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174화 (174/294)

< 신흥연수원 (1) >

익문사 애국단 인사부서에서 부서장을 맡고 있던 안명근.

앞에 있는 문을 똑똑- 두들기며 인기척을 내었다.

“안 선생?”

이에, 한 사내가 밖으로 나와 안명근과 시선을 교환했다.

“장 부학장님. 오랜만입니다.”

장유순은 이회영, 이시영과 같은 시기에 함께 미국으로 건너온 한인이었다.

짧은 시간 동안 뛰어난 행정술을 선보여 이강에게 그 실력을 인정받은 인물.

2년이라는 시간 동안 티후아나 군사학교 부학장까지 승진한 것을 보면, 장유순의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이를 유추해 볼 수 있으리라.

안명근은 그런 장유순에게 다가가 포옹을 해 댔다.

“반갑네. 그보다 자네, 얼굴이 아주 많이 좋아졌군.”

“하하. 그렇습니까?”

“암, 많이 후덕해졌네. 길거리에서 보았으면 몰라볼 정도로 말이야.”

장유순은 얼굴 살이 통통하게 찐, 안명근의 어깨를 토닥이며 그를 반겼다.

안명근은 평소 습관대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폈다.

“혹시 시간 좀 있으십니까?”

“어여 들어오게. 자네와의 대화는 언제나 환영일세.”

장유순은 안명근의 손을 잡고 세게 잡아당겼다.

자신의 집무실로 초대한 것인데.

안명근은 장유순에게 반강제로 끌려들어 가며 그의 집무실 내부 광경을 관찰하게 되었다.

‘이거, 개판이군.’

미간이 찌푸려진다.

장유순의 일하는 스타일이 워낙 너저분해서다.

그의 집무실은 현재 온갖 서류들로 가득했으니까.

소파로 가는 도중에도 서류 몇 개가 안명근의 발에 밟혔다.

‘예나 지금이나, 정말이지 바쁘게 사는 모양이군. 이리 난잡하게 일하는데, 일 처리 하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빠르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단 말이야.’

안명근은 주변은 쓱 훑어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만약 장유순이 익문사에서 일했다면, 보안 관련 이슈가 터졌으리라 내리 짐작한 거다.

그를 익문사 요원으로 영입하지 않은 것이 참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안명근은 속마음을 감추며 장유순을 지긋이 바라보다가 자리에 앉았다.

“많이 바빠 보이십니다.”

“전하께서 저번에 파견 온 독일 교관들의 동향 보고를 급히 원하셔서······ 내 하나하나 그들의 움직임을 적어 내고 있었네.”

“아, 그렇습니까?”

장유순의 말에 따르면, 최근 이강은 티후아나에 파견된 독일 교관들의 모든 것을 알고자 했다.

그들의 성향이라든가.

그들이 알려 준 전술 교리.

사용하는 무기 체계.

그리고 이번에 납품되는 비행기에 관한 국내 반응까지 전부.

“독일놈들에게서 더 배울 점이 있냐고 전하께서 묻고 계신 것을 보면, 뭔가 그들을 탐탁지 않게 여기시는 것 같은데······.”

장유순은 눈치 또한 빨랐다.

이강의 의도를 단번에 간파한 것.

그래서일까?

장유순은 살짝 불안한지 손톱을 물어뜯으며 고개를 도리도리 좌우로 저었다.

“아직은 좀 더 배워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네.”

“어째서요? 육군 교리는 어느 정도 배우지 않았습니까?”

“에이, 아직 멀었네. 다 배웠다고 쳐도, 우리는 절름발이 군대이지 않은가? 아직 그들이 필요하네.”

“절름발이요?”

안명근은 무슨 소리를 하냐는 표정을 지으며 장유순을 쏘아붙였다.

“그래. 우리 조선 독립군은 아직 해군이 없지 않은가?”

“아!”

“한번 철수하면 다시 사람을 파견하기 어려워지니까. 일단은, 저 노랑머리 도이칠란트 놈들을 붙잡아 두고 있어야 하지 않겠나?”

안명근은 장유순의 의견에 동의했는지 고개를 격하게 끄덕거렸다.

