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23화 (23/294)

< 대지진 >

사람은 기쁜 일보다 슬픈 일을 더 잊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현대 한국인들은 다른 공휴일은 잘 몰라도, 한국전쟁이 일어난 날만큼은 다들 알고 있었다.

매년 6월 25일을 기리며 순국한 영령들을 추모하지 않던가?

미국인들 역시 9월 11일만 되면, 매년 9·11테러로 희생된 이들을 위해 기도했다.

‘다른 미국인들은 몰라도 샌프란시스코 토박이들은 이 대지진을 잘 알고 있지.’

시민 3천여 명이 이날 발생한 대지진때문에 사망한다.

뿐만 아니라 대다수 샌프란시스코 시민이 피해를 보고.

구도심 건물의 98%가 파괴되기 때문이다.

지진의 후폭풍으로 모조리 불타 버렸으니까.

‘샌프란시스코 시내 곳곳에는 이날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기념물이 가득해.’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나는 이를 보고 자라 왔다.

더욱이 1989년에 큰 지진이 한 번 더 일어나며,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학생들은 매년 지진에 대한 교육을 받게 된다.

나는 꽤 진지하게 지진 대비 수업을 경청했기에, 대지진이 언제 어느 때 일어났는지 잘 알고 있었다.

‘내일이다.’

대지진이 코앞이다.

나는 조용히 집에 있지 않고, 샌프란시스코 한인들을 전부 내 집으로 초대했다.

왜냐고?

내 영향력이 닿는 한, 최대한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곳에서의 내 영향력은 고작 한인들이 전부다.

당장 신문사와 인터뷰해 본다고 쳐도,샌프란시스코를 떠나라 조언한다면 어찌 될까?

난 미친놈 취급을 받을 거다.

이후도 문제다.

예언자라느니, 흑마법을 배웠다느니, 뭐니 하며, 양쪽에서 원치 않는 관심을 받으며 삶이 피곤해지겠지.

나는 예수님이나 부처님 같은 성인이 아니었기에 내 정상적인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사람을 돕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최선만 취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서 오게나.”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하.”

오백여 명이나 되는 한인들을 내 집에 초대했다.

대규모 인원을 일시에 수용해야 했기에 그들이 묵을 방이 모자랐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내 집 마당에 임시 천막을 설치하고 그들을 묵게 했다.

사람들이 어느 정도 도착하자, 나는 일단 먹을 것부터 내놓았다.

“와······ 이렇게나 음식이 많다니.”

“엄마! 엄마! 매일 여기서 지내고 싶어요!”

곳곳에서 감탄사가 쏟아져 나왔다.

그래, 역시 야유회에는 뷔페 음식이지.

“우와 고기 좀 봐!”

“김치 맜있다!”

한인 대다수가 오랜만에 부담 없이 음식을 양껏 먹는 날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의 얼굴에는 다들 행복한 미소로 가득했다.

“의친왕 전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거다. 저기, 전하 보이지? 가서 감사인사 하고 오렴.”

“예.”

대다수가 성인이지만, 몇 안 되긴 해도 아이들 역시 있었다.

제 부모님이 시켰는지 모르겠지만, 내게로 다가와 꾸벅 인사한다.

“여기 이거 한번 먹어 볼래?”

“이건 뭔데요?”

“사탕이라고 하는 거다.”

“으흠! 엄청 맛있어요.”

나는 그런 아이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며 추가로 환심을 샀다.

그들은 제 부모에게로 돌아가며 내가 준 작은 선물을 자랑했다.

“전하. 인사드리옵니다. 안창호라 합니다.”

사람들과 인사하느라 정신이 한창 없을 때, 김규식이 한 사내를 데려왔다.

호가 ‘도산’인 사내였다.

“반갑네. 생긴 게 아주 멀끔하구먼.”

“과찬이십니다.”

김규식의 말로는 미국 서부 지역에서 꽤 영향력 있는 인물이라고 한다.

도산 역시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며 대한제국 이민자들을 돕고 있다고 했다.

“전하! 소인 인사도 올리겠습니다.”

김규식은 발이 넓다.

그는 박용만이라는 사내도 내게 인사시켰다.

“박용만이라 하옵니다.”

“그래그래. 다리가 아프겠구먼. 어서 일어나게.”

박용만은 몸집이 작았지만 강단이 있어 보였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오랜 은인이라도 만난 듯, 넙죽 큰절부터 했다.

그를 일으켜 세운 후, 김규식이 소개한 두 인물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전하.”

“말하게.”

“저기······ 이 집을 지키는 이들 말입니다.”

박용만이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오른손으로 저기 멀리에 서 있는 내 사람들을 가리켰다.

“그래.”

