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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158화 (158/294)

< 트리플 크라운 (2) >

와!

태몽은 그저 민간에서 건너 건너 내려오는 근본 없는 미신인 줄만 알았는데.

‘소름 돋네. 이리 딱 맞아 떨어지다니······.’

에델이 막 아기를 가졌을 무렵.

나는 무려 3일 동안 비슷하지만 살짝 다른 꿈을 연달아 꿨다.

꿈에서 늙은 여인이 나타나 하루에 하나씩.

총 과일 세 개를 내게 건넸었지, 아마?

‘사과는 아들이고, 복숭아는 딸이란 뜻이었던 것인가?’

태몽에 관해 잠시 맹신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나는 다시금 현실적인 나의 본모습으로 돌아왔다.

‘우연이겠지.’

엄밀하게 따지고 보면, 세부 사항이 살짝 다르다.

꿈에서 나는 복숭아 두 개를 받은 후에 사과를 받았지만, 현실에서는 아들이 먼저 태어나고 그다음에 딸 둘이 태어났으니까.

완벽하게 모든 것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굉장히 신기한 경험을 한 것은 사실이었기에, 나의 머릿속에 한동안 태몽 장면을 떠올리며 내 앞에 있는 어린 조무래기들을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전하.”

“무슨 일인가?”

나는 현재 막내딸을 집중적으로 보살피고 있었다.

셋 중 가장 연약했고 몸도 제일 작았기에, 잠도 자지 않고 계속해서 딸아이의 건강 상태를 살핀 거다.

“막내 아기씨를 제게 주시지요.”

“벌써 젖을 물릴 시간인가?”

“예.”

나는 아이를 소니아에게 건넸다.

마치 금세 깨질 것 같아, 아주 조심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막내를 챙겼다.

“여기 있네. [진]이에게 밥을 얼른 먹이게.”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에델이 이내 다시 아이를 그녀의 품으로 소환했다.

“소니아. [지니]를 유모에게 데려가지 말고, 내게 주렴.”

막내의 이름은 ‘진’이었다.

이진.

영어식 애칭으로 발음을 살짝 뭉뚱그리면 ‘지니’, 램프에서 사는 요정이 된다.

“진아, 밥 먹자.”

“아기씨의 수유를 마마께서 직접 하시려고요?”

“그래.”

에델 역시도 나처럼 막내가 눈에 밟히나 보다.

다른 아이보다 몸 크기도 작고 잔병치레도 많이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출산 도중.

마지막에 태어나며 양수를 많이 먹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에델.”

“예. 왕자님.”

“무리하지 말고, 좀 더 누워 계시오.”

“아니에요. 제 아이인데, 제 모유를 먹어야죠. 다는 아니라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애들 배를 채워 주고 싶어요.”

결혼 전부터 그런 모습을 살짝 보였던 것 같긴 했지만, 에델은 모성애가 굉장히 강해 보였다.

‘알면 알수록 참 매력 있는 여자란 말이지.’

결혼하기 전에.

혼전 계약서를 내밀면서, 사생아 만큼은 안 된다고 표독스럽게 나를 쏘아 대던 여인은 사라지고.

사랑스러운 어머니의 모습만 남은 것 같다.

나는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으로 에델을 한번 바라본 후.

다른 아이들을 보살피기 시작했다.

“다들 나와 부인을 반반씩 닮지 않았소?”

첫째는 나를 살짝 더 많이 닮은 것 같았다.

‘엄청나게 크네.’

막내에게 갈 영양소를 다 흡수한 모양인지, 세쌍둥이로 태어났지만 굉장히 우량아였다.

꺽-

더욱이 사내대장부답게 트림 소리도 매우 컸다.

나는 내 첫아들의 등을 두들기며 따뜻한 햇볕을 연신 받았다.

* * *

“전하.”

“들어오게.”

아이가 막 태어났기에, 나는 콘월 별장에 외부인들의 출입을 금했다.

이에.

각국에 있는 내 지인들은 내게 편지와 선물을 보내며, 새 생명의 탄생을 축하했다.

“유럽 각국의 왕실에서 축하 선물을 보내왔사옵니다.”

“선물?”

“예.”

“하나씩 풀어 보게나.”

아.

