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건 위원회 >
부우- 우우웅-
페리를 타고 일행들과 함께 샌 파블로 만을 가로질렀다.
샌프란시스코 시장인 유진 슈미트와 캘리포니아 주지사인 조지 파디.
두 거물급 정치인을 만나기 위해, 캘리포니아 주도인 새크라멘토로 이동해야 했으니까.
‘주지사가 공식적으로 날 자신의 사무실에 초청했다.’
최현우의 추측대로였다.
두 정치인은 이번 재난 극복을 주제로 새크라멘토에서 모임을 주최했다.
아마, 그 자리에서 나에게 공식적으로 감사패를 건넬 모양이다.
나는 속에서 무언가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이 몸에 빙의한 지, 약 1년 만인가?’
캘리포니아 주지사의 권력은 작은 약소국의 지도자와 비슷하다.
비록 미합중국에 속하는 일개 주지만.
현대에는 캘리포니아주 하나만으로 세계 5위 권 경제 규모를 갖춘다.
일개 주 하나가 영국 그리고 프랑스와 맞먹는다는 뜻.
더욱이 주지사는 일개 기관장이 아닌,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자치권을 행사하는 관직이다.
‘천천히 나아가는 거다.’
원 역사에서의 이강은 한 번도 이루어내지 못한 업적.
그만큼 권력자의 공적 공간에 발을 들이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나는 조금 고무되어 있었다.
시작이 반이니까.
“어서 오십시오.”
“다시 뵙게 되는군요.”
도착하자마자, 캘리포니아의 주지사였던 조지 파디가 내게로 와서 손을 꼭 붙잡았다.
“감사합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 솔선수범해 주시다니, 주지사로서 감사하다는 말씀밖에 못 드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왕자님과 진작에 식사를 한번 해야 했는데 말입니다.”
“이리 초대해 주셨으니 괜찮습니다.”
주지사 옆에 있던 유진 슈미트 샌프란시스코 시장 역시 내게 경의를 표했다.
“제가 할 일을 왕자님께서 이리 도와주시니······ 제 어깨가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두 사람은 내 업적을 일일이 언급했다.
구호 활동부터.
화재 진압.
이재민들이 지낼 임시 천막 기부.
그리고 초반 그들이 먹을 음식의 배급까지.
하나하나 열거하며 나를 칭송했다.
“저는 그저 제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나는 이에 겸양을 떨었다.
“샌프란시스코 그리고 캘리포니아는 나의 제2의 고향이자, 제2의 조국입니다. 이웃이 힘든데······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습니까?”
“허허. 역시 세간의 소문대로군요. 왕자님. 왕자님께서는 이 시대의 영웅이십니다.”
“시장님과 주지사님이야말로 언론에서 연일 칭송하고 있지 않습니까? 대지진 이후 재건 등의 문제를 빠르게 대처해 주셔서 매일같이 기사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언론의 초점이 묘하게 바뀌고 있었다.
초반에 기사들이 나에게 쏠렸다면, 일주일이 지나면서부터는 두 사람의 움직임에 집중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나는 개인이고 이들은 단체의 수장들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되어 있기에 서서히 나에 관한 관심이 식고 있겠지.
물론, 나는 전혀 섭섭하지 않았다.
언론의 과한 칭찬은 때론 부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으니까.
‘이 둘은, 현재 여론만 보면 재선은 따놨다고 봐야겠지.’
시장과 주지사, 두 사람은 현재 시민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었다.
더욱이 캘리포니아주는 21세기와 달리 공화당 초강세 지역이다.
나는 이를 머릿속으로 상기하며 두 거물과 대화를 이어 갔다.
“왕자님, 내일쯤 여기 새크라멘토 청사에서 왕자님께 감사패를 수여할 예정입니다.”
조지 파디가 익히 예상된 일을 내게 전달해 주었다.
“어휴. 무슨······ 괜찮습니다.”
“겸양도 과하면 독입니다. 왕자님.”
“맞습니다. 동양에서는 그리 행동하는 게 옳을지 몰라도 이곳에서는 다르지요.”
감사패를 거절할까 싶었는지, 다들 내게 압박을 넣는다.
이 사람들이.
원래 동양은 세 번은 거절해야 한다고.
“시민들을 위해 봉사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것만 해도 이미 차고 넘치는데 기부까지 이리 많이 해 주셨으니. 왕자님께 많은 걸 해 드리진 못해도, 이 정도는 해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눈알을 굴렸다.
두 정치인의 표정을 살피기 위함이다.
‘이것 때문에 날 부른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뜸을 들이는군.’
종이 쪼가리 한 장 주려고 저 바쁜 정치인 둘이 날 만나고 있을까?
글쎄······.
나는 이번 만남에 분명 다른 목적이 있으리라고 예상했다.
‘정치 후원금이 목적인가?’
몇 번 만나 보지는 않았지만, 인성이 그 정도로 개차반인 것 같지는 않은데.
아니다.
정정한다.
선거가 코앞이다.
선거 기간에는 어떤 현자도 눈이 돌아갈 수 있다.
