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128화 (128/294)

< 로열 더치 (1) >

미대륙 횡단 열차를 타고 샌프란시스코에서 뉴욕으로 이동했다.

이후.

현 네덜란드의 수도인 헤이그로 가는 표를 구매한 후, 크루즈선에 입장했다.

‘이번에 타고 갈 배가 바로 루시타니아호라고?’

최고 속도 23.5노트.

선체 내 수영장과 테니스장까지 갖춘 초호화 크루즈선.

타이타닉을 닮긴 했지만, 그보다는 약간 작은 여객선이다.

‘이 배도 끝이 별로 좋지 않은 배였는데 말이다.’

루시타니아호는 제1차 세계대전 때, 영국 해군에 차출되었다.

그 후 보급선으로 사용되었는데.

1915년.

아일랜드 근해에서 독일군의 어뢰에 침몰하는 비운의 운명을 맞게 되었다.

‘이 사건 때문에 미국 언론이 난리가 났지.’

이 배에 미국인이 무려 백여 명이나 타고 있었으니까.

제1차 세계대전에서 꽤 중요한 사건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이 서서히 연합군 쪽 편을 들기 시작했으니까.

‘이번 역사도 원 역사처럼 흘러갈까?’

나는 루시타니아호를 잠시 관찰하며 고민해 보았다.

“이 왕자님, 안녕하십니까?”

“왕자님, 오랜만입니다.”

“전에도 한 번 뵀었는데 말입니다. 혹시, 제 얼굴 기억하십니까?”

한참을 제1차 세계대전에 관해 생각하고 있는데.

그때 여러 인물이 날 찾아왔다.

“누구?”

“잭 모리스입니다. 노던 유니언의 은행장입니다.”

“노던 유니언의 은행장?”

“예.”

잭 모리스는 나와의 지난 인연을 강조하며, 옛 추억을 상기시켰다.

“지난번 뉴욕시 자선 경매 행사에서 한 번 만났었는데 말입니다. 그때, 청나라 도자기를 두고 왕자님과 제가 경쟁하지 않았습니까?”

“아! 그래그래. 기억나는군. 그때 도자기, 참으로 탐났는데 말이야. 내, 자네에게 그만 뺏겨 버렸지.”

“예. 그랬지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잭 모리스가 누군지, 그때 무슨 유물을 사려고 했는지 기억이 영 안 난다.

‘지난번 자선 행사 때, 그때 나온 청나라 유물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다 기억해.’

청나라 왕족이 황실 내 자금 좀 융통하겠다고, 모건에게 자국 유물을 대거 풀어 재끼지 않았던가?

그 때문에 수백 점의 청나라 유물이 시중에 나왔다.

그래서일까?

나는 기억력이 굉장히 좋지만, 이것만큼은 영 회상할 수 없었다.

“다시금 이 자리에서 만나게 되니 영광입니다. 혹시 옆자리에 앉아도 되겠습니까?”

“그럼. 이리 앉게나.”

하지만 나는 프로다.

정치인 중에 최악은 사람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정치인.

몰라도 아는 척.

더하여 아는 척을 실수 없이 하는 것이야말로 프로 중 프로가 하는 연기다.

나는 십년지기 친구를 만난 듯, 잭 모리스를 반기며 대화를 이어갔다.

“오늘 이야기 잘 나눴습니다. 헤이그에 도착하기 전에, 한 번 더 찾아뵙겠습니다.”

“그래.”

후-

한숨이 절로 쉬어진다.

크루즈에 탑승한 후, 이런 일이 벌써 수십 번도 더 일어났기 때문이다.

황금 같은 휴식이 내 앞에 있을 줄 알았는데.

“아직 유럽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말입니다. 벌써 사방에서 왕자님을 찾고 있군요.”

그때였다.

아는 얼굴이 찾아왔다.

나와 함께 유럽에 동행할 록펠러 2세였다.

“그러게. 이놈의 인기란······.”

