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레이트 베어 (2) >
제시 리버모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역사요?”
나는 바닥에 떨어진 전단을 하나 움켜쥐며 그에게로 다가갔다.
“그래, 역사. 초반에 잠시 설명회를 듣다 나왔는데 말이야. 자네는 뉴욕증시 하락에 베팅했었지, 아마?”
“예예. 그렇지요.”
“자네가 예상하는 이런 큰 하락장 속에서 우리가 수익을 냈다고 상상해 보게. 그리된다면 분명 역사가들이 우리의 위대한 업적을 기록하지 않겠는가?”
제시 리버모어는 십 년 만에 제 주인을 만난 강아지처럼 좋아하며 내 손을 꼭 잡았다.
“그, 그렇겠네요. 사실 이런 전단을 수천 장 뿌리고 다녔던 것은 모두 왕자님 같은 분을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정말 동화 속 왕자님처럼 제 앞에 나타나셨군요.”
어이쿠.
꿀 떨어지겠다.
나는 서둘러 제시 리버모어의 손을 놓은 다음, 앉을 곳을 찾았다.
계속 서 있자니 허벅지가 살짝 아팠다.
‘하체 운동을 너무 빡빡하게 하긴 했지.’
나는 강연회 한쪽에 마련된 의자에 앉은 후, 오른손으로 종아리를 마사지했다.
동시에 제시 리버모어를 바라보며 앞으로의 투자 계획을 물었다.
“아까 했던 강연 이야기를 계속하지. 자넨, 대충 한 달 안에 미국 시장이 하락하리라 예상하더군.”
“맞습니다.”
“하락장에서 수익을 내려면 공매도를 쳐야 할 텐데, 그 대상은 어디로 할 예정이지?”
제시 리버모어가 빠르게 칠판이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그는 분필을 들고 그가 공매도할 회사 목록을 적어 갔다.
“해운, 광산, 철강, 철도를 대상으로 공매도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저번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보았던 분야들이군.”
“맞습니다.”
제시 리버모어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기분이 좋은지, 아니면 그의 근처에 나만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말을 더듬는 것 또한 많이 좋아진 것 같았다.
나는 그가 적은 분야들을 생각하며 오른손 검지를 내 관자놀이에 대고 두들겼다.
“이 넷 중에는 광산 업종이 가장 큰 손해를 입었지. 아마도 이쪽에 집중할 모양이군.”
그러다가 광산이란 단어를 가리켰다.
제시 리버모어가 어떻게 맞췄냐는 표정을 지으며 당황했다.
“맞습니다, 이 왕자님. 뉴욕의 주식시장은 마치 정글과도 같은 곳이니까요. 본래 약한 놈부터 먼저 쓰러트려야 합니다.”
한 놈만 집중적으로 때린다는 거군.
대지진이 일어난 후, 앞서 말한 분야들의 회사들은 공매도를 집중적으로 당했다.
이미 고점 대비 20% 이상 빠져 있는 상태.
나는 제시 리버모어가 배포한 전단을 오른손으로 톡톡 두들기며 그의 말에 동의했다.
“하지만 공황이 시작되면 공매도 대상을 바꿔야 하지 않겠나? 은행. 증권, 보험사 등 금융업종이 더 취약해질 것일세. 시간이 흐를수록 말이야.”
“그렇죠. 주가가 폭락하고 경기가 안 좋아지면 그 업종이 가장 크게 타격을 받을 테니까요. 신기하게도 이 왕자님께서는 제 생각과 같은 생각을 하시는군요.”
이래 봬도 로비스트를 하기 전에, 뉴욕에서 주식 브로커 생활을 6년이나 한 사람이다.
이 정도야 기본이지.
하지만 나는 그런 속내를 숨기고, 사뭇 심각한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대충, 얼마나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지?”
“수치로 딱 잡아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주식에 참여한 모두가 고통스러워하며 몸부림을 칠 때쯤 끝날 것입니다.”
아까는 구체적인 수치까지 말하더니.
내 앞에서 있어서 그런가?
꽤 신중해졌다.
나는 마음에 든다는 표정을 한껏 지으며, 즉시 계약에 관해 구체적으로 토의하기 시작했다.
“다음 주 안으로 자네 신탁기금에 투자할 돈을 보내겠네. 그때 계약서도 함께 써 올 테니, 그때 다시 한번 검토하도록 하지.”
“예. 알겠습니다. 아, 그런데 말입니다. 신탁회사 이름은 어떻게 할까요? 현재 리버모어 신탁회사로 등록되어 있는데 말입니다. 아무래도 이 & 리버모어로 사명을 변경하는 것이 맞겠죠?”
“······.”
아무런 대답이 없자, 그는 내 눈치를 힐긋힐긋 보며 이내 자신의 이름을 슬그머니 뺐다.
