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스차일드 (2) >
“이강이 최근 들어 석유 관련 산업에 집중하고 있다?”
로스차일드는 멀리 있는 이도 다 들을 수 있을 만큼 큰소리로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 뭐, 멀리 내다본다면 아주 좋은 판단이지.”
석유 산업은 남작이 생각해도 전망이 참으로 밝은 산업이었다.
요새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자동차만 해도 그렇지 않던가?
원유에서 뽑아낸 가솔린을 연료로 사용하고 있다.
이강이 아주 적극적으로 밀고 있는 비행기 산업도 마찬가지다.
‘내연 기관이 탑재된 선박들도 하나둘 생겨나는 추세지.’
내연 기관은 증기 기관과 달리 발전시설 크기가 작고, 효율도 좋다.
기존에 존재하는 증기 기관과 비교하면 더 차이가 확 나는데.
군함을 예로 들면.
무기와 사람을 더 많이 실을 수 있는데, 항해 속도는 더 빨라진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겠다.
‘증기 기관은 곧 대체될 것이다.’
더 나아가 개인용 난방과 발전소까지 그 범위가 확대된다면 어떻게 될까?
남작은 생각했다.
석유의 수요는 보통의 사람들이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폭증할 것이라고.
로스차일드도 이를 잘 알고 있었기에, 바쿠 유전에 거액을 투자하며 석유 회사에 직접적으로 손을 뻗지 않았던가?
러시아 시장이 불안정해지지만 않았더라도 그는 계속해서 바쿠 유전을 운영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단기적으로 봤을 때는 아니야. 자네는 어찌 생각하나?”
“제 생각에도 남작님의 말씀이 전적으로 옳은 것 같습니다.”
“그래?”
로스차일드는 눈을 가늘게 뜨며 자신의 콧수염을 쓰다듬었다.
“제임스.”
“예.”
“이강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확인하고 싶은데, 어디에 보관했는가?”
“여기, 이쪽에 두었습니다.”
대담한 것인지 아니면 무모한 것인지, 이강의 투자 포트폴리오는 어느 정도 시장에 공개되었다.
유상 증자에 참여하며 대주주가 된 [로열 더치] 사부터.
신흥 강자 [텍사코]와 [걸프].
여기에 한솥밥을 먹게 된 [스탠다드 오일]까지.
로스차일드는 이강이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석유 회사들의 목록을 보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남작님.”
“응?”
“뭔가, 좋은 아이디어가 남작님 머릿속에 떠오르셨나 봅니다.”
“왜 그리 생각하지?”
집사였던 제임스는 남작의 오랜 습관을 언급했다.
“남작님 오른쪽 입꼬리가 올라갔기 때문입니다.”
“아하! 내가 그랬나? 하하.”
로스차일드 남작은 피식 웃으며, 이강의 추정 재산 목록을 살피다가 집사에게 물었다.
“이강의 추정 재산을 확인하다가 한 가지 재미난 걸 발견했네.”
“무엇입니까?”
“이강 이놈, 최근에 스탠다드 오일 주식을 집중적으로 매집한 모양이야.”
“예. 다른 석유 회사 주식도 사들였지만, 스탠다드 오일 사의 주식을 가장 많이 매수한 것 같았습니다.”
“경영권은 록펠러 일가가 꽉 쥐고 있을 텐데······.”
“그렇지요.”
집사의 대답에 로스차일드가 머리를 굴렸다.
“그렇다면 투자 목적으로 스탠다드 오일 사의 주식을 사들였나 보군.”
“예. 저평가되어 있다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뭐, 그리 생각할 수 있지. 다른 석유 회사들이 금융 위기 이후 두세 배씩 뛸 때, 록펠러의 스탠다드 오일은 아직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으니까.”
전 세계 석유 관련 회사들의 주식은 기하급수적으로 그 가격이 뛰고 있었다.
하지만 세계 1위인 스탠다드 오일 사의 주식만큼은 최근 들어 약세를 면치 못했다.
미국 정부에 의해 강제로 기업 분할 당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월가에 벌써 떠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강 이놈은, 록펠러 그 자식이 반독점법 소송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예상하나 보군.”
