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잿더미 위에 핀 새싹 (3) >
마드리 지점장의 권유를 받자마자, 나는 슬쩍 주변을 훑어보았다.
일부는 부럽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또 다른 무리는 시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날 노려보고 있었다.
‘두 반응 다 이해가 간다.’
몇 시간 째 보험금을 받을 수 있을지 걱정돼서 발만 동동거리고 있다.
그런데 웬 돈 많은 동양인 왕자가 갑자기 나타나선 우대를 받는다니.
부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시샘이 나기도 하겠지.
‘내 편의를 봐준다고 한 말일 테지만, 오히려 내게 독이 되는군.’
후-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쉰 후, 나는 마드리를 보며 한 가지를 물었다.
“고맙군. 고마워. 근데 이거, 원래부터 있던 손님 접대 매뉴얼인가?”
“예?”
마드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내 질문의 요지를 이해하지 못한 거다.
“왜 나만 특별히 우대하냐는 말일세. 내가 이 보험사에 일정 금액 이상을 써서 그런가? 아니면, 단순히 내가 왕자라서 편의를 봐주는 건가?”
“그야 당연히······.”
바보같이, 마드리는 전자가 아니고 후자라 대답하려는 듯했다.
하긴.
지금 같은 시대에 VIP 서비스 개념이 있을 리가.
“내가 왕자라서 편의를 봐준다면, 난 이곳에 서서 기다리겠네. 나보다 사정이 급한 이들이 여기 수두룩한데······. 이들보다 늦게 온 내가 먼저 보험금을 청구할 순 없네.”
사람은 일관성을 보여야 한다.
여기서 이 말 하고, 저기서는 또 다른 말을 하면 그 사람에 대한 ‘신뢰성’이 무너진다.
‘사흘 전 노스 부두에서, 사정이 급한 다른 이를 배려하자고 한껏 연설했는데 말이야. 내가 여기서 넙죽 받아먹으면 어떻게 되겠어.’
특별 대접은 환영이다.
요새 체력이 많이 좋아졌다지만, 사람들로 가득한 이곳에서 몇 시간씩 죽치고 기다리는 건 사양이니까.
하지만 조선 속담에 누울 자리를 봐 가며 발을 뻗으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다들 제집이, 제 일터가 불타서 신경이 바짝 곤두서 있을 텐데.
저자들을 제치고 내가 먼저 보험 청구를 한다면, 분명 뒷말이 나올 것이다.
‘안 그래도 일부는 심기가 불편할 텐데 말이지.’
웬 ‘동양인’을 두고, 언론에선 ‘영웅’이라며 계속 띄워 주고 있지 않은가?
인종차별이 패시브로 깔린 이 시대에, 누군가는 거슬리겠지.
내 힘이 정말 커질 때까진, 몸을 최대한 사려야 했다.
참 눈치 많이 본다고 혀를 내두를지도 모르겠지만, 여긴 조선이 아닌 미합중국.
총기 소유가 합법인 국가다.
어떤 미친놈에게 제대로 밉보였다가는 가슴팍에 총알이 박힐 수도 있다.
‘멀리 볼 것도 없지. 약 5년 전에 일어난 사건만 해도 그래.’
현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어떻게 투표 없이 대통령이 되었나?
전임 대통령이 어느 미친놈의 총알 한 방에 유명을 달리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제일가는 권력자도 픽픽 쓰러지는 게 작금의 현실.
그렇기에 나는 몸을 숙이며, 최대한 적을 만들지 않을 계획이다.
‘지아니니에게는 미안하지만, 내가 은행장이 안 되려는 이유도 이 때문이지.’
BOI는 현재 서민을 대상으로 영업하고 있다.
기존에 그들을 뜯어먹던 고리대금 업자들 입장으로는 전혀 달갑지 않은 소식이겠지.
풍문으로는 한껏 벼르고 있다던데.
만약, 내가 투자자가 아닌 은행장이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지아니니를 향해 있던 화살은 분명 내게도 향하겠지.
“하지만 왕자님, 한 번 더 생각해 주십시오.”
동양인은 세 번 거절한다는 풍문 때문인지는 몰라도, 마드리가 재차 권했다.
“편의를 봐주는 것은 고맙지만, 나는 여기서 기다리겠네.”
이번에도 역시 거절하며 마드리의 애타는 시선을 회피했다.
그러자 주변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와! 인성 보소.”
“과연 왕자답네. 공중 예절이 미쳤어.”
“이게 노블레스 오블리주인가? 나 같았으면 저 제안을 냉큼 받았을 텐데······.”
“그러니까 네놈이 왕자가 아니지.”
“뭐? 이 자식이!”
