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고이자 최악 (4) >
러시아의 총리였던 표트르 스톨리핀.
그는 십 분 전까지만 해도 기분이 상당히 들떠 있었다.
투자 천재라고 불리던 돈벌레 이강에게서 거액의 상납금을 뜯어낼 수 있었으니까.
‘일이 제법 잘 풀리는군.’
구두계약이고 본계약 때 세부 조항이 바뀔 수도 있지만, 적어도 천만 달러 이상은 족히 받아 내리라.
이강이 니콜라이 황제의 재정관리인이 된다면, 오백만 달러를 더 받아 낼 수도 있었기에.
그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속으로 열심히 표정 관리를 했었다.
‘너무 자주 언급하면 역효과가 일어나겠지만, 가끔 대한제국 의병들 철수를 언급해 보자. 주둔비를 더욱더 뜯어낼 기회다.’
스톨리핀의 연이은 개혁으로 러시아의 세입은 나날이 늘어나고 있으나, 러시아제국은 전통적으로 재정 상황이 썩 좋지 못했다.
‘이강의 돈은 우리 정부의 메마른 재정에 단비가 될 거다.’
그런 러시아에 매년 백만 달러의 돈은 정말이지 값진 돈이었기에, 스톨리핀은 한껏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런데 말이다.
이강의 입에서 ‘라스푸틴’이 언급되자, 스톨리핀은 얼굴색은 점점 굳어 갔다.
‘라스푸틴?’
스톨리핀과 라스푸틴은 서로 정적관계였다.
절대왕정이나 다름없는 러시아제국 정치 구조상, 황제의 총애를 누가 더 많이 받냐는 상당히 중요했다.
스톨리핀은 황제를 제외하고 최고 권력자다.
당연하게 스톨리핀은 니콜라이의 신임을 듬뿍 얻은 채, 그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아야 했는데.
어디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라스푸틴이 그 앞에 떡하니 나타나서는 이를 방해하고 있었다.
‘이 왕자에게도 이런 소문이 흘러 들어갔다면, 유럽 각지에 있는 우리 적들에게도 라스푸틴 관련 이야기가 전부 전해졌겠군.’
러시아는 땅덩어리가 큰 만큼 적도 많았다.
러시아의 국력이 강해지면 강해질 수록 이를 경계하는 이들 역시 많아진다는 말.
스톨리핀의 개혁을 반대하는 자들은 각종 이권을 손에 쥐고 있는 기득권층도 다수 존재했지만.
영국이나 독일 같이 경쟁국들의 돈을 받으며 러시아의 번영을 가로막는 이들 또한 많다.
스톨리핀은 이런 국제 정세를 상기하며 팔짱을 꼈다.
“만약 제게 허언을 하시는 것이라면, 왕자께서는 각오를 좀 하셔야 할 것입니다.”
이강은 스톨리핀의 경고에도 주눅 들지 않았다.
“흠. 어디부터 시작할까요?”
그는 살짝 장난기 넘치는 표정까지 지으며 다음 말을 내뱉었다.
“황태자께서는 현재 혈우병을 앓고 계시다던데······.”
스톨리핀은 흠칫했다.
국가 중대 기밀이 이강의 입에서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혹시 제가 잘못 알고 있습니까?”
“확인해 드릴 수 없습니다.”
“이해합니다. 일국의 지도자가 되실 분인데······ 그분의 병명을 함부로 외부에 밝힐 수는 없겠지요.”
이강은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스톨리핀을 향해 다음 말을 내뱉었다.
“뭐, 그렇다면 말을 조금 정정하겠습니다. 황태자께서 혈우병을 앓고 있다고 일단 가정하고 계속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
“전하의 치료를 담당하는 러시아 왕실 전문의들이 전하의 치료 약으로 아스피린을 자주 처방한다던데요. 제 말이 맞습니까?”
또다시 중대 비밀이 튀어나왔다.
이강은 이를 어떻게 알았을까?
‘영국 놈에게 들었나?’
하긴.
러시아 왕궁에는 유럽 각국의 첩자들이 즐비하다.
