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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412화 (412/412)

사단장 이라프는 구름을 뚫고 나온 순간 인족의 지휘소에서부터 느껴지는 마력에 헛웃음을 터트렸다.

인족이 마력을 품고 있는 것도 놀라울 지경인데, 심지어 그 수준도 범상치 않다. 마족이었다면 당장 데려가서 재능을 확인했을 정도로 기대되는 마력량이다.

"저래서는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겠군."

"예?"

"그냥 혼잣말이야. 준비해. 던진다."

피식 웃으며 챙겨 온 투창을 꺼내 든 이라프는 깊게 숨을 들이킨 뒤 전력으로 내리꽂았다.

노리는 건 놈의 머리.

비룡 위에 탄 채로 이를 시도한다는 건 그에게도 생소한 경험이었으나 대충 저지대에 있는 적을 노리고 달리는 말 위에서 던진다고 생각하면 안 될 것도 없어 보였기에 시도한 공격이 목표를 향해 날아갔다.

생포 및 사살 명령이라고는 하나 생포가 우선이라는 지시는 없었으니 이 공격으로 죽더라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던진 일격이었지만, 놀랍게도 엘드미아는 자신의 진심이 담긴 투창을 간발의 차로 피했다. 짧은 땅울림이 울리고 인족의 지휘소가 발칵 뒤집혔지만 이라프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저렇게 아슬아슬하게 피하면 세 번째에 확실하게 죽일 수 있다. 이라프는 예상보다 일이 쉽게 끝날지도 모른다고 여기며 냅다 뽑아 든 두 번째 투창을 거의 조준도 하지 않으며 빠르게 던졌다. 그렇다고 해서 막 던진 건 아니다. 이미 첫 번째 투척이 제대로 들어갔으니 자신의 직감과 실력을 믿을 뿐.

실제로 두 번째 공격 역시 정확하게 날아갔고, 이라프는 엘드미아가 피하는 걸 확인하지도 않은 채 바로 세 번째 투창을 꺼내 들었다. 맞고 죽으면 다행이지만 높은 확률로 저거까진 피할 것이다. 그러니 피하는 위치를 파악하자마자 던져서 확실하게 끝낸다.

그리 생각하며 만반의 준비를 마친 그를 향해 충직한 부하가 경고했다.

"사단장님! 비룡에게 무리가 갑니다!"

"저게 안 죽으면 무리로 안 끝..."

그리고 예상과 다른 이변이 일어났다. 엘드미아에게서 아주 잠깐 눈을 뗐다가 다시 시선을 고정한 이라프는 자신이 던진 투창이 땅이 아니라 엘드미아의 손에 들린 것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거 설마 내가 던진 걸 그대로 잡은 건가?'

불가능은 아닐지언정 묘기에 가까운 기예다.

마왕군 내에서도 빛을 던지는 이라프라 불릴 정도로 그의 투창 실력은 유명했다. 아무리 거리가 있다고는 한들 저 정도 마력을 지닌 이가 겨우 한 번의 시도로 쉬이 잡아낼 수 있는 수준은 결코 아니다. 설령 잡았다고 하더라도 그대로 투창에 끌려 날아가는 게 현실적이다. 자만과 오만이 아닌 지극히 냉정한 평가였다.

그걸 잡아서 되려 역으로 자신을 조준하고 있는 상황이 너무나도 낯설어, 이라프는 순간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빛이 쏘아졌다.

"젠장!"

늦은 판단의 대가는 컸다.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던 반격을 제대로 대비할 수 없었던 이라프는 들고 있던 투창 가방을 통째로 희생시켜야만 했다.

그나마 투창 자체는 창대까지 마장금으로 만들어진 특제였기에 박살 나진 않았으나 가죽으로 된 가방이 찢어지며 우수수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나마 온 힘을 다해 쥐고 있던 투창 두 개를 건진 이라프는 손바닥을 통해 느껴지는 저릿한 감각에 놀라며 엘드미아를 바라보았다.

"과연, 지금까지 살아남은 건 운이 아니라는 건가!"

