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구 or 선지자 >
샌프란시스코에 겨울이 찾아왔다.
서울처럼 기온이 영하까지 내려가지는 않지만, 그래도 겨울은 겨울.
지중해성 기후라 비도 종종 오기에,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은 바깥으로 나오는 것보단 집 안에 머무르는 걸 더 선호했다.
“엘리자베스, 좀 늦었지?”
“어머······ 요안나. 내가 좋아하는 피칸 파이를 만들어 왔네. 고마워.”
추운 겨울이지만, 샌프란시스코의 사교계는 어느 때보다도 뜨거웠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
외출하기 안 좋은 날씨라고 가만히 집에서 홀로 있던가?
끼리끼리 모여 수다를 떨지.
그렇기에, 돈 있는 자들은 파티를 열며 연말·연초를 보내고 있었다.
“엘리자베스 그 이야기 들었어?”
“무슨 이야기?”
해가 바뀌었음에도 샌프란시스코 사교계를 관통하는 주제는 하나.
바로 동양에서 온 왕자 이야기였다.
“아······ 그 대한제국인가 어딘가에서 왔다는 남자?”
“그래. 나 그제 그 사람 봤다?”
“어머. 요 계집애. 벌써 왕자님하고 대화를 나눈 거야?”
“그건 아니고. 그냥 멀리서 살짝 보기만 했어.”
여성들은 이강에 관해 이야기하며 자신의 미래 배우자를 상상했다.
아, 물론 여자들만 이강에 관해 잡담하는 것은 아니었다.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는 주류 남성들도 이강에 관한 이야기를 제법 했다.
물론 여성들의 대화 주제와는 조금 결을 달리했다.
“글쎄. 내가 듣기론 요즘 그 인간 돈에 쪼들리고 있다던데.”
“그 왕자 녀석?”
“그래.”
“어째서? 듣자 하니 재산이 200만 달러가 넘는 거부라며.”
연회장 입구에서 이강에게 어설픈 조롱을 했다가 역으로 당한 타일러.
그는 자신의 무리에게 이강에 관한 안 좋은 소문을 은근히 흘렸다.
“땅을 잘못 샀다더군.”
“땅을?”
“농사를 짓는다면서 새크라멘토 분지에 거액을 투자한 모양이네.”
“나도 들었네.”
타일러의 주장에 찰스가 힘을 실었다.
그는 캘리포니아 전역에 거대한 땅을 가진 대지주 가문의 일원이었다.
찰스는 타일러의 말을 이어 가며, 이 자리에 모인 일원들에게 자신이 아는 사실을 알렸다.
“그, 주지사님께서 연방정부에서 오신 분을 위해 파티를 열지 않았던가? 그 파티에서 그자가 직접 말했다더군. 우리 아버지께서 분명 똑똑히 들었다고 하셨어. 팔푼이처럼 새크라멘토 분지에 있는 땅을 사들였다고 말이야.”
“어머! 거긴, 토양에 수분이 많아서 밀이나 옥수수가 잘 안 자라는 땅 아니에요?”
저음의 목소리가 가득한 연회장 한편에서, 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요안나였다.
찰스가 한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며, 고개를 돌린 후 그녀의 손에 입맞춤했다.
“오! 요안나. 내 사랑. 그대도 땅에 관심이 많나 보구려.”
“곁다리로 배웠죠. 저희 아버지도 대농장을 운영하잖아요.”
“아······ 그렇군.”
“아무튼, 왕자가 산 땅이 어떤데요?”
“아, 그 땅. 토질이 너무 물러서 지금까지 다들 놀리고 있었지. 연방정부 차원에서 관개수로를 보수한다고 해도, 밀 농사 짓기에 적합한 땅은 아니야.”
“어머······ 신고식을 아주 제대로 당했나 보네요.”
“그렇겠지. 얼굴은 반반해 보이던데 투자 머리는 영 꽝인가 봐.”
“왜? 대학도 나왔다면서요?”
