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잊고 있었던 것 (1) >
“현재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애완견을 키우는 거예요.”
에델의 소원은 재벌가 여인치고는 굉장히 소박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긍정적인 표정을 지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마음 한편이 살짝 불편해지는 것 같았다.
‘나름대로 잘 챙겨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부족한가 보군.’
에델은 자신의 고향이었던 뉴저지를 떠나 미 대륙 정반대에 있는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했다.
그녀 밑에서 일하던 사람들도 제법 많이 건너왔지만, 우리 집엔 현재 내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다수 포진해 있다.
그렇기에 그녀는 아직도 내 사람들을 보면 가끔 어색한 표정을 짓는다.
뒤바뀐 환경 때문인지 살짝 스트레스를 받는 거다.
‘길렀던 강아지를 보며 마음을 다잡고 싶나 모양이군.’
지난 기억을 회상해 보았다.
에델의 본가에 방문했을 때, 에델은 키우던 강아지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즐거워했었다.
내 기억이 정확히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나는 에델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예전에 애완견을 키웠던 것으로 기억하오.”
“맞아요.”
에델은 지난 과거를 회상하며 자신의 손에서 자랐던 강아지들의 이름을 읊었다.
“제 손을 거쳐 간 아이들만 해도 일곱이나 된답니다. 밍키, 매드독, 크랭크, 나오미, 블랙, 루시, 재키. 특히 루시와 재키는 아직도 본가에서 지내고 있어요.”
“품종은 어떻게 되오?”
“루시는 코카스파니엘이고, 재키는 비글이에요. 두 아이 다 얼마나 귀엽게 생겼는데요? 아, 맞다! 애들 사진들이 있었는데, 어디에 두었더라.”
손에 꼽히는 부잣집 영애답게 에델은 자신의 애완견들의 사진 역시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서랍 속에서 자신의 사진첩을 꺼낸 후, 이를 뒤적거리다가 이내 사진 하나를 내게 건넸다.
“찾았다!”
그녀는 자랑하듯 이를 보여 주며, 미소 지었다.
“왕자님께서도 저희 본가에 가셔서 우리 아이들을 보신다면, 분명 한눈에 반할 거예요. 사람을 얼마나 잘 따르는데요.”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사진 속 루시와 재키는 정말로 귀엽게 생겼으니까.
나는 고개를 돌려 에델의 푸른 눈을 보았다.
그 후 다시금 질문했다.
“왜 이 아이들을 본가에 두고 온 것이오?”
“그야······.”
에델이 슬쩍 말끝을 흐리며 머뭇거렸다.
그녀는 고개까지 숙이며 눈빛도 교환하다 마는 동작을 취했다.
“속 시원히 말해 보시오. 그 이유가 궁금하오.”
“와, 왕자님께서 별로 안 좋아할 것 같아서죠.”
“내가?”
“예.”
에델의 볼이 살짝 붉게 상기되기 시작했다.
“어째서 그리 생각한 거지?”
“전에 몇 번 이야기를 나눴을 때, 왕자님께선 강아지 이야기를 단 한 번도 안 하셨잖아요. 보통은 자연스럽게 그 주제에 관해 이야기하는데.”
“그래서 내가 동물을 별로 안 좋아한다고 추측한 것이오?”
“네.”
한동안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
“······.”
에델은 이런 어두운 분위기가 싫었는지 재빨리 다음 말을 이었다.
“우리가 연애를 통해 만난 건 아니잖아요. 결혼하기까지 우린 서로 잘 알지 못했어요. 그래서 하나하나 알아 간 후에 나중이라도 이를 부탁하려고 했어요. 부부라는 것은 원래 그런 거잖아요. 강요하지 않고 서로 맞춰 나가는 것.”
귀엽네, 아주 귀여워.
그래서.
눈치 보고 있다가 지금 이야기를 꺼냈다는 것인가?
나는 ‘별거 아니다’라는 표정을 지으며 에델에게 말했다.