“일상이 늘 이리 바쁘신 것은 아니겠지요?”

“······.”

“설마 오늘과 비슷하십니까?”

“뭐, 그렇다고 볼 수 있네. 그나마 서부보다는 동부에 있을 때가 한가하긴 하네.”

“저런.”

아, 쉬고 싶다.

록펠러 2세가 쓸데없는 소리를 또 할 수 있으니, 재빨리 그의 입부터 막아야겠네.

나는 재빨리 록펠러 2세의 역린이라고 칭할 수 있는 그의 아버지 상태를 물었다.

“그래, 자네 아버님은 좀 어떠신가? 요즘 록펠러 대표의 심기가 매우 불편하다는 소문이 있네만.”

“뭐 별로 좋지 않으십니다.”

록펠러 2세는 주먹을 꽉 쥐며 분노했다.

“이게 다 그 빌어먹을 곰탱이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 그놈 때문에 요새 밤잠까지 설치곤 하십니다. 후······.”

록펠러가 왜 이리 분노하냐고?

그야 지난 3월부터 루스벨트의 3기 행정부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4년은 더 버텨야 워싱턴에서 루스벨트가 사라진다.

4년은 엄청나게 긴 세월이다.

루스벨트가 워싱턴에 있을 때 그의 오일 제국이 붕괴할 수도 있기에, 록펠러는 조마조마하며 하루를 나고 있었다.

“듣자 하니 뉴욕의 황태자에게도 칼을 들이밀었다며?”

“예. 그것도 아주 대놓고 모건을 제소했습니다.”

루스벨트는 록펠러의 스탠다드 오일을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제소했다.

이어 최근에는 모건의 US 스틸을 같은 혐의로 법원에 세웠다.

남은 재직기간 동안 시장에서 독점이란 불법 행위를 엄금하겠다는 그의 의지가 피력된 것 같았다.

“아버지께선 모건 대표와 함께 열심히 법조계에 줄을 만들고 있으신데, 이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아서 조금 불안해하시는 것 같습니다.”

록펠러 2세가 나를 지켜보며 혜안을 구했다.

“왕자님. 무슨 좋은 해결책이 없을까요?”

“내 지난번에도 한 번 언급했었지만······ 재판 결과가 나오기 전에 선제적으로 스탠다드 오일을 나누는 시도가 최선인 것 같네.”

나는 팔짱을 끼며 다시 한번 강조했다.

“재판 결과가 나오면 더 잘게 잘게 쪼개질 테니까. 나쁜 선례가 법원에 영구히 박제되는 것도 그렇고.”

“아버지께서도 왕자님의 제안을 고려하셔서 회사를 네 개로 나누는 작업을 시도 중이십니다. 숙부와 함께 이를 열심히 짜고 계시고요.”

“그래?”

“예. 하지만 어디까지 최악의 상황을 대비한 모의 훈련일 뿐입니다. 최종적으로 기업 분할을 지시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뭐, 록펠러 대표의 뜻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법조계의 현명한 판단을 믿을 수밖에.”

나는 살짝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강조했다.

“내 손에 가진 기득권을 버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까. 하지만 이 보 전진하기 위해선 때론 일 보 후퇴해야 하는 법일세.”

“······.”

“나중에 록펠러 대표에게 내 말을 이리 전해 주게.”

“예. 그리하겠습니다.”

록펠러의 거대 제국이 쪼개지려고 한다.

석유 산업의 재편이 임박한 이때.

나는 이번 유럽 방문을 통해 새로운 검은 황금 이권 일부를 가져올 생각이다.

‘그 키는 로열 더치(네덜란드)에서부터 시작하지.’

헨드릭과 친분도 친분이지만, 나의 미래 구상에서 네덜란드는 아주 중요하다.

아직 개발되지 않은 거대 유전 몇 개를 이들이 손에 쥐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한쪽 입꼬리를 슬며시 올리며 나만의 석유 제국 구상을 천천히 머릿속에 그리기 시작했다.