망루 같은 곳에서 밖을 감시하고 있던 경호원들.

박용만은 경호원들이 들고 있는 무기를 언급했다.

“손에 아주 근사한 소총을 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 내가 사들이라 지시했네. 알다시피 요즘 샌프란시스코 시외 인근에 강도가 많다고 해서.”

“아, 그렇군요.”

보통 첫인사 후에는 자신이 관심 있어 하는 분야로 이야기를 이어 간다.

김규식은 하와이 이야기.

안창호는 국내 상황을 거론하며 나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런데 박용만은 대뜸 무기 이야기부터 하기 시작했다.

이 자리에서 이런 주제를 꺼냈다는 것은, 그가 방산 사업에 굉장한 관심을 가졌다는 뜻이 아닐까?

“그대는 다른 이들과 달리 유난히 무기에 관심이 많군.”

“그럼요. 소인도 하루빨리 돈을 모아서, 전하처럼 저 소총들은 잔뜩 사들일 것입니다.”

그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며 박용만에게 농담을 던졌다.

“왜 그런 생각을 하는가? 나중에 본국에서 무슨 일이라도 터지면 무기 밀수업자라도 되려고?”

“그보단 무장 단체를 한번 만들어 볼까 합니다. 그래서 일본놈들과 매국노들, 그리고 그들에 찬동하는 부역자들을 제 손으로 모조리 때려죽일 생각입니다.”

배경지식 없이 들으면 굉장히 과격한 발언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박용만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여기 모인 다수는 현재 일본에 분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을사년 11월.

그러니까 작년 11월에 일본은 한양 대신들을 겁박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했다.

“흠······ 그리되면 일본의 동맹국들과 갈등을 벌일 수도 있는데.”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 일이지요.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나라는 우리가 지켜야 하지 않습니까?”

전에 한 인물과 이야기했던 일이 떠올랐다.

『혹여나 우리 대한제국이 잘못된다면, 자네는 어찌 대응하겠나?』

『워싱턴에서 머물며 미국 고위 관료들을 지속해서 설득할 것입니다. 외교적으로 이를 해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바로, 하와이에서 자신을 왕자라 칭해 오던 이승만과의 대화였다.

『전하께서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혹여 감정에 사로잡혀 무장 단체를 지원하실 생각은 아니시지요?』

박용만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박용만은 조지 워싱턴 대학에서 공부 중인 이승만과 정반대의 노선을 걷고 있는 것 같았다.

‘이승만은 외교적 해결을 강조하며 서양인들의 비위를 상하게 하지 않으려 몸을 낮추겠지.’

반대로 박용만 같은 경우는 무력 투쟁을 불사하며 국내나 중국 등지에서 독립군을 이끌 것이다.

지금의 발언으로만 본다면.

‘국권을 침탈당하면 두 가지 노선 때문에라도 한동안 교민사회가 분열되겠군.’

사실 교민사회는 이미 많이 분열되어 있다.

내가 제때 나타나지 않았다면, 조각조각 쪼개져서 한동안 하나로 뭉치지도 못했을 거다.

“우사.”

“예. 전하.”

“하와이 교민회 사정은 어떠한가?”

“합성협회는 전하께서 생각하신 그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하와이는 현재 두 파벌로 나누어져 있다.

합성협회 부대표를 맡고 있던 임정수와 같은 부대표였던 정명원.

이 둘이 각 파벌의 수장이 되어 대치하고 있는 거다.

‘딱히 이념적으로 갈리는 것은 아니지. 자신들이 일하는 농장이 어디에 있는지를 두고 갈린 상황이다.’

내가 하와이를 들렀을 땐, 이미 많이 진행되어 있었다.

이승만을 두고 의견이 대립한 것도 이 때문이었을 거다.

“자네가 중간에서 그 둘을 잘 타일러야 할 것이야.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둘은 분명 주도권 싸움을 할 테니까.”

“그렇겠지요.”

다행히도 제때 내가 나타났다.

신분도 그렇고.

재력으로도 그렇고.

내가 다른 경쟁자들을 모두 압도하고 있기에, 아무도 내 주장에는 반기를 들고 있지 않다.

‘임정수나 정명원 둘 다 왕실에 반기를 드는 인물은 아니야.’

나는 임정수에게는 협회 쪽 권한을, 정명원에게는 장학회 관련 사업을 일임하며 어느 한 편에게 편애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교민회 대표 자리도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

이 상황을 적절하게 이용하고 있었는데, 이 때문일까?

그들을 현재 내게 충성 경쟁을 하고 있었다.

“안타깝습니다.”

“맞습니다. 예부터 붕당을 나누며 서로 너 죽고 나 살자 편을 가르고 싸우지 않았습니까?”

