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1화 (1/294)

< 프롤로그 >

‘조선 왕자가 미국 갔다 안 돌아옴’이란 작품은 제 상상을 바탕으로 집필한 대체역사 소설입니다.

* * *

후지와라는 미국에서 유학까지 한 수재로 3개 국어(일본어, 조선어, 영어)에 통달했다.

이 뛰어난 언어능력 덕분일까?

후지와라는 내각에 밀명을 받아 일본에 머무는 ‘조선인’ 중요 인물 한 명을 감시 중이었다.

‘올 때가 되었는데······.’

후지와라는 그랜드 호텔 1층에 자리한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감시대상에 관한 최근 근황을 바로 이곳에서 교환하기로 했으니까.

그는 커피잔을 든 채로 고개를 천천히 돌리며, 오늘 접선할 상대를 찾았다.

그때였다.

“후지와라 상.”

키가 작은 한 일본인이 그의 앞으로 천천히 다가와선 고개를 숙였다.

후지와라가 밝게 웃으며 낯선 남자의 인사에 답했다.

“아, 사카모토. 그대로군. 이리 와서 앉게나.”

“예. 후지와라 상.”

“사카모토.”

“말씀하십시오.”

“자넨, 뭘 마시겠는가?”

“차가 좋겠습니다.”

“차?”

후지와라가 피식 웃었다.

“그래도 이곳에 왔으니 커피를 한번 시켜 보게나. 이 집 커피가 일본에서 제일일세. 자네도 이참에 서구 문물을 즐겨 봐야지.”

“후지와라 상이 권하신다면 기꺼이 그리하겠습니다.”

후지와라와 사카모토는 5분 정도 커피를 음미하며 침묵했다.

“후지와라 상.”

후지와라의 커피잔이 반쯤 비었을 때.

사카모토는 준비해 온 서류뭉치를 조심스레 그에게 넘겼다.

“이것은······.”

“그동안 조사했던 자료들입니다.”

사카모토는 그랜드 호텔 건물 3층 쪽으로 고개를 슬쩍 돌렸다.

조선의 둘째 왕자 ‘이강’이 지금 그곳에 묵고 있기 때문이다.

“따로 확인하지 않아도 되겠지? 세세하게,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하였으리라 믿네.”

후지와라의 의심이 가득 찬 질문에, 사카모토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답했다.

“이강 그놈이 무엇을 먹고, 어떤 말을 하는지 여기에 전부 기록했습니다. 대변을 언제 봤는지까지도 모조리 적어 두었지요.”

“오, 그래?”

후지와라가 자못 흡족한지, 그는 이빨을 전부 보이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각하께서도 기뻐하실 걸세. 아! 사카모토.”

“예. 후지와라 상.”

“내 한 가지 그대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는데 말이야.”

“말씀하십시오.”

“자네가 봤을 때 말이야.”

후지와라가 잠시 뜸을 들이며 뒷말을 삼켰다.

동시에, 오른손 검지로 카페 테이블을 툭툭 치다가 이내 사카모토를 바라보았다.

“저기, 호텔에 있는 그놈······.”

“이강을 말씀하는 것입니까?”

“그래, 그 왕자 놈 말이야. 자네가 볼 땐, 우리에게 회유될 가능성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는가?”

사카모토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확신에 찬 얼굴에 답했다.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됩니다.”

“전혀 없다고? 어째서?”

“그간에 행적도 그렇고, 호텔에서 나누는 대화만 분석해 보아도 그렇고. 우리에게 아주 많이 적개심을 품고 있는 것 같습니다.”

후지와라가 사카모토의 의견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하지만 각하께서는 저자를 회유하고 싶어 하시지. 무리해서라도 말이야.”

“그건 좀 힘들지 않겠습니까?”

“맞네. 조선의 둘째 왕자는 그리 호락호락하지가 않으니까.”

후지와라가 혀를 차며 하던 말을 이어 갔다.

“다른 조선 왕족들과 다르게 그놈은 머리가 참으로 비상하단 말이야. 마치, 대원군을 쏙 빼닮은 것처럼.”

“그래도 아직 어려서 그런지, 감정을 숨기는 것만큼은 좀 미숙해 보입니다.”

“그래. 나였다면 힘이 없는 상태에서 우리 일본에 이빨을 자주 드러내진 않았을 텐데 말이야······.”

그랜드 호텔에 있을 조선 왕자를 떠올리며, 후지와라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래도 그놈이 왕위에 앉게 된다면······ 후,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

현재 조선 왕의 나이는 오십여 살이다.

노인이 된 그를 이어 왕통을 이을 자는 바로 태자 이척.

어릴 적엔 제법 똑똑했었지만, 아편을 탄 커피를 마시며 상황이 바뀌었다.

죽지는 않았지만, 이빨이 다 빠지고 몸이 허약해지는 부작용이 생겨난 것이다.

용모 또한 크게 어벙해진 상황.

조선 전역에는 태자가 병신이 되었다고 악소문이 파다하게 퍼졌고 아이 또한 없다.

‘이강이 둘째니······.’

출생 서열만 따지고 보면, 다다음 보위를 이어받을 가능성은 이놈이 가장 크다.

그리된다면 일본 정부의 대동아공영권 대업에 차질이 생길 것이다.

후지와라는 옆 나라 조선의 왕실 가계도를 허공에 그려 보았다가, 크게 한숨을 쉬었다.

