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인 애국단 (4) >
안중근의 급작스러운 부탁에 나는 살짝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바로 알려주면 미리 준비했다는 티를 팍팍 내는 셈이니까.
“여러 가지 수가 있긴 하네. 두 가지 정도는 이미 진행 중인데 말이야······.”
나는 재빨리 다른 이들의 표정을 살폈다.
안중근을 제외한 나머지가 어찌 반응하나 관찰해야 했기 때문이다.
괜히 간절하지도 않은 이들 앞에서 민감한 이야기를 꺼냈다가 보안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조심해서 나쁜 것은 없지.
‘다들 진심이군. 눈빛도 아주 맹렬하고.’
특히나 내 앞에 있는 김창수는 더더욱 그랬다.
자신이 의기양양하게 세워둔 암살계획이 물거품이 되었으니까.
내가 무슨 계획을 세우고 이를 진행하고 있는지, 궁금해할 만도 했다.
“궁금한가?”
“예, 전하.”
팔짱을 끼며 나는 좀 더 넓은 거실로 이동했다.
“여기서 배를 타고 남쪽으로 사흘 정도 이동하면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지대가 보이네. 그곳에 현재 내가 운영하는 무관학교가 있네.”
빌헬름 2세가 보낸 독일인 장교들이 다수 파견되어 독일의 군사교리들을 전수하고 있다.
퇴역한 미군 장교들도 고용하여 한인들 위주의 민간 용병 육성에 거금을 투자하고 있는 상황.
나는 이를 애국단 일원에게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거기선 다양한 기술을 가르치고 있네. 군사교리는 물론이고 사격술부터 호신술까지, 그대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강의가 매일같이 열리고 있지.”
안명근이 손을 들며 내게 물었다.
“전하 호신술이라는 것이 무엇이옵니까?”
“그게 말보다는 상황극이 좀 더 효과적일 것 같군. 날 도와줄 사람이 한 명 필요한데, 혹시 지원자가 있는가?”
“제가 하겠습니다.”
이재명이 자원했다.
나는 방문이 있는 쪽으로 선 다음 이재명보고, 내 앞에 서 있으라고 명령했다.
이후 나는 다른 이들을 보며, 내가 서 있는 문 쪽을 가리켰다.
“저기에 탈출구가 있다고 가정해봄세. 그런데 일본군의 순사가 그 앞을 가로막고 있어.”
상황 설정은 이 정도까지.
그다음은 역할분담이다.
“이 선생. 나는 앞으로 5분 동안 일본의 순사 역할을 하겠네. 자네는 나를 피해 도주하는 의용군을 연기하게나.”
“예? 아, 알겠습니다.”
나는 이재명을 발견하는 척을 했다.
“둘 중 하나가 총을 들고 있으면 서로 총격전이 시작되겠지만, 이리 근거리에서는 육탄전이 이루어지겠지?”
“예. 그렇겠지요?”
“이때 호신술이라는 것이 필요하네.”
나는 이재명과 대치하다가 팔을 잡는 동작을 취했다.
“아! 이 선생.”
“예. 전하.”
“제대로 움직여보세나. 서로 몸싸움을 벌이다가 다칠 것 같으면 신호를 보내게. 항복이라 외쳐도 좋고, 오른쪽 팔을 툭툭 쳐도 좋네.”
“전하. 괜찮겠습니까?”
“다칠 것 같으면 나 또한 신호를 보낼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게나.”
우리 둘이 싸운다면 당연히도 내가 이길 거다.
싸움은 본래 체급으로 결정되니까.
“헉.”
게다가 난 왕자다.
더욱이 이재명은 나와 접촉을 굉장히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기에, 이후에도 날 함부로 대하지 않을 것 같았다.
‘접대 축구나 접대 골프 같군. 일단은 빠르게 끝내자. 이번 경연의 목적은 호신술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함이니까.’
자세를 낮게 취한 후 이재명에게로 다가갔다.
그의 허벅지 쪽을 두 손으로 끌어안은 후 밀어댔다.
이재명이 쓰러트린 후에는 재빠르게 자세를 바꿔서 유도의 조르기 동작을 취해 보았다.
“컥. 저, 전하. 숨이······ 하, 항복입니다.”