“아니면, 제 성을 빼고 그냥 이강 신탁회사로 사명을 바꾸어도 됩니다. 투자금만 넉넉히 주신다면 저는 제 이름을 떼 내도 상관이 없습니다.”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제시 리버모어의 제안을 거절했다.
“아닐세. 회사 이름은 그대로 두게.”
나는 제법 너그러운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아! 대표도 자네가 맡게나. 자금 운용도 자네가 전적으로 하고. 나는 그저 투자 자금만 대겠네.”
“와, 생각보다 더 화끈하시군요.”
제시 리버모어는 정말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보통 큰손이 나타나면 모든 것을 제 손에 쥐려고 하는데, 나는 아무것도 간섭하지 않고 그에게 전권을 줬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함께 온 지아니니의 이탈리아계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그러곤 하던 말을 이어 갔다.
“이번 폭락 장에서 자네가 투자할 동안 여기 이자들이 자네와 함께 다닐 것일세. 회계 감사 또한 여기 지아니니 은행장의 사람들이 맡게 될 것이고.”
감시는 해야겠지.
엄한 생각을 할 수도 있으니까.
“예예, 물론이지요. 큰돈을 투자하시는데 걱정이 안 되는 것이 이상하지요. 혹 다른 지시사항도 있으십니까?”
“투자금은 내가 원할 때, 언제든 뺄 수 있었으면 하는군.”
“아······.”
“왜 별로인가?”
“아닙니다. 다만, 제 투자는 시간을 두고 길게 봐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큰 손해가 날 수도 있으니까요.”
숏 치는데 무슨 투자 기간을 그리 길게 잡아.
그러나 나는 감내할 수 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네. 다만, 아까 말했던 사항은 꼭 계약서에 추가되어야 하네.”
“아, 알겠습니다.”
나는 품 안에서 명함을 하나 꺼내 제시 리버모어에게 주었다.
“여기, 내 명함 받게. 나는 J&J 호텔에 현재 거주하고 있네. 혹시 궁금한 점이 있으면 이쪽으로 연락을 주게.”
제시는 만족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 명함을 받아들었다.
“예.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제가 바로 찾아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살펴 가십시오.”
* * *
숙소에 돌아온 후, 다들 각자 자신이 묶던 방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맥스는 무슨 할 말이 있는지 내 방으로 쫄래쫄래 따라왔다.
“뽀스.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말하게.”
그의 형인 아론과 카플란이 맥스를 따라 내 방에 들어왔다.
다들 맥스가 무슨 사고라도 칠까 전전긍긍하는 표정을 지어 댔다.
“어째서 오늘 처음 보는 리버모어 그놈에게 그리도 많은 권한을 주시는 것입니까?”
“예를 들면?”
“다른 것은 몰라도, 회사 이름을 양보하신 것은 너무나도 마음에 안 듭니다.”
미국인들은 진짜 은근 사명에 집착한단 말이야.
슬쩍 아론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동생 맥스의 의견에 동의하냐는 무언의 질문이었다.
“저도 사실 그 점은 살짝 의문이긴 했습니다. 라이트형제의 경우 특허권이 그들에게 있기에, 합작회사를 차릴 때 라이트&리로 법인명을 변경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아론이 뒷말을 차마 잇지 못하고 내 눈치를 보았다.
간 보기 대장다운 처사였다.
“왜 그대로 리버모어 신탁회사로 가냐는 말이지?”
내 성조차 넣지 않고 말이다.
“예. 그렇습니다.”
나는 슬그머니 팔짱을 낀 후, 그들에게 오늘 나의 행동에 관해 설명했다.
“이유는 간단하네. 그럴 필요가 저언혀- 없으니까.”
나는 ‘전혀’라는 단어를 강조하며 콧방귀를 뀌었다.
그 후 아일랜드 삼 형제에게 물었다.
“굳이 욕먹을 자리에 내가 나서야 하겠는가? 한번 대답해 보게.”
아일랜드 삼 형제는 이게 무슨 소리냐 하는 표정으로 날 지켜보았다.
금융에 관해, 그리고 사람 여론에 관해 하나도 모르는 그들을 위해서, 나는 미리 세워 두었던 계획을 천천히 설명했다.
“리버모어는 현재 공매도를 계획하고 있네. 오늘 나눈 이야기를 그대들도 들었으니 대충 짐작은 하고 있겠지?”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공매도는 하락장에서 수익을 낼 수 있는 금융기법이라고 이해했습니다.”
“그래. 그 정도 선에서 이해하고 있으면 되네.”
내가 손가락 스냅을 딱 하고 치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말이야. 진짜 리버모어의 말대로 주가가 반 토막이 난다고 가정해 보자고. 그리된다면 이 도시는 어찌 되리라 생각하는가?”
