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16화 (16/294)

< 데뷔 >

새크라멘토 분지에 자리한 옥토를 헐값에 계속 사들였다.

중개인 데이비드를 통해 이를 시행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이 지나자 매입하는 속도가 눈에 띄게 확 줄어들었다.

‘설마······ 눈치를 챘나?’

이쯤 되면 여기저기 소문이 날 만도 했다.

동양에서 온 웬 남성 하나가 새크라멘토 인근 땅을 무자비하게 쓸어 담고 있었으니까.

기존 땅 주인들은 ‘이 인근에 금이라도 발견되었나?’ 하고 제 손에 땅문서를 움켜쥔 채 돌아가는 상황만 주시할 테지.

‘하여간 눈치 빠른 것들은······.’

미국의 땅 주인들은 원래 땅을 쉬이 팔지 않았다.

현대는 몰라도.

적어도 이 시대는 그랬다.

‘그래서 현재 미국 농민들의 대다수는 소작농이거나 농장주에게 고용된 인부들이었지.’

그나마 내가 사들인 땅이 황무지라서 이만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나는 지도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그래도 생각보다 많이 샀고, 내 명의의 땅들이 한데 모여 있어서다.

“전하.”

“그래. 다녀왔는가?”

“예.”

나는 땅을 사며 동시에 다른 일도 함께했다.

데리고 있는 조선인들에게 근로 의욕을 잔뜩 불어넣고자 따로 손을 쓴 것이다.

앞으로 이 땅에 농사를 짓는 이들은 내가 아니고 바로 그들이니까.

“이주민들은 어찌 반응을 보이는가?”

“냉혹한 현실을 그들도 느꼈을 것입니다. 더불어 전하께서 얼마나 자애로우신지 다들 깨우쳤겠지요.”

나는 내 사람들을 굳이 내 집에 가두지 않았다.

바깥에 둘러보게 했다.

말을 할 줄 아는 이들을 하나씩 붙인 후, 해당 그룹 사람들과 함께 지내게 하며 미국에 막 도착한 이주민들이 어떤 생활을 하는지 직접 관찰하게 했다.

‘내 밑에서는 이러한 점을 못 느꼈겠지만, 당장 대문을 나서기만 해도 아주 절실하게 와닿겠지.’

계약 조건부터 굉장히 냉혹하다.

일단 영주권이 없으면 소작 계약을 할 수가 없다.

최소 2년, 많으면 5년 동안.

월 15달러라는 박봉을 받으며 노예처럼 일해야 미국 땅에서 살 권리가 생긴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러한 절차를 생략하고, 바로 소작 계약을 하고 있었다.

머리가 좀 돌아가는 이라면 지금 그들이 얼마나 좋은 조건으로 일하는지 알겠지.

‘소작 계약도 그래. 백인 땅 주인들 정산 비율을 죄다 9 대 1을 부르고 있지 않은가?’

나는 다르다.

물론 기본 계약은 여타 땅 주인들과 같았다.

9 대 1.

내가 9고, 저들이 1.

같은 동포끼리 너무하는 것 아니냐 항의할 수도 있겠지만.

동일 선상에서 이를 놓고 보면 다들 날 택할 거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을 때, 한인 업장의 시급이 일반 업장보다 더 짠 이유도 생각해 보면 언어 때문이니까.

‘나는 여기에······.’

성과에 따라 정산 비율이 유동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점을 이주민들에게 당근으로 제시했다.

9 대 1 정산비는 하위 30%까지, 저성과자들에게만 적용된다.

평균보다 못하면 8 대 2.

상위 30%에서 50% 사이라면 7 대 3.

그다음부터는 6 대 4.

그리고 1% 안에 들면 4.5 대 5.5로 변경된다.

가장 생산성이 높은 인물은 땅 주인보다 더 많이 가져간다는 말.

‘당장 손해 보는 행위일 수도 있으나, 생산성을 높이는 데는 이만한 방법도 없지.’

언뜻 보면 내가 손해를 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딱히 그런 것도 아니었다.

일단 내가 산 땅만 해도 그렇다.

현재는 황무지이지만, 그 땅이 농장이 된다고 생각해 봐라.

