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11화 (11/294)

< 하와이에서 (3) >

“미안하네. 자네들 얼굴을 볼 면목이 없네.”

빙빙 돌려 말하진 않았다.

원래 이강의 말투가 이랬다.

무언가를 설명하기 전, 지금 내 심정이 어떤지부터 설명하는 것.

나도 그 방법을 사용했다.

“부디 날 용서해 주게나.”

나의 깜짝 발언에, 연단 너머에서 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청중들이 입을 꾹 다물었다.

이 자리에 장정만 천 명이 넘게 있는데,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개미 새끼 한 마리 돌아다니지 않는 것만 같다.

‘다양한 표정을 짓는군.’

고개를 돌려 그들의 면면을 확인했다.

당황하는 이들이 다수.

하지만 일부는 의외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긴······ 저들로서는 처음일 테니까. 윗사람이 어디 쉬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던가?’

표정 확인은 이쯤에서 끝내도록 하고.

나는 상황을 빠르게 분석해 보았다.

‘당황한 이들은 내 얼굴을 한번 보겠다 나온 이들이겠고.’

의외라는 표정을 지닌 이들은 내게 쓴소리를 늘어놓고자 이 자리에 온 이민자이겠지.

후자의 마음을 얻어야 했다.

후······.

크게 숨을 들이켰다.

이후, 살짝 눈을 감으며 자책하는 표정을 한번 지은 다음, 조심스레 다시 눈을 떴다.

‘사과는 진심을 담아서, 명료하게 해야 한다.’

현대인으로 살 때,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셀럽이나 회사 대표들을 많이 보았다.

그들은 SNS나 방송을 통해 대중에게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빌었다.

‘어설픈 사과는 안 하는 것만 못하다. 오히려 역효과를 부르지.’

로비스트를 찾는 의뢰자들은 대부분 이익단체 대표들이다.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때론 밉상인 짓을 하기도 했다.

지나치지 않는다면, 혹은 들키지 않는다면 괜찮겠지만.

문제는 그들의 실수가 대중에게 알려질 때다.

그때 이들은 전문 자문 업체를 통해 어떻게 대중에게 사과해야 하는지 컨설팅을 받았다.

나 역시 옆에서 곁다리로 이를 지켜보았기에,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사과를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미안하다고 고개 숙여 사죄해야 해.’

그다음으론, 구체적인 죄를 고백해야 하고.

나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하나하나 설명하며, 이민자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왕실의 일원이라곤 하지만, 그동안 나는 책무 하나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네. 폐하께서 옳은 길을 가시도록 곁에서 쓴소리도 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지.”

비장한 눈빛.

더불어 교만하지 않은 목소리로, 연단 앞에 선 이주민들을 바라보며 나는 다음 말을 내뱉었다.

“고통받던 자네들을 난 계속 외면했네.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지.”

굳이 변명하지 않았다.

내부의, 그리고 외부의 적이 날 노리고 있었던 사실을 이들에게 풀어 설명하진 않았다.

‘내 앞에 있는 이들은 바보가 아니다.’

이들은 조선의 현지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죽은 민비가.

그리고 민비의 빈자리를 꿰찬 엄비가.

더불어 그들이 그토록 혐오하는 일본이.

나를 견제하고 있다는 것을 여기 있는 이민자들도 다 알고 있다는 뜻이다.

‘이들을 잘 아는 김규식과 유길준, 두 인물이 이를 증언했으니까. 믿을 만하겠지.’

그렇기에 난 변명보다는 나의 잘못을 고변하며 진실을 설파했다.

“살아남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을 때도 나는 겁쟁이였네. 끝끝내 미련을 못 버렸지. 구중궁궐에서 편히 살겠다고, 나는 자네들을 다시 한번 못 본 척했네.”

지난 6년간 이강은 조선으로 돌아가려 노력했다.

이런 움직임을 여기 있는 대다수 또한 잘 알고 있을 것이기에, 나는 이것 또한 언급했다.

나는 조금씩 목소리를 키우며, 가슴 한편에 쌓아 두었던 내 작은 목소리를 밖으로 내뱉었다.

“하지만 막판에······ 양심이 나를 부르더군. 그대들이 어찌 지내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데, 조선으로 돌아갈 것이냐고 물었네. 후······.”

빙의 전 이강 역시, 이들을 완전히 외면하지 않았다.

