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례식 (1) >
“그만 가 보게.”
나는 한동안 말없이 서 있던 이항구에게 속히 이곳을 떠나라 강요했다.
이항구는 무언가 추가로 내게 질문을 하려다가, 이내 체념한 듯 고개를 저으며 내 앞에서 사라졌다.
“들어오게.”
나의 측근들은 옆방에서 우리 둘의 대화 내용을 함께 경청하고 있었다.
그들은 나의 명령에 서둘러 집무실로 들어왔다.
“저놈이 지껄이는 개소리, 잘 들었는가?”
“예.”
“전하.”
“빠짐없이 전부 다 들었습니다.”
유럽 순방 기간에 함께했던 우현식과 최현우.
주러 공사였던 이범진과 그의 아들이었던 이위종.
이번에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호출된 안중근과 김창수까지.
모두 하나 같이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이항구가 앉아 있던 곳을 노려보았다.
“전하.”
“말하게.”
여기 모인 자 중 매국노들에게 제일 강경한 태도를 보였던 김창수가 씩씩거리며 매서운 눈빛으로 날 쳐다보았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이항구의 제거를 윤허해 주십시오.”
이항구는 이완용의 아들이다.
비록 차남이지만, 장남이었던 그의 형은 사 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그렇기에 이항구는 현재 이완용의 유일한 살아 있는 자식이었다.
지금 그를 암살한다면 이완용에게, 더불어 조선에 있는 매국노들에게 크나큰 경종을 울릴 수 있다고 김창수는 주장했다.
“전하. 이곳은 러시아입니다. 그것도 차르가 머무는 수도이지요.”
“이항구는 외교 업무차 이곳에 들렀습니다. 그런 자를 암살한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자칫 전하께 큰 누를 끼칠 수도 있습니다.”
이위종과 이범진이 빠르게 김창수의 주장에 반박했다.
김창수는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항구를 제거할 절호의 기회입니다. 이런 기회는 쉽게 오지는 않습니다. 저자를 그냥 대한제국으로 돌려보내면 안 됩니다.”
“아깝지만 그래야 하네. 천운이 저자를 도왔다고 생각하게.”
“맞습니다. 훗날을 기약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김 요원.”
나는 가타부타 어느 쪽 한편을 들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내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토론을 하나 지켜보며 이들의 성향을 분석했다.
‘김창수는 살짝 과격한 면이 있어.’
그는 요즘 다른 이들에게 ‘김구’라고 불린다.
자신의 본명 대신 애국단 요원 번호 ‘구(九)’를 새로운 이름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매국노 제거 활동에 진심인 자였기에, 그가 왜 이런 주장을 하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이야기가 길어지는군.’
끝날 만도 한데, 끝나지 않네.
김창수 아니 김구는 계속 이항구를 죽여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이위종과 이범진은 아니라고 말하며 김창수의 의견을 계속 잘랐고.
자신들의 전문 분야가 아니었기에, 우현식과 최현우는 그저 침묵하며 내 눈치만을 보고 있다.
‘내가 나설 때인가?’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기 위해 헛기침을 한 번 했다.
“흠.”
“······.”
“······.”
기침을 한 번에 어수선한 분위기가 바로 정리된다.
나는 여러 인물 중 김구를 똑바로 응시하며 그에게 부드러운 어투로 설명했다.
“조금 전에도 말했듯 나는 이항구에게는 한번 기회를 줘 볼 생각이네. 이완용은 반드시 제거할 것이지만.”
“전하.”
“그대가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 내 잘 알고 있네. 이항구 저 녀석이 얼마나 조선 신민들의 고혈을 빨아먹었는지는 나 또한 보고 받았네.”
“······.”
“하지만 전향하기만 한다면 누구보다 우리에게 도움이 될 인물일세. 일본 놈들의 턱밑에서 그들의 최고 비밀 정보를 캘 수 있는 이는 몇 없으니까. 아니 그런가?”
일본에도.
국내에도.