땅값이 크게 오를 테다.

캘리포니아의 대표적인 옥토인 델타 지역만 해도 그렇다.

같은 땅인데 내가 산 땅보다 10배 이상은 비싸지 않은가?

‘헐값에 산 황무지다. 그 땅에서 쌀이 쏟아진다면 어떻게 될까?’

건물 임대료가 상승하면, 그 건물의 값이 오르는 것처럼.

땅값 역시 그렇게 되겠지.

델타 지역의 9할까지만 올라간다 해도 15배는 버는 셈이다.

반만 따라와도 무려 8배 이상은 남겨 먹고.

결코 손해 보는 행동이 아니었다.

‘언제, 어떻게 돈이 필요할지 모르니까.’

빠르게 땅값을 올려놓으면 좋지.

그래야 급할 때도 좀 더 비싸게 팔 수 있을 테니까.

“더욱이 전하께서는 현지인들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저들을 돌봐주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렇지.”

“이 사실을 다들 깨달았기에 투덜거리던 일부의 무리가 조용해졌습니다.”

어딜 가나 불평불만을 숨 쉬듯 내뱉는 관심사병들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자칫 작은 불똥도 초원 전역을 다 태워 먹을 때까지 번질 수 있기에.

나는 현재 자신의 위치를 그들에게 알려줌으로써 이를 해결코자 했다.

“아······ 내 그대에게 한 가지를 당부하고 싶네.”

“말씀하십시오.”

“나는 내 성과를 올리기 위해 남의 농사를 방해하는 행위를 절대 용납할 수 없네. 그대는 이를 잘 지켜봐야 할 것이야.”

그것은 나에게도 손해인 행위니까.

서로서로 경쟁하며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소작농 하나가 자기 살자고 내 다른 농지의 생산성을 저해하는 행위는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지난번부터 계속 강조해 온 것을 잊지 말라 전하게. 이제부턴 여기 있는 동무들이 그대들의 가족일세.”

“알겠습니다.”

최현우는 보고를 마치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

“아······ 그나저나.”

그때, 무언가가 떠올라 급히 최현우를 붙잡았다.

“그 일을 어찌 되어 가는가?”

“전하께서 제안하셨던 농업법인 말입니까?”

쌀 산업은 여러 산업이 모인 집합체라 볼 수 있다.

곡물을 재배하는 농장.

이를 수매하여 껍질을 벗겨 내는 가공업체.

도정된 쌀을 보관하는 창고업체.

마지막으로 국내외로 수출하는 유통기업까지.

나는 농장만 운영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산업은 몰라도, 미국 내 쌀 산업은 현재 경쟁자가 없는 상황이기에 일단 내가 먼저 선점코자 했다.

“여기 있습니다.”

최현우가 서류 뭉치를 내게 건넸다.

동시에 제일 앞에 비어 있는 공간을 가리키며 내 의사를 물어보았다.

“대충 서류는 다 작성했습니다. 남은 것은 회사명을 짓는 것만 남았사옵니다. 혹시 따로 생각해 두신 명칭이 있으십니까?”

“칼 그레인 컴퍼니는 어떤가?”

캘리포니아의 앞에 세 글자인 CAL.

그리고 곡물을 뜻하는 그레인을 합친 명칭이다.

내가 제시하자, 최현우가 빈칸에 이를 적었다.

“아······ 더불어 산하에 칼 라이스, 칼 위트, 칼 콘 등 여러 자회사를 두면 좋겠군.”

아무리 생각해도 직관적인 브랜드가 최고다.

예를 들면 US 스틸처럼.

‘US 라이스는 이미 있단 말이지.’

뭐, US 라이스는 미국 쌀이라는 뜻이니까.

너무 강렬하긴 하다.

캘리포니아에서 생산되는 대다수 쌀은 미국에서 소비되는 것이 아니고 한국과 일본으로 수출될 것이다.

그렇기에 이런 뻔한 명칭은 별로 좋지 않다.

그들이 이 제품을 구매했을 때, 무언가 외산 느낌이 너무 많이 나기 때문이다.

“서두르지 말고 꼼꼼히 처리하도록. 어차피 내년 봄부터 농사가 시작되지 않는가?”

