스러운 결과였기에, 나는 마력을 통해 도끼를 회수하며 놈의 목에서 몸통으로 이동해 올라탔다.

이제 속성 교육의 성과를 테스트해 볼 시간...

"...뭐야 저건?"

모든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마력시까지 발동한 내 눈에 죽은 마왕군의 시체에서 이상한 마력의 흐름이 보였다.

일단 비룡에서 내려 놈의 품을 뒤져보니 어째 묘하게 익숙한 물건이 튀어나왔다.

"이런 씨발."

"왜 그러십니까?"

내가 손을 놓고 있음에도 얌전한 비룡에 어처구니없어 하면서 다가오는 란제였지만 기가 차서 대답조차 하기 힘들다.

"어중간하게 몸통을 노렸으면 좆 될 뻔했네."

놈들의 품에서 나온 건 내가 폐던전 게이트에서 터트린 마력 폭탄과 비슷한 기운을 뿜어내는 물건이었다.

기괴한 광경이었다.

전장이 되어 버린 외성의 대로에서 느닷없이 주먹으로 비룡을 패는 인간을 본다면 누구나 그리 여길 것이다. 단순하게 보면 참으로 우스꽝스럽고 전장에서 분위기에 휩쓸려 폭주한 몰골이라 여길 수도 있겠지만...

그 대상이 수비 병력을 뚫고 기어들어와 방어에 거대한 구멍을 뚫은 '그' 엘드미아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질 수밖에 없다.

순식간에 비룡 세 마리가 무력되었기에 섣부르게 움직이는 것보다 다시 목표를 바꾸어 밖에서 다가오고 있는 인족의 군대를 상대하기로 결정한 비룡 부대의 대장은 부하들에게 빠르게 명령했다.

"빌어먹을! 일단은 인족의 군대부터 견제한다! 신호탄을 쏴서 내성에 알려라!"

"일단 저 자를 막는 것이..."

"화력 낭비다! 놈은 지상군에게 맡긴다!"

대체 저게 뭐 하는 짓인지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지만 정작 그 어이없는 놈에게 비룡 둘이 당했으니 비웃을 수도 없다. 그렇기에 마법을 쏘고 보자는 부하의 의견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었으나, 지금 그들에겐 그런 사치를 부릴 여력이 없었다.

마왕군의 비룡 부대는 일종의 날아다니는 전차부대에 가깝다.

물론 완전히 같은 건 아닌지라 어느 정도 숙련된 이는 홀로 움직이지만 보통은 기수와 공격수가 합을 맞춰 움직인다. 이들 역시 '나름' 숙련된 베테랑 기수 취급을 받고 있었으나 비룡 하나에 둘 씩 타고 있는 것부터 비룡을 모는 실력과 마법의 수준 모두 미흡하다는 증거였다.

홀로 비룡을 탈 수 있는 이들이 오히려 그들보다 모든 면에서 기량이 월등하다. 애초에 그런 적을 보고 만든 부대인만큼 당연한 이야기다.

그런데 그 월등한 병력이, 대장을 제외하면 가장 뛰어난 기량을 지녔던 선임하사같은 위치에 있던 셋이 육탄 돌격으로 혼란을 주고 빠져나오려다가 제대로 손도 못 써보고 죄다 죽어 버렸다.

덕분에 이젠 마법 한 발도 함부로 쓸 수 없었다. 그렇다고 군대의 주문 간섭에 대응하기 위한 마도구를 쓸 수도 없는 노릇이니 지금은 나아가는 것이 정답이었다.

"아, 알겠습니다! 외성 돌파! 모든 비룡 출격! 신호 보내겠습니다!"

뼈아픈 실책이었지만 지금은 뚫린 성문과 반파된 성벽 그리고 밀려오는 적들을 조금이라도 더 늦추는 게 우선이다. 비룡 부대의 대장은 제발 자신의 판단이 틀리지 않길 바라며 비룡을 몰았고, 그의 부하들도 뒤를 따라 전투 태세에 들어갔다.

정확히는, 전투 태세에 들어가려고 '했다'.