이에 장유순은 자신이 생각한 방안 또한 안명근에게 제시해 보았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으라는 옛말이 있듯, 내 생각에는 이참에 해양학교를 하나 새로이 설립하는 것 또한 좋다고 보네.”

“해양학교요? 어째서 그런 주장을 하시는 것입니까?”

“해양학교 생도들은 해군사관학교 생도들이랑 거의 구별이 안 될 정도로 생도 생활을 한다고 하는구먼. 독일에서 파견 온 장교들이 이런 이야기를 내게 해 주더군. 조언으로 말이야.”

“아······.”

그간 함께 지내며 장유순은 독일에서 파견 온 장교들을 성심성의껏 대했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기에, 잘 대해준 이들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려고 하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장유순은 이러한 이치를 진즉 깨닫고 있었기에, 독일인 장교들을 아주 극진히 대접했다.

독일인 장교들 역시 여러 조언을 장유순에게 아끼지 않고 해 주었고.

“더욱이 일반 상선에서의 승선 경험은 군함에서 복무하는 것과도 비슷하다고 말하더군. 물론, 완전히 똑같을 수는 없지만······ 항해사나 조종사, 기관사, 통신사, 운항사 등 거진 하는 일이 같지 않겠는가?”

“하긴, 그렇죠.”

“무엇보다 예전에 전하께서 해운사 하나를 차리셨었네.”

“아! 기억납니다.”

“그쪽에 해양학교 졸업생들을 취업시키면 좋지 않을까?”

“실전 경험을 쌓게 하며 그들에게 고급 기술도 익히게 만들 수도 있겠네요.정말이지 나쁘지 않은 제안 같습니다.”

“그렇지? 자네 역시도 내 주장에 동의할 것이라 예상했네.”

장유순은 자부심 어린 표정으로 서류 몇 개를 톡톡 치며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설명했다.

“내 이런 정보들과 주장들을 한데 모아다가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다네.”

“하! 제2의 우성 선생이 나오겠군요.”

우성 박용만은 무장투쟁 세력의 떠오르는 거두다.

특히나 미주 지역에서는.

이강을 상대로 끈질기게 구애를 한 끝에, 샌프란시스코와 티후아나에 군사학교를 설립했으니까.

안명근은 이런 박용만의 이름을 언급하며 장유순을 띄워 주었다.

“우성 선생을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지. 그것도 한참.”

장유순은 그런 안명근의 칭찬에 쑥스러워했다.

티후아나 군사학교 부학장을 지니고 있던 장유순 역시도 박용만의 앞선 업적만큼은 대단히 존중했기 때문이다.

“아, 그나저나 자네 혹시······.”

장유순이 살짝 울상을 다 지어 대며 앓는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우성 선생이 어디쯤 왔는지 알고 있는가?”

“예? 그것은 왜······.”

“자네도 잘 알지 않은가? 내, 말이 부학장이지 우성 학장의 몫까지 전부 다 맡고 있다네. 벌써 석 달이나 되었지.”

장유순은 일거리가 많다고 징징대며, 박용만이 하루빨리 티후아나로 돌아오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이곳에 오기 전에 샌프란시스코에 들렀는데 말입니다. 그때 우성 선생을 한번 뵙긴 했습니다.”

“오, 그래? 그렇다는 말은 티후아나로 곧 넘어온다는 뜻이로군.”

안명근은 빠르게 장유순의 예상을 부인했다.

“죄송하지만, 그건 힘들 것입니다.”

“아니, 왜?”

“샌프란시스코 비행학교의 확장 문제로 한동안 서부에 머무를 테니까요. 한두 달로 끝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

“예. 우리 비행학교에 손님이 대거 찾아올 수도 있기에, 미리미리 준비해 두어야 한다고 의왕 전하께서 단단히 지시하셨다 합니다.”

“손님?”

이강은 런던을 떠나기 전, 영국에 대공포를 대거 판매했다.

시간이 흐르고, 독일 첩보부에서 이런 영국군의 동향을 포착한다면.

독일은 분명 이강에게 추가 대책을 요구할 거다.

