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헤미안 클럽 (2) >
안에서 시끌벅적하게 떠드는 동안.
나는 면접을 보았던 방에서 따분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때.
제법 앳된 얼굴을 가진 사내가 내게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이 왕자님. 오래 기다리셨지요?”
더는 ‘후보자’가 아니라는 듯, 이젠 ‘왕자’라 부른다.
말하지 않아도 대충 결과를 알 것 같았다.
“보헤미안 클럽의 정회원이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여기, 출입 카드부터 받으십시오. 분실하시면 재발급까지 시간이 꽤 오래 걸리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전에 받았던 검은색 카드와 디자인이 굉장히 유사했다.
하지만 다른 점도 존재했는데, 처음 받았던 카드와 달리 오른쪽 위에 웬 부엉이 한 마리가 그려져 있었다.
아! 생각해 보니······.
여기 보헤미안 클럽의 상징이 부엉이였지.
정문 위에도 한 마리가 떡하니 돌로 조각되어 있지 않았던가?
“고맙네. 아, 자네. 이름이 어떻게 되는가? 복장으로 보아하니 여기 직원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야.”
“쥘 외젠 파제스라 합니다. 같은 클럽 회원이지요.”
“파제스?”
어?
내가 아는 이름이 나오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파제스라면 내가 박병준으로 살 때, 꽤 좋아하던 예술가였기 때문이다.
“자네가 풍경 회화로 유명한 그 파제스라고?”
내가 깜짝 놀라 아는 체를 하자, 앞에 있던 청년의 얼굴 또한 당황한 표정으로 변했다.
이어 살짝 부끄러운지 머리를 긁기 시작했다.
“화가고 동시에 풍경화를 위주로 작품활동을 하지만, 아직 그리 유명하지는 않습니다.”
잠깐.
목소리도 그렇고, 저 눈빛도 그렇고.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
나는 재빨리 팔짱을 끼며 살짝 경계하는 눈빛으로 파제스를 보았다.
“아까 의장 옆에 앉아 있던, 사슴 가면인가 보군.”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내게 날 선 질문을 던지며 압박하지 않았던가?”
“저는 당최, 왕자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발뺌하지 말게. 자네는 목소리가 특이하네. 거기 있던 열한 명의 면접관 중 홀로 미성이지 않았나? 그래서 내 자네 목소리를 기억할 수 있었네.”
“이런······.”
파제스는 한숨을 크게 쉬며, 자신이 면접관이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이리 쉬이 들킬 줄 알았다면 그 우스꽝스러운 가면을 쓰지 말았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맞습니다. 아까 면접관으로 왕자님의 클럽 가입을 심사했습니다. 뭐, 이젠 같은 회원이니. 이 정도는 알려드려도 되겠네요.”
나는 계속 경계하는 눈빛을 보내며, 파제스를 압박했다.
“그렇다면, 자네는 분명 내게 반대표를 던졌겠군.”
파제스가 손사래를 치며 내 주장에 반박했다.
“아닙니다, 왕자님. 면접 당시에는 거칠게 왕자님의 사상을 비판하긴 했지만, 저는 왕자님의 클럽 가입을 찬성했습니다.”
“어째서 그런 것이지? 나와 그대의 가치관은 서로 상충하는 것일 텐데? 예술을 투자의 수단으로 보던 내 주장을 그 자리에서 아주 신랄하게 비판하지 않았나?”
“그랬지요. 지금도 그 점은 동의하지 않습니다.”
파제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왜 찬성에 투표했는지 부연 설명을 했다.
“하지만 왕자님은 제 은인이십니다. 은인의 클럽 가입을 어찌 반대한단 말입니까?”
“은인? 내가?”
내가 뭘 해 줬다고?
네 그림 한 점 산 적이 없는데.
아직은 말이다.
내가 황당한 표정을 짓자, 파제스가 재빨리 뒷말을 이었다.
