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S ARMY (1) >
지난밤에 에델과 한창 뜨거운 사랑을 나눴다.
그래서일까?
날이 활짝 밝았는데도, 몸이 너무나 무겁다.
“하- 암-”
집무실에서 한껏 기지개를 켜며, 밀려드는 졸음을 쫓아 보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로는 부족한지, 눈꺼풀이 자꾸 감겼다.
“거기 누구 있는가?”
“예, 전하.”
나는 비서실장인 최현우를 불러 커피를 좀 내어 오라고 명령했다.
이에 최현우는 진하게 탄 아메리카노와 함께 다과를 몇 점 들고 왔다.
“전하. 주문하신 커피입니다.”
“고맙네.”
물론, 이것만 내온 것은 아니었다.
그는 바로 밖으로 나간 후, 오늘 결재해야 할 서류뭉치를 한 무더기 가지고 돌아왔다.
“티후아나 군사학교 부학장이 보낸 제안서입니다.”
“이름이 장유순이었던가?”
“예. 일 잘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양반입니다.”
최현우는 내 커피에 설탕을 한 스푼 떠 넣어 준 후, 이를 접시째 내게 건넸다.
아직은 뜨거웠기에, 나는 호호 입으로 바람을 불며 이를 식혔다.
“그 밑에는 어제 보고했던 샌프란시스코 비행장 확장 건 관련 서류가 함께 동봉되어 있습니다. 아, 맞다! 건 트럭 관련 보안 보고 사항은 모레 저녁까지 정리해 올리겠습니다.”
“해양학교 설립이라······.”
나는 장유순이 제안한 아이디어를 잠시 고민해 보았다.
그래.
현재 독립군은 육군으로만 편성되어 있다.
비행학교가 있어서 마음만 먹는다면 공군은 금세 분리하여 설립할 수 있다지만.
해군 세력만큼은 전무한 상황이었다.
‘해군은 돈 먹는 괴물이라고 하던데.’
뭐.
해양학교를 세운다고 당장 해군을 창설하는 것은 아니니까.
나는 긍정적인 표정을 지으며 제안서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조지 듀이 장군과 미팅할 때 대화거리로 한번 꺼내 봐야겠군.”
조지 듀이를 다음 달 중순에 만난다.
그에게서 해양학교 설립 관련 주제를 조언받는다면 확실히 도움이 될 것이다.
전설적인 해군 대원수에게서 받는 컨설팅만큼 유익한 컨설팅은 없을 테니까.
‘무엇보다······.’
친해지기 위해서는 서로의 공통 관심사가 있어야 한다.
첫 만남 때는 로비 대상의 주전공을 공통 관심사로 삼는 것이 로비의 정석이다.
‘그래야 나를 상대로 자신이 아는 것을 주저리주저리 설명할 수 있을 테니까.’
자신이 늘 하던 일이기에, 별 노력 없이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 갈 수 있다.
마음이 편해지면 무의식적으로 상대를 호의적으로 보게 되는 경향이 있기에, 다음 만남에서 이보다 좋은 대화거리는 없을 것이다.
툭툭-
나는 관련 서류를 한쪽에 추린 다음 다시금 최현우에게 이를 건네면서 말했다.
“이건 그때까지 잠시 홀딩하도록 하지. 아! 듀이 장군을 만날 때 이 주제를 심도 있게 토론할 생각이네. 그러니 그때까지 관련 정보들을 좀 더 모아 주게나.”
“예.”
나는 바로 그다음 서류를 확인했다.
“기존 용지를 활용하는 것보다 제2 항공학교 터 매입을 검토하는 것이 더 낫다고?”
그다음 주제는 전에 박용만에게 지시했던 항공학교 확장 건이었다.
“흠.”
관련 서류를 찬찬히 살펴 가며 박용만이 왜 그런 주장을 하는지 확인했다.
“우성(박용만)이 왜 이런 제안을 했는지 이해가 가는군.”
확장된 항공학교에 독일 장교들이 대거 입학할 텐데, 그 과정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등항공 기술이 유출될 것을 염려한 모양이다.
한인과 독일인들.
이 두 세력을 한데 모아 훈련하다 보면, 전수하지 말아야 할 기술까지 전수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이리 물리적으로 장소를 분리해 놓는다면, 보안이 한층 강화되어 이런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으리라.
“우성의 주장대로 그렇게 하라고 전하게.”