안창호와 박용만이 옛 조선의 오랜 전통을 내게 알려줬다.

붕당이라.

사실 재미교포 출신이라 나도 이를 잘은 몰랐는데 말이다.

요긴한 정보를 얻어 가네.

“고국에서도 그러더니, 결국 하와이에서도 그 지랄을 떠는군요.”

박용만이 과격하게 현 상황을 비판했다.

나는 분위기가 살짝 험악해지는 것 같아서 세계 정치사의 공통점을 거론했다.

“사람이란 게 원래 그렇네. 모두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지만, 제각각 뜻이 있으니까. 바보들은 어딜 가나 싸우기 마련이지. 머리 좀 굴러 가는 이들은 이 갈등을 두고 이득을 보네.”

현대 미국도 상황은 똑같다.

민주당과 공화당, 양 진영으로 나뉘어 서로 죽일 듯이 치고받고 있으니까.

SNS가 발달함에 따라 중도는 더 사라지고 극단주의자들이 더 판을 쳤다.

비단 조선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들에게 알려주며, 이들에게 내 미래 포부를 밝혔다.

“아······ 그대들에게 한마디 해 둘 게 있네. 다음 달쯤 협동조합을 하나 만들까 하네.”

“협동조합을 말입니까?”

“그래.”

1906년 농업법이 새롭게 통과되며, 협동조합 설립에 관한 지침 역시 나온다.

나는 이를 통해 교민들의 사업을 지원할 생각이었다.

“싹수가 있는 이들을 유심히 지켜보게. 그리고 내게 추천해 주게나. 자네들이 말이야.”

교민사회에선 이 세 사람의 인덕이 높기로 유명하니, 적어도 제 사심은 조금 챙길망정 이상한 놈은 추천하지 않겠지.

이에, 도산 안창호가 나를 존경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이리 전하를 직접 뵈니······ 더 확신이 갑니다. 전하께서는 참으로 마음이 넓으신 것 같습니다. 우리 교민들을 이리 생각해 주시다니요.”

“그냥 그리 보이는 것이겠지. 무슨.”

나는 멋쩍은 표정을 지은 후, 이들을 내 집 안으로 안내했다.

“자자······ 밖에만 있지 말고 안으로 잠시 들어가 보세나. 내 집 구경 좀 해야지.”

* * *

안창호와 박용만, 그리고 김규식이 우리 집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비단, 우리집 규모가 커서만은 아니었다.

“허······.”

그들이 두리번두리번하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사진이 참 많사옵니다.”

“맞습니다. 이거 전부 샌프란시스코 사진이 아닙니까?”

현재 우리 집은 사진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대지진으로 구시가지들이 전부 불타기 전에, 내가 사진사를 불러 시내 곳곳을 촬영했기 때문이다.

오늘 해가 지면 사진 속 도시들의 모습이 사라질 것이기에.

후대를 위해 보존하려고 비싼 돈을 쥐여 줘 가며 사진을 찍은 거다.

“아, 맞다. 자네들! 지난번에 내가 언급한 그 화재보험 말이야. 들었는가? 나는 내가 소유한 건물마다 최소 세 개씩은 계약을 체결해놓았네.”

나는 이번 대지진에서 최대한 이득을 보기 위해 화재 불안증에 걸린 척 연기를 했다.

그래야 화재보험을 많이 들어 놓아도 수상치 않아 보일 테니까.

“싼 거로 하나 들어놓았습니다.”

“소인 또한 전하의 권유에······ 보험중개인을 찾아갔습니다.”

“그래?”

한인들 상당수는 나의 영향을 받아 다들 자신의 집이나 일터에 화재보험을 가입했다.

물론 일부는 내 권유를 무시한 이도 존재했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숟가락을 떠서 제 입 앞에 두어도 이를 엎어 버리는 종자는 있기 마련이니까.

“뽀스.”

“날 불렀는가?”

아일랜드 삼 형제가 내게 찾아왔다.

특히 맥스가 밖으로 나가길 권유하며 내게 축구공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

“이러지 마시고 뽀스. 저기, 축구에도 참여하시는 것이 어떠십니까? 오랜만에 몸 좀 푸시지요.”

창밖을 둘러보았다.

임시천막이 곳곳에 쳐진 가운데, 공터에서 몇몇이 한창 공놀이를 하고 있었다.

“뽀스. 뽀스가 참여하셔야 야유회가 더 활기를 띠지 않겠습니까?”

나는 맥스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다.

“내가 끼면 재미가 없지.”

“어째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다들 나만 피할 텐데······ 애초부터 공평한 게임이 될 수 없을 것일세.”