“명심하겠습니다.”

* * *

미국에서 가장 큰 명절 중 하나로 꼽히는 땡스기빙 데이(Thanksgiving Day)가 다가왔다.

조선어로 번역하면 추수감사절이라 칭할 수 있겠네.

이날의 유래는 청교도 이주민들이 미대륙에 막 정착할 때 시작됐다.

한때 아사 직전까지 갔던 그들은 신대륙에 딱 맞는 새로운 농사법을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서 이전받으면서 구사일생하게 된다.

그 후 드디어 곡식을 추수하게 되자, 그들은 만세를 외치며 신에게 감사 인사를 올렸다고 한다.

바로 그날이 추수감사절이다.

나는 이날의 유래를 생각해 보며, 막 사들인 땅들의 지도에서 내가 사들인 땅을 쳐다보았다.

‘그만큼 현지 땅에 맞게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한데······. 초기 청교도 이주민들도 곡식 재배에 어려움을 겪었으니 말이야.’

나는 미래를 잘 알고 있다.

미래대로 역사가 흘러간다면, 캘리포니아 지방에서의 벼농사는 분명 성공하겠지.

다만, 무언가 보험 장치가 필요했다.

자칫.

자연재해나 인간의 실수로 한해 농사가 통째로 망할 수도 있으니까.

‘제일 좋은 것은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는 건데······.’

농업 보조금이야말로 최고의 안전장치라 할 수 있다.

현대 미국도 미국 농가에 보조금을 주며 농업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게 물심양면 도왔다.

‘하지만 이 시대에 가능할까?’

알기로 보조금 정책은 대공황 이후부터 시작되었다던데.

지금은 자본주의가 극으로 달리고 있는 시기였다.

‘일단······ 인맥부터 필요해.’

정치인들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내게 필요한 법을 만들든가, 고치든가 하지.

‘지금부터 서서히 인맥 관리를 시작하자.’

그들과 만나기 위해서는 접점이 필요했다.

이에 머리를 또다시 굴려 보았다.

“자네, 이리 와 보게.”

내 재정을 담당하는 우현식이 살짝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본다.

어디다 돈을 또 쓰려나 경계하는 눈빛이다.

“현재 가용할 수 있는 현금이 얼마나 남았지?”

“당장 쓸 수 있는 은행권은 약 오십만 달러 정도 되옵니다.”

땅을 사는 데 돈을 많이 쓰긴 했네.

토지를 담보로 대출을 받을 수 있긴 했지만, 대출 이자를 생각하면 현금을 먼저 쓰는 것이 나았기에 나는 우현식에게 따로 돈을 챙기라 명했다.

“일단 1만 달러 정도를 주지사 선거캠프에 보내게. 현금으로.”

내년 11월에 주지사 선거가 있다.

모든 정치인은 재선을 목표로 뛰는 성향이 있다.

이는 조지 파디 역시 다르지 않을 것.

그렇기에 지금쯤 잔뜩 돈독에 올라 있을 거다.

미국의 선거는 반쯤 돈에 의해 결정되니까.

후원금을 얼마나 많이 걷고.

그것을 얼마나 많이 선거에 투입하냐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

물론 대재해나 공황 같은 거스를 수 없는 선거 이슈가 터진다면 또 모르지만 말이다.

“1만 달러나 말입니까?”

우현식이 울상을 지었다.

그는 내 재정관리인.

나의 돈이 엄한 놈에게 들어간다는 생각에, 살짝 분한 모양이다.

“일주일 뒤 한 번 더 보내고. 일주일 뒤에 또 보내게.”

“예? 그럼 후원금으로만 총 3만 달러를 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 나도 알고 있네. 나 또한 산수를 할 줄 아니까.”

우현식이 잠시 멈칫했다.

진짜 내 명령을 수행해야 하냐고, 무언의 행동으로 내게 항의를 한 거다.

하지만 내가 눈을 부릅뜨자 이내 저항하는 것을 멈추곤 금고로 떠났다.

‘3만 달러면 싸지.’

주 정부의 우두머리를 만나야 하는데, 이 정도 금액은 못 쓸까?