-키르르르륵!!

성벽을 넘어서기가 무섭게 느닷없이 아래에서부터 가까워지는 비룡의 울음소리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대장님! 노, 놈이 비룡에 탔습니다!"

"뭐?!"

지상에서도 끔찍한 결과를 초래한 놈이 비룡까지 조종한다고?

순간 저도 모르게 아찔해져서 고개를 돌려보니 엘드미아는 정말로 방금 전까지 자기가 패고 있던 비룡에 탄 채 급상승 중이었다. 물론 과하게 말을 안 듣는 비룡에게 채찍을 휘둘러 교정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주먹으로 잠깐 팬 것만으로 저게 된다니!

불합리함에 속이 뒤틀리는 기분이었지만 그와 별개로 결단은 냉정하면서 빨랐다.

"어차피 주먹구구식으로 움직이는 것에 불과하다! 지금은 우선 군대다! 적들의 상공에 도착하자마자 마력탄을 투척하고 마법을 쏟아라!"

지극히 합리적이고 정상적인 판단이었다. 설령 비룡을 제대로 몰아서 자신들을 따라잡는다고 해도 뭔 수로 공격을 하겠는가. 기껏 해봤자 비룡끼리 충돌을 일으키는 게 고작인 상황에서 놈을 상대하겠다고 발이 묶일 수는 없었다. 그랬다간 되려 지상의 마법사들이 펼치는 마법에 대응하지 못해 이쪽이 당하고 만다.

누가 들어도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상식적인 사고였으나...

문제는 상대가 상식과 거리가 먼 인간이라는 점에 있었다.

"아아악!"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는 보지 못했다. 이미 고개를 돌렸을 땐 제일 후미에 있던 기수가 죽고, 공격수의 등에 거대한 양손 도끼가 박힌 뒤였다.

기수를 무슨 수로 죽였는지도 몰랐다. 확실한 건 엘드미아는 조금도 속도를 늦추지 않은 채 날아오고 있다는 것과 땅으로 추락하는 공격수의 시체에서 떨어져 나온 양손 도끼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제 주인의 손아귀로 되돌아갔다는 것 뿐.

"젠장! 공격! 공격해라! 놈은 원거리 공격이 가능하다! 후미는 엘드미아를 막아!"

대체 몇 번이나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만드는 것인가.

직접 날아가고 싶은 것을 애써 참으며 내린 명령에 네 마리의 비룡이 선회하여 엘드미아를 노리기 위해 움직이려 했고, 그대로 날아갔으면 누군가와 충돌하고도 남았을 속도로 날아든 엘드미아는 그들이 좌우로 갈라지기 직전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집어던졌다.

"마력탄!?"

인족의 비룡 기사처럼 능숙하게 주문 간섭을 파훼하거나 영역 밖에서부터 마법을 쏟아부을 수 없기에 만들어진 소모성 마도구. 보안을 위해 특정 방식으로 조작하지 않으면 쓸 수 없는 물건이었음에도 엘드미아는 마치 그게 뭔지 안다는 듯 행동에 아무런 주저도 없었다.

-피이이익!

그 행동 이후에 비룡 부대의 대장이 볼 수 있었던 것은 허공에 던져진 마력탄에 갑작스럽게 구멍이 나는 것과, 엘드미아의 주변에 펼쳐진 마법 장벽뿐이었다.

-콰아아앙!!

이어지는 섬광과 폭발이 그의 시야를 잠식했기에, 그는 마력탄이 파괴되며 발생한 폭발과 화염에 네 마리의 비룡과 기수들이 꼼짝없이 휘말려 죽음을 맞이하는 광경까지는 볼 수 없었다. 시각적 충격뿐만 아니라 갑작스러운 상황이 안겨 준 충격에 정신을 차리지 못 하는 그였으나, 그것도 길게 이어지진 못했다.

마력탄이 일으킨 폭발의 열기와 연기가 채 사그라들기도 전에 엘드미아가 그 속을 뚫고 튀어나오며 도끼를 집어던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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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룡은 영리하다.