요새 대지진 때문에 마음이 심란해서 운동을 좀 못 하긴 했다.

그렇기에 몸이 근질근질하기도 했고.

‘대망의 D-day가 내일이야. 부상이라도 당하면 내 계획이 물거품 돼.’

하지만 대업이 코앞으로 다가왔기에 몸을 사려야 했다.

나는 사람들을 물린 후, 창밖에서 조용히 그들이 운동하는 모습을 보았다.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어서 그런지 시간이 참 빨리 간다.

그렇게.

길었던 하루가 끝나갔다.

해가 저물었다.

* * *

허리춤에 차고 있던 회중시계를 바라보았다.

새벽 1시.

곧 있으면 대재앙이 이곳에 강림한다.

‘제길 떠났어야 했나?’

떨린다.

이강의 몸에 빙의하기 전 기억이 날 감쌌다.

예전 도쿄에서 겪었던, 아직도 생생한 악몽이 떠올랐다.

‘내 가슴에 말뚝이 턱 하니 박혔는데······.’

그리 씩씩한 잭 마일로도 물이 무서워 배를 못 타지 않던가?

그만큼 트라우마는 사람을 공황에 빠지게 한다.

나 역시 내가 이곳에 빙의되기 전에, 현대인으로 살 때 일본에서 대지진을 경험한 적이 있었기에 그것이 생각나는 것 같다.

‘지금이라도 마당으로 이동할까?’

손이 떨렸다.

오줌도 쌀 것 같았고.

하지만 나는 이내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아니야. 난 떠나지 않아. 이 집의 주인은 나다.’

샌프란시스코 중심부에 자리한 본가는 이제 불타 없어질 것이 뻔했기에, 귀중품은 모조리 별채로 옮겨 보관하고 있다.

비상시국에 현금이나 금의 보유는 매우 중요하다.

특히 금은 그렇다.

금의 가치는 절대 불변이니까.

‘지켜야 해. 반드시.’

거대한 재앙 후에는 약탈꾼들이 넘쳐난다.

생필품이 부족해지며, 자연스럽게 살기 위해 남의 것을 탐할 테니까.

‘준비는 끝났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무기도 충분히 갖춘 상태.

나는 이 기회를 잘 이용만 하면 되었다.

‘이번이 중요해.’

내년에 이민법이 개정된다.

일본인을 제외한 동양인들은 그때부터 이민이 제한된다.

교민의 수는 곧 나의 권력.

이를 막아야 했기에, 나는 이번 위기를 기회로 삼을 생각이다.

조선인들을 향한 백인들의 안 좋은 선입견을 바꿀 생각이니까.

“형님. 주무시지 않고 뭐 하십니까?”

김규식이 내게로 다가온다.

둘만 있었기에 말을 편하게 놓고 있었다.

“고민이 많으십니까? 아······ 저기 오늘 뜬 달을 보고 계시는군요.”

그는 두 걸음 떨어진 곳에 멈춘 다음, 내가 바라보고 있던 창밖을 함께 응시했다.

“그렇네.”

“이리 보면 형님께서는 참으로 폐하를 닮으셨단 말입니다. 폐하께서도 늘 밤잠을 설치신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 본국에 있는 고종을 말하는 건가?

그놈과 나를 비교하면 안 되지.

“형님께서 다다음 보위를 이으셔야 하는데 말입니다.”

김규식은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하루가 다르게 국내 여론이 바뀌고 있다.

귀비는 미래가 어찌 될지 모른 채, 제 아들을 다음 후계위로 올리려고 친일파들과 손을 잡았다.

이에, 나의 차차기 보위는 거의 물 건너가게 되었다.

“쯧. 별소리를 다 하는군. 보위를 이어받을 생각이었으면 내 미국으로 돌아오지 않았을 걸세.”

“그렇겠지요.”

김규식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얼마 전 헐버트가 하와이에 잠깐 들렸는데 말입니다. 그때 국내 상황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생각보다 안 좋은가 봅니다.”

“그렇겠지.”

“혹시, 마음이 바뀌셨다면······.”

김규식이 하던 말을 멈췄다.

왜냐고?

이상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형님? 형님께서도 방금 흔들림을 느끼셨지요?”

아주 얕게 지층이 흔들렸다.

본격적인 대지진이 시작되기 전, 일부 지진파가 먼저 지표면에 도착한 듯 보였다.

다다- 다다다-

크르르르르릉-

쿠- 쿵-

이내, 폭탄 터지는 소리와 함께 지축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씨발. 엎드리게. 머리 보호하고.”

“예? 으, 으악!”

대지진이.

시작되었다.

그 X같은 대재앙이 마침내 이 땅이 막 강림한 거다.

< 대지진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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