“아마도 그렇겠지요? 그렇지 않고서야 전 재산을 탈탈 털어 가면서까지 스탠다드 오일에 몰빵하겠습니까?”
이 시대를 풍미하고 있던 최고 경영자의 목표는 오직 하나다.
빠르게 관련 산업에 진출하든.
경영을 잘하든.
아니면, 돈으로 경쟁사를 마구마구 사들이든.
몸집을 최대한으로 키워서 해당 산업에서 독점 기업이 되는 거다.
철도왕 밴더빌드도.
철강왕 카네기도.
금융왕 모건도.
석유왕 록펠러도.
이 공식을 통해 미국의 경제를 지배하였다.
그런 큰 추세가 변치 않고 있는데.
미국 정부가 전례 없는 반트러스트법(반독점법)으로 록펠러와 모건을 압박하고 있다.
기업과 정부, 두 세력의 싸움.
보통은 후자가 전자를 이기기에, 사람들은 스탠다드 오일 사의 주식을 팔기 시작했다.
시장 ‘독점’이라는 매력적인 스탠다드 오일 사의 장점이 곧 사라질 테니까.
그만큼 기업 가치가 하락할 것으로 생각하여 투자자들은 지금 스탠다드 오일에서 발을 빼고 있었다.
‘록펠러를 어지간히 신뢰하고 있나 보군.’
로스차일드는 이강의 스탠다드 오일 사 매입 움직임을 그리 평했다.
이강이 미래에서 왔으리라고 생각지도 못했으니까.
‘바보 같은 놈.’
더욱이 로스차일드 남작은 이강이 록펠러에게 선제적으로 회사를 나누라는 제안을 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이는 록펠러가 아주 극비리에 이강과 만나서 관련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며.
더불어 록펠러의 분할 대비 움직임이 말 그대로 최악의 상황을 두고 모의 훈련하는 모습으로만 비쳐서다.
그랬기에 로스차일드는 아주 크나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록펠러 그놈······ 요새 아주 워싱턴에서 아예 한 발자국도 안 떠난다며? 듣자 하니 법조계 인사들을 그리 만나고 다닌다던데?”
“예. 그렇다고 합니다.”
미국의 동향이 적힌 보고서를 읽어 나가다가 남작이 크게 웃었다.
너무나도 만족스러운 결과가 보고서 안에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모건 그놈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모양이야. 애지중지 아끼던 제 수하들까지 죄다 워싱턴으로 내려보낸 걸 보면.”
“그래 봤자지요.”
“맞네. 자네 말대로 저들은 반독점법 소송에서 절대로 이길 수 없을 것일세.”
어째서 그리 확신하냐고?
그야.
이 큰 그림을 로스차일드 남작이 준비했기 때문이다.
무려 5년에 걸쳐서.
남작은 이 큰 그림이 완벽하게 그려질 수 있도록 하나하나 덫을 깔아 놓았으니까.
“언론, 학계. 그리고 사법계를 총동원하여 반독점법 소송 두 건 모두 우리 뜻대로 흘러가게 지휘하게.”
“예.”
“잘하면 골칫덩어리 삼인방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겠어.”
전에도 말했듯.
7인회 구성원들은 외부에서 보면 서로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아주 치열하게 서로를 견제하고 있었다.
대놓고 서로 적대시하지 않는 것은 서로의 덩치가 너무나도 커져 버렸기 때문이다.
한번 칼을 뽑으면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하는데.
모건과 록펠러, 로스차일드는 각자의 기업이 너무 커져 버려서 혼자만 살아남기는 힘들어졌으니까.
그래서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경쟁하는 모습을 보였다.
‘기업이 분할된다고 해서 모건과 록펠러 그리고 이강이 망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급격히 확장하는 세를 살짝은 꺾을 수 있으리라.
곧 월터에게 경영권을 넘겨줘야 하는 남작에게는 이번 반독점법 소송이 참으로 좋은 기회 같았다.
‘조금이라도 저들을 꺾어 놓아야지, 월터가 분발할 수 있겠지.’
모건 주니어나 이강의 월등한 실력에 비하면 월터 로스차일드는 그저 평범한 경영인에 불과했다.
