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랑이 등에 날개 달기 (3) >
“시연 잘 보았네. 자······ 한번 검토해 보게나.”
“왕자님, 이게 뭡니까?”
“자네들이 그토록 원했던 투자 계약서네. 내 지난번에 받았던 걸 기반으로 몇 가지를 추가해 보았네.”
윌버와 오빌은 활짝 웃으며 내가 건넨 서류를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얼굴이 조금씩 굳어 갔다.
“세부 조항이 생각보다 좀 많군요.”
“다른 때는 털털하더라도, 이런 면에 있어선 꼼꼼하고 세심해야 하지 않겠나. 아! 시간은 많으니 천천히 읽어 보게나.”
윌버는 계약서를 뒤적거리던 중에 무언가 거슬렸는지, 안에 적혀 있던 내용을 입 밖으로 소리 내 읽기 시작했다.
“영업이나 홍보 부분에서 손을 떼고 연구에 집중하라 적혀 있는데. 이게 정확히, 무슨 뜻입니까?”
“말 그대로 성능 개선에 집중해 달라는 뜻이네. 자, 이것 또한 받게나.”
“무엇입니까?”
“그간 자네들의 행적들을 하나하나 조사한 것들이네. 자네들이 내게 건넸던 서류들은 하나씩 무언가 빠져 있더군.”
두 형제는 내가 모은 기사를 건네받자, 똥 씹은 표정을 지었다.
『라이트형제는 혁신적인 발명가인가, 아니면 비열한 사기꾼인가?』
『새뮤얼 랭글리 스미스소니언 소장, 라이트형제 고소.』
『법원, 라이트형제에 손을 들어주어. 랭글리 소장은 이를 인정할 수 없다며 끝까지 반발.』
그동안 두 형제는 기껏 비행기를 만들어 놓고도 투자를 받지 못했다.
역사가 제법 긴 스미스소니언 재단과 갈등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 역시 자네들이 무죄라 생각하네. 기술을 도둑질했으면, 지난 대결 때 그 랭글리 소장이라는 자가 비행에 성공했어야지. 자네들은 성공했는데 그자는 실패했으니, 명백하지 않은가?”
“······.”
“······.”
“비행이 성공했는데도 국방부에서는 연락조차 되지 않는다며?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나는 스미스소니언 재단 때문이라 생각하네. 윌버, 자네가 한번 대답해 보게. 연방정부의 국방부는 어디에 있지?”
“워, 워싱턴에 있습니다.”
“그래. 재단도 그 근처에 자리하고 있지. 그러니 알게 모르게, 재단의 주장에 좀 더 귀를 기울일 것일세. 자네들이 무죄라 판결 났어도 말이야. 자네들은 두세 번밖에 만나지 않은 외지인들이지만, 재단 측 인사들은 그렇지 않으니까.”
두 형제가 입을 꾹 다물었다.
저 둘은 항상 불리하면 입을 꾹 다무네.
적극적으로 해명하는 게 좋은 습관인데 말이야.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자네들의 언론 대응 방식이네. 자네들은 적극적으로 자신들을 변호해야 했네.”
진실은 나만 알고 있으면 안 된다.
그리되면, 때론 악의적인 거짓에 파묻힐 수도 있다.
“아쉽더군. 더욱이 비행기 홍보에도 자네들은 그간 너무 무신경했네. 시연할 때, 언론에 보도되는 양이 너무 적어. 자네들 혹시 언론사 기자들과 사전에 연락이라도 했는가?”
내 말에, 두 사람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런······.’
기자들과 같이 식사도 안 했나보다.
뭐라고?
연락처도 모른다고?
어휴-
뒷돈은 주지 않더라도 관리 정도는 했어야지.
직접 홍보까지 하고 싶으면 말이다.
“아닌가 보군. 그랬을 것 같아서 연구 개발에 집중하라고 권한 것이네. 자네들은 다른 분야는 젬병이니까.”
아픈 곳을 자꾸 후벼 파는 것 같아서 미안하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더하여, 현재 그들이 왜 이리 투자자를 계속 모집해야 하는지도 알려 주었다.
“그래도 시연 조종까지 포기하라는 것은 너무······.”