이강은 그때 맞춰 독일 조종사들에게 급강하 기술을 샌프란시스코 비행학교에서 가르치려고 했다.

물론 거액의 교습비가 입금된 이후에나 가능하겠지만.

지금 박용만은 이 일을 대비하는 중이었다.

“예. 자세한 것은 기밀이라고 해서, 저도 상세히 이를 알지는 못합니다. 아무튼, 그 때문에 우성 선생은 한동안 샌프란시스코에 머무를 것 같습니다.”

장유순이 이내 침울한 표정을 지어 댔다.

안명근은 그런 장유순을 토닥이며 그를 위로했다.

“조만간 인사이동이 있지 않겠습니까? 전하께서 다시 미주로 오셨으니까요.”

“하긴, 전하의 성격이면 더할 것은 더하고 뺄 것은 속히 빼 버리시겠군. 아니 그런가?”

“예. 아! 그나저나 부학장님.”

안명근이 무언가 급히 떠올랐다는 표정을 지으며 장유순을 바라보았다.

“뭔가? 말해 보게나.”

“이번에 졸업할 생도들 말입니다.”

안명근은 본격적으로 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눈을 번뜩이며 장유순에게 이번 졸업생들의 신상을 물었다.

“좀 어떻습니까?”

“뭐, 비슷비슷하지. 전체적인 질은 재작년이나 작년보단 좋아졌고. 몇몇 뛰어난 인재들이 보이긴 하네. 내년부터는 교육 기간 또한 늘어나니 더더욱 좋은 모습을 보일 것일세. ”

“그렇습니까?”

티후아나 군사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하게 되면.

익문사 인사팀을 이를 주시하고 있다가 신입 요원을 선발한다.

애국단은 익문사의 부서 중 최정예 부서.

요인 암살을 전문으로 하는 살인 기계들만 모여 있는 곳이기에, 최고만을 선발해야 한다.

안명근은 장유순에게 건네받은 신상명세를 살펴보며 물었다.

“쓸 만한 새싹들이 많이 들어왔나 보군요.”

“그래. 이중 이놈이 이번 기수에서 제일가는 놈일세.”

안명근은 탐이 난다는 눈빛으로 한 사내의 사진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이후.

조용히 자리를 떴다.

* * *

『자네는 무엇을 하고 싶지?』

『왜놈들과 매국노들을 도륙 내고 싶습니다.』

『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각시탈이나 하회탈처럼 말인가?』

『예. 그렇습니다.』

티후아나 군사학교는 수석으로 졸업하게 된 김좌진.

그는 현재 동기 몇 명과 함께 북간도로 가는 중이었다.

신흥연수원이라는 교육기관에서 추가 교육을 이수하기 위해서였다.

“이야. 얼마 만이야. 드디어 내 눈에 육지가 보이네.”

“우리 거진 한 달가량을 배 안에서 지낸 거 맞지?”

“아마도? 정확히 25일 있었으니까. 대충 한 달 정도 되었네.”

티후아나 군사학교 졸업생들은 서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들은 설레는 목소리로 자신들이 알고 있는 정보를 하나둘 풀었다.

“지금 가는 신흥연수원 있잖아. 들리는 풍문으로는 소문으로만 듣던 익문사의 특수 교육기관이라고 하더군.”

“진짜?”

“와! 그럼 우리 북간도 독립군에 배치되는 것이 아니고 익문사에 영입된 것이네?”

“아마도?”

연해주로 가는 배를 타기 전.

안명근은 가면을 쓰고 신분을 위장한 채, 이번에 영입할 애국단들의 예비 후보생들을 만났다.

그곳에서 예비 후보생들의 신념과 마음가짐을 평가한 후, 위조된 여권들을 그들에게 나눠줬다.

자신의 소속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이번에 졸업하게 되는 생도들은 대충 안명근의 존재를 눈치챘기에.

제법 설레는 모습을 보였다.

“이진우 생도. 네 이름은 묻지 말게. 자네가 묻는다고 답변할 나도 아니지만.”

이진우는 안명근의 성대모사를 따라 하며, 독방에서 면접을 보았던 그때를 회상했다.