익문사와 애국단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그간 열심히 인재들을 등용하고 있지만, 저런 고위층 정보통을 포섭하지는 못했다.
“내 그대에게 약조를 하나 하지. 이항구의 공과 죄를 아주 철저하게 재단하여 나중에 심판하도록 하겠네. 더욱이 저놈이 내 제안을 거절하거나 도중에 변절이라도 한다면······ 내 그대에게 마무리를 맡기겠네.”
“분명 약조하셨나이다.”
“그래.”
김구는 내 약조에 만족했는지 그간 굳었던 표정을 살짝 풀었다.
나는 김구의 표정을 확인한 후,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오랜 시간 동안 대화를 해서 그런지 살짝 피곤해졌기 때문이다.
“전하.”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안중근이 내 앞으로 나왔다.
“현장 요원으로서 소인이 전하께 한 가지를 제안할까 합니다.”
“말하게.”
“이항구는 제 아비인 이완용과는 다르게 겁이 많은 인물입니다.”
안중근의 의견은 정확했다.
대화 내내 이항구는 제법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도중에 겁을 내는 표정도 많이 지었고.
이완용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행동.
만약 그였다면, 하나 깜짝하지 않고 분명 나와 대화를 끝까지 나누었을 거다.
“이항구가 전하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으니, 한 번쯤 경고해 주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긴 합니다.”
“경고?”
아!
좋은 방법이네.
이항구와 대담을 나누기 전에 김구와 안중근과 이야기를 나눴었는데.
그때 내게 그들이 고안한 암살 방법들을 보고하지 않았던가?
“자네들. 폐쇄된 시베리아 열차에서 주요 요인을 제거할 계획을 전에 세웠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 예.”
“그랬었지요.”
나는 밝게 웃으며 김구와 안중근에게 제안했다.
“모의 훈련을 한번 해 볼 때가 왔군. 마침, 적절한 표적도 있고. 한번 진행해 보는 것도 좋겠군.”
겁을 주는 행위는 사람을 암살하는 행위에 비해 그 난이도가 엄청 쉽다.
그저 종이 쪼가리 몇 개 흘린 후에 여기에 독이 들었을 수도 있다고 나중에 귀띔하면 끝이니까.
그러면 상대방은 으레 일어나지 않은 일에도 긴장한다.
“전하.”
나와 이범진의 제안에 이위종이 살짝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그리한다면, 차후에 그자를 암살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한번 피습을 당하면, 더욱더 주의하기 마련이니까요.”
동의한다.
경험자가 여기 있지 않은가?
나는 이에 어깨를 으쓱거렸다.
“마치 나처럼 말인가?”
“······.”
“······.”
이에 여기 한데 모인 일동들이 침묵했다.
나의 피습 사건은 이들 사이에선 금기시되는 주제였기 때문이다.
“뭐, 좋게 생각하세나. 겁을 줘 이항구가 우리 뜻대로 움직인다면 이득이지 않겠는가? 더욱이 이런 경우도 한번 경험해 봐야지.”
경계심을 바짝 끌어올린 적을 공략할 때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연구해 보는 것도 좋겠지.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또다시 생겨날 수 있는 나를 향한 피습이나 암살에 대비도 할 수 있겠고.
“언제까지 쉬운 표적만 상대할 것인가? 아니 그런가?”
* * *
덜컹덜컹-
덜컹덜컹-
이항구는 좌우로 흔들리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대한제국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열차에 올라탄 지도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기에, 그는 살짝 피곤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책을 읽었다.
“쌔르(선생님).”
“들어오게.”
승무원 하나가 들고 있던 메뉴판 하나를 내려놓았다.
“점심시간입니다. 드시고 싶은 음식 하나를 골라 주시지요.”
“이걸로 주게.”
알겠다는 말도 없이, 휙- 하고 러시아 승무원이 나간다.
러시아어 통역을 맡고 있던 역관은 이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에이, 썩을 코쟁이 녀석. 얼음장처럼 차갑고 불친절하군.”