가끔 교민 사회에 들려 금일봉도 주고, 그들의 대표를 만나서 격려하기도 했다.

나름대로 이들을 배려하며 살아온 것인데, 덕분에 나는 이를 아주 잘 써먹을 수 있었다.

“그대들이 생각났네. 그래서 돌아왔네. 내 그대들 없이······ 이 땅을 떠날 수 없었네.”

그러곤 선언했다.

앞으로 최소 십 년간은 조국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그 대신, 미국에 남아 내 앞에 있는 그들을 위해 살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니 날 용서해 주게. 한 번 더 기회를 준다면 내 달라진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네.”

할 말은 다 했다.

연단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나는 오늘의 행동을 끝냈다.

‘슬슬······ 움직여라.’

전날에 하와이 이주민 대표를 만났다.

대부분이 내게 호의를 보였지만, 그래도 그들과 따로 이야기하며 미리 호감을 쌓았다.

“전하께서는 잘못하신 것이 없습니다.”

역시······.

어젯밤에 같이 밥을 먹은 보람이 있군.

제일 앞자리에 있던 임정수가 반걸음 앞으로 나왔다.

그는 나를 보다가 휙 180도 돌아서더니 대중을 향해 소리쳤다.

“전하께서 무슨 힘이 있다고 폐하의 눈을 가리는 모리배들을 상대할 수 있었겠습니까!”

“맞습니다. 그들의 뒤에는 일본과 러시아가 있습니다.”

옆에 있던 한 남자가 호응하자, 임정수가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중을 선동했다.

“오 년 전, 실패했던 혁명의 배후로 전하께서 지목되시지 않았습니까? 그 때문에 전하께서는 마음고생만 하셨지요. 여기 있는 이들 또한 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이에 하와이 이주민들이 하나둘 호응하기 시작했다.

“맞습니다. 전하께서는 잘못하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 모리배 같은 간신들 때문입니다.”

“친일, 친러 세력들을 다 때려죽여야 합니다.”

분위기가 서서히 내 쪽으로 넘어온다.

대놓고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던 이들도 분위기에 휩쓸려, 무언가 항의를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다.

나는 이를 놓치지 않고 눈을 살짝 감았다 뜨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겁 많은 날 이리 쉽게 용서해 주다니······ 고맙네, 고마워.”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참았다.

지도자가 되려면 든든해야 하니까.

아까의 사과는 나의 사람 됨됨이를 보여 주는 행위.

하지만 모든 것에는 딱 적당한 선이 있다.

사과하고 나서 울음까지 터트리면 너무 나약해 보인다.

“내 오는 길에 한 광경을 보았네. 여기 있는 그대들 중 하나의 모습이었겠지. 사탕수수밭에서 한 조선인 중간관리자에게 협박받고 있는 모습을 보았네만.”

중간관리자를 제외한 조선인 노동자들은 최소한의 쉴 권리도 가지지 못한 채 일만 해야 했다.

나는 이런 열악한 노동환경을 거론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

“농장주들이 우릴 쉽게 보는 것은 한 가지 이유 때문일세. 우리가 뭉치지 못해서지. 저기 태평양 건너 청에서 건너온 중원인도, 열도에서 이민 온 일본인들을 보게나. 전부 똘똘 뭉쳐 이곳에서 생존을 꾀하고 있네. 하지만 우리들의 현실은 어떠한가?”

나는 대중들의 속으로 천천히 다가가기 시작했다.

전후좌우.

이민자들이 나를 감싸는 가운데, 나는 목소리에 힘을 주며 다음 말을 내뱉었다.

“우리는 뿔뿔이 흩어져 있네. 반목하고 질시하며 서로서로 감시하고 있지.”

한 남자가 내게 물었다.

“전하께서는 해결책이라도 가지고 계신 것입니까?”

“있지. 우리 또한 뭉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당장이라도 통합교민회를 만들어야 하네.”

하와이에 조선인이 이민 온 지 어언 2년이다.

조그마하게 교민회 지부가 만들어지곤 있지만, 조선인 전부를 대표할 대표단체는 아직 없었다.

“내 이곳에 세워질 교민회를 위해 그동안 모았던 십만 불을 기부하겠네. 본국에 있는 가산까지 정리한 마당에······ 이제 이곳은 제2의 고향이니까.”

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곳곳에서 지방방송이 터지기 시작했다.

“십만 불?”

“그게 얼마야?”

