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36화 (36/294)

< 사람 투자 (4) >

필립 제이슨?

그게 누구지?

“전하.”

그 의문을 해소해 주려는 듯, 우현식이 재빨리 다가와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서재필 선생입니다.”

아······.

그 동양인 최초의 의사 양반?

‘멀쩡한 한국식 이름 놔두고 왜 굳이 영어 이름을 쓰는 거지?’

인종차별에서 살아남은 생존법이라도 되나?

“서재필 선생. 만나서 반갑네.”

나는 밝게 웃으며 서재필에게 악수를 청했다.

하지만 서재필은 내가 내민 손이 무안할 만큼 본체만체하며, 끔뻑끔뻑 나를 한참 쳐다보기만 했다.

“필립 제이슨이라 불러주십시오. 이 왕자님.”

그러곤, 서재필은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정중히 부탁했다.

그래.

본인이 그리 원하는데 미국식으로 불러줄게.

현대에서도 이름을 바꾸면, 개명 후 이름을 부르는 게 예의지 않은가?

“알겠네, 닥터 제이슨. 자네 뜻이 정 그렇다면, 본인이 원하는 대로 불러주는 게 맞겠지. 내 앞으로 조심하겠네.”

미국식 이름을 부르자, 서재필은 비로소 내가 내민 손을 꽉 붙잡았다.

어?

그런데 말이다.

악력이 살짝······ 아니, 좀 많이 센 것 같았다.

‘뭐야? 나랑 기 싸움이라도 한판 하자는 거야?’

사람들을 많이 만났던 로비스트 출신답게, 나는 이런 부류의 인간들을 많이 접해 보았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트럼프다.

한 번 얕보이면 계속 날 쉽게 볼 수도 있기에, 나는 한껏 힘을 주며 서재필의 손을 꽉 부여잡았다.

젠장, 더럽게 아프네.

진짜 나한테 무슨 악감정이라도 있나?

‘이거 원.’

한국사에 대해선 아는 게 거의 없다 보니, 좀 답답하네.

딱히 원한 살 일은 없어 보이는데.

나는 빠르게 이강의 기억을 훑어보았다.

‘별것 없는데, 혹시 이 몸뚱이 말고 다른 이유 때문인가?’

미국으로 이민 온 교민들은 대부분이 나에게 호의적이었다.

하지만 극히 일부는 매우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내가 무언가 잘못한 건 없었고, 대부분은 아버지인 고종 황제 때문이었다.

‘우당(유길준) 이놈이, 전에 물어봤을 때 있는 그대로 내게 전부 털어놓지 않았나 보군.’

역시 남에게 듣는 정보는 이래서 좋지 않다.

주관적 사심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제길, 나중에 한번 다시 무슨 사연이 있나 알아봐야겠군.’

경계심을 한껏 끌어올리며 서재필의 손을 더욱더 세게 부여잡았다.

그러자.

“억.”

서재필이 작게 신음하며, 먼저 제 손의 힘을 풀었다.

나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옆에 있는 의자를 살짝 뒤로 빼며 그에게 권했다.

“이리 앉게나, 닥터 제이슨. 그나저나 뭘 마시겠나? 커피?”

“······좋지요. 같은 거로 먹겠습니다.”

“알겠네.”

나는 서빙하던 웨이터를 불러서, 내가 마시던 것과 같은 커피를 다시 주문했다.

서재필은 잠시 제 오른손을 주무르다가, 이내 막 나온 커피를 제 코에 가져다 댔다.

“향이 좋습니다.”

“그렇지? 내 오늘 이곳을 발견했네. 커피 향이 좋은 게, 앞으로 자주 올 것 같군.”

서재필은 커피를 홀짝이다가 이내 나를 바라보았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그 눈빛이 어찌나 맹렬한지, 의식하지 않았다면 절로 반걸음 뒤로 물러날 정도였다.

“이 왕자님.”

“말하게.”

“혹시, 여기 미국에서 몇 년 동안 거주하셨습니까?”

그 말에, 나는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처음 왔던 연도부터 세 보았다.

“한, 6년 살았던가?”

“6년이라······.”

“그건 왜 물어보는가?”

“왕자님 영어 발음이 생각보다 매우 좋으신 것 같아서······ 궁금해서 물어보았습니다.”

서재필의 얼굴이 묘하게 바뀌었다.

무언가 나를 부러워하는 것 같았다.

“무던히 노력하셨겠군요. 하긴, 여기 미국인들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누구나 노력을 해야겠죠. 왕자든, 평민이든 말입니다.”

첫인상은 별로 좋지 않았지만, 나는 감정이 없는 사이코패스는 아니었다.

서재필은 미국 이민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히는 인물.