나는 팔짱을 끼며 잠시 눈을 감았다.

* * *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현재의 캘리포니아 주지사인 조지 파디에게 후원금을 보냈다.

곡물회사인 칼 그레인.

재미 한인 단체인 합성협회.

그리고 내 이름.

따로 세 번이나 나눠서.

‘이쯤 했으면 연락이 올 때가 되었지.’

현대인으로 살 때, 나는 틈틈이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를 많이 시청했다.

BJ들이 쏘는 실시간 방송도 많이 보았다.

현재 상황은 유튜브 실시간 방송에서 큰 고래는 아니어도 새끼 고래 정도가 나타난 상황과 비슷하다 볼 수 있다.

‘조지 파디 주지사는 분명 내게 연락을 취할 거다.’

느긋한 마음으로 조지 파디의 연락을 기다렸다.

그러기를 사흘.

“뽀스. 주 정부에서 공문이 내려왔습니다.”

맥스가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 주위를 기웃거렸다.

“뭐라고 적혀 있습니까?”

숨길 것도 없었기에, 나는 공문을 내려놓으며 일행들에게 공문의 정체를 알렸다.

“초대장일세.”

“초대장이요?”

“그래.”

안에 적혀 있던 상세 내용 또한 내 입으로 말해 주었다.

“농무부 연방 관리가 다음 달에 캘리포니아를 들른다더군. 그때 한차례 연회가 열린다고 하는데······ 그 자리에 날 초대한 모양일세.”

당장 만나자고는 하지 않았다.

왜냐고?

그야 수상하니까.

왕자인 것도.

처음 들어 보는 회사도.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몰랐던 한 나라의 교민 단체도.

처음 듣기에 정보를 좀 수집할 모양인 듯했다.

괜히 나를 만났다가 내 기분만 크게 잡치게 한다면 경쟁자에게 내가 넘어갈 수도 있었기에 조심스럽겠지.

‘흠······ 시간을 끌며 일단 나와 관련된 정보부터 모으시겠다.’

이에 옆에 있던 맥스가 살짝 분통을 터트렸다.

“아니. 그놈에게 얼마를 후원했는데······ 겨우 초대장 하나로 끝이란 말입니까?”

그러게.

3만 달러, 현대로 따지면 60만 달러를 썼는데 겨우 초대장 하나만 받긴 했네.

물론.

‘일반인들에겐 겨우 초대장이지만. 이 초대장의 가치를 안다면 생각이 달라지겠지.’

어떻게 사용하냐에 따라 본전을 충분히 뽑을 수도 있다는 말.

로비는 대상과 안면을 트는 것부터 시작한다.

시작이 반이라고 이 행위는 굉장히 중요했기에, 대상에게 자연스럽게 접근하는 것이 중요했다.

“너무 분합니다. 그놈에게 달러를 쑤셔 박았는데. 보스가 이런 취급을 받다니.”

맥스가 가슴을 퉁퉁 치며 제 형을 바라본다.

아론도 이번만큼은 생돈을 날렸다 생각하는지 얼굴이 매우 어두웠다.

나는 그런 둘에게 이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설파했다.

“원래 위에 높으신 공무원들이 다 그렇네. 우리 같은 이들이 열심히 그 더러운 뒷구멍으로 달러를 쑤셔 줘야 겨우 한마디 할까 말까 하지.”

물론 그놈 입에서 나온 말 한마디가 시장을 좌우하긴 하지만.

이 둘이 아직 그 가치까지 알진 못했기에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았다.

‘그보다 연방 공무원의 행차라······ 그것도 농무부 관리가 이곳을 방문한다?’

연방정부 건물은 워싱턴 D.C.에 자리하고 있다.

엉덩이 무거운 이들이 그곳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이곳까지 방문한다는 것은 다 목적이 있어서겠지.

한참 성장 중인 캘리포니아의 농업을 위해 무엇을 해 줄 것이 있나 살피러 오는 모양인데······.

이거 잘하면, 손쉽게 내가 원하는 바를 얻을 수도 있겠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다음을 준비했다.

다음 달에 있을 파티에 입고 갈 옷을 사야 했기 때문이다.

< 데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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