황태자의 병세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되었으니, 이와 관련된 정보가 세간이 마구마구 퍼졌으리라.
스톨리핀은 살짝 기분 나쁜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다물었다.
“흠, 이것 또한 확언해 줄 수 없나 보군요.”
그러자, 이강은 또다시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총리.”
“말씀하십시오. 이 왕자.”
“총리께서는 혹시 아스피린을 처방받아 보셨습니까?”
이 정도는 대답할 수 있었기에, 스톨리핀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변을 했다.
“물론이지요. 해열이나 진통에 탁월한 효과를 보이는 약이 아닙니까? 본인 또한 자주 사용하외다.”
이강은 자신의 손뼉을 짝-하고 한 번 치며 동의했다.
“맞습니다. 아스피린은 효과가 아주 좋은 진통제이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아스피린에는 아주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답니다.”
부작용?
스톨리핀은 눈을 가늘게 뜨며 이강을 바라보았다.
“뭡니까?”
“아스피린은 피를 묽게 합니다.”
현대인이고, 약학에 살짝 관심이 있다면 알 수 있는 정보.
하지만.
이 시대에는 이런 부작용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아스피린은 혈액의 응고 작용을 방해합니다. 아시다시피 혈우병의 대표 증세는 응고 장애지 않습니까? 가뜩이나 상처가 아물지 않는데, 아스피린을 처방받게 된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스톨리핀은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약이 아니고 독이었다니.
“뭐, 약을 먹었을 때는 통증이 완화되고 열이 내려가겠지요. 하지만 그때뿐입니다. 아스피린은 전하의 병세를 더욱더 나쁘게 만드니까요.”
“······.”
이강은 목소리에 힘을 주며 계속해서 무언가를 추정하기 시작했다.
“어린 황태자께서는 왕실 전문의들을 꺼리신다지요? 이유가 뭐겠습니까? 그들이 내미는 처방 약을 불신하기 때문입니다.”
스톨리핀은 갑자기 황태자가 걱정되었다.
이강은 진지한 표정으로 계속 다음 말을 이어갔다.
“반면에 라스푸틴은 어찌 행동했습니까? 왕실 전문의들의 처방 약을 물리며, 그 대신 그가 직접 제조한 영약을 황태자 전하께 바쳤습니다. 녹용, 부들의 꽃가루, 말린 짚신나물, 삼칠초의 뿌리 등등 각종 약초를 달여 황태자 전하께서 아프실 때마다 처방했다 들었습니다.”
“그렇소이다.”
“왕실의 전문의들은 이를 보며 세간에나 떠돌던 민간요법이라고 비웃지만, 사실 이것들에는 지혈 작용을 돕고 통증을 억제하는 성분이 조금 들어 있답니다. 아스피린처럼 강력한 진통 효과는 보이지 않지만······ 적어도 지혈 작용은 방해하지 않았겠네요.”
그러니까.
이강의 말은 한마디로 라스푸틴의 처방이 황태자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거다.
적어도 왕실 전문의보단.
“더불어 라스푸틴은 뛰어난 화술로 전하의 심신을 안정시켰습니다. 생긴 게 좀 험악하게 생겨서 그렇지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어느 동네에나 있는 할아버지처럼 푸근하지 않습니까?”
스톨리핀은 라스푸틴의 업적을 애써 내려치며 살짝 화를 냈다.
“겨우 그 두 가지 때문에, 라스푸틴 그자가 전하(황태자)와 폐하(황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것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허!”
“황후께서는 황태자의 병이 모두 자신 때문이라고 자책하고 있었으니까요. 세간에서 혈우병은 어머니를 통해 유전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맞다.
다들 쉬쉬하고 있지만, 혈우병은 본디 모계를 통해 유전된다.
황후의 외할머니인 빅토리아 여왕에게서 이 병이 유전되었다고 일부 백성들이 쑥덕거리고 있었다.
황후도 귀가 있는 인간이었기에, 이런 풍문을 익히 전해 들었을 거다.
