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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83화 (83/294)

< R&H 모터스 (소제목 수정 - 8/11) >

“아론, 카플란, 맥스!”

“예.”

“보오-스.”

“찾으셨습니까?”

아일랜드 삼 형제가 오랜만에 모두 내 사무실로 집결했다.

“맥스.”

“예. 뽀스.”

“자네는 항상 꼬리가 길군. 마지막으로 들어왔으면 사무실 문을 닫아야 하네. 내 늘 강조하지 않았나?”

“아, 예. 죄송합니다.”

“자네들은 서 있지 말고, 이쪽으로 와서 앉도록 하게나.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까.”

“네!”

셋 중 맏이였던 아론이 가장 먼저 입을 뗐다.

“보스. 급한 일이라도 생기신 모양입니다. 혹시······.”

맥스가 재빨리 아론과 나, 우리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뽀스, 저희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지난번 지아니니 은행장을 처음 만날 때처럼 말입니다.”

누구 뒷조사가 필요하냐고?

그럼.

그러니까 너희들만 따로 불렀지.

‘이회영 일가가 조금 과도하게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어······. 살짝 수상하단 말이지.’

왕자니까.

그 이유 하나만으로 나를 어려워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성격이 원체 신중해서 그리 행동할 수 있고.

하지만 누군가 이상한 정보를 그들에게 슬쩍 흘려서, 나를 경계하는 걸 수도 있을 테다.

마지막 가정은 순전히 내 머릿속에서 나온 추측이지만.

소 잃고 대장간 고치는 것보단.

미리미리 이를 파악해서 그들이 왜 날 어려워하는지 알아보는 것이 좋았기에, 나는 이들을 따로 불렀다.

‘아일랜드 삼 형제는 익문사 요원만큼이나 정보 수집 능력이 뛰어나지.’

교민들과 관련된 일들이기에, 이위종을 포함한 익문사 요원들에게 이 일을 시키기가 살짝 꺼림칙했다.

때문에, 나는 아일랜드 삼 형제를 다시금 믿어 보기로 했다.

“뽀스- 저희 삼 형제가 뒷조사 하나는 최고로 잘하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부리나케 달려가 꼬인 일들을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

따분하게 내 주변만 경호하다가 오래간만에 누구 뒷조사할 일이 생기니, 세 형제의 얼굴이 보름달처럼 환해졌다.

“여기 받게나.”

그들에게 건넨 것은 조사할 이들이 찍힌 단체 사진이었다.

최근 임시 총회 때, 이를 기념하기 위해 찍었던 사진으로.

나는 그 위에 펜으로 동그라미를 그려 놓으며 감시할 인물들을 지정해 주었다.

삼 형제는 몇몇 인물 얼굴에 표시된 동그라미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뽀스, 그런데 말입니다. 이자들은 누구입니까? 아야-”

아론이 맥스의 옆구리를 급하게 쿡 찍었다.

딱 봐도 같은 한인들인 것 같은데, 세세히 그 신상을 캐묻는 것은 보기에 좋지 않다고 판단해서겠지.

“이자들을 감시하면 됩니까?”

역시 아론이, 세 형제 중 눈치 하나는 제일 낫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말을 내뱉었다.

“한 석 달 정도만 지켜보게나.”

“예. 보스.”

나는 주요 부호들의 얼굴이 찍힌 기념사진을 그들에게 건네며, 그들이 누구와 만나는지 확인하라고 일렀다.

“아! 샌프란시스코 인근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기꾼들 말일세.”

“예, 보스.”

“내 이름을 대면서 이자들에게 접근할 수 있네. 그러니 잘들 지켜보았다가 사기꾼들이 놉 힐에 모습을 보이면 내게 알리게.”

원래 이민 초반에 가장 많이 사기를 당한다.

타지에 막 도착한 이주민들.

그들은 정보가 빈약한 상황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같은 나라에서 온 동향 사람들이나 그 주변인들을 의지한다.

이것은 한인뿐만 아니라 만국 공통.

이때를 노려 사기꾼들이 초기 이민자들의 주머니를 훔치는데.

나는 사전에 이를 경고했지만,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었기에 이 지역에 유명한 사기꾼들이 이들에게 접근하는지 감시할 생각이었다.

‘더불어······.’