나는 현대 미국에서 박병준으로 살 때, 여러 무술을 배웠었다.
어렸을 때는 태권도.
좀 컸을 때는 유도와 호신술을 잠깐 익혔다.
몸은 바뀌었지만, 그때의 기억은 남아 있는 상황.
이 몸에 빙의한 지 어언 3년 차.
오랜만에 유도 동작을 선보였는데, 의외로 잘 먹혀들어 갔다.
나는 신음하고 있은 안중근을 일으켜 세운 후, 옆으로 조금 이동해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댔다.
“서구에는 여러 무술이 존재하네. 비단 서구뿐만 아니라 신대륙 문명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여러 호신 기술들이 있지.”
나는 멍하니 나를 쳐다보고 있는 애국단 일원들과 시선을 교환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나는 그 장점들을 하나로 모아서 체계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네. 총과 칼을 들고 싸우는 시대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으니까. 이에 관한 대비 역시 해 놔야 하지 않겠나?”
다들 대충 뭔 뜻으로 내가 이런 쇼를 한 것인지 이해한 것 같다.
“이런 기술을 익히기 원한다면 내 주선해주겠네. 그곳에서 훈련을 좀 받아 보게나.”
일부 성적이 좋은 이들은 특수부대로 차출하여 이런 요인 암살이나 특수 작전 같은 임무를 부여할 생각도 있었는데.
안중근이나 김창수를 활용해 이를 꾸며본다면 딱 좋겠네.
상상만 해도 기쁘다.
“새,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래.
단번에 수락하리라고는 나 또한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급히 자리를 옮기는 행동을 취하며 애국단 일원들에게 따라오라 명했다.
“다음은 저쪽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것 같군. 그대들에게 보여줄 것은 이 방이 아닌 다른 방에 있네.”
* * *
이동하는 도중, 아까 하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방금 개개인의 용력이 중요하다고 설명했었지?”
“예, 그렇습니다.”
내 이야기가 와전되어서 전해질 수도 있기에, 나는 서둘러 아까 했던 말을 정정했다.
“그렇다고 해서 맨몸으로 일본놈들과 싸우라는 말은 아닐세. 사람은 짐승들과 다르게 도구를 활용하는 동물이니까.”
한양 도성의 사진이 곳곳에 붙어 있는 큰방에 도착했다.
나는 그곳 구석 한편에 설치된 금고로 향했다.
드르륵- 드르륵-
자물쇠를 해체한 후, 안에 있는 물건을 꺼냈다.
내 뒤통수에는 눈이 달려 있지 않아서 확인할 수는 없지만, 한인 애국단 단원들을 지금쯤 다들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천하장사라도 가슴팍이나 머리에 총알이 박히면 죽지. 세상 참 공평해졌어.”
금고 안에서 소총 두 자루를 꺼낸 후, 나는 탁자 위에 그것을 올려놓았다.
둘 다 총알은 비어있어 안전한 상태.
애국단 단원들은 내가 꺼낸 소총의 모습을 이리저리 훑어보다가 나를 바라보았다.
“전하. 이것은······.”
“시중에 굴러다니는 소총들일세. 하나는 러시아제고, 나머지 하나는 영국제네.”
역시 현장경험은 천금같이 소중하다.
의병 지휘를 수년간 했던 안중근은 내가 꺼낸 소총에서 특별한 점을 가장 먼저 발견했다.
그는 러시아제 모신나강을 손에 쥔 후, 내게로 접근했다.
“전하.”
“말하게.”
“여기 모신나강에 달린 이것은 무엇입니까?”
“아, 그거. 조준경일세. 망원렌즈를 부착해서 멀리까지 볼 수 있을 것일세.”
안중근이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사람이 없는 곳을 향하여 사격 자세를 취했다.
다들 이들도 궁금한지 이내 안중근에게 이를 건네받고 아까 안중근이 했던 행동을 따라 했다.
“여기서 그대들에게 질문! 나는 왜 이 소총에 조준경을 부착했을까? 답할 사람?”
안중근이 가장 먼저 손을 든 후, 내 질문에 답변했다.
“적을 저격할 때, 거리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유리해지기 때문입니다.”
“뒤에, 자네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제법 보이는군. 좀 더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해보게.”
