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싱턴 (3) >
“이 왕자님. 아까의 무례를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루스벨트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 후, 자신의 첫째 딸인 엘리스에 관한 이야기를 내게 읊조렸다.
“엘리스가······ 어렸을 적부터 친어머니가 없이 자라서 그런지, 언젠가부터 조금씩 삐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엘리스를 두고 자신의 아픈 손가락이라고 칭하며, 그 사연을 내게 소개했다.
“괜한 미안함에 제가 그동안 오냐오냐 딸아이를 키워 왔습니다. 과거의 잘못된 선택이 이런 결과를 낳게 되었군요.”
아까 집무실로 들어오며, 살짝 루스벨트의 부인과 다른 자식들의 얼굴을 보았다.
두 번 결혼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엘리스만 엄마가 다르다는 것은 오늘에서야 처음 안 사실.
몰랐던 루스벨트의 가정사를 머릿속에 메모하며 나는 급히 현 상황을 분석했다.
‘분위기가 무거워지고 있군.’
루스벨트에게 신세를 지게 하는 것은 좋지만, 이런 식으로 분위기가 가라앉는 것은 영 좋지 않다.
자칫, 화기애애하게 풀어갈 이야기 또한 꼬일 수 있으니까.
“이거, 생각보다 바지가 잘 맞습니다.”
나는 갈아입은 바지를 쓱 한번 본 후, 만지작만지작하며 루스벨트에게 무안함을 덜어 주고자 다음 말을 했다.
“재단사가 제 몸을 마치 알고 있는 것처럼 딱 가봉한 옷을 입은 느낌이군요. 이 바지, 대통령님의 선물이라고 생각해도 되겠지요?”
나는 루스벨트의 집무실 한가운데에 배치된 소파에 털썩 앉았다.
이에 루스벨트는 미소 지으며, 무거웠던 자식 관련 주제를 더는 꺼내지 않았다.
“아, 물론입니다. 이 왕자님께서 만족하시니 저 또한 기쁘군요. 이따가 가져가십시오. 새것이니 나중에 편히 입으셔도 괜찮을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나는 소파에 앉은 후, 주변을 천천히 살폈다.
이전에 보았던 집무실 풍경과 무엇이 달라졌나 비교하기 위해서다.
‘구조가 많이 바뀌었네······.’
현대 백악관의 모습은 트루먼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재임할 때, 대대적으로 내부를 보수하며 구조를 싹 바꿨기 때문이다.
‘사냥을 엄청나게 좋아하나 보네?’
실내 구조도 굉장히 독특하지만, 장식 역시 기이했다.
루스벨트의 개성이 뚜렷이 담겨 있었다.
곳곳에 박제된 동물들이 진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의 금광왕 잭 마일로도 그렇고, 루스벨트도 그렇고······.’
이 시대 미국인들은 참으로 사냥을 좋아하는 것 같다.
“대통령님.”
“말씀하십시오. 이 왕자님.”
“여기 계신 코텔류 재무장관의 말하기로, 대통령님께서 절 찾으셨다고 하던데 말입니다.”
“맞습니다. 이 왕자님께 몇 가지 묻고 싶어서 이리 백악관에 초대했습니다. 곧 있으면 저녁 만찬이 시작되니, 그 전에 빠르게 업무 이야기부터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그가 탁자 위에 있는 물컵을 비우더니 하던 말을 이어 갔다.
“이 왕자님.”
“말씀하십시오.”
“혹시 논의 중인 이민법에 관해 들어보셨습니까?”
나왔네.
내가 몇 년에 걸쳐서 준비해 왔던 그 이민법 말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루스벨트의 물음에 긍정했다.
“알고 있습니다. 무분별한 이주를 규제하기 위해 의회에서 법안을 논의 중이라지요?”
“맞습니다.”
나는 목소리를 깔며, 눈에 힘을 주었다.
“듣자 하니 동양인들의 신규 이민을 막는 조항이 이 법안의 큰 골자라 하는데 말입니다.”
“빙빙 돌려 말하지 않겠습니다. 유감스럽게도 그렇습니다.”
루스벨트가 이민법에 관한 상세 내용을 내게 소개했다.
“내용까지 자세히 들어 보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초안은 일본인을 제외한 모든 동양인의 이민을 막는 법이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다만,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을 겪으면서 조선인들이 예외 목록에 추가되었다 들었습니다.”
“예. 모두 다 이 왕자님께서 보여 주신 헌신적인 모습 때문일 겁니다.”
루스벨트는 앞에 있는 나를 한껏 띄워 주었다.
“여기 워싱턴에서도 이 왕자님의 이야기가 들려올 정도로, 미 전역에 이 왕자님에 관한 미담이 잔뜩 퍼졌었지요. 왕자님께서도 이를 알고 계십니까?”