아일랜드 삼 형제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제 와서 생각하는 것이지만, 이는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뉴욕시 전체가 혼란에 빠지겠지. 자네 수중에 만 달러가 있었는데 하루아침에 오천 달러로 확 줄면, 눈앞이 캄캄해지지 않겠나?”
아론과 맥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에 동의했다.
“X 같겠네요.”
“속에서 화딱지가 날 것 같습니다.”
“맞네. 성질 급한 이는 제 화를 못 이겨 자해할 정도로 분노할 것일세. 단순히 내 수중에 있던 돈이 없어지기만 하면 다행이겠지만, 은행 빚까지 생긴다 가정해 보게.”
나는 침을 한번 꼴깍 삼키고 그들에게 말했다.
“여기서 질문을 하나 던지겠네. 정답을 맞히면 내 상금으로 100달러를 주지. 약세장 속에 손해를 본 투자자들은 과연 누구를 탓할까?”
오른쪽에 있던 아론이 가장 먼저 내 질문에 답을 했다.
“보스, 당연하게도 자신을 탓하지 않겠습니까? 투자의 책임은 온전히 자신에게 있습니다.”
“자네 말이 정답이겠지만, 사람이라는 것이 그리 이성적이지만은 않네. 본래 사람은 내 잘못은 작게 보이고, 남의 잘못은 크게 보이기 마련이거든.”
옆에서 지켜보던 맥스가 다음 답을 했다.
“그렇다면, 아까 리버모어가 알려줬던 대로 정부 탓을 하지 않겠습니까? 그동안 후진적인 금융 시스템을 그대로 바꾸지도 않고 유지해 오지 않았습니까?”
“맞아. 이 사태의 원인은 연방정부이네. 하지만 말이야. 정부가 가만히 제 탓이라고 인정할까?”
“······.”
“······.”
아론과 맥스가 입을 꾹 다물었다.
답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행동으로 추측하건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정부를 이끄는 것도 사람이네. 더욱이 그들은 정치인들이지. 제 잘못을 티끌만큼도 인정하기 싫어하는 그놈들이란 말이야.”
나는 비릿하게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이들에게 말했다.
“그들은 희생양을 찾을 것일세. 그 희생양은······.”
“어어······. 보오- 스.”
어딘가 살짝 나사가 빠진 카플란이 나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어눌하게 말했다.
“보오- 스다, 보스.”
“나를 말하는 것인가?”
“그렇다.”
내가 손뼉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답이네. 바로 공매도를 먼저 친 놈을 탓할 것일세. 오! 오랜만에 카플란이 정답을 맞혔군그래. 여기 백 달러 받게.”
“백 달러 좋다! 좋아!”
기뻐하는 카플란과는 달리, 아론과 맥스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그럼 저희가, 이 사태의 원흉으로 남게 된다는 말입니까?”
“맞네.”
“그, 그럼 위험한 것 아닌가요?”
모든 투자에는 리스크가 따른다.
고수익에는 고위험이 늘 따르는 법.
“위험하지. 그래서 회사 이름도 바꾸지 않고, 대표도 교체하지 않았으며, 운영 권리도 죄다 리버모어에게 일임하지 않았나?”
다만 이를 줄일 수는 있다.
내가 얼굴이 되어 공매도를 주도하면 나중에 나만 맞게 되니, 후방으로 빠져 있고.
얼굴마담을 세우면 된다.
그게 바로 리버모어고.
‘뭐, 제시에게도 나쁜 일은 아니지.’
그는 엄청난 돈과 함께 명성을 얻게 될 것이다.
21세기 닥터 둠처럼 말이야.
신변의 위협을 좀 받긴 하겠지만, 원 역사에서도 그는 대공황 이후까지 잘 살았다.
생각보다 그리 심각하지는 않을 테다.
‘오히려 내가 더 위험할 수도 있지.’
가만히 당하고 있지는 않을 거다.
이를 위해 안전장치도 하나 갖춰 놨으니까.
언제든 투자금을 뺄 수 있게 하는 조항을 삽입하지 않았나?
JP모건이 ‘딱’ 하고 나타나 나에게 책임을 씌우려고 하면, 나는 오리발을 내밀며 그에게 협조하는 척 이를 즉각 발동할 거다.
이후, 언론을 통해 리버모어의 대단한 투자법을 먼저 보도하게 만든다면, 나는 금융 공황에서도 쏙 빠져나갈 수 있겠지.
“보스. 좀······.”
사악하다고?
에이. 그리 말하지 마.
영민하다고 해 줘.
나는 제시 리버모어에게 건넬 투자계약서를 작성하며 단어 하나하나를 신경 썼다.
계약서 하나에 내 명줄이 달려 있으니까.
그래서 혼신을 다하여 이를 작성하고 또 검토했다.
< 그레이트 베어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