오빌의 말이 길어질 것 같아, 나는 재빨리 끊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러다가 만약에 말이야. 자네가 다치기라도 하면 어찌 되지?”
“그럴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절대가 어디 있는가? 그리고 내 입장도 생각해 줘야지. 나는 자네 둘, 딱 자네 둘의 능력만 보고 거액을 투자해야 하네. 그런데 오빌, 자네가 만약 사고라도 당하면 어찌 되겠는가?”
오빌이 다시 대꾸하려 하자, 형인 윌버가 오빌의 어깨를 꾹 잡았다.
동생을 진정시키려는 것 같았다.
“왕자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하긴, 저희도 다른 일에 신경을 쓰기보단 연구에 집중하고 싶었습니다.”
“혀, 형님.”
윌버가 무언의 눈 신호로 오빌을 압박했다.
그러자, 오빌이 입을 꾹 다물었다.
“저나 오빌이나, 각지를 돌아다니며 건강이 많이 나빠졌습니다. 왕자님 말씀대로 이젠 저희 몸도 챙겨야겠지요. 왕자님은 저희만 보고 거액을 투자하시는 것이니까요.”
“내 생각을 이해해 주다니 고맙네.”
“하지만 한 가지 조금 의아한 점이 있습니다. 서부에 공장을 세우시려는 겁니까?”
윌버가 계약서 추가 조항 중 하나를 들이밀게 의문을 제기했다.
“공장을 동부에 지어야 유럽에 수출까지 쉬이 할 수 있습니다.”
“맞네. 자네 말이 맞아.”
나는 윌버의 의견에 전격으로 동의했다.
진짜로 서부엔.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래서 군납품 계약이 확정되거나 유럽 국가에 비행기 수출 계약이 체결되면 동부에도 공장을 추가로 건설할 것일세. 하지만 첫 공장은 서부여야만 되네. 그것도 여기 캘리포니아주에.”
“어째서······.”
“내 이 자리에서 그 이유를 설명해 주겠네.”
나는 침을 한번 꿀꺽 삼킨 다음 오른손 검지를 폈다.
“첫째. 돈이 적게 드네. 캘리포니아주에서 세금 감면이 되도록 법안을 마련하는 중이지.”
캘리포니아 주지사인 조지 파디는 서부의 냉철한 현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대지진 사건을 계기로 일자리 지원 법안을 마련 중이었다.
공장을 세울 때.
직접 나서서 토지 매입도 도와주고, 주에 내는 법인세도 일부 깎아주는 식으로 말이다.
이미 몇몇 법은 특별법으로 통과가 된 상황이기에, 캘리포니아주에 비행기 공장을 짓게 되면 돈을 제법 절약할 수 있을 게 분명했다.
나는 빠르게 손가락을 하나 더 폈다.
“둘째, 당장 비행기를 사들일 만한 지역은 서부와 중부뿐이야. 서부에 공장을 세운다면 이 두 지역을 커버할 수 있지.”
플라이어3에서 일부 구조를 변경해 농업용 비행기로 판매할 생각이다.
일단은 농장에 농약을 살포하는 용으로 홍보한 후, 종자를 파종하거나 거름을 뿌리는 용으로도 그 용도를 확장할 예정이었다.
“농업용 비행기라니······.”
“그건, 진짜로 생각지도 못했는데 말입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계속해서 내 의견에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첫 시도니, 처음에는 내가 소유한 농장 위주로 시작하겠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캘리포니아 주로 확장될 걸세. 한 3년 정도 지나면 중부에까지 소문이 퍼지겠지.”
미국 최대의 곡창 지대는 모두가 알 듯 중부 평원지대다.
미시시피강 유역 인근은 동부나 서부가 이동 거리가 비슷했다.
그렇기에 서부에 공장을 세우면, 적어도 중부까지는 커버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내가 말꼬리를 길게 끌자, 윌버가 살짝 궁금한 듯 되물었다.
“마지막은 무엇입니까?”
“이곳에 내가 사니까.”
“예?”
“말 그대로네. 이곳에 내가 사니까. 이곳에 공장이 설립되면 내가 공장을 직접 감독할 수 있네. 자네들은 차후에 세워질 동부의 제2 공장을 관리해야 하지 않겠나? 아니면, 그때까지 이곳으로 와도 좋고.”