“이야. 그러면 우리도 본국에서 활동하게 될까?”

“그렇겠지?”

“요즘에 각시와 하회가 한양과 평양에서 그리 활동을 해 댄다던데. 우리 역시 이에 맞는 예명을 가지고 임무를 수행하게 되나?”

“아, 나는 뭐로 지어야 하지?”

워낙 비밀에 감춰진 단체기에.

이번에 몇 명을 뽑는지.

어디서 활동하는지, 아무런 정보가 없다.

그저 세간에서 들리는 정보만이 생도들의 입에서 나왔기에, 김좌진은 지금 이 대화가 별 영양가가 없다고 생각했다.

‘가면 고생만 할 텐데. 쯧쯧. 저리 한 치 앞을 못 보네.’

익문사 애국단은 최고의 정예 부대다.

김좌진은 지난 티후아나에서보다 더 힘든 시련이 그의 앞에 기다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렇기에.

그는 다른 이들처럼 설레하지 않고 오히려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들 준비해. 곧 있으면 블라디보스토크 항구에 도착한다더군.”

선실로 돌아온 동기의 말에 김좌진이 벌떡 일어났다.

그는 이미 하선할 준비를 끝마쳤기에, 다른 깜짝 놀란 표정을 지어댔다.

“백야(김좌진), 넌 뭔데 벌써 다 준비를 끝냈냐?”

“······.”

“얼씨구. 이젠 귀까지 먹었나?”

김좌진은 제법 진지한 표정을 지어 대며 선실을 떠날 준비를 했다.

“갑판 위에 있을게. 다들 준비 끝나면 올라와라.”

김좌진은 마지막 말을 남기고 떠났다.

이에 그의 동기들은 다들 질린다는 표정을 지어 댔다.

“누가 우리 기수 수석 아니랄까 봐. 하여튼, 꼭 티를 내요. 티를.”

“내버려 둬. 제 잘난 맛에 사는 것도 여기까지지. 연수원에서 우리가 합심해서 저놈의 코를 바짝 눌러 주면 되는 것 아니겠어?”

이진우의 주장에.

다른 동기들은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으쌰으쌰 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이들도 떠날 채비를 끝내고 갑판 위로 나왔다.

“와, 죽이네.”

“그러게.”

그들을 맞이하는 것은 9월의 블라디보스토크항이었다.

막 가을이 완연해지고 있기에, 풍경이 참 아름다웠다.

티후아나 졸업생들은 다들 씩씩한 표정으로 오랜만에 돌아온 블라디보스토크를 바라보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자자, 다들 뭐해. 내리자고.”

* * *

“영화당으로 갑시다.”

북간도 훈춘에 도착한 김좌진과 일행들.

도중에 샌프란시스코 비행학교에서 왔다는 일행과도 합류했기에.

이들은 묘한 긴장 상황 속에서 이동하고 있었다.

“이야.”

“맛있겠다.”

북간도는 현재 무주공산 지대다.

청도. 일본도. 러시아도.

영향력을 투사하지 않는 곳.

그랬기에, 곳곳에는 본국을 떠나 막 피난 온 조선인들로 가득했다.

“이곳에서 하루 머물라고 했던가?”

접선 장소에 하루 일찍 도착했기에, 졸업 생도들은 살짝 긴장을 푸는 모습을 보였다.

그도 그런 것이 북간도는 조선인들의 실질적 지배 아래 있기에, 티후아나나 샌프란시스코보다도 어쩌면 더 안전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자자, 연수원에 입소하기 전에 다들 술 한 잔씩 어때?”

이진우의 제안에 너나 할 것 없이 ‘콜’을 외친다.

긴장을 늦추지 않은 김좌진만 빼고.

“백야. 넌?”

“나는 됐다. 일찍 자러 가니 방해나 하지 마.”

“쳇.”

동기들은 그런 김좌진을 시기하며 그들끼리 똘똘 뭉치기 시작했다.

밤이 깊어지고.

영화당에 불이 하나씩 꺼져 간다.

시간이 흘러 새벽이 되었을 때.

“시작하지.”

신입생도들 환영파티가 시작되었다.

< 신흥연수원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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