선물 겉포장만 봐도, 어디에서 보낸 것인지 감이 온다.

“이건 네덜란드겠고.”

헨드릭과 빌헬미나 여왕은 튤립 문양에 오렌지빛 비단으로 겉포장을 한 선물을 내게 보냈다.

안에 들어 있던 것은 각종 보석이 주렁주렁 달린 티아라였다.

“이것은 영국, 다음은 독일, 마지막은 러시아에서 보낸 것이겠군.”

각국의 선물들은 그들만의 상징과 색, 가문 문양이 그려진 포장지로 싸여 있었다.

이런 선물들을 보며 나 또한 나만의 고유의 상징을 하나 정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내 경황이 없어서 그런데, 자네가 나를 대신하여 고맙다고 전해 주게나.”

“예.”

선물을 개봉하는 것은 이쯤에서 그만두고.

그다음에는 내게 온 편지들을 확인할 시간이다.

“이건 뭔가?”

그중 우현식은 편지 봉투 하나를 콕 집어서 내게 건넸다.

“모건 부대표께서 서신을 보내셨습니다.”

“모건 주니어가?”

“예.”

모건 가문은 현재 뉴욕을 지배하는 대영주 같은 자다.

모건 주니어는 그런 모건 가문의 차기 후계자고.

영향력이 상당한 자였기에, 따로 빼내어 이것을 내게 건넨 것 같다.

“뭐가 들었으려나?”

에델의 출산 예정일에 맞춰서 서신을 보냈나 보다.

나는 첫째 아이를 소니아에게 잠시 맡긴 후, 재빨리 봉인을 풀고 편지지 안에 있던 내용물을 확인했다.

응?

안에는 편지가 없고, 웬 사진 하나만 덩그러니 존재했다.

“하!”

이놈 봐라.

사진의 주인공은 이제 겨우 9살인 모건의 막내아들이었다.

헨리 S. 모건.

원 역사에서 미국 최대의 상업은행이 되는 모건스탠리의 공동 창업자가 되는 인물이다.

‘모건스탠리는 BOA와 함께 미국의 상업은행 한 축을 담당했던 회사지.’

미래의 모건스탠리 공동 창업자와 이번에 태어난 내 딸을 혼인시키기로 미리 약조했었는데 말이다.

모건 주니어는 이를 다시 한번 상기시키며 내게 이를 잊지 말라고 편지를 보낸 것 같다.

‘한번 내뱉은 말은 지킨다는 것인가? 이거 참 난감하군.’

두 아이 중 누구를 이놈에게 시집보내야 하지?

네덜란드 왕실에서 왕자가 태어나면, 한 아이를 그곳에 보내야 할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보다, 내 아이들은 요 앙큼한 꼬맹이를 좋아하려나?’

그것도 문제네.

본인이 싫다고 하는데 억지로 시집을 보내는 것은 나쁜 아빠나 하는 짓이니까.

‘만약 헨리 모건과 내 딸이 결혼하게 된다면······.’

재미난 상상을 해 보았다.

진짜로.

헨리 모건이 내 사위가 된다면, 나는 간접적으로 모건스탠리 회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그리되면 미국의 3대 상업은행에 내 영향력을 투사할 수 있으리라.

‘1위였던 모건스탠리의 창업자와는 장인 관계가 되겠고.’

2위였던 BOA 창업자는 지아니니는 현재 나의 가장 친한 동업자이기도 하다.

나는 이 회사에 지분도 꽤 가지고 있고.

‘3위였던 씨티은행도 마찬가지지.’

이곳은 록펠러 가문 아래 있는 은행이다.

내셔널시티은행이 현 씨티은행의 전신인데, 현재 이 은행을 록펠러가 소유하고 있었다.

‘미국 금융계의 3개의 왕관을 내가 손에 쥔 셈인데.’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앞으로 원 역사대로만 흘러간다면 그렇게 되겠지.

1910년밖에 안 되지만, 대충 미국 금융계를 내 영향력 아래 놓았다는 뜻이 된다.

조금 더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안전장치들이 더 필요하겠지만.

1차 목표는 어느 정도 달성했다고 보는 것이 낫다.

‘그다음은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깊어진다.