그랬기에 남작은 자신이 저들과 맞서 싸울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칫.
3대째 내려오는 자신의 가문에 위기가 찾아올 수도 있으니까.
“기업이 분할되고, 주식이 폭락하면 다들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제법 궁금하군.”
남작은 세 인물의 얼굴을 회상했다.
가장 최근에.
7인회에 만났을 때, 그때를 회상하며 남작이 피식 웃었다.
“특히나 이강 그놈의 얼굴이 제일 궁금해. 지금쯤 스탠다드 오일 주식을 싸게 샀다고 좋아하고 있을 텐데 말이야.”
하하하. 하하하하.
남작은 오랜만에 활짝 웃으며 금요일 밤을 마무리했다.
밖에서는 을씨년스럽게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지만, 남작은 어느 때보다도 즐겁게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 * *
“흠.”
월터 로스차일드 앞에 서류가 수북하게 쌓여 있다.
밤새 로스차일드 가의 집사인 제임스가 보고서를 그에게 가져왔기 때문이다.
“이게 다인가?”
“예, 도련님.”
매주 월요일.
남작은 자신의 양아들인 월터를 만나 저녁 식사를 한다.
그때.
종종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 소식을 남작이 물어본다.
“오늘은 생각보다 적군.”
“······.”
제임스는 금요일 밤.
로스차일드 남작이 주로 보았던 보고서들을 기록해 두었다가 월터에게 전해 주었다.
이는 월터가 제임스에게 그리 지시한 것도 있고.
남작을 위해서도 그랬다.
월터가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 줄 때마다 로스차일드 남작이 화를 내며 분노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건강이 나빠지는 남작을 위해서라도 월터가 세계정세에 관심이 있어 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 했기에, 제임스는 이런 중요한 일을 요식으로 처리했다.
“아버님께서는 참, 이스라엘 독립에는 1페니도 안 쓰시면서······ 이런 쓰잘머리 없는 일에는 거금을 다 쓰신단 말이야.”
월터는 제임스가 요약한 보고서를 찬찬히 훑기 위해 오른손 검지에 제 침을 발랐다.
“그놈의 전통이 뭔지. 흐음?”
월터의 시야에 익숙한 단어 하나가 잡혔다.
사람 이름이었는데, 월터는 미간을 오므리며 이내 제임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요새 들어 이강에 관한 보고서를 많이 읽으시는군.”
월터는 이강에게 상당한 호감을 품고 있었다.
죽은 뻔한 지난 샌프란시스코 피습 사건을 함께 했고.
이강이 줄곧 그를 아주 극진히 대접하며 대우해 줬기 때문이다.
유대인이라고 은근히 무시하는 오만한 영국 왕실 일원들이나 여타 유럽 왕가 일원과는 다르게 말이다.
더욱이 월터는 이강과 자신이 제법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월터는 양아버지 밑에서, 이강은 양어머니 밑에서 자랐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무엇보다 이강은 자신의 본국을.
월터는 이스라엘을 독립시키고자 하는 원대한 목표를 품고 있기 때문이었다.
“대답해 보게. 어째서지?”
“······.”
“갑자기 벙어리가 되었나? 왜 이리 조용해?”
월터의 거듭되는 질문에 제임스가 이내 대답했다.
“도련님께 위협이 될지도 모르는 인물이니까요.”
“모건 주니어와 함께?”
“예. 그렇습니다.”
늙으면 걱정만 많아진다는데.
월터는 숙부이자, 제 양아버지인 로스차일드 남작의 얼굴을 떠올리며 살짝 인상을 썼다.
“뭐, 그렇지. 자네나 아버님의 우려대로 그리 흘러갈 수도 있어. 하지만 내가 봤을 때는 다르네.”
집사인 제임스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다.
월터는 그런 제임스를 향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적어도 그 둘은 먼저 위협하지 않는 한, 우리 가문을 치지는 않을 것일세. 다른 놈들과는 다르게 말이야.”
제임스가 계속 입을 다물고 있다.
월터에게 이는 무언(無言)의 시위 같았다.