알고 있지.
그리되게 행동한 것이 누구인데.
‘미국은 참으로 영웅 만들기를 좋아하는 나라란 말이야.’
역사가 짧아서 그런가?
자체적으로 본받을 위인이 적기 때문에, 그들은 영웅이 나타났다 하면 너나 할 것 없이 언론에서 띄워 주었다.
물론.
황색언론들은 영웅의 추락을 간절히 소망하기도 했기에, 눈에 불을 켜고 그들이 뭘 잘못하나 감시하곤 했지만.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하자, 루스벨트는 자신의 당 출신 의원들 이름을 거론하며 내게 이리 말했다.
“우리 공화당 의원들 다수가 이에 찬성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서부 쪽 의원들이 조선인들을 예외로 두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상황입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겠다.
나의 헌신적인 재난 극복 행동을 보고 감동하여서 호감을 보이는 것일 수도 있고.
재산을 불린 이후에 내가 정치자금을 열정적으로 후원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일부는 이번에 모건과 거래하며, 모건과 록펠러에게 압력을 받아서 그럴 수도 있겠네.
이미 상원과 하원, 둘 다 과반수를 확보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말이다.
“본인이 알기로 현재 다수당은 공화당으로 알고 있는데 말입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그게······.”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조금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끝을 흐렸다.
“민주당 의원들과 일부 공화당 의원들이 반발하고 있습니다. 제게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압박을 넣고 있더군요.”
다수당은 공화당인데?
내가 아무 말 없이 무슨 문제냐는 식의 표정을 지었다.
이에 루스벨트는 고민하는 척하며 나를 떠보았다.
“이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소수의 의견도 존중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왕자님께 한 가지 다짐을 받아 놓고 싶습니다.”
“정확히 무엇입니까?”
“제게 약조해 주십시오. 왕자님께서 조선인들을 잘 관리해 주시겠다고요.”
“······.”
“이민 온 그들이 여기 미국에서 말썽을 부린다면, 그 책임을 저와 함께 지셔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책임을 분산하자는 것인가?
일단 날 재미 조선인들의 리더로 보는 것은 참으로 기분 좋은 일이네.
나는 고개를 끄덕하며 루스벨트의 말에 동의했다.
“알겠습니다. 내 노력해 보겠습니다.”
“노력으로는 안 됩니다. 제게 약조해 주셔야 합니다.”
루스벨트의 압박에 나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 조선인들은 누구보다 지역사회에 헌신적입니다. 더욱이 범죄율 또한 상당히 낮은 편에 속하지요. 대통령님께서 걱정할 만한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 일이라는 것이 왕자님 뜻대로 흘러가지만은 않습니다.”
“예. 맞습니다. 대통령님의 따님께서 오늘 했던 행동처럼, 그들 역시 돌발행동을 보일 수도 있겠네요.”
나의 대답에 루스벨트는 살짝 허리를 뒤로 빼며 눈을 가늘게 떴다.
나는 그런 루스벨트를 바라보며 압박했다.
“세상사, 자식도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데, 다 큰 성인이 내 말을 곧이곧대로 듣겠습니까?”
“······.”
“노력은 하겠습니다만, 내가 교민들 전부를 제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대통령님이 바라시는 확언까진 차마 해 드릴 수 없습니다.”
루스벨트는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방금 제게 하신 말처럼 노력은 하셔야 할 것입니다.”
“예. 그리하지요.”
루스벨트는 잠시 무언가를 고민하다가 내게 물었다.
“아, 한 가지 더. 왕자님께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제임스 비서관. 지도 좀 내오게.”
루스벨트가 대한제국의 전도를 내게 보이며 물었다.
“익명의 독일 측 외교관에 따르면······.”
익명이라고 쓰고 빌헬름 2세라고 읽으면 되겠다.
나는 빠르게 두 번째 질문의 요지를 간파했다.
“일본이 현재 이 간도라는 지역에 군대를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까?”
“예. 일본 측에 관련 소식을 문의하니 맞다고 인정하더군요. 다만, 그 이유가 흥미로운데······ 이 땅은 조선의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루스벨트가 내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 왕자님께서는 조선의 왕자십니다. 워싱턴에······ 아니지, 미국에 있는 그 어떤 전문가보다 조선을 잘 아는 분이시지 않습니까?”
내가 없었으면 이리 확인하지 않았겠네.
일본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거나, 미국의 별 없는 조선 전문가의 의견을 신뢰하던가.
둘 중 하나였다는 뜻이로군.
“그러니까, 본인더러 관련 내용을 검증해 달라는 뜻입니까?”
루스벨트가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에 그의 물음에 답했다.