더욱이 내 아이들이 태어나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더더욱 내 행보에 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 * *

한참 육아에 전념하며 오랜만에 휴식을 취했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힘들다는 백일을 보내고 나니.

세 아이의 잔병치레 또한 그 횟수가 확 줄어들었다.

“우리 진이 똥 쌌어요?”

울고 있는 아이들을 달래며 막 푸릇푸릇해지는 영국 남부 풍경 감상했다.

그때였다.

‘누구지?’

낯선 이가 찾아왔다.

아이들이 제법 자랐기에, 별채에 손님이 방문하는 것을 허락했는데.

이를 발표한 지, 네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누가 이곳에 찾아온 거다.

“이 왕자님. 축하드립니다.”

“자네, 오랜만이군.”

주인공은 바로 월터 로스차일드였다.

현 로스차일드 남작의 조카이자 양아들로, 영국의 로스차일드 가문을 이끌 미래의 차기 수장이었다.

“방문 허락 소식을 듣자마자 결례를 무릅쓰고 이리 불쑥 찾아오게 되었나이다. 왕자비님과 막 태어난 새 생명은 모두 건강하십니까?”

“그대의 염려 덕분인지 모두 무탈하네.”

“다행입니다.”

“잠시 이쪽으로 걷도록 하지.”

손님 방문은 허락했지만, 아직 내 집에 들일 수 없다.

아이들의 면역이 아직 완전하지 않으므로 전염병에 취약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마당을 걸으며 월터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래. 이리 급히 나를 찾아온 이유가 뭔가? 오기 전에 내게 슬쩍 언질 줬으면 저기 손님 맞을 별채를 치웠을 것일세.”

월터가 살짝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 물음에 답했다.

“세간에 왕자님께서 이주 뒤에 미국으로 귀환하신다는 말이 있어서······ 더 늦기 전에 이곳에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맞다.

사실이다.

에델이 영국 생활을 너무나도 싫어했으니까.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기에, 연고가 이곳에 있는 것도 아니고.

기후 또한 사시사철 따뜻한 서부와는 다르게 별로고.

공기도 제법 오염되어 있기에.

그녀는 하루빨리 이 섬나라를 떠나고 싶어 했다.

“사실이네.”

“그렇습니까?”

영국에 별로 아는 인사가 없었기에, 나는 기별 없이 이 나라를 떠나려고 했다.

로스차일드 남작과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기에, 남작은 물론 월터에게도 이를 알리지 않고 떠날 생각이었는데.

월터는 이를 눈치챘는지 내게로 먼저 와서 손을 내밀었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왕자님과 저는 생사를 함께 했던, 마치 전우와도 같은 사이가 아닙니까?”

“······.”

별 추임새 없이 눈을 껌뻑이자, 월터가 미간을 좁히며 나를 바라보았다.

“혹시 저희 아버지께서 왕자님을 섭섭하게 해 드린 것은 아니겠지요?”

“어째서 그런 말은 하는 거지?”

“최근에 통 연락이 없으셔서 혹시나 해서 하는 말입니다. 물론 세쌍둥이들 육아 때문에 매우 바쁘셨겠지만······ 혹시나 오해가 있으면 이 자리에서 이를 풀고 싶습니다.”

월터는 남작과는 다르게 내게 호감을 보이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살짝 언질을 줘도 좋을 것 같았다.

“내 최근에 재미난 소식을 하나 들었네.”

“무엇입니까?”

“자네 부친이 일본 정부에 차관을 제공했다더군. 그것도 꽤 좋은 조건에 말이야.”

“······.”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살짝 별거 아니라는 표정을 지었다.

“뭐, 내가 남의 투자 행위를 두고 왈가왈부할 처지가 아니라는 것은 나도 잘 아네. 하지만 현재 일본의 총리는 자네도 잘 아는 가쓰라 다로일세. 자네도 그때 다쳐서 잘 알겠지만, 나는 그때 진짜 죽을 뻔했었네.”

월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이니까.

나는 그런 월터를 보며 충고했다.

“적어도 가쓰라의 정권 아래에서만큼은 신규 차관 제공을 일시 중지했어야지. 자기 자식과 동업자를 암살하려던 놈인데.”

가타부타.

내 말의 진의를 확인해 주지 않고, 월터는 정보의 출처부터 살폈다.