“황후께서는 외동아들의 병이 모두 자신 때문이라고 자책 중이십니다. 이런 암담한 상황 속에서 라스푸틴이 전하의 병세를 조금 나아지게 했습니다.”
“······.”
“총리가 황후였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이강은 확신에 찬 얼굴을 하며, 한 가지를 강조했다.
“앞으로 황태자께 아스피린은 처방하지 마십시오.”
“······알겠소이다.”
약이 아니고 독이라니까.
확인해 봐야 할 사항이지만, 스톨리핀은 일단 이강의 주장을 믿어 보기로 했다.
“라스푸틴이 처방하는 약재를 계속 쓰되, 새로운 신약을 개발해서 이를 대체하십시오. 그래야 차르와 황후께서 라스푸틴에게 의지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
계속하여 라스푸틴의 처방을 따른다면, 그의 영향력은 점점 더 커질 거다.
‘어?’
스톨리핀은 이강이 내뱉은 한 단어를 다시금 언급하며 이강을 바라보았다.
“혹, 방금 신약이라고 말씀하셨소이까?”
이강은 독일에서 있었던 일을 회상하며 스톨리핀에게 신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본인이 독일에서 몇몇 과학자들을 만나보았는데······.”
“예. 계속 말씀하시지요.”
“한 독일인 연구원이 아세트아미노펜이라는 통증 완화 성분을 추출했더군요. 이 성분은 혈액의 응고 작용을 방해하지 않는 통증 억제 성분이랍니다.”
“아.”
“아직 개발 초기 단계고 이를 본격적으로 생산하려면 임상 시험 등 많은 단계가 남아 있긴 하나······ 사람과 돈을 무제한으로 투입하면 시간이 좀 단축되지 않겠습니까?”
혈우병을 고칠 수 있는 치료제는 아니지만, 혈액 응고를 억제하지 않는 진통제를 개발할 수 있다며 이강이 스톨리핀의 구미를 당기게 하는 제안을 내놓았다.
“본인에게는 돈이 있소이다. 그것도 아주 많이.”
스톨리핀 앞에 서 있는 이강은 인자한 표정을 한껏 지으며, 자신이 왜 신약 개발에 거금을 쏟아붓는지를 설명했다.
“원인 모르는 통증으로 고통받는 수많은 환자를 위해 본인은 신약을 얼른 개발하고 싶소이다. 하나님께서 본인을 한 번 살려 주신 이유도 그 때문이겠지요.”
종교적 이유까지 거론한다.
스톨리핀 생각에 이강은 황금을 탐하는 욕심쟁이 자본가다.
이를 잘 포장하기 위해 감히 하나님을 거론하는 것 같지만, 황태자에게 도움이 될 것이기에 굳이 이를 지적하지는 않았다.
“아시다시피 러시아제국은 재정 상황이 넉넉지 못합니다.”
“압니다.”
이강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스톨리핀을 보며 탐욕을 드러냈다.
“하지만 러시아제국에는 본인이 가지고 있지 못한 것들이 수두룩하게 많습니다.”
이강과 만나기 전.
스톨리핀 역시 이강에 관해 조사를 좀 했다.
이강이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부자가 되고 이후에 한 일들을 살펴보았는데.
이자는 참으로 인재를 탐하는 자 같았다.
‘전성기 메디치 가문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어.’
메디치 가문은 예술가들을 후원했으나, 이강은 주로 과학자들을 후원한다는 점이 조금 다르긴 하다.
하지만 사람을 탐하는 것은 비슷했기에 스톨리핀은 이강이 자신을 이용해 러시아의 주요 인재들을 수집하려고 하는 속셈을 눈치챘다.
‘하지만······.’
거절할 수가 없는 제안이다.
황태자의 병을 치료하는 것은 전제군주정인 러시아제국에 대단히 중요한 일이니까.
차기 원수의 지병을 고칠 수만 있다면 억만금을 지급할 용의도 있었기에, 스톨리핀은 이강의 악마 같은 제안을 수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아국의 화학 전문가들을 이 왕자의 의학 연구소에 파견하라는 것입니까?”