방금의 공격으로 그치지 않고 바닥에 박혀 있던 투창을 뽑아 또 한 번 자신을 겨누고 있는 놈을 보고 있자 하니 저절로 피가 끓어올랐다. 투창으로 자신에게 정면 승부를 시도하는 혈기넘치는 대적자를 만나는 게 얼마만이란 말인가. 적이지만 참으로 마음에 드는 인족이었다.

"이번엔 네 생각처럼 쉽지 않을 거다."

그리 생각하며 공격을 받아내려 준비하고 있던 이라프는 엘드미아의 조준이 미묘하게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음? 날 맞추려면 조준이 조금 더 옆으로 움직여야 할 거 같은...

"...저, 저 비겁한 놈! 비룡을 돌...!"

그의 경고가 채 끝나기도 전에, 엘드미아의 손아귀를 벗어난 투창이 순식간에 치고 올라와 비룡의 한쪽 어깨죽지를 찢어 버렸다.

"씨발 쉽지 않네. 대가리를 뚫으려고 했는데."

통짜 쇳덩이라고만 생각했던 투창이 어쩌면 마장금 덩어리일지도 모른다는 걸 조금 빨리 깨달았어도 속도를 더 붙일 방법이 있었을 텐데, 급하게 움직이다보니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그래도 비룡의 어깨 언저리를 제대로 관통한 덕에 속도도, 고도도 확연하게 줄어든 놈들이 바닥과 키스하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세상에, 그걸 받아칠 줄은..."

아직 근처에 있던 란제가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나도 하고 싶어서 한 건 아니다. 그저 놈의 공격으로 인한 폭발을 피하기 위해 구르기만 하다가 투창 맞고 죽는 엔딩을 원치 않았을 뿐이지.

"좀 더 살 확률이 높은 방법을 택했을 뿐입니다. 그보다 저놈이 이대로 물러날 것 같지 않은데 말이죠."

위태롭기 그지없는 상황인 건 맞지만 비룡은 꾸준하게 하강하면서도 지휘소로 향하는 중이었다. 이 정도면 한 발 뒤로 뺄 법도 한데 포기할 줄 모르는 거 보면 어지간히 실력에 자신 있거나 투철한 충성심의 소유자겠지. 투창 던지는 꼬라지와 마력량을 보면 전자는 무조건 고정이니 어쩌면 둘 다 일지도 모른다.

"제기랄, 갑옷 좀 챙겨 입고 오겠습니다. 무리하지 마십쇼!"

'저거 도착하고 나면 무리든 뭐든 할 수밖에 없는데요.' 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황급히 멀어져가는 란제와 자리를 바꾸기라도 하는 것처럼 몰려든 기사들로 인해 굉장히 든든해졌기 때문이다.

개중에는 에스뮈에가 왕국에 방문했을 때 대동했던 파워드 슈트를 입은 이들도 섞여 있었다. 비록 그녀의 설명대로라면 살짝 실력이 부족한 기사들의 보조 장치였지만 겉만 보면 인류의 최종 병기라고 해도 믿을 수 있는 외형이었기에 그들이 안겨 주는 안정감은 어지간한 기사들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듬직한 건 겨우 비룡 한 마리가 날아오는 중이라고 방심하지 않는 그들의 마음가짐이었다.

인족보다 평균적으로 월등한 무력을 지닌 마족이기에, 인족이 취한다면 미친 짓으로 여겨질 행동일수록 오히려 진중하게 반응한다. 실로 현명한 판단이었다.

역시 왕국이 딱지치기로 국경을 지키고 있었던 건 아니라는 사실에 내심 감탄하는 사이에도 비룡은 꾸준히 거리를 좁혀왔다. 아직 고도가 있는 편이라 대체 어떤 형태로 공격을 시도할지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운 채 긴장하는 동안 우리 머리 위까지 도착한 비룡은,

"저거... 왜 그냥 가?"

이름 모를 기사가 의아함을 가득 담아 내뱉은 말처럼 우리를 지나쳐 날아갔다. 이에 기사들은 의아해하며 비룡을 눈으로 좇았고, 나는 갑작스러운 깨달음과 함께 거울 치료 당하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아, 이게 당하면 이런 기분이구나.

"전원 산개! 적이 비룡에서 뛰어내렸다!"

절로 쌍욕이 나오는 와중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월권과도 같은 명령과 강대한 마력의 소유자를 향해 대바늘을 제외한 모든 바늘을 쏘아 올리는 거였다.