“예. 왕자님 덕분에 옛 샌프란시스코 풍경을 잔뜩 그릴 수 있게 되지 않았습니까? 왕자님께서 지난날 시내 곳곳을 사진으로 찍은 후 인화해 주신 덕분에 과거 샌프란시스코 모습을 참고할 수 있었습니다.”
아······.
나는 내 고향이나 다름없는 샌프란시스코를 위해 그냥 내 생돈을 쓴 셈이었는데.
이게 나비효과가 되어 이자의 마음을 얻게 된 듯싶다.
‘그러고 보니, 전에 최현우가 했던 말이 기억나는군.’
어느 예술인이 내가 찍었던 샌프란시스코 사진 몇 장을 빌려 갔다고 했었는데 말이다.
세상일이라는 게 참······.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 같다.
생각지도 못한 이런 우연이 계속 생기니까.
“샌프란시스코는 어떻게 보면 제 뮤즈이기도 합니다. 연인의 옛 모습을 이리 잘 보존해 주셨는데, 제가 어찌 왕자님의 가입을 반대할 수 있었겠습니까?”
예술가들의 사고방식은 참······.
독특하다, 독특해.
도시 하나 자체가 뮤즈가 될 수 있다니 말이다.
‘파제스는 샌프란시스코와 더불어 파리의 풍경도 자주 그렸었는데.’
그럼 뮤즈가 둘인가?
양다리네?
“왕자님의 가입은 사실 쉽지 않았습니다. 역대 가장 치열한 토론이 이어졌으니까요.”
경계했던 내 눈빛이 마음에 걸렸던 것인지, 파제스는 자신이 내게 도움을 주었다는 것을 강조했다.
“찬반이 아주 첨예하게 갈렸습니다. 사실 의장님까지 투표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방금 파제스의 발언으로 한 가지 사실을 유추할 수 있었다.
치열한 토론이 이어졌다고 했으니, 나는 6 대 5로 이 클럽에 정회원이 되었을 거다.
이 방에 들어왔던 면접원은 총 11명.
의장을 제외하면 10명이다.
마지막에 의장이 투표까지 해야 했다면, 5 대 5 동률 상황이 연출되었다는 것이겠지.
‘얼굴색에 집착하며 동양인에 반감을 품던 이들과 내 혈통을 동경하는 이들 중, 후자가 이겼다는 거군.’
그나저나 왕자인데도 이 정도면.
만약 내가 그냥 평범한 동양인이었으면 통과되었을까?
씁쓸하다.
현재 미국의 인종차별 사상이 얼마나 널리 퍼졌는지, 이 투표로 다시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좋은 정보를 얻었군.’
그나저나 파제스는 입이 꽤 제법 가벼워 보였다.
뭐, 입 무거운 예술가들은 한 번도 본 적이 없긴 하다만.
살살 긁어 주면 꽤 쓸 만한 정보들을 우수수 쏟아 낼 것 같아서 파제스를 한번 떠보기로 마음먹었다.
“생각해 보니 한 시간이나 여기서 기다렸는데 말이야. 그동안 나를 주제로 토론하였다고?”
“맞습니다. 펠란 씨가 얼마나 왕자님의 가입을 반대하던지······ 그 탓에 회의 시간이 예상보다 훨씬 더 길어졌습니다. 앗, 펠란 씨를 언급하다니. 제 실수입니다. 잊어 주십시오.”
저 방에서 일어난 일은 함구해야 하나 보군.
“응? 뭐라고? 잠시 딴생각하고 있어서 못 들었는데. 내게 무슨 말을 했던가?”
“아, 아닙니다.”
나는 파제스를 안심시키며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펠란?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것 같은데······.’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하며 이곳의 유명인사 관련 자료들을 꽤 많이 수집했다.
로비스트로 살았을 때, 내가 원래 알고 있던 미국 정치사 정보 또한 아직 이 머리에 저장되어 있었고.