“이런 종이 쪼가리 말고, 직접 겪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정보일세. 그러니 이상한 눈으로 날 노려보지 말게나.”
월터는 혀를 차며 읽다 만 보고서를 다시금 들었다.
“우리 가문을 위협하는 놈들은 따로 있거늘.”
보고서 하단에 아주 간략하게 해당 내용이 적혀 있다.
월터 로스차일드가 보기에는 이강이나 모건 주니어보다도 이놈들이 더 위험한 것 같은데 말이다.
“노벨 형제도 그렇지만 그보다 더 문제인 건, 골칫덩어리 알프레드야. 이놈 봐. 또다시 거하게 똥을 싸고 있잖아.”
월터는 지난 일을 회상하며 제임스를 바라보았다.
“지난날 아버님에게도 간청했지만, 보스니아 합병 건은 결국 우리 모두에게 독이 되어 돌아올 것이네. 알프레드를 말렸어야 했는데.”
“도련님.”
“아아, 안다고.”
월터 로스차일드가 손사래를 치며 그만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자네나 아버님이나, 본가 이야기만 나오면 이성을 잃는단 말이야.”
로스차일드 가문은 암묵적인 룰이 있다.
방계 가문끼리라도 같은 가문은 싸우지 않는다는 룰이다.
선대들은 이를 칼같이 지키고 있다.
하지만 월터나 오스트리아 쪽 알프레드 같은 4세대 일원들은 이 문구가 너무나도 이상에만 치우친 문구 같았다.
이제는 남남이 되어 가는 방계 일원은 어찌 보면 이웃사촌보다도 친밀하지 않은데.
그들의 막돼먹은 움직임을 그대로 지켜봐야 하냐는 의구심이 스멀스멀 올라왔기 때문이다.
“왜 자꾸 유럽 대륙 내 긴장을 일으키는 것인지. 결국, 서로 손해일 텐데 말이야. 나 원······.”
앞에 말들은 동의할 수 없었지만, 이번만큼은 제임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합스부르크 왕가 아래에서 유럽 제1의 재벌로 성장한 알프레드의 거친 행보는 제임스 역시 못마땅하기 때문이다.
“늦겠네. 아버님이 기다리고 계시겠군.”
“예.”
월터는 그런 제임스의 반응을 보며 만족했는지 이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오늘은 월요일.
월터는 두 부자간 저녁 식사를 위해 바삐 움직였다.
30분이 지나고.
런던 한복판에 있는 본가에 도착하자, 두 남자가 다시금 재회했다.
“아버님,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그래. 덕분에 아주 건강하다.”
둘은 평범한 영국 음식을 먹으며 아주 낮은 목소리로 감정 없이 대화를 이어 나갔다.
“이 왕자를 환영하기 위해 네가 우리 가문을 대표해 힘써 줘야 할 것이다. 그래. 떠날 준비는 끝냈느냐?”
“예.”
남작은 계속해서 월터에게 이강의 일을 맡겼다.
서로 자주 부딪히며 이강이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지 알아차리기 바라는 남작의 깊은 속뜻 때문이다.
“잘 다녀오거라. 최대한 예의를 갖춰 그를 환영하도록 하고.”
“예.”
경쟁자이긴 하지만, 귀빈이기도 하다.
귀한 손님을 박대하는 것은 로스차일드 가문에 있어서 수치스러운 일이었기에, 남작은 최선을 다해 이강을 접대하라고 명했다.
“런던으로 오는 도중 연방 준비 제도나 남만주 철도 관련 건에 대해 살짝 흘려 보아라. 그때, 이 왕자의 반응을 살펴보는 것도 잊지 말고.”
더욱이 이강은 로스차일드 남작에게 쓸 만한 패이다.
세력이 너무 크지 않도록 경쟁해야 했지만, 한편으로는 협력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남작은 제 양아들에게 몇 번이나 확인을 받았다.
이번 이강의 영국 순방은 로스차일드 그리고 이강 모두에게 기회였으니까.
그렇게.
월터가 남작의 집을 떠난 뒤에도 남작은 한참이나 월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아직은 믿음직스럽지 못한 제 양아들을 보며 다시금 일찍 죽은 제 아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 로스차일드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