“좋소. 두 아이를 이곳으로 데리고 오시오. 사실, 나 또한 강아지를 매우 좋아하오. 이곳에서 못 기를 이유가 없지.”
“그래요?”
“그럼.”
에델은 아이처럼 기뻐하다가 이내 다시금 고개를 숙이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왜 저러지?
나는 살짝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왜 그러오? 전에 키우던 루시와 재키를 우리 집으로 데려오라 하면, 분명 기뻐할 거로 생각했는데.”
“기뻐요. 그것도 엄청.”
“그런데?”
“그 아이들을 데리고 올 수 없어요.”
“아니, 왜?”
“루시와 재키를 사랑하지만, 두 아이는 저보단 저희 어머니를 더 따른단 말이에요. 게다가 제가 출가한 후, 저희 어머니께서 많이 허전해하시는 것 같아서요.”
에델의 어머니는 ‘빈 둥지 증후군’을 앓고 있었다.
장성한 자녀들이 부모 곁을 떠나면, 생길 수 있는 정신적 질환.
막내인 에델마저 그녀 곁을 떠나자, 이 증상이 심해진 것 같다.
에델은 이를 언급하며 강아지들을 데려올 수 없다고 했다.
“편지로 본가 소식을 종종 듣곤 해요. 그나마 루시와 재키가 어머니를 웃게 해 드린다고 하네요. 그런데 이 두 아이를 제가 데리고 온다면, 어머니께서 얼마나 외로워하시겠어요?”
유교 탈레반 국가에 시집온 여인답게 에델은 효녀였다.
나는 에델의 눈치를 살살 보며 그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뭐냐고 되물었다.
“저······ 강아지를 하나 새로 기르고 싶어요.”
“그리하시오. 그대가 원하는 품종과 성별을 선택해 보시오. 내 그대의 선택을 전적으로 지지하리다.”
에델이 살짝 적극적인 표정을 지으며 내 손을 꼭 잡았다.
“왕자님.”
“듣고 있소.”
“대한제국 왕실에서는 말이에요. 어떤 품종을 왕실견으로 길렀나요?”
응?
갑자기 웬 왕실견?
잠시 당황하다가 급히 이강의 기억을 더듬어 봤다.
“글쎄. 딱히 왕실견을 길렀던 기억은 없었던 것 같은데?”
“그래요?”
“그렇소. 내 궁에서 강아지를 길렀다는 문헌은 본 적이 없소. 아, 고양이는 있군.”
“고양이요?”
“그렇소. 약 백오십여 년 전에 숙종 대왕께서 애완묘를 기르신 적은 있었지. 이름이 금덕이라고 했던가?”
“그렇군요.”
에델은 살짝 실망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무언가를 결심한 듯 주먹을 꽉 쥐며 내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그렇다면 왕자님께서 시작해 보세요. 이참에 왕실견을 하나 키워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뭐? 내가? 왕실견을 말이오?”
“예. 대한제국에서만 있는 품종을 우리 집으로 데려와 기르면, 그게 왕실견이지요. 아니 그래요?”
에델의 눈빛이 이리 이글이글 타고 있다.
오래간만이다.
‘어휴. 뜨겁네.’
전에······
에델이 혼전에 몇 가지 주의사항을 내게 알려줬던 적이 있었는데.
마치 그때를 보는 것만 같네.
그만큼 에델은 이 대화에 집중하고 있었다.
“뭐, 못 할 것도 없지.”
“정말요?”
“그럼.”
에델이 제시한 ‘왕실견’이란 아이디어는 사실 내게 ‘상당히’ 도움 되는 제안이었다.
유럽 왕실 구성원들은 강아지들을 광적으로 좋아하니까.
영국만 해도 그렇다.
현 영국 왕인 에드워드 7세는 강아지를 일곱 마리나 키우지 않던가?
치열한 권력 다툼 속에서 주변 인물들에게 정을 못 붙이는 왕실 일원들의 특성상, 외로울 때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들의 애완견들뿐이다.