기억을 더듬으며 펠란이라는 성을 가진 자가 누가 있는지 찾아보았다.
‘존 D 펠란을 말하는 거군.’
현 샌프란시스코 시장은 유진 슈미트다.
존 D 펠란은 전임 시장으로, 나중에 연방 상원의원이 되어 아시아인의 토지 소유 제한법을 만드는 자였다.
‘빌어먹을 빌런은 아베 루에프 하나로 충분한데 말이야.’
펠란은 선거운동을 할 때 아주 노골적으로 황인종 차별 문구를 넣었던 인물이었다.
그 때문인지, 현대에는 꽤 비판받는 정치인 중 하나이기도 했다.
학교 발표 수업 때, 미국 내에서 일어났던 인종차별 일화로 배웠었는데.
그 자식이 바로 이 자리에서 언급되다니 말이다.
갑자기 분노가 치솟았다.
‘여억시······ 인종차별주의자들과 나는 궁합이 안 맞아.’
주의해야 할 인물 리스트에 펠란을 올리며 나는 재빨리 대화 주제를 바꿨다.
“듣자 하니 파리에서 활동 중이라던데······ 완전히 귀국한 건가?”
“아닙니다.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방학이 곧 끝나가지 않습니까?”
아직 파리에서 공부 중인가?
아니면, 미학을 가르치기라도 하는 걸가?
나는 여러 의문이 있었지만, 굳이 물어보진 않았다.
“좋겠군. 나도 한번 꼭 한번 파리에 들르고 싶었는데 말이야.”
“오십시오. 저를 포함한 수많은 화가가 왕자님을 반길 것입니다.”
안 그래도 한번 시간을 내서 파리에 가 볼 예정이었다.
이 시대에는 정말 유명한 화가들이 즐비할 텐데.
그들의 작품을 모조리 쓸어올 수만 있다면, 여행비는 족히 본전 뽑을 수 있겠지.
“아······ 요즘에 파리에서는 어느 화가가 제일 유명한가? 더불어 앞으로 떠오를 미술계의 스타는 누구라고 생각하나? 자네 빼고 말이야.”
이놈.
내가 묻자마자 ‘또 신인 하나 물어 돈놀이 좀 하려나 보다’ 하는 눈빛으로 파제스가 살짝 눈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내 그는 몇몇 화가들의 이름을 나열했다.
“저는 피에르 르누아르의 작품이 마음에 들더군요. 모네 작가의 작품 또한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아! 그리고 떠오르는 신인으로는 피카소 정도가 있겠네요.”
그래.
피카소, 그도 지금쯤이면 파리에서 활동하고 있겠네.
‘내년쯤 철학적 사창가, 아니지. 아비뇽의 여인들을 발표하겠군.’
후대에는 입체주의의 시초라 불리며 유명해지는 작품이지만, 처음엔 주변 동료들에게 혹평만 받은 작품이기도 했다.
이후, 10년 정도 이 작품은 피카소의 개인 창고에 보관되며 이 세상에는 알려지지 않게 되는데.
내가 이를 살 수 있게 된다면, 이후 크나큰 차익을 얻을 게 분명했다.
‘피카소 그림은 수천억 원대를 호가하지.’
더욱이 아비뇽의 여인들이란 그림은 입체파 화풍이 처음으로 적용되는 그림이다.
첫 번째란 무형의 가치는 그림의 가격을 상상 이상으로 끌어올린다.
그렇기에 나는 매우 군침이 돌았다.
‘사고 싶다.’
잠시, 피카소 그림을 전부 사들이는 상상을 해 보았다.
그때였다.
파제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군요. 시간이 없으니, 여기 클럽하우스의 사용법부터 간략히 설명하겠습니다. 따라오시지요.”
파제스는 옆문으로 나를 이끌더니 건물 전체를 하나하나 안내하기 시작했다.