하지만 무언가 슬픈 사연이 있어 보였다.

호기심 때문인지, 개인적으로 이를 물어보려고 할 때였다.

그때, 또 다른 나의 일행이 막 카페에 나타났다.

“아니, 자넨······. 구당!”

서재필이 벌떡 일어났다.

이후 유길준을 향해 달려간 후, 그를 꼭 안았다.

“오랜만이군. 자네가 이 왕자와 같이 있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말이야. 소문이 사실이었군. 그래, 구당. 잘 지냈는가?”

서재필은 매우 기뻐 보였다.

하지만 유길준은 무언가 탐탁지 않은 얼굴이었다.

“자넨 여전하군.”

서재필이 한 3초가량 머뭇거리다가 다음 말을 내뱉었다.

“응? 뭐라고 했는가?”

유길준을 눈을 가늘게 뜨며 ‘한국어’로 했던 말을 다시금 ‘영어’로 바꿔 반복했다.

“여전하다 말했네.”

“여전하지. 이름은 바꾸었지만 나는 여전히 나일세.”

“그 뜻이 아닐세. 후- 어찌 되었든, 먼 이국에서 그댈 만나니 반갑긴 하군.”

유길준이 서재필에게 인사를 건네더니 나를 슬쩍 쳐다보았다.

왜 이자를 이곳에 불렀냐는 눈빛이다.

“아, 다음 주쯤에, 이번에 처음 뽑은 장학생에게 장학증서를 수여하지 않는가? 그때, 그들에게 한마디 좀 조언해 달라고 내 여기 필립 선생을 불렀네.”

나의 장기적 목표는 될 수 있는 한 한인들을 최대한 의학 계열로 진출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서재필은 동양인 최초의 의사이고.

그의 경험담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이자를 장학재단 수여식에 불렀는데.

막상 만나 보니 살짝 아리송하다.

“그렇군요······.”

유길준이 뒷말을 흐리며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러곤 카페 한구석에 앉아, 마치 대화에 끼지 않고 관망하겠다는 듯 우리를 바라봤다.

‘이거······.’

영 불편하구먼.

한 놈은 나를 부러워하면서 한편으로는 나를 살짝 미워하는 것 같고.

또 다른 한 명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머뭇머뭇하고 있고.

‘불편하다고 해서 피할 수는 없지.’

오히려 나는 서재필을 가까이 두고 무슨 사연이 있는지 분석할 생각이었다.

그게 내 성격에 더 맞으니까.

“슬슬 집으로 돌아가세나. 아, 닥터 제이슨. 잘 곳은 어디로 구했나?”

“아직 구하지 못했습니다.”

“이 근처에 호텔들은 죄다 대지진으로 무너졌는데 행사 때까지 우리 집에서 함께 머무는 것이 어떤가?”

한참 고민하던 서재필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어쩔 수 없군요. 이 왕자님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 * *

이후로 나는 사흘간 서재필과 함께 다니며, 더불어 유길준과 다시 대화하며 그를 철저하게 분석했다.

그리하여, 서재필과 고종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아낼 수 있었다.

‘쯧쯧. 이놈의 생물학적 아버지는 비자금 건네준 거 하나 빼곤 죄다 도움이 안 되는군.’

서재필은 갑신정변에 참여했던 급진 개화파 인사였다.

하지만 정권교체가 실패로 돌아간 뒤, 고종은 서재필의 가족들을 모조리 반역죄로 죽였다.

서재필은 그 과정에서 미국으로 겨우 도망쳤다고 한다.

그러니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지.

마음속으로 욕망의 화신인 고종을 조용히 원망했다.

‘그래도······ 제 후배들은 각별히 챙길 생각인가 모양이군.’

나를 보기가 불편할 텐데.

샌프란시스코까지 친히 올 정도면.

그거 하나만큼은 확실하겠지.

“아아. 자자, 다들 자리에 앉아 주시지요.”

공식적으로 오늘은 합성협회 장학재단의 첫 장학금 수여식이 있는 날이었다.

총 열 명의 장학생들이 이 자리에 모였는데, 그중에는 작년부터 이미 대학을 다니고 있었던 이승만도 포함되어 있었다.

“제1회 합성협회 장학재단 장학금 수여식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럼 가장 먼저······.”

사회를 보는 이는 나의 친우이자, 교민들에게 사랑을 받던 김규식이었다.

그가 시선을 잠시 내게로 돌렸다.

약속했던 대로 나는 처음이 아닌 마지막에 연설할 예정이라서 살짝 미소만 지어 주었다.

“구당(유길준) 선생님. 구당 선생님을 이 자리에 모시겠습니다. 저기 계신 구당 선생님은 조선인 최초로 미국에 유학을 오신 분이십니다. 모두 박수 부탁드립니다.”

