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례식 (2) >
자신의 집에 무탈하게 도착한 이항구.
이강의 사람들이 그를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돌려보냈지만.
덜덜덜-
이항구는 한동안 제집에서 몸을 떨며 두려워했다.
시베리아 열차에서 충격받았던 그때 그 순간이 계속해서 그의 뇌리에 반복적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제길, 아버지께선 하필······.’
이리도 중요한 시기에, 그의 부친인 이완용은 부재중이다.
이항구의 집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가노에 따르면, 이완용은 일본 정부와 한일병합을 논의하기 위해 잠시 열도에 출장을 갔다고 한다.
이항구는 하루빨리 이완용과 이 문제에 관해 상의하고 싶었다.
그랬기에 이항구는 그의 부친이 한시라도 더 빠르게 되돌아오기를 고대했다.
“나리.”
“왜 그러느냐?”
“슬슬 입궐하셔야 합니다.”
“······.”
“여독 때문에 많이 힘드시겠지만, 너무 오래 쉬셨습니다.”
이항구는 그의 아버지 이완용처럼 대를 이어 녹을 먹고 있었다.
그는 대한제국의 관원으로 일주일에 한 번은 등청을 해야 했다.
“알겠다.”
이항구는 정말로 출근하기 싫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집 안에 박혀 있을 수는 없기에, 그는 집 앞에 세워져 있는 마차로 터벌터벌 발걸음을 옮겼다.
“한 푼만 줍쇼. 한 푼만 줍쇼.”
이완용은 대한제국의 총리다.
허수아비 황제보다 더 권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랬기에 그의 앞마당 앞에는 구걸하는 거지들이 상당히 많았다.
“으으. 취한다.”
푼돈 좀 적선해 달라고 바가지를 들고 다니는 이도 있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놈도 있다.
“좋은 물건 팝니다. 보고 가십쇼.”
물건 파는데 정신없는 잡상인도 더러 보인다.
“어이, 이가 놈. 언제까지 네놈이 이 땅에서 떵떵거리며 살 것 같으냐.”
이 와중에, 이항구에게 악담을 퍼붓는 이도 있다.
이항구는 보통 그들을 무시하고 등청했었지만, 오늘은 예민해져서 그런지 다양한 이들의 모습 하나하나가 그의 시야에 전부 들어왔다.
“이항구. 네 너를 지켜보고 있다. 빵야- 조심하라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술에 취한 척 늘어져 있던 취객이 이항구는 저격하는 동작을 취한 후 벌떡 일어나 떠난다.
평소 같았으면 웬 미친놈이 또 저 지랄인가 하지만.
“흐익······.”
오늘만큼은 달랐다.
이항구의 눈에는 저 취객은 이강이 고용한 킬러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설마, 저놈. 의왕의 사람인가? 아닐 거야. 아니겠지.’
모든 것이 의심된다.
시장에서 면포를 파는 상인도 의왕의 사람 같고.
마음의 병을 진료하러 온 의관 역시도 의왕의 돈을 받아먹는 첩자 같았다.
심지어.
오랜 시간 이항구를 섬겼던 가노들마저도 미덥지 못했다.
친지 중 일부가 연해주로 이주 간 이들을 걸러 내기 시작한 것도 이 의심에서 시작된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나리.”
그나마 믿음직했던 돌쇠가 이항구에게 다가왔다.
이항구는 홀쭉해진 얼굴로 돌쇠를 맞으며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다.
“대감 나리께서 막 제물포에 도착하셨답니다. 내일쯤 돌아오실 것 같다는데 말입니다. 집안을 좀 청소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
그의 부친인 이완용에게 무슨 보고를 해야 할까?
이항구에게.
선택의 시간이 찾아왔다.
* * *
“안색이 썩 좋지 않구나.”
이완용은 이항구의 얼굴을 쓱 한번 훑어보곤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누구보다 매국에 진심이지만, 집안에서는 정상적인 가장이었기에.
그는 여느 아버지처럼 제 아들 건강 상태를 걱정해 줬다.
“시베리아의 동장군에게 호되게 당하고 온 모양이로구나.”
“······예.”
이항구는 힘없이 그저 단답형 식으로 이완용의 질문에 대답했다.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실하게 말할지.
아니면 거짓을 고할지.
“이리 와 앉아라.”