조선인 승무원이었다면 냉큼 불러서 눈물이 찔끔 날 때까지 호통을 쳤을 텐데.
이항구는 팔짱을 끼며 미간을 오므렸다.
“마음에 안 들어. 모든 게.”
해외에 나가면 평소에 못 보던 것들을 보아, 견문이 는다고 하던데.
이항구는 늘어야 할 경험은 안 늘고 불평만 늘어났다.
“하······ 의왕, 그 새끼는 좋은 날들을 내버려 두고. 왜 하필 한겨울에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꾸역꾸역 기어들어 왔나 몰라.”
이항구는 한숨을 팍 쉬며, 한탄했다.
진짜로 빈말이 아니고.
눈 내리는 겨울이 아니고 봄이나 가을이었다면, 이리 고되게 여행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리. 의왕 전하와의 만남은 좀 어떠셨습니까?”
통역관이 살짝 궁금한 표정으로 이항구를 쳐다보았다.
그는 한쪽 눈썹을 들썩이며 그런 역관을 바라보았다.
“왜 궁금한가?”
“예.”
이항구는 조선에 떠도는 소문들을 회상하며 의왕에 관한 이야기를 입 밖에 내뱉었다.
“세간에 퍼진 소문에는 의왕이 세상의 만물을 다 꿰뚫어 보는 부리부리한 눈을 가지고 있다지?”
“예. 그 눈으로 대지진과 대공황을 예측하여 큰 이익을 보았다고 합니다.”
이항구는 피식 웃으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그거 다 거짓말일세.”
“예?”
“호랑이 눈은커녕 동태 눈깔을 가지고 있었네. 정말이지 별거 없었지. 평범한 우리네 왕족 같았어.”
“그럼 어째서 그런 말이 떠도는 것입니까?”
“소문이라는 것은 본디 과장되기 마련이니까. 더하여 돈 많은 의왕이 여론을 조작했을 수도 있었을 게야.”
이항구는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다음 말을 내뱉었다.
“의왕 그놈은 최근에 운이 좋아 그저 큰돈을 벌었을 뿐이라네. 그뿐일세.”
이항구는 통역관에게 계속하여 거짓말을 했다.
사실 이항구는 이강을 보자마자 오줌을 지릴 뻔했다.
엄청난 큰 덩치.
그리고 특유의 여유롭지만, 차가운 표정.
상대방을 압도하는 낮은 목소리에 제압되었기 때문이다.
‘예사 놈이 아니었어.’
그의 아버지인 이완용은 왜 이강을 쭉정이로 보았던 것일까?
‘돌아가는 정세를 읽고, 사람의 능력을 판단하는 능력만큼은 조선 제일이신데 어째서······.’
이완용의 계획대로 이항구는 이강에게도 발을 걸치려고 했다.
의왕은 이에 조건부로 승인했고.
다만, 자신의 아버지는 구제받을 수 없다는 말이 조금 걸렸다.
‘아버지’를 버리고 ‘가문과 그 자신’을 택하라는 의왕의 제안.
뭔가 양립할 수 없으면서도 양립이 되는 이상한 제안이었다.
“쌔르(선생님). 주문하신 점심입니다.”
통역관 때문에 이항구는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그날의 기억을 다시금 기억했다.
이항구는 이를 잊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가 제일 좋아하는 소고기를 한시라도 빠르게 먹어야 했다.
“이건, 뭐지?”
러시아 승무원이 특유의 떨떠름한 표정으로 식사 준비를 한다.
서양식 스테이크가 담긴 그릇을 테이블에 놓으며 동시에 이를 썰기 위한 포크와 나이프 또한 건넸다.
이항구는 식기 도구들을 감싸던 냅킨을 빠르게 풀다가 그 안에 있던 종이 쪼가리 하나를 발견했다.
“이건 태극기 문양이 아닌가?”
포크와 나이프 끝에는 살짝 소금 같은 결정이 묻어 있기도 했다.
이항구는 별생각 없이 이를 냅킨으로 닦은 후, 주절거렸다.