그렇기에, 저들은 언제든 미친놈으로 돌변할 수 있다.
“뭐,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생각해 보니 감사패 하나 받는 정도로는 주지사님과 시장님께 별 피해를 주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조지 파디가 박수를 ‘착’ 하고 한 번 치더니, 주의를 환기했다.
그러곤 이내 시선을 오른쪽으로 살짝 돌렸다.
그를 따라 고개를 돌리니, 커다란 문이 내 시야에 들어온다.
대충 보아하니, 집무실과 연결된 회의실인 것 같았다.
“자 이제, 본론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실은 왕자님, 내일 특별위원회를 발족하려 합니다.”
“특별위원회라면 그게 무엇입니까?”
“샌프란시스코 재건을 돕기 위한 주 산하 위원회입니다. 혹, 참여하실 의향이 있으십니까?”
나야 좋다.
재건 위원을 맡게 되면, 여러 가지로 내게 도움이 되니까.
시의 새로운 재개발 사업도 지켜볼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내게 이익이 되는 법이나 조항을 삽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당색과는 관련이 없는 임시 위원회니까, 거절할 이유도 없지.’
나는 눈을 껌뻑였다.
기쁜 내색을 바로 보이기보단, 너희들이 억지로 부탁해 어쩔 수 없이 수락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야 내가 저들에게 신세 지는 게 아니고, 반대로 도움을 준다고 여길 테니까.
“더하여 왕자님께서는 특별히 재건 위원회 부위원장을 좀 맡아 주셨으면 하는데 말입니다.”
“그간의 활약을 생각하면 위원장 자리를 드려야 하나······ 내부적으로 여러 사정이 있어서 이렇게 부위원장 자리를 제안합니다. 부디 수락해 주시지요.”
순수 동양인이 주 산하 위원회에 대표를 맡는다는 것은 좀 부담스럽나 보다.
뭐, 재건 위원회 부위원장도 나로서는 나쁘지 않은 직위다.
일반 위원보다는 낫겠지.
나는 이 또한 수락했다.
“그럼 들어가시지요.”
이 사람들.
마치 내가 위원 자리를 수락하리라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일사천리로 움직인다.
끼익-
회의장에 들어서자, 여러 인물의 얼굴이 보였다.
그중에는 광산 수집가로 유명한 골드킹 잭 마일로도 있었다.
“다들 인사 나누시지요.”
총 40여 명의 명사가 회의실에 있었다.
다들 캘리포니아에서 한자리하는 인물들인 것 같았다.
“저기, 회의는 언제 시작합니까?”
한 인물이 손을 들며 질문한다.
이에 조지 파디가 살짝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위원장이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좀만 더 기다려 주시지요.”
“위원장이라면 아, 그 사람? 의외로군요. 본래 회의에 지각한 적이 없는데······.”
시장과 주지사가 무언가 속닥거리며 시계를 본다.
한 놈 때문에 회의가 늦어지고 있어서였다.
“어쩔 수 없군요. 이 왕자님께서 위원장을 대신해······.”
끼익-
주지사가 말을 하다 말고 멈췄다.
회의실 문이 열렸기 때문이다.
“어, 왔는가? 늦었군.”
“······.”
누군가 주지사 집무실에 들어왔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중요한 미팅에 지각했다면 대단히 미안한 내색을 해야 하는데, 발걸음이 너무나도 당당했으니까.
‘저런 태도를 이 둘 앞에서 보인다고? 제깟 게 뭔데.’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지각한 양반을 바라보았다.
“누구?”
나의 짧은 물음에 지각한 남자 역시 아주 짧게 대답했다.
“아베 루에프라 하오.”
내가 조용히 노려보고 있자, 루에프가 거만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번 재난 위원회 위원장이기도 하지. 보아하니 그대는 이 왕자겠구려.”
* * *
“위원장이라?”
“그렇소만. 아, 벌써 회의를 시작한 거요? 혹, 여기 간략하게 설명해 줄 사람 있소? 명색이 위원장이니, 여기서 논의되었던 내용을 알아야 하지 않겠소?”
털썩-
아베 루에프는 귀찮다는 듯 비대한 몸뚱이를 의자에 기댄 후, 몸을 살짝 뒤로 젖혔다.
처음 보는 나에게는 반갑다는, 아주 형식적인 인사말도 없었다.
그렇기에 집무실 안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해졌다.
“하하하. 왕자님. 공화당 캘리포니아 지부 당수이자 공천위원장인 아베 루에프입니다.”
“이자가 워낙 수줍음을 많이 타서, 왕자님께서 이해 좀 해 주십시오.”
둘 다 쩔쩔맨다.
선거 기간이라 그런지, 이자의 눈치를 많이 보는 것 같다.
‘표정으로 보아하니, 파디는 루에프를 많이 싫어하는 느낌인데······.’
파디 주지사가 나와 루에프를 번갈아 보다가, 급하게 화제를 돌렸다.
“자자, 미루어졌던 회의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인사들 잘 나누셨겠지요?”