비단 가축화 된 종 뿐만 영리한 건 아니다. 야생의 비룡이라고 해서 그 전제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 영악해지고 나름의 꾀를 쓰는데 능숙해질 뿐.

하지만 그런 비룡의 지능과 별개로 유독 잘 알려지지 않은 특성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마력에 민감하다는 점이다. 인족은 마력을 쓸 수 없으니 모르고 마족은 비룡을 사용한다는 발상을 최근에 채용했기에 아직 체계적으로 이해하지 못한 그 특성은 비룡의 태생과 연관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조금 번거로운 몬스터로 취급받고 너무나도 대수롭지 않은 존재로 여겨질지언정 아주 옅게나마 마력과 마법의 시조始祖라 할 수 있는 용의 피를 잇는 짐승들이다. 오히려 마력을 느끼지 못하는 게 이상하다고 할 수 있다.

비룡이 마법을 쓰거나 마력을 응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본능의 영역에서부터 마력을 지닌 존재를 두려워할 뿐.

그랬기 때문에, 엘드미아에게 마력을 두른 주먹으로 얻어맞은 비룡은 그를 두려워했다.

두려움이 복종으로 변하고, 자기가 알아들을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명령을 따르며 엘드미아가 손을 놓더라도 도망치지 않게 되기까지 겨우 열 번도 채 안 되는 주먹질이 있었을 뿐이었지만 비룡에게는 그걸로 충분했다.

그리고 수 차례 하늘을 비행하면서 비룡은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기를 던져서 죽이고, 뭔가 폭발시켜서 모조리 죽이고, 느닷없이 다른 비룡으로 뛰어내려서 직접 죽인다. 그저 날기만 했을 뿐인데도 살아 있는 적보다 죽은 적이 더 많다는 사실은 비룡에게 참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발톱으로 찍을 필요도, 부딪칠 필요도, 물어뜯을 필요도 없다.

그냥 날기만 하면, 무서운 인간이 알아서 한다.

그리고 안전해진다.

이티스엘의 비룡 조종사나 기사들은 수 년에 걸친 비룡과의 교감을 통해 학습시키는 핵심 과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신뢰감 형성이 주먹질만으로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이리 와!"

오묘한 깨달음 속에서 졸지에 해탈 비스무리한 지경에 이른 비룡의 귀에 인간의 목소리가 들려오기가 무섭게, 허공에서 원을 그리며 인간을 기다리던 비룡은 자연스럽게 그 부름에 따라 움직였다.

머리 위에서 먹잇감을 노리는 까마귀처럼 빙빙 돌던 비룡을 보며 외치자, 놈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빠른 속도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뭔데 이렇게 말을 잘 듣지...?"

솔직히 놈의 등에서 뛰어내려서 다른 비룡을 강습한 순간 도망칠 수도 있겠다고 생각 했었는데...

도망은 무슨, 모르는 사람이 보면 한 10년 키운 애완동물로 여길 것처럼 말을 잘 들어서 오히려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뭐...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마인드로 타고 잇던 비룡을 죽이며 옮겨 탄 뒤에 돌아본 하늘은 깔끔했다. 저 멀리 내성에서부터 날아오르는 또 다른 비룡 부대가 눈에 들어오긴 했으나 일단 군대가 진격하여 외성에 진입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이다.

확실히 지난번 하이재킹 때 느낀 것처럼 마왕군의 공중 전력은 비룡도, 탑승자도 비룡 기사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물론 이딴 마력 폭탄을 사람 머리 위에서 뿌려 마법사들의 주문 간섭을 무력화시킨 뒤 마법을 박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인 건 사실이었지만 비룡 기사는 그딴 수준이 아니니까.

그나마 가장 잘 버티던 놈이 방금 올라탄 비룡의 주인이었는데 걔도 다이브를 시도하니 온 세상의 억까를 다 당한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죽음을 맞이했다.

"흐으음, 어떻게 할까."