* * *

이강이 영미권 사업가들과 투자 관련 대화를 나누느라 바쁠 때.

“어머, 이 왕자비님.”

에델 역시도 배 안에서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그녀는 온종일 수많은 상류층 여인들 사이에 둘러싸여, 사교 대화를 나눴다.

“브로치가 너무 이쁜 것 같아요. 한가운데 박힌 보석, 사파이어 맞죠?”

“예. 맞아요.”

“이거 몇 캐럿이에요? 엄청나게 커 보이는데요?”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우리 그이가 선물 준거라 자세한 정보는 못 물어봐서요. 죄송해요.”

에델은 보통 말없이 웃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여성들은 그녀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연신 에델을 칭찬하며 하늘 높이 띄우기 바빴다.

“이것도 이 왕자님께서 왕자비님께 선물로 주셨다고요?”

“예.”

에델은 바보가 아니다.

록펠러가의 배운 여성.

그렇기에 그녀는 작금의 칭찬에 결코 진심이 가득 담겨 있다 생각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그녀는 그저 눈으로만 웃으며 업무적인 미소만을 날려댔다.

“재스민은 왕자비님이 너무나도 부러워요. 재스민도 왕자님이랑 결혼했으면 이런 호사를 마음껏 누렸을 텐데.”

재스민은 미국 동부에서 빌딩을 꽤 가진 부동산 재벌의 막내딸이다.

그녀는 졸부답게 화려하고 톡톡 튀는 의상을 즐겼다.

하지만 가문의 역사가 짧은 졸부라 그런지 오늘 모인 사교계 여성들은 다들 재스민을 무시했다.

아, 에델만은 예외다.

그래서일까?

“아! 왕자비님.”

“말씀하세요. 재스민.”

재스민은 에델에게 집착하며 친한 척 아양을 떨어댔다.

“이번 유럽 순방 일정에서 말이에요.”

“예.”

“왕자비님께서는 왕자님과 어디까지 동행하시는 것이에요?”

재스민은 자신을 제삼자처럼 지칭했다.

재스민의 요상한 말투 때문에 미국 그리고 영국에서 온 상류층 여인들은 그녀를 아니꼬워했다.

하지만 에델은 재스민을 내버려 두었다.

저런 재미난 캐릭터가 주변에 하나 있다면, 품위 있는 에델이 더욱더 돋보이기 때문이다.

“영국? 독일? 러시아? 아니면 끝까지 동행하시나요?”

재스민은 에델의 숨은 의도도 파악하지 못한 채, 계속하여 친한 척을 해댔다.

그녀는 진심으로 에델의 최종 목적지가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흠······.”

에델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강과 어디까지 함께 할지를, 여기 모인 여인들에게 밝혔다.

“공식적으로는 영국까지만 함께할 생각이에요.”

“그래요?”

에델이 자신의 배를 만지며 그 이유를 언급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저도 어쩔 수가 없네요. 그때쯤이면 조심해야 해서······.”

“아, 그렇지요. 홑몸이 아니시니까요.”

“예.”

재스민이 톡톡 튀는 억양으로 다음 말을 내뱉었다.

“그럼 재스민도 왕자비님과 함께 영국 순방까지는 함께 따라가도 될까요?”

“그럼요. 만일을 대비해서 순방단 예상 인원을 넉넉히 잡아 놓았답니다. 여기 있는 전부는 아니지만, 대다수는 저와 함께 왕실 투어를 충분히 하실 수 있을 거예요.”

“어머, 기대되네요.”

왕실 투어라는 단어에 재스민의 얼굴이 밝아졌다.

미국 여성들은 유럽 왕실에 이상할 만치 거대한 로망이 있다.

이는 졸부 출신 막내딸인 재스민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녀는 영국의 왕궁을 상상하며, 일어나지 않을 장밋빛 미래를 꿈꿨다.