순전히 보신을 위한 선택이었지만, 주변인들은 또다시 착각하는 것 같았다.
응?
일부는 수첩을 꺼내 들며 무언가를 끄적이기도 했다.
기자인가?
아니면, 감시자인가?
“왕자님.”
옆에 있던 지아니니가 내게 좀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 때문에, 수첩을 꺼내 무언가를 적고 있던 이가 가려졌다.
수상한 이의 얼굴을 확인하려고 몸을 옆으로 슬쩍 움직였는데, 아쉽게도 그는 내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왕자님!”
“아, 그래. 지아니니 은행장.”
“정녕, 여기서 기다릴 생각이십니까?”
지아니니가 마드리를 대신해서 재차 물었다.
나는 그의 물음에 다른 답변으로 대답했다.
“그럴 것일세. 아! 자넨, 먼저 가 보게나. 바쁘지 않나? 저기 마드리에게 부탁해서 자네만이라도 먼저 보험금을 청구하게.”
나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지아니니는 빨리 현장으로 돌려보낼까 한다.
수장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제법 클 테니까.
“그럴 수는 없지요. 왕자님이 여기 계시는데 제가 어찌 먼저 갑니까? 저도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지아니니와 맥스의 차이가 여기서 나타난다.
둘 다 한 주둥이 하긴 하지만.
지아니니는 그냥 입이 거친 거고.
맥스는 눈치가 아예 없는 거다.
“그렇다면 저 또한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왕자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잘 되었군요.”
마드리도 참 고집이 센 자였다.
이쯤 되면 제 집무실로 올라가서 업무를 볼 만도 한데, 굳이 1층에 남아서 나와 잡담을 나누고자 했다.
덕분에 커머셜유니온 사의 일반 직원들만 죽어났다.
지점장이 떡하니 1층 청구 창구에서 버티고 서 있으니까.
다들 마드리의 눈치를 보며, 청구 작업을 빠르게 진행해 나갔다.
“왕자님. 이제 진짜 왕자님 차례입니다.”
업무 시간이 마감될 쯤, 내 앞에 대기하던 인원들이 전부 빠졌다.
마드리는 세 시간 동안 활짝 웃는 얼굴을 유지하다가 드디어 나를 그의 집무실로 데리고 갔다.
“왕자님은 제가 모시겠습니다. 지아니니 은행장. 그대는 여기 부지점장이 담당할 것일세. 그래도 괜찮겠지?”
“FXXX, 당연한 걸 묻는군.”
서구사회는 개인주의 사회다.
북유럽 출신 대비 비교적 정이 많은 지아니니지만, 개인 정보가 노출될 수 있는 보험 청구까지 함께 따라올 생각은 감히 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지아니니와 헤어진 후, 마드리와 함께 그의 집무실로 이동했다.
“이쪽에 앉으시지요.”
마드리가 음료를 건넸다.
나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다가, 이내 품 안에 있던 서류를 마드리에게 건넸다.
“많군요.”
마드리는 내가 건넨 서류들을 일일이 확인했다.
건물별로 책상에 따로따로 분리한 후, 해당 자료들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전부 저희 보험사와 계약한 보험증서들이군요.”
“그렇네.”
마드리 지점장이 눈을 잠시 질끈 감았다.
정확히 계산하지는 않았지만, 딱 보아도 청구 액수가 너무나도 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거 어디부터 봐야 할지 감이 잘 오지 않습니다.”
증서가 수북하다.
나는 내가 사들인 주택, 건물, 창고들 전부를 화재보험에 가입했기 때문이다.
“많이도 가입하셨습니다.”
“내가 원체 조심성이 많아서 그러네.”
“그래도 이건 좀 심합니다.”
“만나는 주변인마다 전부 내게 보험을 권했으니까. 거절도 해 보았으나 다들 자꾸 권유했네.”
지난해 겨울부터 나는 샌프란시스코 사교계 인사들과 교류했다.
그들이 주최하는 연회에 자주 들락날락했는데, 상당수는 나를 호구로 보았다.
황무지나 다름없던 새크라멘토 분지를 대거 사들였기 때문이겠지.
그런 상황에서 내가 화재를 염려하며 보험 가입을 고려하고 있다는 소문이 샌프란시스코 전역에 퍼졌다.
자, 그다음은 어찌 되었겠나?
‘어찌 되긴. 너나 할 것 없이 보험중개인들을 하나씩 끼고 나를 찾아왔지.’
왜냐고?
그야, 보험 가입은 돈이 되니까.
시대를 떠나.
국가를 떠나.
보험 산업은 커미션, 즉 수수료라는 게 존재한다.
신규 가입자를 소개해 줄 때마다 수수료 명목으로 보험중개인들에게 가입자의 돈을 일부 나누어 주는데.