이완용은 사랑채에서 곰방대를 찾은 후, 불을 붙였다.
“그래, 일은 잘 끝났느냐? 의왕은 어찌 반응하더냐?”
잠시 뜸을 들이던 이항구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유용한 정보를 넘긴다면, 우리 가, [가문]의 죄를 탕감해 주기로 했습니다.”
이항구는 일단 사실을 보고하기로 했다.
물론, 있는 그대로를 다 말하진 않았다.
제 아비가 껄끄러워할 부분은 자의적으로 일부 삭제했다.
“[가문]의 죄를 탕감해 준다라······.”
이완용은 피식 웃으며 껄껄댔다.
“미국에서 돈 좀 벌었다고 콧대가 많이 높아졌구나. 귀국하지 못해서 찔찔 짜던 때가 오 년 전이었는데 말이다.”
이완용은 지난날 기억을 회상하는 듯했다.
이항구는 그런 제 아비의 모습을 바라보며 전전긍긍 앓았다.
“그래. 네가 볼 때, 이강은 어떤 놈이냐?”
이항구는 바닥에 시선을 처박으며 기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상당히······ 위험한 자 같았습니다. 능력은 소문대로 굉장히 출중해 보였습니다.”
“그래?”
이완용은 그런 이항구의 모습을 지켜보며 반대되는 말을 했다.
“의왕은 머리가 총명하긴 하다. 하지만 성질이 급하고 자신의 감정을 쉬이 드러낸다. 그렇기에 큰 인물이 되지 못할 상이었지.”
이강에게 있어서 이항구는 별로 어려운 상대가 아니었다.
더욱이 이항구는 겁이 많았기에.
이강은 평소와는 다르게 버럭 화도 내며, 이항구를 연신 압박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일까?
이항구의 머릿속에 이강은 이완용이 서술했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여전히 성질이 급하고 자신의 감정을 쉬이 드러내곤 하지만······ 때론 장점이 단점을 덮어 버리지 않습니까?”
인성이 별로여도.
가지고 있는 실력이 너무나도 압도적이면 더러 성공하는 예도 있다.
이항구의 보고에 이완용은 이런 사례들을 떠올리며 잠시 침묵했다.
“흠······ 생각해 보면, 미국은 일본이나 우리와 다르게 금권 국가지. 왕도 없고. 돈이 곧 힘이긴 한 나라지.”
이완용은 다른 사대부들과는 다르게 미국을 잘 알고 있었다.
어린 시절 미국에서 유학하며 영어를 프리토킹할 수 있을 정도로 익혔던 것도 직접 미국인들과 부딪혀 가며 배웠기 때문이다.
“뒤늦게나마 돈 버는 재주를 깨닫고 황금을 쓸어 담고 있는 모양이구나.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이리저리 뒷돈을 찔러주며 영향력을 투사하고 있고. 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군.”
“······.”
“의왕 역시 나이를 헛먹지는 않았구나. 제 아비와는 다르게, 대원위 합하의 핏줄다운 모습을 뒤늦게나마 보이다니. 하! 십 년만 더 빨랐으면 좋았을 텐데.”
이완용은 무언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살짝 서글프기도 했고 후회하는 표정을 짓는 것 같기도 했다.
“아버지.”
“그래. 말해 보아라.”
이항구는 이강이 예상했던 미래를 이완용에게도 알리며, 의왕과 일본 정부 사이에 다리를 놔 주겠다는 제안은 거절당했다고 보고했다.
“진정한 독립이 찾아올 때, 그때 귀국하겠다?”
“예.”
“더불어 진정한 독립이 찾아오면 반민특위를 세우겠다고?”
“······예.”
“하! 제법 재미있는 말을 하는구나. 하하하.”
이완용은 이강이 예상했던 미래를 부정했다.
대한제국은 곧 일본과 병합될 것이고, 두 나라는 하나가 될 것이니까.
영원히.
‘하지만 세상일은 모르지.’
그렇기에 이리 아들놈을 보내 가며 이강에게 한쪽 발을 걸치고자 했다.
저리 속으로 복수를 다짐하고 있으니까.
진짜로 이강의 예상대로.
독립된다면 그의 가문은 멸문지화를 당할 것이기에.
이완용은 이번에 한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했다.
“왜? 내게 더 할 말이 남아 있느냐?”