“미국의 최고 투자자인 이 왕자님과 대화를 나눈 것도 영광인데, 왕자비님께서 이런 좋은 기회까지 제공해 주시다니······ 정말이지 감사해요.”

재스민이 손으로 제 얼굴을 감싸며 다시 한번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다.

“뭘요.”

“아, 이 왕자비님.”

“예. 포드 부인. 말씀하세요.”

“영국 왕실 방문이 끝난 후, 어떠한 일정을 생각 중이신가요?”

“그다음 일정이요?”

“예.”

에델은 자신의 친어머니와 시선을 교환한 후, 그녀의 손을 잡았다.

“저희 어머니와 함께 런던에 있는 별채에서 잠시 쉴 생각이에요. 그때쯤 되면 출산이 임박할 것이기에, 준비를 좀 해야 할 듯해서요.”

“그렇겠네요.”

포드 부인이 출산일을 역산한 후,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다시금 에델의 차후 일정을 물었다.

“혹시 출산 후, 갤러리에 들르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영국에 머무를 때요? 갤러리를요?”

“예.”

포드 부인은 왜 이리 에델의 다음 일정에 집착할까?

이유는 하나다.

에델은 결혼 전부터 미술품 수집으로 유명한 상류층 여성이었다.

미술품은 누가 그렸는지도 중요하지만, 누가 이 작품을 샀는지도 중요했다.

기품있고.

집안이 빵빵하며.

안목이 있는 컬렉터는 작품의 숨은 가치를 높여주는 좋은 요인이다.

이 때문에 미술품 좀 수집하는 이들은 다들 에델을 주시했다.

미국 최고 가문 출신이며.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부자와 결혼한.

더하여 안목까지 있는 에델의 선택은 향후 미술 시장을 흔들어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요. 갤러리에 가실 생각이시면 그때 저희와 함께해요.”

“저도요.”

여기 모인 일등석 여승객 중 다수는 에델과 함께 ‘영국’에 ‘미술품’을 사러 갈 목적으로 ‘루시타니아호’에 탑승했다.

모아 두었던 비자금을 탈탈 털어 영국으로 향했을 정도.

그 열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에델이 이 배편을 예약했을 때 이틀 만에 일등석이 만석될 정도로 소문이 빠르게 퍼졌다.

“여러분께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틈틈이 들를 생각이랍니다. 오랜만에 유럽에 왔는데, 그냥 지나칠 수는 없죠.”

“그렇죠.”

“함께 갤러리에 가죠. 이동할 때 여기 포드 부인에게 사람을 보낼게요.”

에델은 미술품 이야기를 하며 신이 나는 표정을 짓다가, 그만 흘리듯 다른 주제 하나를 그녀의 입에서 꺼냈다.

“아, 요새 주식에 투자하는 재미에 푹 빠져서 그림 쪽에 많이 소홀했는데······ 이번에 좋은 그림이 많이 나와서 제 흥미를 되찾아 줬으면 좋겠네요.”

다들 돈에 눈을 미친 자들이다.

재스민을 비롯한 여인들은 에델의 다음 단어에 주목했다.

“주식이요?”

“아, 예.”

“어떤 주식을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그러게요. 무슨 주식이 왕자비님에게 재미를 안겨 드렸을까요?”

“뭐, 당연히 우리 그이가 추천하는 주식이죠.”

에델은 피식 웃으며 그녀들의 물음에 답했다.

“저를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강의도 해 준답니다.”

“어머, 스윗해라.”

“듣고 싶어요. 왕자님께서는 왕자비님을 위해 어떤 주식을 추천했는지 말이에요.”

“아, 그거······.”

에델이 제 가방을 뒤지다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수첩에 적어 놨는데······ 그만 그걸 놓고 왔네요.”

“예?”

“복잡한 숫자 놀이에는 영 소질이 없어서 틈틈이 메모해 두거든요. 에구, 칠칠찮게 그걸 그만 집에다 놓고 왔지 뭐예요.”