그동안 안중근은 계속해서 나만 바라보고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다른 이들에게 설명하라는 나의 명령에 안중근은 나와 뒤에 있는 다른 애국단 단원들을 번갈아 바라보며 조준경의 장점을 설파했다.
“저격수들이 도망칠 시간을 벌려면 멀리서 쏴야 합니다. 그런데 멀리서 적을 조준하게 되면 표적을 구분하기가 힘들죠. 하지만 여기, 이 소총에 부착된 조준경을 활용한다면 이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돋보기 쓴 것처럼 멀리 있는 것도 더 크게 보이니까요.”
“맞네. 여기서 추가로 자네들에게 한가지 문제를 더 내겠네. 나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다른 것을 하나 더 준비하고 있다네. 그것이 뭘까?”
이번에는 김구가 손을 들었다.
“현재의 무기로는 분명 한계가 있기에 전하께서는 이를 개량하고자 신무기 연구에 집중하시고 계실 것 같습니다.”
“정답이네. 소총 자체의 유효 사거리를 늘리는 것이 내 목표일세. 아! 가능하면 안정성과 휴대성도 함께 겸비하고 싶군.”
나는 한인 애국단 단원들이 들고 있던 무기를 회수하며 어깨를 들썩였다.
“자네들은 이를 걱정하지 말게. 무기 개량에는 큰돈이 들어가네. 자네들의 주머니 사정을 잘 알기에 자네들은 그저 내가 개량한 무기를 잘 사용하기만 하면 되네.”
“전하.”
“응?”
“들리는 풍문에는 이회영 일가가 방산 쪽에 돈을 좀 투자하고 있다던데 말입니다.”
안명근이 조심스럽게 내게 질문했다.
“혹시 이 대감께서 이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사옵니까?”
나는 눈으로는 웃었지만, 침묵했다.
이는 곧 긍정을 의미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아, 맞다. 혹시 쓸만한 아이디어가 있으면 언제든 내게 연락하게.”
다들 고개를 갸웃한다.
쓸만한 아이디어라는 것이 너무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단어였기 때문이다.
“한 가지 예를 들며 쉽게 설명하지. 만약에 여기 만년필에 독을 넣고 다닌다 생각해보게. 무기를 지니고 다닐 수 없는 곳에선 안 주머니에 있는 이 만년필이 아주 좋은 대체 무기가 되지 않겠는가?”
“아······.”
“손목시계나 자네가 신고 있는 구두에도 무기를 넣을 수도 있을 것일세. 이런 식으로 남들이 하지 못했던 상상을 자네들이 한번 해보라는 것일세.”
“꼭 총기류만을 고집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군요.”
나는 현대 시대에 주로 시청했었던 첩보 영화를 생각하며 여기 있는 단원들에게 주문했다.
“그래. 뭐가 되었건 적을 죽이기만 하면 되니까.”
두 소총을 다시금 금고에 보관한 후, 나는 팔짱을 끼며 머릿속에 담고 있던 마지막 아이디어를 이들에게 설명했다.
“이것 말고도 다양한 방법으로 적을 제거할 수 있네. 자세히 그 예를 한번 들어볼까? 자네 중 일부는 오늘 여기 있는 이 열사에게 불만을 제기했다지?”
옆에 있던 이위종을 슬쩍 쳐다보았다.
이곳에 오기 전,
한인 애국단 단원들이 진짜로 이위종을 압박한 적이 있었기에, 그는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이 열사는 나를 도와 만국평화회의에 활약한 인재네. 그렇기에 자네들은 이 열사를 두고 감히 일본이 보낸 밀정이라고 매도하지는 못했을 것일세. 다만······.”
한 가지 가정을 조심스레 입에서 꺼내며 애국단 단원들을 바라보았다.
“여기 이 열사를 외교론자 중 하나로 오해했을 수는 있었겠지. 내 말이 틀렸나?”
불과 몇 시간 전에 부대표였던 안명근이 이위종을 의심했던 일이 있었다.
그렇기에 아무도 내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지금이야 그저 얼굴을 붉히는 정도였지만, 만약 그 오해가 오랜 시간 쌓이고 쌓인다면 어떻게 될까? 여기 있는 이 열사가 만약 자네들의 신상정보를 다른 이들에게 팔아먹었다는 거짓 소문이 이 단체에 흘러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어찌 되었겠는가?”