“우리 하루 일당이 얼마였더라? 1달러쯤 아니었나?”

“그런데 십만 불이라고?”

웅성웅성. 주변이 시끄러워졌다.

다들 놀라는 표정을 지어댔다.

개중 몇몇은 ‘역시 왕족은 손 크기가 다르구나’ 하고 감탄하며 그 큰 걸 자신들의 위해 쓴다 발표한 내게 놀라는 눈치였다.

“더불어 장학회 또한 설립할 예정이네. 계약으로 묶여 있는 자네들은 몰라도, 그대들의 자식들은 공부해야 하지 않겠는가?”

정책은 법으로 만들어진다.

법은 의원들이 입법하고.

로비스트는 아주 자연스럽게도 정치인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사람들은 희망을 좋아하지. 조금만 노력하면, 자신도 그것을 가질 수 있다 생각하게 해 주면······ 그들은 마음을 준다네.』

평소 우리 회사랑 자주 거래하던 뉴저지주의 상원의원이 하던 말이 생각났다.

그래.

나 역시도 이들에게 희망을 줄 생각이었다.

사탕수수밭 농장주들과의 계약 때문에 그들의 삶에서 당장 큰 변화가 나타나지는 않을 테지만, 막 태어난 혹은 곧 태어날 그들의 2세들의 삶은 다를 것이라고 상상력을 불어넣은 거다.

‘현대 한국의 교육열은 미국 내에서도 아주 유명했지.’

한국이 본격적으로 미국 내에 알려지기 전.

그러니까 한류가 불기 전부터 한국의 교육열은 굉장히 유명했다.

공교육 정상화에 관심이 많던 버락 오바마는 한국의 교육열을 콕 집어 언급하며 이를 본받아야 한다고 추켜세우기도 했었을 정도다.

“돈 걱정 없이, 재능이 있는 아이라면 언제든 내가 지원할 것이네. 그러니 날 믿고 우리 하나가 되세나.”

한 명 한 명 시선을 교환하며 내가 쐐기를 박았다.

“우리는 고향을 떠나 이곳에 왔네. 이젠 여기 있는 그대들이 한 형제고 자매일세. 가족이란 말이지. 그렇기에 모두 함께 잘 살아야 하네.”

나의 제안에 교민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그 열기가 너무나도 뜨거워, 연설하고 있던 나조차 놀랄 정도였다.

* * *

연단을 내려온 후, 잠시 호텔로 이동했다.

날 만나려는 이민자들로 광장이 혼란스러워지면서 잠시 반강제로 여유 시간을 가지게 된 것이다.

“전하.”

우현식이 내 곁으로 급히 다가왔다.

그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내게 물었다.

“방금 연단 위에서 하신 말씀, 진심이십니까? 정녕 교민회와 새로 생길 장학 재단을 위해······ 십만 달러를 내놓을 계획이십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우현식의 물음에 부정하지 않았다.

“그렇다네.”

“전하, 십만 달러면 큰돈인데 말입니다. 어째서······.”

우현식은 하늘이 무너지는 표정을 지으며 내 손을 꼭 잡았다.

그는 현재 나의 재정관리인.

예전에 한 번 모아 둔 돈이 어디 있냐며 쥐잡듯이 잡았는데.

그때부터 돈에 굉장히 민감한 인간이 되어 버렸다.

‘재정관리인은 보수적으로 돈을 운용해야 하니까. 그럴 수도 있지.’

사람은 각자 자리에서 맡은 일을 충실히 하면 된다.

우현식은 재정관리인.

그렇기에 자금 흐름을 신경 쓰는 것 또한 당연했다.

나는 이들의 리더이기에, 이들의 조언을 바탕으로 어느 것이 더 우선인지 판단해야 하고.

“내 미리 말하지 못해 미안하네. 적어도 자네에게는 언질을 주어야 했는데······.”

우현식은 살짝 실망했다는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와이에 있는 교민들 사정이 정말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나의 큰 그림은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대충 돌아가는 사정을 이해했기에 결국 나의 제안에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나저나, 정말로 그 큰돈을 내놓으실 생각이십니까?”

김규식이 다가와 내게 말을 걸었다.

공식적인 자리였기에 말을 놓지 않고 최대한 정중히 나를 받들며 내 의향을 물었다.

“왕실에서 전하께 활동비를 건넸다면, 이보다 더 중요한 곳에 사용하셔야 하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돌아가는 세계정세가 아국에 위험합니다.”