“······.”

“······.”

분위기가 급격히 가라앉았다.

똥을 싸다가 끊는 것은 처음부터 싸지 않는 것만 못하기에, 다들 침울해한 거다.

다들 이강의 현 투자 목록에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에델은 그녀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의미를 알 수 없는 표정을 잠시 지었다.

이후, 말라버린 입술만 살짝 다시 훔쳤다.

“하하하. 그럴 수도 있죠. 임신하게 되면 건망증이 심해진답니다.”

“맞아요. 재스민 또한 우리 둘째 임신했을 때, 점심에 뭘 먹었는지도 까먹고 다닐 만큼 자주 무언가를 잊곤 했답니다.”

“저도요.”

에델은 이 구역 여자 우두머리다.

이번 에델의 실수는 그녀를 따르는 시녀들의 커버로 넘어갈 수 있는 수준.

그렇기에 다들 에델을 감싸며 그럴 수도 있다고 애써 넘어갔다.

“어머, 다들 그랬군요.”

“예. 임신 때는 다 그래요.”

“다행이네요. 아! 제가 다른 도움 되는 정보 좀 알려 드릴까요?”

“어떤 정보요?”

“우리 그이가 저와 제 가족들을 위해 아주 프라이빗한 신탁을 하나 설립해 줬지 뭐예요.”

“프라이빗한 신탁요?”

“예. 리버모어 매니저가 대표로 신탁 기금을 관리해 주는데, 수익률이 높아요. 이렇게 저처럼 돈에 무지해도 알아서 척척 잘 관리해 주니까 무척 편하네요.”

에델이 가입 경로까지 홍보하며 이강의 사업을 홍보했다.

“여러분도 다 아시는 아메리칸 신탁에서 이번에 부서 하나를 독립시켜 새롭게 만들었어요. 원하신다면, 추천해 드릴 순 있어요. 아, 물론. 제 추천이 있다고 해도 전부 통과하지는 못할 거에요. 투자자 재산이나 명성을 보고 사람을 가려 받는다고 해서요.”

이번 아메리카 신탁의 새 상품은, 가입자를 골라 받는다.

기존 상품과는 차별화되는 전략이다.

기존은 가입자 문턱을 낮추는 데 초점을 맞췄지만, 이번 신상품은 그 문턱을 엄청나게 높여 버렸기 때문이다.

“혹시 저도 추천해주실 수 있나요.”

“물론이죠. 포드 부인. 부군과 저희 남편은 사업 파트너인데, 그 정도야 해 드릴 수 있지요.”

“왕자비님.”

“저도 추천 좀······.”

“저희는 살짝 합격선에서 간당간당한 것 같은데······ 어떻게 잘 이야기해 주실 수 있나요?”

에델의 홍보 덕분일까?

이강의 프라이빗한 신탁 기금을 향한 미국 최고위층의 구애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크루즈선에서 대서양을 가로지르고 있어서 당장 가입할 수는 없지만.

육지에 상륙하기만 한다면, 신상품 가입자가 폭증할 것만 같았다.

“알겠어요. 다들. 제가 우리 그이에게 잘 말해 볼게요.”

에델은 무언가 기억났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음 말을 내뱉었다.

“아! 그리고.”

“······.”

“무기명 계좌도 받으니까, 신원이 노출될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에델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들은 그림을 구매하려고 유럽으로 건너가는 미국의 부자들이다.

예술품 구매는 예부터 돈세탁 방법으로 유명했다.

그랬기에, 에델은 이강의 새로운 금융 상품이 이들의 돈세탁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알같이 홍보하며 여인들의 흥미를 더욱 돋웠다.

“우리 그이가 그리 융통성 없는 남자는 아니라서요. 다들 무슨 뜻인지 알죠?”

에델이 마지막 말을 날렸다.

이에.

망설이고 있는 일부의 눈에 이채가 돌기 시작했다.

< 로열 더치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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