“일본 측의 주장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루스벨트가 내 대답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일본 측이 주장했던 간도 땅 말입니다. 조선 땅이 맞습니다.”
나는 빠르게 다음 말을 그 이유로 들었다.
“어떻게 해석하냐에 따라 다소 논란이 있긴 하지만, 간도 땅에서는 우리 국민 다수가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습니다. 실효 지배 중이며, 일본의 행동은 지배력을 더 강화하는 행위라 볼 수 있겠군요.”
“그렇다면 일본 측 주장이 틀렸다는 말은······.”
“간도에 군대를 파견한 그 이유가 틀렸다는 것이지요.”
일본은 이번 군 파견 목적을 조선의 치안 유지라 밝혔다.
나는 이를 지적했다.
“그렇습니다.”
“과연 치안 유지 때문일까요? 일본은 조선을 거점으로 생각합니다. 조선만 탐내지 않고 남만주를, 나아가 만주 전체와 요동에 야욕을 보일 것입니다. 그 후에는 중원 대륙을 점령하고자 하겠네요.”
“그러니까 방금의 행위는 남만주 일대에 일본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함이란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나의 주장에.
“하하하하-”
루스벨트와 코텔류를 포함한 그의 내각 일원들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 왕자님도 참······ 농담이 너무 심하십니다.”
“맞습니다. 일본 정부는 저희에게 약조했습니다. 만주와 중원에 진출하지 않기로요.”
“만주와 중원은 아국과 영국. 두 나라의 이익이 달린 지역입니다. 이 왕자님. 감히 그들이 우리 미국을 무시하고 남만주 일대로 진출하겠습니까?”
루스벨트와 그의 동료들은 다들 친일 성향이 조금씩은 있었다.
그들은 일본을 파트너 삼고 러시아를 비롯한 대륙 세력들을 견제하고자 했다.
그랬기에 그들은 일본 정부를 너무나도 믿었다.
‘속이 뒤틀리는군.’
타지에서 이리 고생하는 것은 어찌 보면 루스벨트 탓이 아닌가?
아오.
마음 같아서는 루스벨트와 반대되는 당을 밀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반대로 현시대의 민주당은 어떤가?
몇 년 후에 정계에 입문하는 우드로 윌슨만 하더라도 그래.
루스벨트보다도 더 최악인 놈들이다.
대표적인 인종차별주의자니까.
미국 연방정부 건물에서 백인 전용 화장실이 만들어진 것도 다 이때 만들어진 거다.
‘윌슨을 제외한 다른 민주당 인사들도 그래.’
하나같이 똑같다.
이 시대 민주당 정치인들은 기독교 근본주의를 믿는 자들이거나 예외 없이 인종차별주의자들이었다.
나와는 조금 결이 좀 맞지 않은 자들이란 말.
그렇기에 나는 어쩔 수 없이 공화당 정치인들과 손을 잡아야 했고, 그중 지분이 가장 큰 루스벨트와 거래를 해야 했다.
“미국 정부의 일관된 입장은 저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진실을 가릴 수 없습니다.”
진지한 표정으로 나는 내 주장을 계속했다.
“대동아공영권, 정한론 등. 일본에서 유행하고 있는 학문을 한번 살펴보란 말입니다.”
“······.”
“조선을 완전히 집어삼킨 후에는 반드시 만주로 진출할 것입니다. 그땐, 미국의 이익이 그들의 이익과 하나 되지는 않을 것이니. 제 앞에 계신 여러분들은 반드시 땅을 치고 후회할 것입니다.”
이에 루스벨트의 내각 인물 중 일부는 살짝 마음이 흔들리는 표정을 지으며 일본의 만주 진출에 대한 의구심을 가졌다.
다만 루스벨트는 아직도 굳건했다.
그는 끝까지 일본을 믿은 거다.
“자자, 시간이 되었군요.”
“많이 시장하지 않으십니까?”
분위기가 살짝 과열되는 것으로 보이자, 농무장관이었던 짐 윌슨이 다음 일정을 꺼냈다.
재무장관 코텔류 역시도 이리저리 눈치를 보며 만찬이 다가왔음을 내게 알렸다.
“그러게, 밥이나 먹읍시다.”
내가 이리 열변을 토한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아직 없다.
나는 돈을 좀 벌긴 했지만, 미국 정계에서의 영향력은 아직 뭐도 없는 상황이니까.
다만.
미래를 위해서 하나씩 스택을 쌓는 중이었다.
오늘 나누었던 대화를 누군가는 워싱턴 정계에 알리겠지.
이를 두고두고 회자하며 언젠가는 나를 또 찾겠고.
나는 훗날을 기약하며 만찬이 열리는 중앙홀로 루스벨트와 함께 이동했다.