이번 장학금 전달식은 첫 회지만 적은 인원으로 치러지고 있다.

주최장소인 샌프란시스코가 대지진으로 인해 폐허가 되었고, 교민들 상당수는 자신의 터전을 복구하려고 바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당수는 이런 극악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번 수여식에 참여했다.

그래서일까?

우레와도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구당 선생님. 여기 모인 까마득한 후배들을 위해 한 말씀해 주시지요.”

연단에 올라선 유길준이 꾸벅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누구에게?

당연하게도 장학금 대다수를 출연한 나에게 인사를 올렸다.

“먼저 이 자리에 서게 해 주신 의왕 전하와 미주 교민 여러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내 호칭이 나오자, 또다시 박수가 쏟아졌다.

이에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서재필이 살짝 눈을 감으며 무언가 생각하는 표정을 지어 댔다.

“오늘 장학증서를 받을 열 명의 후배님들. 지금 후배님들의 상황은 어떻다 생각합니까?”

맨 왼쪽에 앉아있던 청년은 목청이 터지도록 크게 대답했다.

“미국 유학을 긴 항해에 빗댄다면, 이제 막 돛을 올렸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유길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볼 수 있겠군요. 하지만 본인은 다르게 생각합니다. 후배님들, 눈을 감아 보십시오. 무엇이 보이십니까?”

유길준의 물음에 장학생들이 답했다.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컴컴합니다.”

유길준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예. 그게 바로 여러분의 미래입니다. 그런 캄캄한 미래와 수많은 난관이 여러분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유길준은 어린 시절 미국으로 유학 갔다가 무지막지한 인종차별을 받았다.

결국 학위를 포기하고 조국으로 돌아왔는데, 그때의 기억을 공유하기라도 하듯, 유길준은 장학생들에게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경고했다.

“······이상으로 실패한 선배는 조언을 끝마치겠습니다. 부디 여러분은 나약했던 과거의 본인처럼 학업을 도중에 그만두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부디 후배님들 전부가 성공적으로 학업을 끝맺을 수 있었으면 좋겠군요.”

유길준은 마지막 말을 끝으로 연단에서 내려왔다.

나는 유길준과 시선을 교환하며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진솔하지만 꺼내기 어려운 조언을 해 주었군. 여기 있는 이들도 잘 알아들었을 걸세. 정말 피가 되고 뼈가 되는 조언이었네. 고맙네, 우당.”

“아닙니다, 의왕 전하. 미약하게나마 전하를 돕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김규식이 빠르게 다음 연설자를 연단 위로 호출했다.

“다음은 서재······ 필립 제이슨 선생님께서 연설하겠습니다.”

서재필은 당당하게 연단에 올랐다.

이후.

“잘 지냈습니까, 여러분. 닥터 제이슨입니다. 만나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평소 보였던 행동답게, 서재필은 연설도 영어로 해 나갔다.

“나는 오늘 대단히 기쁩니다. 선배로서 그대들에게 유익한 조언을 하나 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재필의 연설을 들으며 나는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저기 뒤에서 싱글벙글 간식을 먹고 있는 녀석.

아일랜드 삼 형제 중 막내였던 맥스의 얼굴이 내 뇌리를 스친 것이다.

‘어찌 보면 꿋꿋하단 말이야. 눈치 하나 보지 않고, 제 할 말 하는 것을 보면.’

그는 여전히 영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교민들의 장학재단 행사에서 말이다.

“······유익한 조언을 하나 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김규식은 서재필과 조금 떨어진 옆에 서서 그의 말을 통역하고 있었다.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풍경이었다.

“여러분은 이 땅에 새로운 지식을 배우러 왔습니다. 더불어······ 다수는 이곳에 정착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박사님.”

“저희는 이곳에서 반드시 성공할 것입니다.”

장학증서를 받을 유학생들은 다들 어느 정도 영어를 할 줄 아는 이들이었다.

그렇기에 김규식이 서재필의 말을 번역하기도 전에 그의 말에 대꾸했다.

“그런 마음가짐, 좋군요.”

서재필은 후배들의 격한 반응에 살짝 고무된 것 같았다.

제 아들들을 보는 것처럼 한참 아빠 미소를 지었다.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한마디 충고부터 하겠습니다.”

서재필이 이내 얼굴을 굳힌다.

유길준처럼 쓰디쓴 조언을 할 생각인가 보다.

“미국에 온 이상, 여러분은 과거의 것을 전부 다 잊으셔야 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미국인이라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미국인답게, 모든 것을 미국적으로 사고하십시오.”

응?