내부 단속 또한 이제부터 철저히 할 생각이다.

현재 내가 세운 합성협회를 필두로 피라미드처럼 조직도를 구성하며 교민들을 관리하고 있었다.

이 세력 구도를 바꾸고자 하는 이들이 분명 지금쯤 고개를 꿈틀대고 있을 거다.

‘대다수는 나를 지지하고 있지. 표면적으로는. 하지만 내 존재 자체를 분명 못마땅하게 여기는 자들 또한 소수지만 있을 거다.’

그들은 당연하게도 본국에서 막 입국한 신흥 세력과 접촉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왜냐고?

지금의 구도를 흔들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할 테니까.

그러니, 이회영 일가처럼 조선에서 막 건너온 거부들이 꼭 필요할 거다.

아무것도 모를 때.

제 편으로 끌어들인 후, 빨대를 꽂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지 않나?

‘지금이 아니면 이 구도를 바꾸기 힘들 거야.’

시간이 좀 더 흘러간다면 이 권력 구도가 고착화될 거다.

나를 암살하지 않고는 이 구도를 바꾸기 어려워질 터.

분명 반대 세력은 이 기회를 살리고자 움직일 거다.

나는 그런 이들을 사전에 제압할 생각이었다.

“아마추어처럼 대놓고 지켜보지 말고, 소리소문없이 저들을 감시하게.”

“보스. 염려 마십시오. 저희가 이런 일을 한두 번 해 봅니까?”

“맞습니다. 요즘 아일랜드계 신규 이민자들이 샌프란시스코에 몰려들어, 인재풀이 더욱더 풍부해졌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일랜드계 이주민들은 현재 영국인의 핍박을 피해 엄청나게 미국에 이민을 오고 있었다.

우리 조선인처럼 그들 역시 가진 것은 몸뚱이 하나뿐이었다.

당연하게도 다들 밑바닥부터 시작했는데, 그들은 운전기사부터 청소부, 정원 관리사, 경비원까지.

상류층들의 편의를 도와주는 일자리부터 시작했다.

내가 사는 이 놉 힐 지역은 대표적인 부촌.

그렇기에 상류층이 대거 거주하고 있었다.

이들의 편의를 봐주고 있던 아일랜드계 이민자들 역시 이곳으로 출퇴근했는데.

일하는 도중 도중에도, 이회영 일가나 다른 조선 부호들의 움직임을 감시하며 그들이 누구와 접촉하는지 여기 아일랜드 삼 형제에게 그 정보를 보고하겠지.

“내 그대들만 믿겠네.”

“예. 보스-”

집무실을 나가는 아론과 나머지 형제들의 뒷모습을 잠시 지켜보았다.

“전하.”

내 비서실장 역할을 하고 있던 최현우가 다가와 다음 일정을 알렸다.

“김종림과 그 일행이 도착했습니다. 전에 독일에서 영입한 디젤 역시 아래층에 있는데 말입니다.”

그래, 가만히 넋 놓을 때가 아니지.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일 층으로 향했다.

다음 약속이 또 나를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 * *

“작년보다 수확량이 1.5배는 늘었군.”

김종림이 건넨 보고서를 읽으며, 나는 내 앞에 있는 포대 자루의 끝맺음을 풀었다.

그 안에는 작년 가을에 막 수확한 쌀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미주 캘리포니아에서 생산된 종자들입니다. 그중 씨알이 굵은 것들을 선별했습니다.”

김종림이 막 수확한 쌀을 한 줌 쥐며 내게 소개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김종림을 칭찬했다.

“잘했네. 파종 시기를 조금 뒤로 미루었더니, 수확량이 많이 늘어났다고?”

“예.”

어느 산업이나 그렇지만, 농업은 데이터가 집약된 산업이다.

언제 씨를 뿌리고.

언제 비료를 주고.

언제 물을 대고.

농약은 얼마큼 쳐야 하는지.

하나하나 데이터가 쌓여야, 최적의 솔루션을 찾을 수 있게 된다.

그들이 아무리 농업 전문가지만, 한반도와 캘리포니아는 기후가 달랐기에 이런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잘했네. 그런데 생각보다 얼굴이 어둡군.”

“일이 좀 많아서, 많이 피곤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저런······

나는 김종림의 어깨를 토닥이며 다음 말을 내뱉었다.