“······.”
“······.”
세 번째는 근거가 약하다고 볼 수 있으나, 반박하기에도 좀 그랬다.
감시자가 있냐 없냐의 차이는 크니까.
‘다 알려 줄 필요는 없겠지.’
공장을 세우면 주지사에게 생색도 좀 낼 계획이었다.
더불어, 기술자들 상당수를 한인들로 채울 생각이고.
“아, 마지막도 읽어 보았나?”
“학생들에게 강의를 해 달라 적혀 있는데 말입니다. 누굴 가르치라는 것입니까?”
“나는 이곳 캘리포니아에서 기술학교를 운영하고 있네. 1년에 두 달 정도, 내 밑에 있는 학생들을 좀 가르쳐 주게나. 비행기 제작에 관한 이론을 알려 주어도 좋고, 엔진 제작에 관한 노하우를 알려 줘도 좋네.”
나는 현재 농기계 제작 회사도 하나 차려 놓은 상태다.
기존 증기기관 트랙터를 분해한 후, 시중에 나와 있는 내연기관을 재조립하며 새로운 제품 개발에 심혈을 쏟고 있었다.
두 형제가 기술자들을 가르쳐 준다면, 제작 속도가 훨씬 향상되겠지.
플라이어3 역시 내연기관이 장착된 이동 수단이니까.
비행기 엔진은 다른 개체와 비교해 작긴 하지만, 경량화보다 중량화가 더 쉽기에.
이들에게 기술을 배운다면, 내 아래 있는 학생들이 더 빨리 자체 엔진을 만들어 낼 수 있을 듯했다.
“더 할 말이 있는가?”
둘은 반박하지 못했다.
지금 손에 칼을 쥔 자는 나니까.
“그럼 잘 부탁하네. 내 자네들만 믿겠네.”
* * *
7월이 되자.
뜨거운 여름이 이어진 듯, 캘리포니아 사교계 또한 후끈 달아올랐다.
4년 만에 돌아온 주지사 선거 때문이었다.
“11월에 치러질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우리 공화당은, 조지 파디 현 지사를 후보로 지명하기로 했습니다. 모두 일어나서 박수로 파디 주지사를 환영해 주시길 바랍니다.”
“파디! 파디!”
“파디! 승리! 파디! 승리!”
그의 이름이 불리자, 조지 파디는 주먹을 꼭 쥐고는 권리당원들 앞에서 승리의 세레머니를 보였다.
이후 연단으로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응? 뭐지?’
조지 파디가 잠시 멈추더니 엄지를 척 쥐는 행동을 보였다.
주지사, 저 자식.
설마, 날 보고 저리 행동하는 거야?
‘감동인데.’
잊지 않았구나.
하긴, 나 아니었으면 아베 루에프의 농간 때문에 다른 놈이 저 자리에 올랐을 거다.
검찰 수사를 통해, 아베 루에프가 사건 경위를 죄다 자백하지 않았던가?
“올 한 해는 참으로 힘든 한 해였습니다. 우리 캘리포니아주에 커다란 시련이 닥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끝내 이를 극복하고······.”
나는 흐뭇하게 웃으며, 공화당 전당대회 자리에서 조지 파디가 후보 수락 관련으로 연설하는 것을 경청했다.
“안녕하십니까. 이 왕자님.”
그때였다.
웬 금발의 키가 큰 미남 하나가 나에게 다가왔다.
“자네, 남태평양 철도회사 신임 대표로 선출된 앤서니 로호트로군.”
“저를 아시는군요. 우리 구면인가요?”
“캘리포니아주에서 가장 큰 회사의 대표인데. 이 정도는 알아야겠지. 자네도 내 이름을 알고 있지 않은가?”
더욱이, 남태평양 철도회사는 나와 대립했던 아베 루에프를 제일 많이 후원했던 회사다.
이 때문이라도 모를 수가 없었다.
“하하. 그렇군요. 저는 감사 인사나 드릴까 해서 왕자님께 이리 찾아왔습니다.”
“내게 무슨 감사 인사를?”
“왕자님 덕분에 이 자리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아, 그런가? 축하하네.”