유길준이 끼어들었다.

무려 4년간 가택 연금을 당했기에 그는 일본에 상당한 반감을 품고 있었다.

“일본이 우리 대한제국을 노리고 있지 않습니까? 재고해 주시지요.”

하지만 나는 유길준의 청을 단호하게 거절하며, 연단에서 했던 말을 물리지 않겠다 선언했다.

“내겐 이들이 더 중요하네. 이들이 곧 나의 조선이며 더불어 희망이기도 하니까.”

나의 말에 유길준은 잠시 할 말을 잃은 표정을 지어 댔다.

하지만 그를 뺀 나머지는 감동한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진정한 지도자가 나타났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유길준의 어깨를 다독이며 그를 안심시켰다.

“너무 걱정하지 말게나. 내 활동비는 따로 떼어 두었네. 나 역시 예전의 내가 아닐세. 다 생각이란 것을 하고 사네.”

“전하.”

“말하게.”

“협회를 세우려 한다면 가장 먼저 이름부터 지어야겠는데 말입니다.”

중년으로 보이는 사내가 제안하자, 다들 그의 말에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중년의 사내는 공손한 자세로 내게 다가와 그 의향을 물었다.

“혹, 따로 생각해 둔 것이라도 있습니까?”

어디든.

우두머리가 단체의 이름을 정하곤 한다.

여기 있는 이들은 이미 모두 날 리더라고 여기는 듯했다.

그럴 수밖에.

돈도 내가 다 내고 지위도 월등히 높으니까.

다들 그리 여길 수밖에 없겠지.

“합성협회(合成協會). 합성협회로 하도록 하지.”

머릿속에서 번뜩 생각난 단체명을 이야기하자, 다들 이를 해석하며 나를 칭송하기 시작했다.

“함께 성공하자는 뜻이로군요”

“아까 연단에서 하신 연설에 딱 부합하는 단체명 같습니다.”

“혹, 이미 생각해 두신 것입니까?”

“그건 아닐세.”

“그렇다면 전하께서는 뛰어난 작명 감각을 지니신 것 같습니다.”

“즉석에서 이를 생각해 내시다니······ 허······.”

나는 아까 내게 단체명 작명을 권한 임정수, 그리고 그 옆에 있던 정명원을 가리키며 부탁했다.

“임시로 자네 둘이 이 단체를 맡아 주었으면 하네만. 듣자 하니······ 그대들이 이곳에서 가장 명망이 있다지?”

현재 호텔에 있는 이들은 나의 측근들과 하와이 이주민들의 임시대표들뿐이다.

어젯밤 김규식에게 언질을 받은 후, 나는 개중 가장 명망이 있는 이 둘을 교민회에 공동 우두머리로 삼을 예정이었다.

“그래도 처음은 전하께서 맡아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역시나.

단체명 작명을 권했던 임정수가 내게 자리를 양보한다.

역시.

눈치 빠른 이들과는 일하기가 편하단 말이야.

“그렇게 생각한다면 내 그리하도록 하지. 차후 안정되면······ 투표를 통해 새 대표를 선출하겠네.”

두 사람을 부대표로 삼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십만 달러란 돈은 거금이니 당장 이를 입금할 수는 없네. 하지만 초기엔 자금이 많이 필요하니 일단 이만 달러 정도는 내어놓겠네.”

“이만 달러도 저희에겐 큰돈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지고 있던 은행권 몇 장을 두 사람에게 건넸다.

“더불어 아까 이야기했던 장학금도 건네도록 하겠네. 일단은 만 달러 정도를 출연하면 되겠지.”

교민회 활동비는 2만 불인데 장학 재단에 사용되는 자금 역시 무려 만 불이나 된다.

이에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만 달러나 말입니까?”

“그래. 만 달러 정도면 이번 연도는 어찌어찌 넘어가지 않겠는가?”

그 말에 더더욱 놀란 표정을 지었다.

1년에 쓸 돈이 만 달러나 된다는 소리에 다들 경악한 것이다.

“머리가 빠릿빠릿한 자들은 최대한 대학에 갈 수 있게 옆에서 도와주게나. 우리의 주춧돌이 될 자들이네.”

내가 두 손을 들어 올리며 이를 덧붙였다.

“특히 손재주 또한 좋은 자들을 각별히 관찰하고.”