요안나가 더 알고 싶다는 듯 계속 묻자, 타일러가 두 남녀 사이를 끼어들며 이강을 비난했다.
“뭐 왕족이야 다 똑같지 않겠습니까? 대학도 기부금 내고 들어갔겠지요.”
“그래도 동양인치고 영어는 제법 잘했던 것 같은데. 오히려 수준급이지 않았나요? 더욱이, 이강 왕자는 그곳에 쌀농사를 짓는다면서요. 쌀은 밀과 달리 물이 많아야 하지 않나요?”
요안나가 이강의 입장에서 항변해 주었지만, 아무도 그녀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안 그래도 동양인 하나가 갑자기 툭 튀어나와 심기가 불편했는데, 남의 불행은 자신의 행복이라고 다들 이 상황을 즐긴 거다.
“땅 판 놈은 참 횡재했군.”
“어이, 타일러. 늦지 않았네. 왕자가 바보같이 그 주위 땅을 계속 사들이고 있다더구먼.”
“진짜?”
“그래. 주지사가 소개해 준 주변 지인들이 그리 말리는데도 계속 그러는 것을 보면 보통 고집이 아닌 것 같네.”
찰스가 앞선 대화들을 정리하며 타일러에게 물었다.
“그래서······ 그 이강인가 뭔가 하는 왕자가 땅들을 사느라 그 많은 돈을 다 썼다는 건가?”
타일러가 마치 너희들에게만 이 비밀을 이야기하겠다는 눈빛을 보냈다.
그 후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내 매형이 웨스트 뱅크에서 일하지 않나?”
“그렇지.”
“그곳에 웬 이방인이 그 왕자와 함께 나타났다더군.”
타일러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다음 말을 했다.
“우리 매형, 자네들도 잘 알 거야. 이 동네 사람들 얼굴을 죄다 꿰고 있지 않나?”
“맞아. 전에 나도 한번 본 적이 있지.”
“그래. 그런 매형이 처음 보는 얼굴이라 말했네. 확실히 외지인일 거야. 아무튼 얼마인지 밝힐 수는 없지만, 왕자 앞으로 거액을 추가 예치하고 돌아갔다 했네.”
응?
일행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 말은 즉, 이강의 재산이 더 늘었다는 것이 아닌가?
“이해가 안 가는군. 자네 말대로라면······ 왕자는 더 부자가 된 것이 아닌가?”
이에, 찰스는 무언가 타일러의 숨은 뜻을 알겠다는 표정을 지어 댔다.
“아니군. 돈이 다 떨어졌다는 말이군. 엄한 놈들에게 그리 땅을 사더니 빈털터리가 되어 본국에서 사람이 온 모양일세. 하하하!”
이들은 이 돈의 정체가 고종의 비자금이라는 것을 몰랐다.
그랬기에 이강이 추가로 왕실에서 지원을 받을 줄로 착각했다.
“아······ 생활비를 추가로 주러 왔단 말인가?”
“오!”
타일러가 찰스의 어깨를 두들기며 대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네 추리력이 참 대단한데? 내가 말하기도 전에 이를 맞추고 말이야.”
타일러는 이 돈 역시 조만간 떨어질 것이라 믿었다.
그간의 씀씀이로 보면 조만간 이강은 빈털터리가 되리라 믿었다.
“아무튼 그 왕자, 아니지. 그 호구. 요새 파티도 안 여는 걸 보면 허리띠를 잔뜩 졸라매는 모양일세.”
요안나는 한참 왕자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살짝 따분한 표정을 지어 댔다.
또래 무리가 이강을 헐뜯는 데만 집중해서 살짝 관심이 떨어진 것이었다.
“요안나”
”응?“
엘리자베스가 요안나의 팔을 끌며 자신이 있는 곳으로 불렀다.
“왜 불렀어? 무슨 재미난 일이라도 있어?”
“혹시 그 소문 들었어?”
“뭔 이야기?”
“네게만 말해 주는 건데······.”
엘리자베스가 작은 목소리로 요안나에게 이강에 관한 새로운 소문을 전달했다.