하늘에서 물소 뿔이 양손에 투창을 하나씩 꼬나든 채 급강하 중이었다.

솔직히 나조차 예상하지 못했다. 속도를 줄일 수 있는 수단없이 십층 건물은 될 법한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건 지금의 내 상식으로도 자살행위에 가까웠기에.

하지만 이제야 제대로 얼굴을 보게 된 물소 뿔이 양손의 투창을 휘둘러 바늘을 쳐 내며 미소 짓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자신이 시도한 완벽한 자살에 성취감을 느끼는 게 아니라면 저대로 죽어 줄 리 만무했다.

내 외침을 허투루 듣지 않은 기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무기를 고쳐 쥐며 머리 위의 적에게로 시선을 돌렸지만 미친놈이 시도한 급강하를 수 초단위로 늦게 파악한 탓에 제대로 된 대응은 할 수 없었다.

"내가!! 빛을 쏘는 자, 마왕군 제7 사단장! 이라프다!!"

쩌렁쩌렁한 외침과 함께 번개같이 쏘아지는 투창.

"이 개..."

참으로 억울하지만 이번엔 도저히 받아 낼 재간이 없었기에 또다시 옆으로 몸을 날려야 했다.

-콰아앙!!

흙더미가 터져 비산하고, 내 몸도 뜨는 그 찰나의 순간 보인 것은 투창에 이어 바닥에 착지하는 자칭 이라프라는 마족의 모습.

저 미친놈은 마치 2층 침대에서 뛰어내리기라도 한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가 던졌던 투창을 챙겨 들고는 한바탕 뒤집힌 포위망을 무시한 채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어디 실력 좀 볼까 엘드미아!!"

폭발의 충격으로 인해 바닥에 한 번 튕기며 생긴 반동을 이용해, 그대로 옆으로 공중 제비를 돌며 대바늘을 뽑아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놈의 미간에 날렸다. 바늘을 사용한 이례로 이보다 더 마력을 쏟아부어 날린 적이 없다고 자부할 수 있을 만큼 필사적인 공격이었다.

당장 휘파람을 불어 블러핑을 시도한다는 발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렀기 때문일까. 흩날리는 흙먼지마저 느리게 보이는 세상 속에서 오직 사고思考만이 총알처럼 흘러간다.

저놈 앞에서 도끼따위를 휘둘렀다간 뒈진다. 빠르게 판단을 내린 나는 등에 메고 있던 도끼를 뽑아 놈이 아닌 옆으로 집어던지며 검을 뽑아 들었다.

겨우 그 짧은 동작을 취하는 동안 놈이 보여 준 무력은 골때렸다. 마치 자신의 저력을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한 손으로 찔러댄 투창의 첨단과 맞부딪친 대바늘이 아주 약간의 저항 끝에 튕겨 나가고, 나 못지 않게 빠르게 자세를 다잡은 기사 셋이 측면에서 휘두른 검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두 개의 투창을 휘둘러 튕겨내고 반격까지 한다. 비록 치명상에 이르지는 못한 공격이었지만 그들의 발을 묶기엔 충분했다.

백인대장도 못 만나 본 거 같은데 뭔 순서가 이따위야?

절로 자신감이 꺾이는 광경이었지만 애써 웃으며 자세를 다 잡았다. 한 손으로 창을 써도 갑옷에 구멍을 뚫는 새끼가 양손에 하나씩 들고 덤비는 걸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막막했지만, 그렇다고 넋 놓고 죽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그런 내 심정을 전혀 모르는 물소 뿔은 양손의 단창을 랜스처럼 허리에 낀 뒤 자세를 낮춰 더욱 속도를 높이면서 외쳤다.

"하하하! 즐겁나! 엘드미아!"

내가 웃는 걸 보고 이 상황을 즐긴다고 여긴 건가? 기가 차서 저절로 표정이 썩어들어간다.

"좆같아서 웃은 거야 이 새끼야!"

나는 내 가슴에 구멍을 뚫기 위해 날아든 투창 두 자루를 위로 튕겨 올리며 놈의 좆 같은 오해를 바로잡은 뒤, 놈의 손가락 하나라도 베어 버리기 위해 검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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