“화장실은 이쪽이며, 커피를 마시고 싶으면 이쪽 카페테리아를 이용하시면 됩니다. 더불어, 매주 금요일마다 이곳에 모여 친목을 다집니다. 주로 포커를 치는데 오늘은 딱 좋게도 금요일이군요. 저를 따라오시면 되겠습니다.”
파제스는 카드를 치는 방으로 이동하면서도 입을 멈추지 않았다.
“혹시 골프나 테니스를 좋아합니까?”
“좋아하지.”
“운동모임은 매주 토요일마다 행해지고 있습니다. 아까 정문 근처에서 서성거리던 직원 기억하시죠?”
“그럼.”
“그자에게 원하시는 모임의 일정과 장소를 알려 달라고 하면, 알려 줄 것입니다.”
파제스가 모퉁이를 돌아가며 자신의 손가락 세 개를 폈다.
“그 밖에도 삼 개월마다 한 번씩 자선행사와 경마 경주가 열리기도 하고, 좋은 물건이 확보되면 반년에 한 번 회원들끼리 경매도 합니다. 일 년에 한 번씩은 저기 샌프란시스코 외곽에서 캠핑 행사가 열리기도 하는데······.”
‘보헤미안 그로브’라는 비밀 캠핑 행사가 있다고 한다.
파제스는 당시 행사를 회상하기라도 하듯 잠시 걸음을 멈췄다.
“아쉽게도 이번 캠핑은 끝났습니다. 매년 7월 초에 캠핑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내년이나 되어서야 참가할 수 있겠군.”
“예. 혹 관심 있으시면 참여 부탁드립니다. 그날 재미난 이야기가 많이 오갑니다.”
폐쇄적인 사교 클럽 특성상 무슨 일이 생길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현대인으로 살 때, 보헤미안 클럽은 가입하지 못했지만.
다른 여러 비밀 모임에 참여할 수 있었는데, 정말이지 가관이었으니까.
‘문란하게 여럿이서 여인 하나를 두고 사랑을 나누기도 하지. 함께 코카인을 빨며 마약 파티를 벌이기도 하고.’
월가와 워싱턴은.
상상 이상으로 더럽고 추잡한 곳이었기에 일반인의 범주로 뭐든 판단해서는 안 된다.
돈이 많은 건 기본이고, 권력도 제법 가진 이들이라서.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놈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 모임은 어떨까?’
기대가 되기도 하고 우려가 되기도 한다.
불법적인 일은 딱 질색이니까.
그때였다.
파제스가 발걸음을 완전히 멈췄다.
“아······ 아까 말씀드렸지요? 매주 금요일이 되면 이곳에서 포커를 친다고요.”
“문이 보이지 않는데······.”
“여길 잡고 돌리시면 됩니다.”
책장에 있는 책 하나를 살짝 밀자.
턱-
하고 책장이 열렸다.
파제스를 따라 그 안으로 들어가니,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 * *
『거미줄을 치려거든 이곳에 오지 마라.』
비밀의 방에 들어서자마자 한 문구가 내 시야에 잡혔다.
안에서 친목질하지 말라는 경고의 말 같은데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비밀 클럽에 인맥 쌓으러 오지, 누가 놀러 오나.’
나는 살짝 걸음을 느리게 하며, 입고 있던 복장을 한번 추슬렀다.
‘노랫소리도 들리고.’
1900년대 유행하던 컨트리 블루스가 비밀의 방 안에서 퍼지고 있다.
가수들과 연주자로 보이는 자들이 멀찍이서 노래하는 가운데, 다들 삼삼오오 모여앉아 포커 치기에 바빴다.
“오늘은 사람이 적은 편입니다. 다들 지지난 주에 캠핑에 갔다 와서 좀 피곤한가 봅니다.”
파제스의 안내를 받으며 천천히 포커 방을 가로질러 갔다.
“응? 동양인?”