“어머······ 그 동양에서 왔다는 남자가 유부남이었어?”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이젠 더는 아니잖아. 본국에 있던 부인이 세상을 떠났대도?”
요안나가 잠시 당황했다.
왕자의 부인이 죽어서 뭐.
생전 만나 본 적도 없는 그녀를 위해 애도의 표정이라도 보여야 하나 잠시 망설였던 거다.
“안된 일이네. 그래서 그 왕자가 요즘에 파티장에 안 나타나는 건가? 돈이 떨어져서 그런 게 아니고?”
“너 내가 말하는 포인트를 아직 이해하지 못했구나.”
엘리자베스가 자신의 관자놀이를 검지로 치며 요안나에게 생각 좀 하라는 제스처를 보였다.
“으이고, 화상아. 지금 왕자 옆자리가 비었잖아.”
“응? 어머!”
이에 요안나의 눈이 커졌다.
부인을 추모해야 하나 싶던 생각은 그녀의 머릿속에서 단번에 사라졌다.
“떠난 부인을 추모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언젠가 다시 이 사교계로 돌아오지 않겠어?”
“하긴, 그렇겠지?”
이 시대의 상류층 여성들, 더 나아가 평범한 일반인 여성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된 로망이 있다.
바로 왕자의 부인이 되어서 왕비로 신분 상승을 하는 거다.
미국은 공식적으로 왕정이 아닌 민주정.
하지만 본래 꿈이란 건, 불가능할수록 더욱더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나?
“조만간 돌아오실 테니, 미리미리 준비해야지.”
“그렇긴 한데.”
동양에서 온 왕자라곤 해도 어찌 되었든 왕자.
그렇기에 그녀들은 현재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상상 속의 동물 같은 왕자의 눈에 들기 위해 눈이 뒤집혔다.
“우리랑 피부색이 다른데, 서양인이랑 재혼하려고 할까?”
요안나의 걱정에 엘리자베스가 화답했다.
“듣자 하니 전에 동부에서 웬 대학생이랑 연분이 났나 봐. 그 때문에 그 여자랑 결혼한다 만다 말이 많았는데······ 글쎄 걔가 백인이었대.”
“진짜?”
“그래. 왕자님의 지난 과거를 보면 충분히 우리에게도 기회가 있지 않을까?”
요안나와 엘리자베스는 서로 잠시 눈을 감으며 머릿속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했다.
‘왕자님.’
‘아, 나의 왕자님.’
아, 물론 그녀들 머릿속의 이강 옆에 있는 인물은 각기 달랐다.
‘우리는 아니고 나지.’
‘아니야. 주인공은 나야.’
그렇게 이강에 관한 소문은 일파만파 퍼져 나갔다.
진실과 거짓이 뒤섞인 채로.
* * *
석 달 전. 주지사가 초대한 연회에 들린 적이 있다.
그 후 몇 번 더 초대를 받아 캘리포니아 유력인사들과 친분을 쌓았다.
“전하. 초대장이옵니다. 캘리포니아주 정부 4선 하원의원인 리처드가 전하께 저녁을 대접하고 싶다 합니다.”
“일단 보류해 두도록.”
초대장을 보낸 다수는 정치인이었다.
선거비 후원을 목적으로 나에게 접근하고자 연락했겠지.
나는 영향력 있는 주 의원이나 시장, 주지사급이 아니면 다 쳐 냈다.
엄한 데 돈을 쓸 필요는 없었으니까.
“올슨 씨가 지난번에 제안한 무역업 투자 건은 어떻게 할까요?”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생각해 보겠다 전하게.”
그다음은 역시도 내 돈을 바라고 연락한 이들이었다.
제 사업에 투자 좀 하라고, 아기 새처럼 아가리만 쫙 벌린 채 밥 달라고 칭얼거리는 이들.
후-
그놈들 때문에 귀찮다.
물론 투자는 계속해야 하는 일이기에 정보를 이리 물어오는 것은 고맙지만.
문제는 다수가 사기꾼이었다는 거다.