“좋은 후임 찾으면 농기계 개발과 농장 경영 중 하나를 내려놓게.”

“감사합니다.”

건강이 최우선이다.

내 친구 놈의 할아버지가 될 김종림을 이리 과로사시킬 수는 없었기에, 나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잔뜩 지으며 빨리 대체할 수 있는 인물을 하나 구하라고 재촉했다.

“농기계, 나아가 신규 자동차 개발은 어떻게 되어 가는가?”

김종림이 슬쩍 옆을 돌아보았다.

그의 옆에는 기술학교를 운영하는 김규식이 서 있었다.

현재 둘은 협업하여 농기계 개발과 자동차 및 비행기 엔진 개량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기에.

나는 재빨리 내 친우인 김규식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작년에 전하께서 포드사에 다녀오셨다가 기술 특허 공유 MOU를 체결하고 오시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포드사의 지분 확보에는 실패했지만, 그들이 개발한 엔진 기술 특허 사용권을 따오지 않았던가?

“덕분에 시장에 완제품을 내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허 소송 위험에서 한 발짝 벗어났으니까요.”

“그래. 잘했네.”

“전하.”

“말하게.”

“아직 확정하지 않은 것이 있는데 말입니다. 따로 사명을 생각해 두셨습니까?”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좌우로 저었다.

“글쎄. 자네가 추천 좀 해주게.”

“흠······ 소인이 생각했던 사명 후보로는 시발이 있습니다.”

“시발(始發)?”

“예. 말 그대로 전하께서 세운 첫 자동차 회사란 뜻입니다.”

뜻은 좋아 보인다만······.

어째, 어감이 이상하다.

“시발이 별로시면, 초발은 어떻습니까? 전하.”

김종림이 차선책을 내게 제안했다.

첫 자동차 회사라는 것에 다들 꽂혔나 보네.

“초발?”

“예.”

“흠. 시발 그리고 초발······ 둘 다 창세를 뜻하고 있는 단어군.”

마치.

현대에서 익히 보았던 제네시스 브랜드 같다.

어감은 다르지만 시발, 초발, 창세, 제네시스.

네 단어 다 같은 뜻이니까.

“오! 창세 자동차. 이 또한 괜찮은 것 같습니다.”

“전하. 창세 자동차는 어떻습니까?”

이 사람들이······.

사명은 막 정하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근데 생각해 보면 창세도 나쁘진 않아.’

다만.

창세라는 단어를 곧이곧대로 사용하기보단 영문명인 제네시스가 낫지 않을까?

일단 21세기 때도 있었던 브랜드명이고 발음도 쉽다.

별 논란도 되지 않았고.

내가 먼저 사용해도 나쁠 것 같지 않았다.

“흠······ 좀 더 생각해 보도록 하지. 창세라는 단어를 사용할지, 아니면 영문명인 제네시스를 사용할지 말이야. 일단은 공장에서 완제품이 생산되면 시승부터 해 보도록 하자고.”

“알겠습니다.”

1층에는 김규식, 김종림 말고도 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조선어를 알아듣지 못해 아까부터 멀뚱멀뚱 서 있던 외국인.

디젤에게로 다가가 영어로 물었다.

“자네가 보기엔 말이야.”

“말씀하십시오. 이 왕자님.”

“이번에 이들이 개발한 자동차 말이야.”

“예.”

“그중 엔진만 똑 떼어 두고 이야기하고 싶네만. 어때 보이는가?”

디젤은 예상외의 답변은 내게 내놓았다.

“아주 훌륭합니다.”

“훌륭하다?”

“예. 아무런 지식이 없었던 농민이 3년 만에 이런 엔진을 만들어 낸다는 자체가 기적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그런가?”

“예. 하지만 이 왕자님께서 무슨 이유로 이런 훌륭한 기술자들을 두고 그동안 근심하셨는지, 저는 잘 알 것 같습니다.”

오.

여기 온 지 몇 달 되었다고 벌써 그 문제를 파악했단 말인가?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에게 물었다.

“말해 보게.”

“그동안 조선인 기술자들과 연구원들은 리버스 엔지니어링 방식으로 그들만의 엔진을 개발했습니다. 아, 쉽게 풀어 설명하자면 시중에 나와 있는 기존 회사의 엔진을 분해하여 재조립하는 과정을 통해 새 기술을 연마한다는 뜻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디젤에게 계속 이야기해보라는 표정을 지었다.