그 때문에 유럽 왕실의 강아지 사랑은 도를 살짝 넘는 경향이 있다.
‘조만간 그들과 정식으로 교류를 하게 된다.’
미국에서 크게 성공하자 그 비결을 한 수 가르쳐 달라고, 각국의 왕실 일원들이 내게 초대장을 날렸다.
록펠러 가문과 한 가족이 되자, 유럽 각국의 왕실은 더욱더 거세게 내 방문을 원하고 있고.
초대장이 지금도 거센 밀물같이 계속 밀려오고 있는 상황.
콧대 높은 영국은 물론.
영국과 그레이트 게임을 하고 있던 러시아.
나와 제법 인연이 있는 네덜란드.
고운 손을 그리도 좋아했던 독일제국.
기타 이탈리아와 스페인 그리고 스웨덴까지.
모두 다 나를 원한다.
그때 에델이 선별한 왕실견을 동행하거나 한국 토종견을 그들에게 보여 준다면, 상당히 큰 호감을 값비싼 선물 없이도 살 수 있을 거다.
‘동물을 이용한 정상 외교는 현대에서도 많이 사용되던 방법이지.’
국제 사회에서 60여 년간 남북으로 분단된 한국만 해도 그렇다.
한때.
진돗개와 풍산개를 두 나라의 지도자가 서로 교환하며 짧지만 해빙기를 가지지 않았던가?
한국의 이웃 나라, 중국 역시도 판다를 활용해 전 세계에 동물 외교를 펼쳤다.
그만큼, 애완견이나 멸종 위기 동물을 활용하는 것은 국제 사회에서 꽤 많이 사용되곤 하는 외교 수단 중 하나다.
‘아, 그러고 보니.’
초콜릿으로 유명한 벨기에만큼은 나를 단 한 번도 초청하지 않았네.
하긴.
그치들은 유럽 내에서도 아주 유명한 인종차별주의자들이니까.
무시해도 좋을 거다.
아무튼.
곧 유럽 투어가 다시 시작될 예정이기에 빠르게 새 애완견을 맞이해야 할 것 같다.
“그래,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당장 사람들을 풀어 이를 알아보라 명하겠소.”
“진짜요?”
에델은 풍만한 가슴을 앞세우며 나를 꼭 껴안았다.
나는 그런 에델을 꽉 껴안으며 오늘 하루를 마무리했다.
* * *
‘한국의 품종견들은 뭐가 있더라?’
피습사건 이후, 나는 대외활동은 자제했다.
그렇기에 매일 했던 산책도 잠깐 쉬고 있다.
‘답답하지만 어쩌겠어. 내 안전이 최우선인걸.’
그래도 우리 집 앞마당이 넓었기에, 나는 정원을 걸어 다니며 따분함을 달랬다.
오늘도 그러는 중인데.
나는 현대인이었을 때, 공원에서 산책했던 기억을 회상하며 한국의 품종견들이 뭐가 있나 살펴보았다.
‘한국의 강아지는 누가 뭐라고 해도 진돗개지.’
하얀색 털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코리안 진도.
주인을 아주 충성스럽게 지켰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다음은 북한 지역에서 많이 길렀던 풍산개다.’
응?
뭐지.
생각나는 것이 딱 이 둘뿐이다.
좀 더 여유를 두고 고민해 봤지만,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는 이게 다였다.
‘생각보다 적네.’
옆 나라 중국만 해도 품종견이 넘치는데 말이다.
차페이부터.
시추.
차우차우.
퍼그.
티베탄 마스티프.
페키니즈.
차이니즈 크레스티드.
다양한 품종견들이 존재하지 않던가?
‘왜지?’
여러 가지 이유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한국은 유럽처럼 품종견을 따로 골라내 교배시키는 노력을 덜 해 왔다.
더욱이 원 역사에서는 일본의 강점 아래 2차 세계대전을 치렀다.