여유로운 표정으로 밝게 인사했다.
하지만 속마음은 좀 달랐다.
물 위에 떠 있는 거위처럼, 미친 듯이 머리를 굴리느라 정신이 없었으니까.
“왕자님은 제 은인이시죠. 패트릭 그 자식이 그동안 제 라인이 아니라고 얼마나 절 얼마나 견제했는지 아십니까?”
“그렇다면 다행이군. 날 은인이라 생각하는 것 보니 향후 우리 둘이 대척할 일은 없어 보이는군.”
“맞습니다.”
내가 슬쩍 떠보자, 앤서니가 맞장구를 치며 손뼉을 한번 쳤다.
“느낌이 옵니다. 왕자님과 저는 좋은 친구가 될 것이라고요. 전 벌써 친근감이 느껴지는군요.”
앤서니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내게로 좀 더 밀착했다.
“더욱더 친해질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말입니다. 그보다 왕자님, 제게 한 가지 조언 좀 해 주십시오. 전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주지사님 때문에 저희 주주들이 아주 난리입니다.”
“주지사와 계속 대립할 건가? 아니면, 공존할 건가?”
“공존할 수 있다면 공존해야겠죠. 피할 수 있는 싸움이라면 피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다른 건 하나도 관심이 없습니다. 돈이 최고지요.”
지금 한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방금의 대화에서 앤서니의 성향이 대충 견적은 나오는 것 같았다.
이자, 날 로비스트 업계로 데리고 온 선배와 굉장히 비슷했다.
“공존하고 싶다면 잠시 숨죽이고 기다리게. 나라면 그러겠네. 소나기는 지나가기 마련이니까.”
“소나기는······ 지나가기······ 마련이라고요?”
앤서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하긴, 주지사님이 영원히 주지사만 하시지는 않으니까요. 왕자님도 잘 아시겠지만, 사실 파디 주지사. 중앙정계 진출에 관심이 꽤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지난번 만남에서, 파디는 내게 자신의 야심을 살짝 공개했으니까.
‘중앙정계 진출은 아직 이르다 했지?’
캘리포니아에서 좀 더 기반을 쌓고 워싱턴으로 이동하고 싶어 했다.
물론, 나로서는 파디가 계속 쭉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남는 것이 좋으나.
워싱턴으로 가는 것 또한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국무위원.
더 나아가 원 역사와 다르게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면 내게 도움이 될 것이다.
“자네 회사가 두 연방 상원의원의 강력한 후원자라 들었네.”
“이런······ 설마, 저보고 현 상원의원님들을 배신하라는 것은 아니죠?”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인가?”
“하하하. 플린트 상원의원의 상태를 왕자님께서도 잘 알고 계시는군요.”
미국의 연방 상원의원은 주마다 2명씩 뽑는다.
현재 캘리포니아를 선거구로 두고 있는 상원의원은 조지 클레멘트 퍼킨스와 프랭크 푸트남 플린트.
그중 플린트는 건강이 좋지 않아 연임에 관심이 없었다.
“역시, 역시 왕자님은 제 예상대로 뛰어난 안목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맞습니다. 플린트 의원은 이번을 마지막으로 상원의원직에서 물러날 생각인 것 같습니다.”
상원의원의 임기는 6년.
1905년도에 막 워싱턴에 입성했으니, 적어도 이번 임기까지 조지 파디는 주지사직을 무사히 수행할 거다.
“그 자리를 파디 주지사께서 쏙 들어가시면 되겠네요. 그런데 말입니다. 그다음 주지사는 파디 주지사의 입김이 좀 닿지 않겠습니까? 자신의 직위를 물려주는 것이니까요.”
그렇다.
물론 그 과정에서 나 또한 움직일 거고.
또 다른 앤서니.
그러니까, 앤서니 컴스톡과 같은 급진적인 청교도들은 사절이거든.
대놓고 황인종들을 깔보는 인종차별주의자들도 그렇고.
앤서니가 혼자 계속 주절거렸다.
“아, 저는 사실은 민주당보다 공화당을 선호합니다. 개인적으로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사상 또한 좋아하고요. 그쪽 계열이면서, 동시에 개발에도 좀 더 열린 분을 찾으면······ 우리 서로에게 이익이 되겠군요.”