“예. 인종과 나이, 성별 구분 없이 그저 능력만 출중하면 됩니다. 러시아에는 그런 인재가 많이 포진하고 있다 들었는데 말입니다.”
여러 단어 중 이강은 인종을 강조했다.
그가 이유 없이 이 단어를 강조하지는 않았을 터.
‘아!’
현재 러시아에는 반유대 정서가 만연했다.
이 시대 유대인들은 상당수가 지식인들이었는데, 이강은 이런 러시아의 상황을 이용하고자 마음먹은 것 같다.
“알겠소이다. 내 내각의 일원들과 함께 이를 상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시간을 조금 더 주셔야 할 것입니다.”
스톨리핀은 니콜라이와 다르게 유대인에 호의적이었다.
‘유대인들을 미국으로 보내긴 아깝지만······.’
어쩌면 그게 러시아에 사는 유대인들에게는 더 좋은 일일수도 있기에, 유대인을 궁휼하게 여기는 스톨리핀으로서는 제법 흥미가 도는 제안이었다.
더욱이 일부 유대인 과학자들을 내어주며 이강에게 생색까지도 낼 수 있기에.
스톨리핀은 마음속으로 이를 정리하며 이강에게 시간을 달라고 말했다.
살짝 시간을 끌어야 좀 더 좋은 조건으로 다음 협상을 이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 * *
스톨리핀과의 대담이 끝나고.
남자들끼리 거나하게 벌이는 술자리가 몇 번 더 이어졌다.
이후, 사흘 정도가 더 지났을 때.
드디어 연회다운 연회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렸다.
나는 자동차를 타고 호박방이 유명한 예카테리나 궁전으로 향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아직 일어나지 않아서 호박방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그렇기에 나는 훼손되지 않은 호박방이 실체가 어떨까 한껏 기대하며 자동차에서 이를 잠시 상상하는 중이었다.
“그대들은 스톨리핀 총리에 대해 어찌 생각하는가?”
시간이 좀 남기에.
최측근인 우현식과 최현우에게 지난날 만났던 스톨리핀 총리에 관해 물었다.
우현식이 잠시 고민을 하더니 빠르게 내 물음에 답했다.
“말이 좀 많습니다.”
“고집 또한 세고요.”
최현우는 빠르게 우현식의 말에 그의 의견을 덧붙였다.
우현식은 이에 고개를 끄덕이며 격하게 동의했다.
“자기 신념이 너무 강한 자입니다. 아직은 차르의 총애 때문에 지금은 저리 날뛸 수 있겠지만, 니콜라이가 이를 거둔다면 단번에 실각할 것입니다.”
“그렇지.”
스톨리핀 총리가 왜 비교도 안 되는 ‘무직, 라스푸틴’을 경계할까?
“그 때문에 라스푸틴을 더욱더 경계하는 것일세. 온갖 적을 다 만들며 외줄 타기를 하고 있는데, 라스푸틴이라는 놈이 갑자기 나타나서 반대편 끝에서 줄을 흔들려고 하니까.”
스톨리핀에 의해 제거된 러시아 지식인들만 해도 세 자릿수가 넘는다고 한다.
그는 현재 호랑이 등 위에 올라탄 사내와도 같은 상황이다.
계속 달리든지, 어느 순간 내려와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
스톨리핀 당연하지만 전자를 택했다.
뭐, 나라도 그렇게 했겠지만.
“그나저나 전하께서는 어찌하여 총리에게 조언해 주신 것입니까?”
“자칫 독이 될 수도 있기에, 가만히 이를 지켜보는 것이 좀 더 낫지 않겠습니까?”
두 측근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물었다.
그를, 더하여 러시아를 도와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내가 조언을 하나 해 줬기 때문이리라.
‘러시아제국이 대한제국에 할 짓을 생각하면······ 절대 좋은 감정을 가질 수가 없지.’
일본이나 청나라 때문에 묻혀서 그렇지, 러시아제국 또한 대한제국에 온갖 패악질을 해 댔다.