휴-
돈이 많다고 소문이 나니, 이런 똥파리들이 꼬이네.
‘새크라멘토 분지 때문에 호구란 소문이 널리 퍼진 것 같은데······ 좀만 있어 봐라.’
분위기가 반전되면 그 효과는 배가 되겠지.
지금은 ‘호구’라 놀리며 손가락질하나, 1년만 지나면 부동산의 신이 될 것이다.
“전하. 워싱턴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극소수 영양가 있는 이들도 나를 찾긴 했다.
이런 이들과 연을 맺기 위해, 내가 거액의 돈을 파디 주지사에게 후원했지.
“에이든, 그자에게서 연락이 온 것인가?”
“예. 그렇습니다.”
“그자가 뭘 원하는가?”
“올봄에 심을 벼들 말입니다. 어떤 종자를 사용할지 묻고 있습니다. 더불어······ 일본이 중국에 어떤 야욕을 품고 있는지 관련 자료를 전달해 준다면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될 거라고도 전보에 적혀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지원하게. 영업 비밀이 아닌 한 죄다 알려주고.”
“예. 그나저나 농림부 장관과 약속은 언제로 잡으시겠습니까?”
제임스 윌슨 이 양반도.
성질머리가 급하네.
한가해지면 어련히 내가 먼저 연락을 할 텐데 말이다.
“하반기쯤 한번 찾아가겠다고 전하게. 지금은 바빠서 힘드네.”
“예. 알겠습니다.”
진짜, 몸이 두 개였으면 할 정도로 할 일이 쌓여 있었다.
“소살리토 지역에 건설 중인 저택은 어찌 되어 가는가?”
새크라멘토 분지의 땅도 계속 사며 동시에 샌프란시스코의 대표적인 부촌이라 할 수 있는 놉 힐 지역의 땅도 거둬들이고 있다.
더불어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잠시 피할 장소 또한 마련해야 했고.
나는 샌프란시스코 건너편인 리처드만 인근에 자리한 소살리토 지역에 또 다른 저택을 건설하고 있었다.
여름철 사용할 별채 겸 이번 대재앙 때 몸을 피할 피신처로 낙점했기 때문이다.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있습니다.”
“빨리 완성하는 것보다는 안전하게 짓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하네.”
다가올 4월에 샌프란시스코 인근에 대지진이 찾아온다.
자연재해 뒤에는 항상 폭도들이 생겨나기에, 내 재산과 내 사람들을 지키려면 따로 무언가를 준비해야 했다.
‘금문교가 아직 완성이 안 되어서······ 소살리토 지역은 보안이 좋다. 시가지랑 떨어져 있고, 마을 입구도 하나라 방어하기가 좋지 않은가?’
더불어, 소살리토 부두에서 배로 이동하면 샌프란시스코에 바로 도착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나는 이 지역에 내 피신처를 열심히 짓고 있었다.
‘허망하게 죽고 싶지는 않으니까. 내진설계대로 지어야지.’
더불어 현재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한인들의 수도 파악하라 일렀다.
우리 집에 머물며 일하는 이들이 다수지만, 도시에 사는 다른 한인들도 제법 되었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모든 시민을 구할 수는 없지만, 내 영향력이 닿는 이들의 목숨은 한 명이라도 더 구하고 싶었다.
“전하. 보험중개인이 오늘 오후쯤에 이 집으로 방문한다고 합니다.”
대지진이 일어나면, 이곳은 백 프로 불에 타 전소될 것이다.
이에 나는 내 재산을 지킬 방책을 연구했는데, 그 고민의 결과는 바로 화재보험이었다.
“자네가 알아서 잘 처리하도록. 오늘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확인하기 어려우니까.”
“예.”
나는 밀린 일부터 다 끝낸 후, 접견실로 향했다.
손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 * *
오늘 만날 인물은 잭 마일로라는 사내였다.
주지사와의 만남에서 샌프란시스코 시장 다음으로 소개받았던 인물.
“왕자님. 무탈하십니까?”