오늘따라 계속 안 좋은 쪽으로 가정을 해댄다.
하지만 이는 실제로 벌어질 수도 있는 일이었기에, 나는 다시 한번 주먹을 꽉 쥐며 앞에 있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다퉜겠지. 일부 성급한 자들은 주먹다짐까지 해가며 피를 봤을지도 모르고.”
나는 김창수를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최악의 가정을 해보았다.
“과격한 일부는 더 나아가선, 같은 한인의 목숨을 앗아가려는 시도 또한 했을 수도 있네. 아, 내가 너무 과장해 이야기했지만 진짜로 오해가 쌓이면 그리될 수도 있지 않겠나?”
나는 벽에 등을 기대며 하던 말을 이어갔다.
“안 좋은 상상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으로 넘어가세. 현재 일본은 거대한 두 파벌이 서로 권력을 두고 다투고 있네. 생각하는 방향이 아주 다르지. 마치 우리네 무장투쟁론자들과 외교론자들이 자웅을 겨루는 것처럼 그 치들도 서로 제 의견이 옳다고 다투고 있네.”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몸을 살짝 숙였다.
집중하는 모습을 연출하기 위함이다.
“잘 생각해보면 이를 이용하여 두 세력의 갈등을 조장하고 심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일본 놈들 스스로 피를 보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리 생각하네.”
내 곁에서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재명이 입을 열었다.
“자중지란, 이이제이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뭐, 그렇다고 볼 수 있겠군. 내 계획대로 적이 분열해 서로 싸운다면 우리에게는 분명 득이 될 것일세.”
나는 벽에 붙였던 등을 이내 때며 강조했다.
“다만 이런 방법은 우리의 힘을 키우면서 병행해야 하네. 이 방법에 너무 몰입하다가는 지금과 같은 실수를 다시금 할 수도 있네.”
대한제국이 왜 망했나?
청나라에.
러시아에.
미국에.
의지하다가 일본놈들에게 주권을 빼앗기지 않았나?
‘그런 의미에서 한인들 사이에서 떠도는 4가지 이론은 모두 중요하다.’
외교적 노력과 함께 무장 투쟁이 병행되어야 한다.
그 가운데 위협이 되는 요인을 죽이며, 동시에 외세의 도움 없이 자생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했다.
어느 하나만 선호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아, 자네들. 내 아까 물어보려고 하다가 하나 까먹은 것이 있는데 말이야.”
이번 모임을 끝내기 전.
가장 중요한 것을 이들 앞에서 강조할 생각이다.
“자네들 피붙이들은 현재 어디에 있는가?”
이 시대에는 결혼을 일찍 한다.
나이가 많아 봐야 30대 초중반이지만, 상당수는 이미 아이까지 있다.
“본토에 있습니다. 여기에서 터를 잡으면 미주로 데려올 계획이었습니다.”
안중근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혀를 찼다.
“저런······ 내 그리 일러두었거늘.”
나는 미주로 오는 배편을 지원하면서까지 의병들의 가족들을 최우선으로 챙기고 있었다.
이 소식을 들었으면 데리고 올만도 한데 말이다.
“당장 이곳으로 데려오게. 나라도 중요하지만, 가족도 중요하지 않은가? 자네가 없으면 자네 가족은 누가 챙긴단 말인가?”
한동안 말없이 침묵하고 있던 안중근이 솔직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답했다.
“······ 제가 없어도, 전하께서 제 가족을 돌봐주시리라 믿고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나는 이런 존재인가?
안중근의 대답에 잠시 나는 멍해졌다.
“그래. 그리 돌봐주려면, 가까이에는 있어야 하지 않은가? 하루빨리 자네 식구를 내게로 데리고 오게나.”
“예. 전하.”
“하! 오늘은 이야기를 많이 해서 그런지 좀 피곤하군.”
얼른 이번 모임을 파하고 집에 들어가서 쉬어야지.
더욱이 한 달만 더 지나면 내 결혼식이 다가온다.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았기에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 생각이다.
< 한인 애국단 (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