어찌 됐든 일단 열심히 제공권을 장악하고 난 뒤 내가 달리 지시를 내리지 않자 당연하다는 듯 제자리에서 고도를 유지하는 비룡의 똑똑함에 감탄하며, 나는 팔짱을 낀 채 고민에 빠졌다.

내 수중에 남아 있는 마력 폭탄은 단 하나.

그냥 박살 낸다고 해서 막 터지는 위험천만한 물건은 아니었던지라 아무 거리낌 없이 마왕군의 비룡 부대를 추락시킨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러다 보니 당연하게도 리필이 안 됐다

거의 500ml 패트병 만한 크기라서 일단 세 개만 챙겨 왔던 게 후회될 정도로 발군의 성능을 자랑하는 판타지식 수류탄의 덕을 톡톡히 보고나니 겨우 이거 하나 들고 또 스무 마리에 달하는 비룡들과 싸워야 한다는 게...

...많이 귀찮다.

"이 정도면 내 역할은 차고 넘치게 한 게 맞긴 한데..."

이대로 제공권을 마저 장악해서 아군을 돕느냐, 아니면 일단 물러나서 예상을 아득히 초월한 전리품인 비룡을 점검하느냐의 기로에 서게 된 나는 30초 정도 더 고민한 끝에 다시 도시를 향해 비룡을 몰았다.

다른 건 몰라도 이 폭탄은 어지간한 방법으로는 대처가 불가능하다.

심지어 나조차도 이게 발동하는 것 자체는 못 막는다.

발동하면 정령술이나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마도구같은 경우 지속적으로 일대의 마력을 흡수하고 방출하기에 내 능력으로도 무력화 시키는 게 가능하지만, 이건 밖으로 마력이 흘러나오지 않고 자가 발전하는 것에 가까운 구조라서 먹히질 않더라고. 내 능력은 외부에서 전력을 공급받는 가전제품의 코드를 끊는 것에 가깝다보니 배터리로 돌아가는 물건 앞에서는 한없이 초라하다.

근데 이런걸 외성에서 적의 진입을 막겠다고 막 터트린다? 전투로 죽는 병사보다 폭발이나 잔해에 휩쓸려 죽는 이가 더 많을 수 있다. 그나마 내 손에 명을 달리한 선발대는 군대가 개활지에 남아있었기에 접근하느라 제때 쓰지 못 한거지, 도심에서 놈들이 작정하고 터트릴 경우는 정말 얄짤 없을 것이다.

이게 뭐 오늘 처음 모습을 드러낸 신 무기는 아닌 듯하니 전장의 베테랑들이라면 나름대로 대책을 마련하고 있겠지만...

문제가 터지기 전에 해결할 수 있는 걸 굳이 터트린 뒤 정리하는 건 좀 비효율적이지. 외성과 달리 내성 공략은 내가 시도한 꼼수도 불가능할 테니 아군의 피해는 최소화하는 게 맞다.

그리 결단을 내린 나는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는 후속 비룡 부대 중 가장 사람이 많이 뭉친 곳을 체크한 뒤 속도를 올렸다.

이번엔 반드시 리필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건 덤이었다.

지휘소에서 예상과 다르게 너무나도 빠르게 박살 나버린 도시의 외성을 바라보던 알트는 짧은 고민 끝에 명령을 내렸다.

"지휘소를 이동한다."

"위치는 어디로 염두하고 계십니까?"

"외성문 앞. 내부까지는 들어가지 않는다."

본디 한번 위치를 잡고나면 공성전이 끝날 때까지 움직이는 일이 없는 게 지휘소였지만, 마왕군과의 오랜 전투로 인해 그들의 야전 교범은 기존의 상식과 달라진 점이 많았다. 그리고 그중 대표적인 것을 꼽으라면 바로 공성전에서의 지휘소 이동이었다.

마족은 강력한 병력을 절대 도시 하나 지키겠다고 고정시켜두지 않았다. 어떻게든 최대한 움직이게 하며 그걸로 이득을 보다가, 거점에 이상이 발생할 경우 수비 병력이 버티는 동안 회군하여 가세 및 후방을 노린다. 그렇기에 마왕군을 대상으로 하는 공성전은 높은 확률로 외성을 돌파한 다음부터가 시작이다.