“새끼. 내가 대한제국 외교관인 것은 어찌 알아서······.”
음식은 맛있었다.
이항구 그가 소고기를 원체 좋아했기도 했고.
이강에 관한 이야기를 통역관과 나누다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폭식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똑똑-
객실에 노크 소리가 울려 퍼진 후, 친절치 못한 러시아 승무원이 또다시 들어왔다.
“쌔르.”
“무슨 일인가?”
“어떤 남자가 이 쪽지를 선생님께 전하라 했습니다.”
현재 이항구가 타고 있던 시베리아 열차는 눈 덮인 중간역에 서 있었다.
그래서일까?
열차 안은 꽤 조용했다.
『매국노이자 역적인 이항구에게.』
편지 뒤편에는 한글이 가득했다.
이에 이항구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우리에게는 너를 죽일 수 있는 총 세 번의 기회가 있었다. 첫 번째는 네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역에서 도착한 때였지. 너 또한 기억할 것이다. 우리들의 뜨거운 눈빛을.』
기억한다.
두 명의 동양인 남자가 플랫폼에서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던 것을.
이항구는 그때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었나 전전긍긍했었다.
『두 번째는 네가 러시아를 떠날 때였다. 역안 화장실에서 부딪혔던 한 남자를 기억하는가?』
이 장면 또한 기억이 난다.
오줌을 다 누고 손을 씻으려고 세면대로 향했는데 말이다.
역시나.
덩치 큰 동양인 남자가 그에게 어깨치기를 시연하며 불쾌한 눈빛으로 그의 전신을 훑었었다.
『마지막은 오늘이었지. 우리는 네가 먹던 점심 식사에 독을 탈 수 있었다. 식사 그릇 옆에 놓여 있던 태극기 문양의 종이를 너 또한 보았을 것이다.』
창가에.
그 종이 쪼가리를 올려놨었는데 말이다.
‘뭐야. 이놈들.’
갑자기 속이 메슥거린다.
식기 도구에 있던 흰색 결정들.
혹시 독이 아닐까?
이항구는 갑자기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이처럼 세 번의 기회가 있었는데도 우리는 그냥 넘어갔다. 누가 네게 기회를 준 것인지는 너 또한 잘 알 것이다.』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누구를 뜻하는지는 잘 알 것 같다.
이런 제안을 한 이는 한 명뿐이니까.
‘의왕, 이놈이!’
편지에 따르면.
다행히도 그의 오늘 자 식사에는 독이 없는 듯했다.
하지만.
여전히 속은 메슥거렸다.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었으니까.
『선택의 시간은 이미 시작되었다. 작금의 상황을 신고할지 그냥 조용히 넘어갈지는 온전히 네 선택에 달려 있지.』
‘과연 너는 무슨 선택을 할까? 기대하고 있으마’로 편지의 내용은 끝나 있었다.
‘x발. x발.’
그 말은 의왕의 사람이 이 열차에 타고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 아닌가?
‘만약 신고한다면······.’
범인을 잡을 수도 있다.
못 잡을 수도 있고.
정비를 위해 기차가 중간역에 선 지 꽤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다.’
대한제국에 돌아가서도 끈질기게 괴롭힘당할 거다.
아니지.
그 전에, 연해주나 만주에서 변을 당할지도 모른다.
의왕의 사람은 대한제국에도 많이 존재하지만 만주나 연해주에 더 많으니까.
‘어떡한담.’
이항구는 이완용과 다르게 겁이 많다.
제 일신을 가장 최우선으로 하고.
‘죽일 거였으면 앞선 세 번의 기회에서 죽였을 거다.’
그렇기에 당장 범인을 색출하는 것보다는 두려움에 떨더라도 우선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게 자신의 목숨을 지키는 데 더 유리했으니까.
그는 사색이 된 얼굴로 벌벌 떨면서 일등석 객실 안에 처박힌 채 두문불출했다.
열차가 하얼빈에 도착할 때까지 화장실 갈 때를 제외하곤 한 걸음도 안 나온 거다.
< 장례식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