낯선 신입의 등장에 다들 카드를 치다 말고 힐긋힐긋 나를 쳐다본다.
“이보게. 캘리포니아에서 요새 가장 유명한 사교계 인사를 모르는가?”
“저놈이?”
“동양에서 온 이 왕자잖아.”
“와, 왕자? 그 소문의 로열패밀리 일원?”
“그래. 들리는 풍문에는 왕위 계승 순위 또한 높다더군. 두 번째였던가?”
“오······.”
작게 속삭이는 것 같지만 다 들린다, 이놈들.
천천히 포커 방을 둘러보고 있는데, 한 남자가 내게로 다가왔다.
“이 왕자님. 또 뵙게 되는군요.”
“그대도 이 클럽의 회원이었소?”
“예. 왕자님께서도 정회원인지는 몰랐는데 말입니다.”
날 찾아온 이는 앤서니 로호트였다.
캘리포니아에서 제일 큰 남태평양 철도회사의 신임 대표.
지난번 공화당 전당대회에서도 한번 인사를 나눈 적이 있던 인물이다.
지아니니가 이자를 기름장어로 불렀었지, 아마?
“저희 일행과 함께 카드 한판 치시겠습니까?”
앤서니가 한쪽에 자리한 포커 테이블로 날 안내한 후, 일행에게 인사시켰다.
“소개합니다. 장안에 화제 인물, 이강 왕자님이십니다.”
“오 반갑습니다. 프란시스 J.헤니라고 합니다.”
누구?
내가 살짝 고개를 갸웃하자, 앤서니가 작게 속삭였다.
“이쪽은 아베 루에프를 단박에 잡은 검사님이십니다.”
“아······ 반갑군.”
앤서니 이자, 진짜로 전임 대표랑 앙숙이었나 보네.
전임 대표를 구속한 사람과 포커를 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잠깐, 이 자리에 나도 껴도 되겠소?”
“허스트 씨?”
허스트?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
뉴욕에서 언론 지주사를 경영하는 언론 재벌로 허스트는 자극적인 황색저널리즘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앤서니가 의자를 빼며 허스트 또한 환영했다.
“그럼요. 이 테이블은 누구든 환영하니까요. 아! 이 왕자님께서도 괜찮으시죠? 허스트 씨까지 합석하는 것 말입니다.”
“나 또한 좋네.”
단박에 거물들 사이에 끼게 되었다.
일부 테이블에서는 날 부럽다는 눈빛으로 쳐다보기도 했다.
‘컨셉은 뭐로 잡아야 하나?’
로비스트로 활동하며 숱하게 포커를 쳐 왔다.
본 실력을 감춰야 할 때도 있기에, 나는 항상 컨셉을 잡으며 쳤는데······.
오늘은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살짝 고민되었다.
“이게 포커라는 게임이로군. 난 하나도 모르는데······.”
첫 모임에서는, 운 좋은 초심자만큼 좋은 것은 없지.
나의 연기에 프란시스 J.헤니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규칙을 알려주었다.
“이 왕자님. 저희는 작게나마 판돈을 걸고 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이에 앤서니가 그의 옆구리를 쿡 치며 싱긋 웃어 댔다.
“이래 봬도 이 왕자님이십니다. 캘리포니아에서 손에 꼽는 부자가 아니십니까? 이 왕자님께 여기 판돈은 껌값이나 다름없습니다.”
아휴.
저 기름장어 새끼.
여기까지 능글거림이 느껴지는 것 같네.
나는 고개를 돌려 허스트를 바라보았다.
“자네는 계속 웃고 있군.”
“지금 이 광경이 재미있어서 그렇지요. 사실 많이 기대했는데 말입니다. 첫날부터 왕자님과 포커를 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흠.
허스트의 눈빛과 목소리.
이자도 어디선가 많이 들어 본 것 같은 목소리인데 말이다.
“자, 그럼 패를 돌리겠습니다.”
< 보헤미안 클럽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