“어디에 쓰실 생각으로 그런 자를 찾으시는 것입니까?”

“여건만 되면, 의과대학에 그들을 보내고 싶네.”

“의과대학에 말입니까?”

“그래.”

이주민 대표들의 반응은 반반이었다.

반은 호기심.

나머지 반은 왜 의과대학을 만드는지 부정적인 시선을 보냈다.

‘아직도 조선 물이 덜 빠졌구먼.’

현대 한국이나 미국에서 의사의 지위는 높다.

돈도 많이 벌고 사회적으로 인정도 받으니까.

하지만 1900년대 조선에서의 의사 신분은 생각보다 그리 좋지 않았다.

대다수는 중인들이나 하던 직업이라 생각했던 것.

이민을 온 지 아직 2년도 채 안 되었기에, 대다수는 의사가 얼마나 대우를 받는지 모르고 있다.

‘한국인은 손기술 남다르다. 의사가 되면 다들 대성할 거야.’

더욱이······ 의사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명망 있는 인사를 한인 의사가 살린다면, 내 향후 사업에서도 도움이 될 것이다.

‘유대인이 금융 쪽을 먹었다면······.’

한국인은 의료 쪽을 먹게 유도하고 싶다.

그게 내 소망이었다.

‘교민들의 힘이 강해질수록 나의 힘도 강해진다.’

그렇기에 아낌없이 지원할 생각이다.

특히 의대 쪽은 더욱더.

“한쪽에 너무 편중되는 것은 별로 좋지 않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자네 말도 맞네. 사람을 살리는 것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이놈의 돈을 벌어야 하지 않나?”

미국은 자본주의 사회다.

나는 돈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우리가 모은 자금이 향후 대한제국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도 강조했다.

“그러니 장사 수완이 제법 있는 자들 역시 계속 주시해 보게나. 내 도울 수 있다면 도울 것이네”

“예.”

“아······ 그리고.”

나는 한 가지를 강조하며 그들에게 주의사항을 전달했다.

“평이 나쁜 이들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하게. 이를 알음알음 교민 사회에 퍼트리도록 하고.”

중간관리자들.

난 그들이 같은 동포를 착취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런 자들을 지원하고 싶진 않았기에, 이를 언급하며 경고한 것이다.

“전하를 뵙고자 하는 이들이 밖에서 대기 중인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만나야지. 한 명 한 명 전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겠네.”

바깥 상황이 제법 정리된 모양이다.

나는 최현우와 유길준의 안내를 받으며 다시금 광장으로 향했다.

* * *

제법 어린 이민자들의 모습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그들과 이야기할 수 있다는 설렘.

그와 동시에 나는 살짝 우려도 되었다.

쓸 만한 어린싹들이 과연 남아 있을까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시기가 아쉽군.’

지금은 8월 초.

미국의 대학들은 대부분 9월에 개강한다.

하와이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는 대략 보름에서 이십 일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거기서 미대륙 동서를 가로지르는 횡단 열차를 타고 동부까지 또 이동하면 보름이 더 걸리고.

만약 지금 떠난다면 수강 철회 기간을 건너뛴다고 해도 제시간에 도착하기 빠듯했다.

그 때문에 이미 두각을 나타내고 있던 젊은 인재들은 전부 다 하와이를 떠났을 것 같았다.

“전하.”

“이쪽이옵니다.”

예상대로, 고만고만한 인사들이 내 앞에 나타났다.

백여 명이 넘는 이들을 소개받았지만, 안타깝게도 쓸 만한 인재는 영 보이질 않았다.

“전하.”

응?

누군가가 나를 불러세웠다.

김규식이다.

“전하께 이자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올해 초에 조지워싱턴대학에 입학한 조선의 수재입니다. 다행히도 아직 떠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자네는······.”

고개를 돌리니 익히 아는 얼굴이 내 앞에 보였다.

다만 이름은 생각나지 않았다.

이강의 기억 속에선 아주 잠깐 스쳐 지나갔던 인물이었기에 차마 이름까진 기억하지 못한 것 같았다.

“자네는 뭘 하는가? 어서 인사드리지 않고.”

깔끔하게 생긴 남자가 고개를 숙이며 내게 인사했다.

그 후, 자기소개하며 제 이름을 내게 밝히기 시작했다.

“이승만입니다. 만나서 영광입니다. 의왕 전하.”

< 하와이에서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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