나는 침묵했다.
내가 미국 정치계에 개입한다는 인상을 주지 싫었기 때문이다.
“역시, 답은 있단 말이죠. 굳이 싸우지 않아도 되는데. 멍청한 패트릭 같으니······.”
신임 대표는 전임 대표와의 관계가 매우 좋지 않은 듯했다.
그 때문인지, 내게 꽤 많은 호감을 보였다.
“제 명함입니다. 시간 나면 우리 회사에 방문해 주십시오. 아! 왕자님.”
“말하게.”
“투자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저희 남태평양 철도회사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역시.
첫인상 때 느꼈던 대로, 날 로비스트 업계로 데리고 온 선배 같네.
‘이 세상에 영원한 적은 없다고 했지.’
선배가 늘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던 게, 자신보다 힘센 자는 매수해 버리면 그만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아아, 잠깐.
저자가 선배와 비슷한 성향이라면, 나 제법 강해진 것일까?
이렇게 날 매수하려고 하다니.
“아! 지아니니 은행장! 떠오르는 캘리포니아의 샛별!”
앤서니가 호들갑을 떨며 크게 고성을 내질렀다.
내 곁으로 지아니니가 다가왔기 때문이다.
“FXXX. 앤서니 로호트. 기름장어 새끼가 여긴 무슨 일이지?”
“못 올 곳을 온 것도 아닌데, 너무 야박하군.”
“상식적인 인간이면 올 수가 없지. 너희 회사가 아베를 이용해 파디 주지사를 몰아내려고 하지 않았나? 검찰 조사에서 죄다 밝혀진 것으로 아는데. 씨벌 놈들아.”
앤서니가 오리발을 내밀었다.
“말은 똑바로 해야지. 난 아닐세. 내 전임이 그랬는걸?”
“뭐?”
“알잖는가? 그 머리에 든 것이 아무것도 없는 패트릭 자식 말이야. 그놈이 전부 이 일을 꾸몄네. 난 알았다면, 반대했을 것일세.”
앤서니가 나를 슬쩍 바라보더니 앓는 소리를 해 댔다.
“왕자님, 저기 보이십니까? 지아니니가 저를 매도하고 있습니다.”
“썩 꺼지지 못해!”
지아니니가 욕을 한 바가지 쏟아내자, 앤서니가 이내 울상을 짓곤 물러섰다.
“오늘 대화는 즐거웠습니다. 이 왕자님, 그럼 언제 한번 다시 뵙죠.”
“씨벌, 재수 없는 새끼. 저 미꾸라지 같은 놈이 왕자님께 뭐라고 말했습니까?”
“별것 아닐세. 자기네 회사에 투자 좀 하라는군.”
“예? 투자요?”
지아니니가 씩씩거리며 앤서니에 관한 이야기를 해 줬다.
그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이탈리아계 미국인으로 적을 잘 만들지 않는 능구렁이라고 했다.
‘같은 이탈리아계라 좀 아는가 보군.’
앤서니에 관한 정보를 좀 더 물어보고자 지아니니에게 여러 정보를 물었는데.
그때.
키가 작은 사내가 내게로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이 왕자님. 그간 잘 지내셨는지요?”
“자네는······.”
존 맥스웰.
주지사의 막내 비서로 있던 친구다.
그의 곁에 젊은 청년들이 둘이나 붙어 있는 것으로 봐선, 승진한 것 같았다.
“주지사님께서 이걸 전해 드리라 하셨습니다.”
“이게 뭔가?”
“주지사님께서 왕자님께 드리는 감사선물입니다. 요긴하게 쓰실 것이라고 하시더군요.”
뭐지.
존에게 봉투를 건네받았다.
무게상으로는 별거 없는 듯했다.
“왕자님 뭡니까?”
“글쎄.”
슬쩍, 봉투 안을 엿봤다.
그 안에는 신용카드 크기의 검은색 카드가 있었다.
‘뭐지?’
가운데에 붉은 색상으로 알파벳이 적혀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소리 내서 읽게 되었다.
“보헤미안······ 클럽?”
< 호랑이 등에 날개 달기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