전쟁이 끝으로 치달을수록 일본 열도는 물론 한반도에 거주하는 거주민들의 삶도 피폐해졌을 터.
‘가끔 한국에 놀러 갔을 때, 한국에 사시던 나의 할머니께서 말씀해 주셨지. 일제 강점기 말에는 일본 놈들이 철제로 된 식기들을 죄다 빼앗아 갔다고.’
철광석이 모자라 솥뚜껑까지 수탈하던 시대다.
전쟁에는 방한을 위한 모피류도 많이 필요하기에, 일본인들은 한반도에 있는 가축들도 대거 잡아들이며 그들의 가죽을 전쟁 보급품으로 사용했을지도 모른다.
강아지라고 예외는 아니었겠지.
‘여러 한국 토종견들은 그때 많이 멸종했을 거다.’
원 역사에서 진돗개나 풍산개들밖에 남지 않았던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
정확히 이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나는 내가 생각한 이유 때문인 것만 같았다.
‘이번에는 달라져야지.’
내가 이강의 몸에 빙의했으니까.
“전하. 찾으셨습니까?”
“그래.”
나는 제법 진지한 얼굴로 최현식에 한국의 품종견들을 찾아보라 명했다.
이에 최현식이 살짝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전하. 전국에 있는 개들을 조사하려면 비용도 비용이지만, 시간이 많이 소요될 것입니다.”
“나 또한 알고 있네.”
“유럽에 방문하기 전에, 왕실견을 지정하고 싶으시다면, 일단은 한인들이 미국에서 기르고 있는 국내 토종견들부터 한번 조사해 보는 것이 어떠십니까?”
“아, 그래?”
“예. 새끼를 낳은 이들이 있으면, 이들을 통해 한 마리 들이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
그편이 확실히 빠르긴 하겠네.
미국 이민이 활발해지며 대한제국의 각종 문물이 신대륙으로 넘어오고 있는데.
토종견들 또한 몇 마리 넘어왔을 터.
“한번 알아보게.”
“예. 동시에 본국의 품종견 조사 또한 진행하겠습니다. 이전에, 의왕비께서 제게 부탁하신 토종 꽃들 조사와 함께 말입니다.”
“토종 꽃들 조사? 에델이 이를 지시했다고?”
“예. 예. 딱히 문젯거리가 될 것은 없다고 판단하여서 전하께 이를 보고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
결혼식 후, 우리 집 정원은 하루가 다르게 그 모습이 변하고 있다.
에델이 자기 스타일에 맞게 이를 뜯어고치고 있어서다.
결혼 전에도 우리 집의 정원은 자신 마음대로 가꾸고 싶다고 천명하지 않았었나?
‘최근에 대한제국에서 들여온 이화 나무들이 우리 집 정원에 가득 들어서기 시작했는데······.’
이화 나무가 우리 집 정원에 계속해서 들어서고 있는 것은 이화꽃이 대한제국의 왕실을 상징하는 꽃이기 때문이다.
왕실견도 그렇고.
이화 나무 이식도 그렇고.
토종 꽃 조사들도 그렇고.
에델이 지시하거나 원하는 일련의 사업들을 보면, 뭔가 비슷한 문제의식이 이것들을 관통하는 것만 같았다.
‘흠······.’
이를 보며 잊고 있었던 사업들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한때, 종자 개량 사업에 열을 올렸었는데 말이다.
‘농업에 있어서 질 좋은 종자를 확보하는 것은 어느 일보다도 중요하다.’
이를 진행하며 놀라운 점을 하나 깨달았었는데.
일본인 학자들이 수많은 토종 종자의 이름을 붙이는 바람에, 한국식이 아닌 일본식 학명을 갖고 있었지 않았던가?
‘잊고 있던 것이 기억나네.’
에델을 통해 뭔가 깨닫게 되는 것 같다.
나는 다시금 해야 할 목록을 적어 내리며 잊고 있었던 것들을 상기하기 시작했다.
< 잊고 있었던 것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