인족은 감히 엄두도 못 내는 그런 말도 안 되는 대응이 가능한 건 순전히 그들이 마족이기 때문이었다.

마력을 쓰기에, 그리고 그런 마력을 기반으로 인족들보다 훨씬 다채롭게 게이트를 응용하기에 가능한 일. 심지어 개개인의 강함이 인족보다 월등한 경우가 대부분이다보니 이동하는 병력도, 물자도 상대적으로 적은데 화력은 오히려 뛰어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전쟁 초기엔 저 말도 안 되는 기동성에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었던가. 후방에서 관망하는 것에 가깝던 지휘소가 조금이라도 더 전장에 가깝게 붙으며 1분 1초라도 더 빠른 명령 하달을 목적으로 하게 끔 변질된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그로 인해 지휘소가 위험에 노출된다는 의견도 처음엔 많았지만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반론이다. 마족을 상대로하면 지휘소가 어디에 있든 위험한 건 똑같았기에.

하지만 이번 외성 공략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방향으로 흘러 갔기에 적들도 제대로 된 대응을 못할 게 분명했다. 그리고 알트는 이로 인해 얻어진 막대한 이득을 허투루 흘려보낼 생각이 없었다.

"후방의 도시들에게 연락해서 병력을 움직이라고 알려라. 왕실에도 상황을 보고하도록. 어쩌면 이번엔 레비엥만 취하는 게 아니라 전선을 조금 밀어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엘드미아가 이룬 업적은 엄청나다.

혼자서 외성을 뚫고, 폭격을 시도하는 적의 비룡 부대마저 역공을 취해 사상자가 거의 없다. 왕국 역사를 통틀어도 유례가 없는 공성전일 거라고 생각하며 알트는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지휘소를 벗어나는 부하들을 뒤로한 채 침착하게 전장의 지도를 살펴보고 있는 레비엥 변경백에게 시선을 옮겼다.

"이걸 예상하신 겁니까?"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으니까.

마족과의 공성전에서도 저런 짓이 가능한 인간이라면 인족끼리의 전쟁에선 말할 것도 없다. 추후 레비엥 변경백을 필두로 왕실이 귀족들이 다른 국가를 공격할 경우 얼마나 신속하고 빠르게 정복이 이루어질지 알트조차 감이 안 왔다.

단순히 강한 이들은 생각보다 많다. 하지만 저런 기존의 상식을 박살 내는 형태로 강한 이는 소수다. 심지어 엘드미아는 이제 막 성인이 되었으니 앞으로 더 성장할 여지가 차고 넘쳤다.

'저건' 전략병기다. 일개 귀족이 쥐면 파란을 불러올 수밖에 없는 전략병기. 이 모든 걸 정녕 레비엥 변경백이 예상했다면 알트는 왕실에 경고의 글귀가 적힌 보고서를 올릴 생각이었다.

"아무런 피해도 없이 외성을 돌파하는 것 말이신가요? 아뇨.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감추는 데에 능숙한 귀족 소녀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 덤덤한 어조와 달리 눈에는 생기가 돌고 있다. 하지만 그게 예상대로의 결과물을 얻고 만족하는 지휘관의 그것인지, 아니면 가문을 잃고 영지를 빼앗겼던 과거를 설욕 중인 자의 희열인지는 알 방법이 없었다.

어린 나이에 가문을 잃다시피한 소녀에게 오늘의 전투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마족의 전술에 대해 아는 게 없어 속공으로 밀려 버린 당시의 사건은 왕국에게도 치욕스럽고 뼈아픈 과거였다. 이번엔 이쪽에서 적들을 속공으로 밀어 버렸으니 어쩌면 복수를 달성했다는 성취감을 느끼고 있을지도 몰랐다.

"나름 긴 시간을 함께 했지만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거든요."

말을 마치며 웃는 레비엥 변경백의 모습을 바라보며 알트는 생각했다.

어째 란제가 사건과 성과를 동시에 터트렸을 때의 자신을 보는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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