* * *
“이 왕자님 식사는 맛있게 드셨습니까?”
“예. 신경 써 주신 덕분에 맛있게 한 끼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간단히 대담을 마치고 나와 루스벨트는 백악관 뒤뜰을 산책하며 저녁에 먹은 음식들을 소화했다.
루스벨트는 뒤뚱뒤뚱 무거운 몸을 이끌며 나와 함께 걸었다.
‘뒤에서 보면, 마치 펭귄이 빙하를 걷는 것 같구먼.’
뉴욕의 경제인들과 이런 루스벨트의 모습을 희화화했다.
그들은 상극이니까.
서로 추구하는 바가 달랐다.
모건 그리고 록펠러는 서로 마음이 맞는 이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루스벨트의 목소리와 행동을 비꼬며 뒤끝을 보여 주었다.
지난번 만남 때도 모건은 루스벨트의 뒤뚱뒤뚱 걷는 모습과 그가 분노했을 때 고래고래 성을 내는 모습을 흉내 내며 모임 분위기를 한껏 띄우곤 했었지.
그런 모습이 떠올라서 살짝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둘째 따님께서 상당히 미인이신 것 같군요.”
“하하······ 에델이 한 미모 하지요. 다들 에델과 이야기를 하면 항상 그런 말부터 하곤 합니다.”
루스벨트가 잠시 걸음을 멈췄다.
그는 숨이 가빴는데, 아마도 비대한 몸을 이끌고 많이 걸었기 때문이겠다.
“이 왕자님. 아! 이 왕자님께 한 가지 물어볼 게 더 있었는데 말입니다.”
“말씀하시지요.”
“이 왕자께서는 경제 분야에 탁월한 안목을 지니고 있습니다.”
“부끄럽지만 많은 이들이 날 좋게 봐 주긴 하지요.”
이런.
조금 전까지 나누었던 이야기는 애피타이저인 것 같다.
지금.
백악관 뒤뜰을 거닐며 독대를 하는 이때 하는 이야기가 본식일 것 같네.
“이번 금융 위기 말입니다.”
“예.”
“모건의 기지로 위기가 좀 진정된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렇지요.”
“개혁이 없이는 앞으로 이런 또 일어나겠지요?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루스벨트가 조금 망설이자, 내가 대신 그 답을 알려 주었다.
“중앙은행 설립이 필요합니다.”
“역시, 왕자님께서도 그리 생각하시는군요.”
루스벨트가 경계심을 끌어올리자 나는 손사래를 치며 그의 화를 누그러트렸다.
“중앙은행 설립을 너무 비관적으로만 보시지 마세요. 저 멀리 유럽만 해도, 거의 모든 나라가 중앙은행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앙은행의 순기능을 생각하셔야지요.”
루스벨트는 비아냥거리는 식으로 내게 물었다.
“유럽 또한 민간이 경영합니까?”
“글쎄요. 그건 저도 잘 모르는 사실이라서 말입니다. 다만, 대다수 나라는 국가가 운영하지 않을까요?”
루스벨트는 나의 대답에 눈을 가늘게 뜨며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했다.
“중앙은행 설립은 쉬이 끝날 일이 아닌데 말입니다. 아마도, 내 후대에서 이 일을 끝내겠지요.”
“저 또한 그리 생각합니다.”
“이 왕자님. 확고한 신념이 있지 않은 한은 여기 미국에서 국가가 주도로 연방준비은행을 운영하기는 힘들겠지요?”
“아마도요? 대통령님 같은 분이 아니면 다들 민간에 맡기겠지요.”
“그렇습니까?”
루스벨트가 무언가를 고심하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이 왕자님.”
“말씀하시지요.”
“혹시 말입니다. 제가 다음 선거에······ 아, 아닙니다.”
뭐야.
설마 3선에 도전하려는 것은 아니겠지?
‘미국의 대통령이 원 역사와 다르게 바뀌게 되면, 내가 구상했던 계획 역시 수정해야 할 텐데.’
에이.
설레발 치지 말자.
나비효과가 일어나고 있다지만, 아직 대통령까지 바뀌지는 않았다.
더욱이 루스벨트는 3선 도전을 안 하겠다고 임기 초부터 선언한 정치인이다.
‘그래도 가정은 해 볼 수 있지······.’
역사의 분기점이 될 수도 있는 지점에 내가 서 있는 기분이다.
나 때문에 기존 역사가 조금씩은 틀어지고 있었으니까.
‘같은 선상에 두지는 않았지만, 캘리포니아 주지사도 바뀌지 않았던가? 나 때문에······.’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루스벨트의 현 상황을 분석해 보았다.
분위기만 보아서는······.
진짜로.
그가 3선에 도전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 워싱턴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