고종이 아관파천 했을 때 얼마나 많은 이권을 뜯어 갔던가?
“뭐, 그리 생각할 수도 있겠다만, 그자를 도와주는 것이 내게 좀 더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말이야.”
스톨리핀을 도왔기에, 러시아에 있는 중요 인재들을 우리 연구소로 등용할 수 있지 않았던가?
‘재정관리인이 된다면, 러시아제국이 멸망하는 것이 내게 도움이 되겠지.’
스톨리핀은 러시아제국에 최후의 보루이다.
그가 건재하면 자칫 붉은 혁명이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정도 도움으로 스톨리핀이 과연 오래 살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흥미가 있었기에, 박병준으로 살 때 라스푸틴에 관한 전기를 몇 번 읽은 적이 있다.
라스푸틴은 눈치도 있고 제법 시류를 읽을 줄 아는 영리한 자였기에, 1910년도쯤 이스라엘 순례를 떠났다고 한다.
스톨리핀의 연이은 견제에 자리를 회피한 것.
‘정적을 워낙 많이 만들어 놨기에,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지. 스톨리핀은.’
스톨리핀의 별명은 급진진보개혁가이자 보수 귀족 파벌의 수호자이다.
술은 먹었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 같은 별명.
이 말도 안 되는 문구가 그의 이름 뒤에 붙은 것은 양쪽에서 비난받기 때문이다.
보수주의자에게는 급진파라고 욕을 먹고.
진보주의자에게는 꼴통 우파라고 손가락질받고.
이 정도 도움으로는 간에 기별도 안 갈 것이 분명했기에, 나는 내 이익을 챙기는 선에서 그에게 살짝 조언을 첨가해 줬다.
“도착했군. 슬슬 연회장 안으로 들어가 볼까?”
* * *
아름다운 러시아 여성들이 드레스를 입은 채 노래에 몸을 맡기고 있다.
슬쩍 가서 인사할 만도 했지만, 보는 눈이 너무나도 많았기에 나는 고추밭에서 샴페인을 기울이며 그저 눈요기만 할 뿐이다.
‘쩝. 그림의 떡이네.’
미혼일 때는 쉽게 쉽게 다가갈 수 있었지만, 지금은 힘들다.
괜히 접근했다간 이상한 소문이 사교계에 퍼질 테니까.
‘상당수 바람은 임신할 때 일어난다던데······.’
더욱이.
에델이 영국으로 돌아가며 혼잣말하듯이 흘린 경고가 귀에 울려 퍼졌기에 더욱더 조심했다.
‘와.’
그때였다.
아름답지만 아직 앳된 여인이 연회장에 등장했다.
그녀는 곧바로 내게로 다가와 무릎을 살짝 굽히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이 왕자님.”
내 옆에서 러시아 귀족들을 소개해 주던 이위종의 장인, 발레리얀 놀켄 남작이 그녀의 정체를 내게 알렸다.
“아, 이 왕자님. 러시아제국의 제1 황녀이신 올가 공주님이십니다. 인사 나누시지요.”
“만나서 반갑소이다.”
“어머, 소문보다 훨씬 더 멋지세요.”
“공주께서도 시간이 조금 더 흐른다면 만인의 사랑을 받으시겠군요.”
올가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호호 웃어 댔다.
이후에 그녀는 다른 여타 러시아 귀족과 인사를 나누기 위해 자리를 이동했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볼게요. 혹시나 불편한 점이 있으시다면 언제든 제게 말씀해 주시고요. 아버지께선 제 말이면 모든 들어주시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럼 올가 공주께서도 즐거운 연회가 되십시오.”
공주가 떠나고 나는 계속하여 러시아 귀족들과 인사를 나누어야 했다.
“이 왕자님. 처음 뵙겠습니다.”
그때였다.
새로운 인물이 내 앞에 나타나 손을 내밀었다.
“저번 축하 연회 때는 보지 못했던 얼굴이로군. 자네 이름은 뭔가?”
“에마누엘 노벨입니다. 브라노벨의 대표이지요.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 최고이자 최악 (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