“맞습니다. 제 아비나 형과는 다르게 만만치 않은 인물이니까요.”

사카모토의 맞장구를 치며, 잠시 상념에 잠겼다.

하지만 그는 이내 단단히 굳었던 표정을 풀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저놈을 대체할 놈이 조선 왕실에서 태어나지 않았습니까?”

“그, 귀비의 아들 말인가?”

“예. 그렇습니다.”

8년 전에 새로운 왕자가 태어나며 상황이 조금 변했다.

후계 구조가 묘하게 꼬여 가며 판도가 변하고 있었는데, 다행인 점은 일본에 아주 유리하게 바뀌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강은, 제 딴에 현 상황을 바꾸고자 발버둥을 치고 있지요. 하지만 일이 점점 꼬이고 있지 않습니까?”

조선의 둘째 왕자는 지난 6년간 외국에서 유학하며 떠돌았다.

둘째 왕자가 조선에 없을 때, 귀비의 배에서 태어난 아들을 다다음 후계자로 삼기 위해.

국내의 기반을 잡지 못하도록 일본 정부와 조선 왕의 애첩 귀비가 손을 쓴 것이다.

왕자 역시 이들의 음모를 눈치챘는지, 미국으로 유학 온 후 갓 1년이 되지 않아 귀국 요청을 했다.

하지만 이미 엎어진 물.

안팎의 방해 속에 왕자의 귀국 요청은 계속하여 반려되었다.

그러기를 어언 5년.

둘째 왕자는 인내심이 바닥났는지 미국 땅에서 건너와 조선에서 가까운 일본에 머물며 제 아비를 설득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선 왕은 귀비의 속삭임 때문인지 요지부동이었다.

“우리 일본이 조선의 관료들을 포섭하며 한양을 꽉 잡고 있는데, 어디 쉽겠습니까?”

“그래. 내 말이.”

왕과 떨어져 지내는 동안 지속해서 두 부자 사이를 갈라놓는 간계 또한 꾸준히 진행되었다.

역성혁명의 배후에 왕자가 지목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조선 왕실에서도 이놈을 감시하고 있다지?”

건네받은 서류를 잠시 확인하던 후지와라는 한 대목에서 기가 찼는지, 크게 한숨을 내뱉었다.

이에 사카모토가 눈을 반짝였다.

“예. 무능한 조선왕 그놈이, 권력욕 하나는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제 아비는 물론 아들까지 경쟁자로 보고 있나 봅니다.”

“그래?”

“예. 이게 다 각하의 계획이 성공한 덕분이겠지요.”

여기서 ‘각하’라 칭하는 이는 후지와라가 아니었다.

후지와라의 윗선.

그중 최고 정점에 있는 이.

바로 이토 히로부미였다.

“그렇지. 각하께서는 앞날을 내다보시는 현자시니까.”

“그렇습니다.”

한참.

그 후로도 한참 동안, 제 파벌의 수장인 이토 히로부미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다.

“수고했네. 왕자가 본국을 떠나는 날까지 계속하여 감시하게나.”

“예. 후지와라 상.”

제 딴에는 발버둥 치고 있다지만, 왕자의 현실은 부처님 손바닥 위에 있는 손오공보다도 못했다.

후지와라는 흡족한 듯, 보고서를 바라보면서 연신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곤 이내 남은 커피를 다 마시고자 찻잔을 들었다.

그때였다.

쾅-

맞은편 호텔의 한 객실에서 큰 소음과 함께 창문이 활짝 열렸다.

* * *

“응?”

창문을 연 자는, 두려움에 떠는 눈빛으로 주변 전경을 살펴댔다.

후지와라는 그놈과 시선을 교환했다.

‘저자는······.’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저리 당황한 것일까?

그보다, 누구일까?

‘행색을 보니, 우리 일본 신민은 아닌 것 같고. 저 객실은 돈 좀 있는 놈들이 묵는다는 곳인데······. 어? 저기, 3층이 아닌가? 저층엔 분명······.’

후지와라가 머리를 굴릴 때.

사카모토가 먼저 남자의 정체를 후지와라에게 알렸다.

“후지와라 상. 저기 저놈, 이강이 아닙니까?”

“조선의 둘째 왕자, 이강이라고?”

“예. 그렇습니다.”

후지와라가 집중력을 끌어올리며,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왕자의 표정을 살폈다.

“이강 저놈, 간밤에 무슨 일이라도 있는가?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군.”

“악몽이라도 꿨나 보지요. 제가 알기로는 별일 없었습니다.”

두 일본인 사내는 눈을 가늘게 뜨며 허둥지둥 주변 전경을 살피고 있는 이강을 관찰했다.

이상하다.

조선의 둘째 왕자는 동경 전경을 관찰하다가 무언가 잘못됐는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헉. 저자 왜 저러는가?”

“그, 글쎄요.”

이강이 사정없이 제 뺨을 때린다.

이에 사카모토가 왕자의 갑작스러운 돌발 행동을 살짝 당황하다가, 이내 그 행동을 분석했다.

“돌아가고 있는 현실이 불만족스러워 저리 자해를 하는 것이 아닐까요?”

후지와라는 이상함을 느끼며 머릿속으로 조선 왕자가 왜 저런 행동을 하나 의구심을 품었다.

그런데 그때.

조선 왕자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씨발. 도쿄 타워는 어디 간 거야?”

< 프롤로그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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