잘못 들었나 싶어서 고개를 갸웃했다.

통역하던 김규식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서재필을 보다가 이내 다시 통역해 나갔다.

“미국에 온 이상 과거의 악습은 다 잊으십시오. 여러분은 미국에 왔습니다. 현지인처럼 생각해야 현지인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대중들을 의식해서인지 김규식은 살짝 뉘앙스가 다르게 서재필의 말을 번역했다.

서재필은 이에 김규식을 한번 슬쩍 흘겨보았다.

‘저놈 보소. 조선어 할 줄 아는 것 같은데······ 못 하는 척하는 거 봐.’

사실 서재필은 맞는 말만 하고 있었다.

후배 유학생들이 미국 생활에 적응하려면 현지 문화에 동화되어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왔던 뉘앙스는 나를 아주 미묘하게 거슬리게 했다.

‘학창 시절, 나아가 로비스트로 일할 때······ 항상 분란만 일으키던 바나나들을 보는 것 같군.’

겉은 동양인이지만, 서양인처럼 행동하는 부류들.

그들을 바나나라 부른다.

‘재미교포들은 두 가지의 선택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지.’

미국은 다인종 국가지만, 의외로 끼리끼리 다닌다.

백인은 백인끼리.

흑인은 흑인끼리.

동양인은 동양인끼리.

‘하나는 교포끼리 뭉치는 거고. 하나는 아예 백인처럼 행동하는 거다.’

서재필의 조언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그가 말하는 생존법은 대대로 이어져 온 소수인종의 생존법 중 하나니까.

하지만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특히나 지금 그가 연설하고 있는 곳이 바로 교민들이 모인 곳임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서재필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제 할 말만을 이어 갔다.

“혹시 여기서 아침을 챙겨 먹는 사람 있습니까?”

번쩍-

뒤에 서 있던 장학생들이 손을 든다.

현대와는 다르게 이 시대 조선인들은 이런 연단 질문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저는 먹지 않습니다. 부끄럽게도, 아침잠이 많아서······.”

한 장학생이 개미가 기어가는 목소리로 아침을 먹지 않는다고 하자, 서재필이 혀를 찼다.

“저런······ 영양학적으로 봤을 때 아침은 꼭 먹어야 합니다. 그래야 머리가 빠릿빠릿하게 돌아갈 수 있지요.”

“조언 가슴에 새겨 두겠습니다.”

“아······ 대화 주제가 잠깐 옆으로 샜군요. 내가 하고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겁니다. 쌀밥에 고깃국 같은 한식 말고, 버터에 빵을 발라 먹으십시오. 일단 식생활부터, 현지식으로 바꾸란 말입니다. 이후에는 입는 복장도 이후 취미생활도 전부 현지인들처럼 생활 방식을 바꾸십시오. 사고방식을 완전히 바꿔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이곳 미국은 왕정이 아닙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선 여러분 자신이 주체적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다 맞는 말인데.

묘하게 거슬려.

대다수는 그걸 모르고, 그냥 유학 선배로서 조언해 주는 모양이라 여기는 것 같지만.

단어 하나하나에 신경 쓰는 나로서는 무언가 기묘함이 느껴졌다.

“앞으로 조언해 줄 것이 있다면 언제든 그대들을 위해 조언해 주겠습니다. 연락만 하십시오. 내 언제든지 달려가겠습니다.”

서재필의 기나긴 연설이 끝났다.

다들 일어나 손뼉을 친다.

그나저나······.

아까부터 이승만 저놈은 왜 자꾸 나만 뚫어지게 보는 거지?

“의왕 전하. 의왕 전하께서 마지막으로 장학생들에게 조언해 주시지요.”

서재필이 자리에 앉을 때, 내가 벌떡 일어서게 되었다.

그러자, 아까와는 다르게 분위기가 훨씬 더 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의왕 전하!”

“만수무강하소서!”

일대가 시끄러워졌다.

김규식은 이를 조용히 시키려고 진땀을 뺐다.

“아아······ 시작에 앞서 한마디 오늘 내가 말할 주제를 관통할 이야기부터 간략하게 하지.”

내가 연단에 서자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모두 내 말을 경청하기 위함이겠지.

‘잘 보라고 서재필.’

무슨 생각으로 내 초대에 응했는지는 모르지만.

허튼 생각을 품고 있으면 쉽지는 않을 거다.

“여기 있는 열 명의 장학생들.”

나는 그들과 눈을 마주치며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내뱉었다.

방금까지 서재필이 했던 말과 정반대의 말이었다.

“부디 자네들의 뿌리를 잊지 말게. 자네들은 조선에서 태어난 건아들일세.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이 사실은 결코 변치 않네.”

< 사람 투자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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