다들 이것 좀 떼어먹으려고 내게 수십 차례나 보험을 권했다.
‘이것 또한 내가 의도한 바지.’
나는 호구인 척 연기하면서도 미리 조사한, 안전한 보험사들의 보험만을 선택하여 가입했다.
그 행위의 결과 중 하나가 바로 지금 이 보험사였고.
“혹여 오해할까 봐 이 자료를 준비했네.”
마드리에게 추가 서류를 제출했다.
창고에 어떤 물품이 보관되었는지와 화재가 발생한 날 나의 행적 등이 담겨 있는 서류였다.
“대지진 당시 나는 교민들과 함께 소살리토에 있었지. 그곳에 나의 별장이 있으니까.”
보통 일반인이라면 보험을 한두 개 정도만 들어 둔다.
하지만 나는 대거 중복으로 가입한 상황이다.
그러면 당연히 보험사에서도 나의 행적을 조사한다.
의심스러우니까.
지금이나 현대나 보험사기를 치는 인간들이 널렸기 때문이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겉모습은 이리 우락부락해 보여도 신문은 매일 꼬박꼬박 읽습니다.”
마드리는 이미 다 안다는 표정으로 내 서류를 건네받았다.
그 후, 집무실 한쪽에 놓여 있는 신문 한 다발을 내게 건넸다.
“네바다 타임스? 네바다주에서 주로 활동하는 신문사이군.”
“예. 그렇죠. 제 동생이 잠시 그곳에 있다가 돌아올 때 이것을 사 왔습니다.”
마드리가 기사 하나를 내게 가리켰다.
나에 관한 기사였다.
“한번 보시겠습니까? 왕자님에 관한 기사는 여기부터 시작됩니다. 닷새 동안 경찰들, 그리고 군인들과 함께 화재진압을 도운 동양의 왕자. 그 영웅담에 관한 이야기가 쭉 이어지죠.”
부끄럽게.
남의 입에서 내 자랑을 들으려니까 손발이 오그라든다.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드리는 계속 신문 기사를 읽어 댔다.
“주민들의 인터뷰도 있습니다. 전부 왕자님에 관한 것들이지요. 언제, 어디서 무슨 활동을 했는지까지 아주 상세히 나와 있습니다.”
마드리가 어깨를 으쓱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제가 어찌 의심하겠습니까?”
그렇지.
나는 방화범이 아니다.
수많은 정보가 이를 증명하고 있었다.
마드리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보험청구서류를 다시금 검토했다.
“왕자님.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뭔가?”
마드리가 서류를 훑어보다가 이내 자못 궁금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왕자님께서는 혹시 이를 예측······.”
이 양반.
지아니니와 똑같은 소리를 하네.
그때 답변처럼, 내가 샤먼으로 보이냐고 바로 대답하려 했는데.
“아닙니다.”
마드리 지점장이 자신의 말을 물리며 이내 입을 다물었다.
하긴, 자신이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 생각하겠지.
“에이. 말하게나. 하던 말 끊는 놈이 세상에서 제일 고약한 놈이네. 궁금하네.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가?”
마드리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왕자님께서는 이번 대지진이 일어나리라 예상······. 후, 아닙니다. 그럴 리가 없지요. 요새 이상한 소문이 돌아서 잠시 무례를 범했습니다.”
“무슨 소문?”
“왕자님께서 미래를 내다보신다는 풍문이 있습니다. 다들 그리 생각하는 건 아니고 일부가 그리 말하고 다니는데······.”
나를 추종하는 자들은 새크라멘토 부지를 사들이고 있다고도 했다.
전형적인 따라쟁이들.
벌써 생겨나다니,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했다.
‘유명해지면 이런 단점이 생기지.’
해결책이 없는 건 아니다.
명의를 감추면 되니까.
이는 생각보다 쉽다.
‘신탁회사를 여러 개 만들면 되지.’
이에 관해 생각하고 있던 그때, 마드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보험금 청구액을 좀 계산해야 하는데, 저기 저쪽에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청구액이 워낙 많아서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알겠네.”
마드리 집무실 한편에 마련된 소파에서 내 자산에 관해 계산하기 시작했다.
‘현재 내 자산은 약 400만 달러지.’
고종의 비자금, 그리고 귀비가 건넨 활동지원금을 합치면 그렇게 된다.
그중 200만 달러를 들여 새크라멘토 분지에 땅을 샀다.
10만 달러 정도 기부를 하고, 10만 달러는 잡다한 것에 쓰고.
30만 달러 정도는 뱅크 오브 이탈리아에 예치해 두고.
나머지 150만 달러 정도는 샌프란시스코 시내 땅과 건물을 구매하는 데 사용했다.