“그, 소식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모건이 알려주더군.”

“모건 부대표가요?”

“아니. 모건 대표가 알려 줬네.”

월터는 살짝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모건 역시 남작처럼 내 뒤에서 내 뒤통수를 노리던 놈 중 하나니까.

일본 채권값이 폭락했을 때.

록펠러처럼 팔아 치우지 않고 싼값에 이를 전부 사들인 것만 봐도.

그는 남작만큼이나 탐욕스럽고 나를 경계하는 자였다.

“그 자신이 스스로 고백하더군. 나 몰래 일본 정부에 또다시 차관을 제공하려다가, 가쓰라가 다시금 총리가 되어서 이를 잠시 중단했다더군.”

“······.”

“하지만 자네 부친은 그렇지 않은 움직임을 보인다고 모건 대표가 내게 전했네.”

둘이 모종의 무언가가 대서양을 건너서 오간 모양이군.

저리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월터가 짓는 것을 보면, 모건이 먼저 뒤통수를 갈겼고.

‘뭐, 모건을 믿은 남작의 실수지.’

모건은 자신이 이익을 볼 수만 있으면, 언제든 뒤통수를 칠 준비가 된 자였다.

더욱이 그는 남작보다는 나를 좀 더 쉽게 생각한다.

자신의 통제 아래 미국에서 제어를 할 수 있다고 여기니까.

그렇기에.

남작을 배신하며 남작의 움직임을 내게 고한 것이겠지.

“이거, 실망일세. 나는 자네 가문과 내가 한 팀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

“모건 대표가 오히려 더 믿음직스러워졌네.”

모건과 로스차일드 남작은 서로 연방준비제도 주도권을 놓고 싸우고 있다.

현재는 나와 록펠러가 남작의 편을 들어주어 남작이 조금 더 유리하나, 내가 편을 바꿔 먹는다면 판세가 확 달라질 거다.

이를 노리고 모건이 남작의 움직임을 내게 알려줬으리라.

‘속고 속이고. 이를 알려주고. 계속 반복되는군.’

월터는 똥 마려운 표정을 지으며 급히 나를 바라보았다.

“왕자님. 모건 대표와 손을 잡게 되시면······.”

나는 재빨리 월터의 말을 끊어 먹으며 속 안에 하고 싶었던 말을 했다.

“아네. 미국 경제가 그자의 손에 완전히 복속되겠지. 이를 경계하기 위해 록펠러 대표와 내가 자네 부친 편을 드는 것이 아닌가?”

“예. 이를 고려하신다면······.”

“그런데 말이야.”

나는 방긋 웃으며 월터를 바라보았다.

“모건 대표가 미국 은행계를 꽉 잡는 것이 나와 무슨 상관인가?”

“예?”

“어차피 미국의 금융계는 모건의 손아귀에 있었던 산업이었네. 아닌가?”

“······.”

“나야, 둘 중 어느 법이 통과되더라도 상관이 없네. 9자리 중 1자리를 얻는 거나, 17자리 중 2자리를 얻는 거나······ 그게 그거지. 자네 부친과는 다르게 말이야.”

나는 모건의 제안도 나쁘지 않다는 것을 월터에게 상기시켰다.

“더욱이 나는 모건 부대표와 상당히 친분이 있네. 자네와 나 사이처럼, 모건 부대표와 나는 상당히 긴밀한 관계네.”

“······.”

“요새 드는 생각은 내가 왜 아등바등 자네 부친 편을 들어야 하나 회의감이 드네. 자네 부친은 뒤에서 내 등에 칼침을 놓을 생각만 하는 것 같은데 말이야.”

“오해십니다. 분명 오해가 있을 것입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잘 알겠다는 표정을 지어댔다.

“그래. 오해가 있겠지. 그래서 내 자네를 이리 내치지 않고 계속 보는 것일세.”

“······.”

“부디 자네 부친에게 가서 전하게. 무슨 오해가 있다면 내가 영국을 떠나기 전까지 이를 풀어 달라고 말이야.”

연방준비제도법을 그가 원하는 대로 입법시키려면, 그는 내게 뭔가를 더 줘야 할 것이다.

‘판돈을 올리자고, 남작.’

< 트리플 크라운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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