이에 슈미트 시장이 파디의 말을 빠르게 이었다.
“아! 위원장님. 아까도 설명했지만, 여기 계신 이 왕자님은 이번 특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출되셨습니다. 왕자님, 인사하시지요.”
아베 루에프는 여전히 뚱하게 나를 바라봤다.
본래 나는 감정적이지 않지만, 좀 많이 거슬리는 탓에 눈을 가늘게 뜨며 그에게 물었다.
“혹, 내가 마음에 안 드오?”
빙빙 돌리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이에 지각한 아베 루에프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 질문에 답했다.
“그렇소.”
“왜지? 내가 동양인이라서?”
아베 루에프는 굳은 얼굴을 풀지 않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날 싸구려 인종차별주의자로 보오? 난 피부색으로 차별하지 않소. 오로지 하나, 능력이 있나만 보지.”
“그런데 날 왜 탐탁지 않게 보는 거지? 내가 무능력하다고 생각하는가?”
“개인의 능력은 둘째 치더라도, 그대가 이번 선거에 도움이 안 될까 봐 그러는 거요. 내가 말한 능력은 오직 선거에서 이기는 능력이니까.”
역시 정치인다운 대답이다.
‘표에 미쳐 있군.’
아베 루에프는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주지사 집무실에 모인 이들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내가 반대한 일을 기어코 밀어붙였군. 다음 선거에서 어떻게 이기려고 이런 결정을 내린 거요. 쯧쯧.”
아베 루에프는 고래고래 제 할 말만 하곤 집무실을 뛰쳐나갔다.
위원장이라곤 하나 회의 따위는 안중에도 없단 느낌이 들었다.
샌프란시스코 시장이 당황하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따라갔다.
‘저 썩을 놈이.’
성질 같아서는 뒤통수를 확 때리고 싶지만, 나는 문명인이다.
저 자식을 어떻게 조질까 속으로 조용히 생각하며, 저자가 왜 날 이리도 경계하는지 그 원인부터 파악해 보았다.
“왕자님. 요즘 청나라 사람들에 관한 이미지가 매우 안 좋아져서, 루에프 당수께서 저리 신경이 날카로워진 것 같습니다.”
아니, 씨발.
중국인 이미지가 나빠진 걸 가지고 왜 날 탓해.
난 조선인이라고!
‘아······. 내 피부색이나 생김새가 청나라 사람들과 비슷해서 그런가?’
백인들은 중국인, 한국인, 일본인을 구별하지 못한다.
마치.
동양인이 영국인, 프랑스인, 독일인을 구별하지 못하듯.
“청나라 사람들의 이미지가 왜 안 좋아졌습니까?”
“여기를 한번 읽어 보십시오.”
파디 주지사가 회의실 한편에 놓여 있는 신문을 건네주었다.
【샌프란시스코 한인들. 여전히 거리에서 생존자 구호 활동에 앞장서.】
아주 작게 한인에 관한 기사가 있었다.
하지만 바로 옆에, 청나라 사람들에 관한 악평이 큼지막하게 실려 있었다.
【시청 기록실 불타, 일부 불법으로 체류 중인 사람들 이를 악용하여 시민권자라 주장. 특히 청나라에서 온 이민자들 대거 서류 위조 시도.】
중원에서 온 이민자들은 상당수가 시민권이 없는 불법 이민자들이다.
이번 대재해를 기회 삼아 그들은 자신들의 신분을 세탁을 기도했다.
동시에 시민들에게 나누어 주는 배급품 역시 착복하고 있었고.
‘젠장. 동양인 이미지가 아주 개떡이 되었네.’
중국이 중국 했다.
아······.
이래서 이민법이 내년에 이따위로 개정되는구나.
막연히 인종차별 때문에 그런 줄 알았는데 말이다.
왜 일본인만 예외로 하고 나머지는 철퇴를 맞았는지 대충 알겠다.
‘미국인들의 머리엔 일본인 혹은 청나라 사람 두 분류밖에 없으니까.’
머리가 띵하다.
그래도 내가 한인들 이미지를 개선해 놔서 이 정도지.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쯤 길거리를 걷다가 돌을 맞았을지도 모른다.
“처참하군. 이런 재난 속에서도 제 이득을 보려는 놈들이 있다니.”
“제 말이 그렇습니다. 아······ 물론 왕자님이 속한 한인들은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고맙네.”
조지 파디 주지사가 집무실에 모인 이들의 눈치를 보았다.
그런 후, 조심스레 내게 다시 제안했다.
“아무래도 오늘 회의는 왕자님께서 대신 이끄셔야 할 것 같습니다. 루에프 위원장이 한 성깔 하는 성격이라······.”
그래.
저놈과 함께 회의하지 않는다는 것이 좀 더 편하겠지.
나는 주지사의 의견을 수락한 후, 회의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아 물론.
내 머릿속에는 하나뿐이었다.
아베 루에프를 어떻게 조질지, 고심하고 있던 거다.
‘불길해, 느낌이 와, 느낌이······.’
가만히 두면, 내 계획을 이자가 방해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 재건 위원회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