오늘따라 이항구가 축 처진 모습을 보이자, 이완용이 한쪽 눈썹을 꿈틀거리며 제 아들을 채근했다.
“아, 아닙니다.”
“다른 이는 속일 수 있어도 이 아비는 못 속인다.”
이항구가 뜨끔하며, 감춰둔 진실을 고하려고 할 때.
이완용이 먼저 입을 뗐다.
“일본에 갔다 온 이야기가 궁금한 모양이구나.”
“······예.”
“그래. 네게 알려 주마.”
이완용은 출장 때 있었던 일들을 제 아들에게 알려 주었다.
“소네 통감과 함께 합병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 동경까지 갔었다.”
“그래서······ 일은 잘 끝내셨습니까?”
“다음에 한 번 더 가야 할 듯싶다.”
“어째서입니까? 가쓰라 총리도 그렇고, 소네 통감도 그렇고. 다들 속전속결 이 일을 끝내길 원하지 않습니까?”
이완용이 크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고새 일본 내 정국이 혼란스러워진 모양이다.”
또?
이항구가 고개를 갸웃하자, 이완용이 이를 설명했다.
“너도 잘 알 것이다. 의왕이 새로 개발한 비행기 말이다.”
“아!”
“이를 육군에 단독 도입하기로 합의를 본 모양인데······ 일본 해군대신이 갑자기 약속을 깬 모양이다.”
본래는 해군의 예산을 원상 복귀시키기만 합의했다.
비행기는 일본 육군만이 도입하기로 하고.
하지만.
이강이 영국 언론에 ‘항공모함’이라는 신형 무기의 가능성을 언급하며 이 큰 그림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이에 가쓰라 총리가 육군과 해군 사이를 오가며 중재하고 있느라 애를 먹고 있다.”
이완용을 혀를 쯧쯧 차며 일본 정부를 슬며시 흉봤다.
조선 또한 붕당으로 나라가 매우 어지러웠지만, 현재의 일본 역시도 그런 것 같았기에 욕을 한 거다.
“더욱이 의왕 그놈이 현 총리인 가쓰라 그놈은 상종도 못 할 쓰레기지만, 전임 총리였던 사이온지는 그나마 대화가 통했던 상대라고 언급하면서 제국 의회가 한바탕 큰 소란에 휩싸였다.”
육군과 해군의 싸움도 싸움이지만.
잠잠했던 강경파와 온건파가 이 문제를 두고 다시금 논쟁을 벌이자, 한일 병합이라는 큰 문제는 후순위가 되어 버렸다.
“네 말대로 의왕 이놈이 보통은 아닌 듯하구나. 말 한마디로 일본 전국을 들었다 놨다 하는 걸 보면 말이다.”
이완용이 의왕을 띄워 주자, 이항구는 더더욱 표정이 어두워졌다.
말수 또한 줄어 갔는데.
이에 이완용은 탐탁지 못한 표정을 지었다.
“왜? 의왕 때문이냐? 이상하게 의왕의 이야기만 나오면 이리 벌벌 떠는구나.”
“······.”
“어지간히도 겁먹거라. 아직도 이리 비리비리하다니. 쯧쯧.”
이완용은 갑자기 이항구와 죽은 첫째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너는 네 형과는 다르게 너무 겁이 많았다. 내 누누이 이를 지적했거늘.”
이항구는 이에 울컥했다.
이제는 고인이 된.
죽은 형과 매번 비교를 당하는 것이 분해서다.
갑자기 서러움이 북받쳐 올랐다.
“그만 가 보거라.”
“예.”
이항구는 막판에 이완용에게 몸조심해야 한다는 경고를 보고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잠시 이를 뒤로 미룰 생각이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속에서 올라왔기 때문이다.
* * *
이항구가 귀국한 지도 무려 삼 주가 지났다.
그사이.
저 먼 서방에서 와병하던 벨기에 국왕이 세상을 떠났다.
‘이런 육시랄.’
대한제국에서도 레오폴드 2세의 추모식이 행해졌다.
벨기에 국왕은 가톨릭 신자였기에, 그의 장례식은 성당에서 열렸다.
고인의 종교를 존중해 줬기에 이 장소에서 치러진 것이다.
‘일어났다 앉기를 몇 번이나 하는 거야.’
성당에서 행해진 추모 미사는 정말이지 고역이었다.
앉았다가 일어나기를 수십 번.