‘여기서 내가 받을 금액은······.’
커머셜유니온 사에서 받을 돈은 약 10만 달러 정도다.
뭐야.
왜 이리 적어?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낸 보험료를 생각해 보자.
‘삼백 분의 일도 안 냈는걸.’
300달러로 10만 달러를 얻은 거니까, 수익률만 생각하면 대단하다 볼 수 있다.
더욱이, 이 보험사에서만 보험금을 수령하는 게 아니다.
앞으로 들릴 곳이 열 군데나 더 넘게 존재한다.
‘다행인 게, 이 시대 화재보험은 정액 보상제란 점이지. 비례 보상제가 아니고.’
화재로 손해를 100만큼 입는다 가정하자.
현대라면 약관에 따라 80~105 정도를 보험사가 보상한다.
‘다섯 군데 보험에 가입하게 된다면 각 보험사는 나누어 20씩 지급하지.’
계산하기 편하게 100 정도를 보상해 준다 가정하면 그렇다.
‘하지만 지금은 정액 보상의 시대다. 현대처럼 나눠서 주는 것이 아닌, 보험사마다 100씩 주는 시대.’
그렇기에 나는 커다란 이득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여기에 또 있다.
샌프란시스코가 재개발되면, 내가 소유하고 있는 땅은 더욱더 그 가치가 뛸 테니까.
서울로 치면 강남 같은 곳들만 골라서 투자했기 때문이다.
“저, 이 왕자님.”
“오! 드디어 계산이 끝났는가?”
“예. 12만 달러 정도가 나올 것 같습니다.”
“아하. 그렇군.”
“저 죄송한데 말입니다······.”
지점장이 뒷말을 끈다.
이거 영, 낌새가 수상하다.
“왜? 무언가 잘못되었나? 서류가 부족하다면 이야기하게.”
“그런 건 아니옵고.”
마드리가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내게 양해를 구했다.
“그래서, 내게 줄 현금이 없다는 말인가?”
“그게, 저희가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현금이 워낙 부족해서. 양해를 좀 구하고자 합니다. 왕자님께 드릴 보험금이 워낙 크지 않습니까?”
마드리가 신문을 흘깃 쳐다보았다.
여기에는 나와 관련된 수많은 기사 중 하나가 있었다.
【대한제국에서 온 이 왕자, 노스 부두에서 희망을 설파해.】
그는 기사를 슬며시 쳐다보다가 이내 나를 바라보며, 내게 양해를 구했다.
과거의 내가 했던 발언을 인용하며.
“왕자님께서 조금만 양해해 주신다면······. 저희가 사정이 급한 이들부터 먼저 보상을 하고, 그다음에 왕자님께 보험금을 지급해 드리면 안 될까요?”
이 자식.
뭐야.
그러니까, 직접 1층에 와서 나를 특별대우해 준 게 다 이런 이유 때문인 거야?
어휴.
그림 한번 크게 그리네.
‘누가 영국 보험사 아니랄까 봐.’
영국은 혐성의 국가다.
지구촌 분쟁에서 이거 좀 이상하다 싶으면 죄다 영국과 관련이 있다.
‘하여간 틈만 보이면······.’
서양이든 동양이든 사람은 약해 보이면 안 된다.
그러면 이를 꼭 악용하는 놈들이 생기니까.
‘언론이 마사지 해주고 있지 않는다면······. 더 심했겠지?’
시간을 끌면서 보험금 수령을 늦추려고 했을 거다.
하지만 마드리는 그렇게까지는 행동하지는 않았다.
주류 언론에서 영웅으로 추앙하고 있는 내게 그런 대접을 했다가 자칫 불통이 튈지 모르니까.
‘그래도······. 첫 단추부터 이러면 안 되지.’
여태껏 호구로 보였던 것은 이번에 한탕 하기 위해 추진력을 얻으려고 연기한 거다.
이제는 결실을 수확해야 할 시기.
이번에도 역시 사람 좋은 호구처럼 마냥 양보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까, 현금이 부족하니 내게 양해를 해 달라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알겠네. 내 그렇게 하지.”
“역시 이 왕자님께서는 너그러우십니다.”
나는 피식 웃었다.
그러곤 오른쪽 검지와 엄지를 사용해 돈을 가리키는 손짓을 만들어 보았다.
“굳이 현금으로 주지 않아도 되네. 나는 현금이나 금이 아니더라도, 다른 것 역시 취급하니까.”
예를 들면 부동산이라든가.
채권이라든가.
주식이라든가.
따로 받을 건 많다.
“현물도 좋네.”
나의 대답에 마드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난 그가 희망하는 호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 잿더미 위에 핀 새싹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