“후발주자로서는 아주 훌륭한 연구 방식입니다. 하지만 리버스 엔지니어링 방식은 그 한계가 명확합니다.”

“무엇인가?”

“기술을 선도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오로지 품질과 가격만으로 타사와 경쟁해야 하죠. 더불어 자칫 특허 소송에 크게 휘말릴 수도 있습니다.”

다행히도 특허 문제는 해결되었다.

포드 사와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으니까.

디젤이 이를 언급하며 자신의 가슴을 퉁퉁 쳐 댔다.

“무슨 연유로 이 왕자님께서 저를 영입했는지 이제 확실히 알 것만 같습니다. 아마도 이 왕자님께서는, 기술을 카피하는 후발주자에서 기술을 선도하는 선발주자가 되고자 저를 영입하셨겠지요.”

“맞네.”

나의 답변에 디젤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나는 그런 디젤의 표정을 읽고 그에게 되물었다.

“그런데 안색이 별로 안 좋아 보이는군.”

“그게······.”

디젤이 말끝을 살짝 흐리다가 다시금 나와 시선을 교환했다.

“제가 개발한 디젤 엔진은 아직 자동차에 탑재하기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

디젤 엔진은 SUV부터 트럭, 그리고 중장비와 기차에 이르기까지.

배기량이 큰 대형차에 더 잘 어울린다.

내가 시장에 내놓으려고 하는 상용차에도 적용할 수 있지만.

아직 가솔린 엔진과 비교해 같은 선상에 있다고 볼 수는 없었다.

“그건 걱정하지 말게나.”

“예?”

“나는 자네가 단기간에 성과를 내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네.”

디젤을 토닥이며, 그를 격려했다.

꽉꽉 쪼이는 것보다는 이렇게 응원하며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는 것이 그에게 더 힘을 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나는 오 년, 아니 십 년 뒤를 보고 있네.”

“정말이십니까?”

“물론이지. 아, 내 예상보다 더 빠르게 디젤 엔진이 상용화된다면 엄청나게 기뻐할 테지만 말이야.”

나는 으쓱이며 디젤의 어깨에 올려져 있는 무거운 짐을 조금 내려놓게 했다.

“가솔린 엔진의 신규 개발에 관해서도 너무 걱정하지 말게나.”

“어째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혹시 라이트 형제들이 새로운 엔진을 개발하고 있습니까?”

같은 가솔린 엔진이라곤 하지만, 비행기 엔진과 자동차 엔진은 결이 다르다.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디젤의 물음에 답했다.

“그건 아닐세.”

“그렇다면······.”

그의 물음에, 나는 머릿속에 그려 두었던 미래를 디젤에게 살짝 귀띔했다.

“특허 공유 같은 낮은 수준의 기술력 제휴 말고, 좀 더 높은 수준의 기술력 제휴 협상을 곧 추진할 생각이니까.”

“예? 타사와 협력을요? 어떻게 말입니까?”

디젤이 이에 반문했다.

“저희 기술력은 아직 아기가 막 발을 내딛는 걸음마 단계인데 말입니다. 누가 우리와 기술 협력을 한단 말입니까?”

“이게······ 있지 않은가?”

나는 오른쪽 검지와 엄지를 말아, 동그라미 표식을 그 앞에서 지었다.

머니(Money).

나에게는 기술이 없지만, 돈이 있지 않은가?

‘금융위기로 돈줄이 말라붙었지. 뉴욕증시는 회복하고 있지만, 실물 경제는 아직도 어렵다.’

조만간 내게 연락이 올 것이다.

이르면 이번 달.

늦어도 석 달 내에는 GM이든, 포드든.

한 곳에서 연락이 오겠지.

그때 기회를 낚아채면 된다.

‘정 안 되면, 파산할 것 같은 업체 하나를 인수하여 기술 인력을 빼 오면 되고.’

나의 계획에 디젤이 멍한 표정을 지어 댔다.

하지만 이내 나의 방법에 동의했다.

그 역시 내 황금 때문에 저 먼 독일에서 미국으로 건너왔으니까.

< R&H 모터스 (소제목 수정 - 8/1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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