이항구 자신이야 비교적 젊어서 괜찮지만.
그의 아버지였던 이완용이나 이완용과 같은 또래였던 송병준은 퇴행성 관절염 때문인지 연신 끙끙대며 울상을 지어 댔다.
“각하. 이쪽입니다.”
길고 지루했던 추모 미사가 끝나고.
소네 통감과 이완용.
이항구, 송병준은 명동성당을 빠져나왔다.
수많은 인파가 명동성당에 방문했기에, 사람들로 북적거려야 하지만.
내각의 고위 관원이 먼저 건물을 빠져나오고 있었기에, 성당 앞 공터는 비교적 한가했다.
“타고 갈 차는 어디에 있나?”
“저 아래에 있습니다. 눈 때문에 올라올 수가 없어서······.”
명동성당은 언덕에 자리 잡고 있기에 다른 지형보다 고도가 더 높다.
그렇기에 눈이 내리면 바로 앞에 차를 댈 수가 없었다.
‘완전히 뻥 뚫려 있네.’
소네 통감과 이완용 총리가 미사에 참석했기에, 수많은 일본군이 그들의 안전을 위해 주변을 통제했다.
그렇기에 사람들로 바글바글해야 할 명동성당 앞마당은 텅텅 비어 시야가 탁 틔어 있었다.
“자자, 가세나.”
눈이 쌓인 길.
살짝 미끄럽기도 했기에.
소네 통감과 이완용, 송병준, 이항구는 천천히 종종걸음을 하며 명동성당 언덕길을 내려왔다.
그렇게 천천히 주차된 차 쪽으로 향했는데.
탕- 탕- 탕-
갑자기,
세 방의 총성이 동시다발적으로 울려 퍼졌다.
“헉.”
이항구의 옆에서 이야기하던 송병준이 픽 쓰러진다.
이에 이항구는 깜짝 놀라며, 땅바닥 쪽으로 주저앉았다.
그는 본능적으로 제 머리를 손으로 감싸며 살고자 바둥댔다.
“빌어먹을 암살자 자식. 아이샤츠를 생략하다니!”
같은 행동을 하던 소네 통감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큰소리로 무언가를 외쳐 댔다.
굳이 번역해 주지 않아도 되는 말을 통역관이 그 자리에서 번역한다.
이항구는 이에.
뭔 저런 미친놈이 있나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이내 앓는 소리가 나는 곳으로 그의 시선을 돌렸다.
“아버지! 아버지!”
“억······.”
머리에 총알을 맞고 즉사한 송병준과는 다르게 이완용은 숨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총알이 그의 몸을 관통했기에,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다.
“의관, 의관을 부르게.”
속히 치료가 필요했다.
일본 군관과 함께 주변을 지키던 헌병 보조원들.
그들을 향해 이항구가 소리쳤다.
하지만 그들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어댔다.
“뭐? 명의들은 죄다 평양으로 갔다고?”
신민회라는 단체에서 의학 발표회를 열었다고 한다.
그 때문에 한양에 있는 외인과 명의들은 죄다 평양으로 이동한 상태였다.
‘이번 일은 의왕이 꾸민 일이란 말인가?’
신민회는 대표적으로 의왕이 후원하는 단체다.
재미교포 협회인 합성협회의 후원금으로 신민회가 돌아가고 있다는 것은 대한제국 모든 국민이 다 아는 사실이었다.
“아버지!”
“사, 살려다오.”
죽음이 다가오고 있어서 그럴까?
평소 이완용은 다른 이들에게 겁내는 모습을 보여 준 적 없다.
마른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도 덤덤한 표정을 지었지만.
지금만큼은 아니었다.
“사, 살고 싶다.”
“아버지 조금만 참으십시오.”
이완용은 바들바들 떨며 너무나도 추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명동성당을 지키는 일본군들은 암살자를 찾기 위해 사방팔방 건물을 뒤지고 있었지만.
총소리가 워낙 작게 났고, 사방에서 총성이 울려 퍼졌기에 범인을 쉬이 색출해내지 못했다.
“하, 항구야······.”
그렇게.
암살자를 찾아내지 못하는 가운데.
이완용은 서서히 길바닥에서 죽어 갔다.
이항구는 그런 아버지를 보며 생각했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오래 살 수 있을까.
그는 고민했다.
< 장례식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