“이쪽으로 오게나.”
첫 만남 이후로 난 잭 마일로와 서너 번 더 만났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유력인사 중 나에게 가장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다.
『대한제국에 그리 큰 금광이 있다면서요? 제법 많은 광산이 조선 반도에 자리하고 있다지요?』
일명 골드킹이라고 불리는 그가 내게 적극적인 이유는 하나겠지.
자신의 관심사에 내 신분이 딱 부합하니까.
“정말 괜찮으십니까? 소식을 들었습니다. 얼마나 상심이 크십니까?”
“이리 위로해주니 고맙네.”
피곤한 내색을 최대한 감추고자 했으나, 최근 일이 많이 생겨 얼굴에 눈그늘이 가득 져 있다.
잭 마일로가 이를 눈치채곤 애도의 말을 전했다.
“힘들지 않습니까? 저도 제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한 이틀간 끼니를 걸러서, 이 통통한 뱃살이 한때 홀쭉해졌지요.”
“글쎄······ 이런 일은 시간이 약이지 않은가?”
“하긴. 그렇지요.”
내 본부인은 이강이 13살 때 결혼한 여성이었다.
그 후 6년간 유학을 떠나며 생이별한 사이.
나는 그녀와 일면식도 없었지만, 이강의 기억이 내 뇌리에 조각조각 남아 있었기에 기분이 살짝 묘했다.
“술이나 한잔하지.”
“술 좋지요. 혹, 재떨이 있습니까? 오늘은 시가가 당기는군요.”
상남자.
마초의 나라답게 그 독한 시가를 퍽퍽 피운다.
잭 마일로가 내게도 권했지만, 나는 손사래를 쳤다.
말년에 폐암으로 고생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아! 왕자님. 왕자님께 힘내시라고 제가 선물을 하나 가지고 왔습니다.”
잭이 고용한 인부들.
그들이 무언가를 낑낑 옮겨 댄다.
겉에 씌워진 베일을 벗겨 보니 웬 동물 하나가 박제되어 있었다.
’수사자?‘
잭 마일로가 으스대며 이 선물이 어디서 났는지 밝혔다.
“작년에 제 동생이 아프리카에 놀러 갔다가 글쎄 이놈을 사냥했지 뭡니까? 어떻습니까? 근사하지 않습니까?”
잭 마일로는 이민자 출신으로, 광산 인부에서 재벌이 된 자였다.
그렇기에 본성이 매우 거칠었다.
알게 모르게 어릴 때 삶이 그의 행동에 배였기 때문이다.
본인도 이를 잘 알고 있어 스트레스를 받는 듯했으나, 잘 고쳐지진 않는 모양이었다.
그는 호쾌하기 웃으며 박제된 사자 근처로 다가갔다.
“이 수사자의 기운을 받아 하루빨리 기운을 회복하십시오.”
“고맙네.”
“아! 제가 듣기로 수사자는 여러 암사자를 거느린다던데, 원하신다면······.”
잭 마일로가 무슨 말을 하려다가 말고 뒷말을 흐렸다.
대충 뒷말이 예상되었지만, 그런 농을 할 자리는 아니었다.
지켜보는 눈이 많으니까.
우리 집에는 내 아내를 몇 년간 모셨던 고용인도 존재했기에, 나는 그의 속뜻을 최대한 모른 척했다.
“뭐, 왕자님께서 어련히 잘하시겠지요······.”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긴. 그래, 오늘은 무슨 연유로 날 찾아왔는가?”
“왕자님께서는 여전히 성질이 급하십니다. 하긴, 그러니 그리 급히 그 못난 땅을 다 사들였겠지요.”
잭 마일로는 항간에 떠돌고 있는 호구설을 언급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품 안에 있는 무언가를 내게 보였다.
“이것 때문에 왔습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무언가가 잔뜩 적힌 종이 쪼가리였는데, 글씨가 너무 작게 적혀 있어 집중하기 위함이었다.
“이거······ 주식문서가 아닌가?”
< 호구 or 선지자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