“예.”
“아! 이번에 새로 지을 비행장 말이야.”
“말씀하십시오.”
“내년에는 필히 사용해야 하니, 싸게 건설하는 것보다는 속전속결로 완공해야 한다고 말하게. 추가 용지 계약 때 이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일세.”
옆에서 듣고 있던 내 재정담당관 우현식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예전에 한창 내 재정이 궁핍했을 때.
이를 관리하던 이가 바로 우현식이었다.
돈 쓰는 것을 극도로 꺼리던 습관이 남아있어서 그런지, 그는 거금을 쓰기만 하면 일단 반대부터 한다.
나는 급히 우현식을 바라보며 그에게 물었다.
“왜 또, 그리 꿍하게 서 있지만 말고, 무슨 말이라도 해 보게나.”
“전하.”
우현식이 고개를 숙이며 내게 정중히 물었다.
“샌프란시스코 비행학교 확장 건 말입니다.”
“듣고 있네. 계속 말해 보게나.”
“전하께서 너무 급히 일을 벌이시는 것 같습니다.”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가?”
“위탁 교육을 받은 독일인들이 자국으로 떠난다면, 이를 어찌 운용하시려고 그리 무리하게 비행학교를 확장하시는 것입니까?”
아! 맞다.
그 이후 계획을 이들에게 말해 주지 않았구나.
나는 별일 아니라는 표정을 지으며 내 머릿속에 있는 계획을 술술 털어놓았다.
“저기, 오 년 전에. 내 작지만 유통업에 진출하지 않았던가? 자네 혹 기억하나?”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이 발발하기 전에, 나는 물류 사업 쪽에 진출했다.
주로.
보험 보상을 노리고 선착장 인근 창고들을 대거 사들였는데.
우현식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를 기억해 냈다.
“예. 그렇지요. 대지진으로 받은 보상금을 발판삼아 사업을 작게나마 키워 나가고 있지 않습니까?”
유통업은 내가 주력으로 삼고 있는 금융업이나 자동차 산업과 비교해 그 크기가 아주 작았다.
나는 손깍지를 낀 후, 그 위에 턱을 괴며 우현식을 바라보았다.
“이를 한번 크게 키워 볼 생각이네.”
“예?”
우현식은 고개를 갸웃하며 내게 다시금 물었다.
“유통이라면, 철도 사업이나 조선, 자동차 쪽에 투자해야 하지 않습니까? 어찌······.”
맞다.
보통은 그렇지.
‘지금도 닷지에서 생산할 픽업트럭들을 선주문하며 이를 활용할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은가?’
우현식은 이해 못 한다는 표정을 계속해서 지어 대며, 비행학교 쪽에 왜 돈을 쓰냐고 무언(無言)의 압박을 해 댔다.
으쓱-
이에, 나는 어깨를 위아래로 들었다 놨다.
그러자 조용히 있던 우현식의 동공이 커졌다.
시간이 좀 소요되었지만, 내 생각을 눈치챈 거다.
“혹시, 라이트형제가 발명한 비행기를 새로운 물류 운송 수단으로 활용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래.”
이에 옆에 서 있던 최현우까지 놀란 표정을 짓는다.
나는 둘을 번갈아 보다가 다시금 우현식에게 시선을 고정하며 입을 열었다.
“내 곁에 있더니 눈치가 제법 늘었군.”
“전하.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그럼.
가능하지.
물론 시간이 좀 더 지나야 관련 산업이 성장하고 성숙하겠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미국 양대 택배회사 중 하나인 UPS도 이때 생겨났는걸.’
의견을 굳히지 않자, 내 측근들이 다급한 목소리로 조언을 하기 시작했다.
“비행기의 실을 수 있는 화물의 하중은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하지만 아직 상용화하기에는 그 수준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낮습니다.”
“맞습니다. 전하. 과연 이익이 남겠습니까?”
둘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며 계속하여 부정적인 말만을 쏟아 냈다.
“우편의 수요는 향후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 것입니다.”
“전하. 조만간 동부와 서부를 잇는 전화선이 구축되지 않습니까?”
맞다.
미국전화전신회사.
AT&T의 전신이기도 한 이 통신회사가 곧 미대륙횡단 전화선을 설치한다.
1913년.
샌프란시스코 세계박람회 개막 전에 이를 끝마칠 기세였기에, 내 측근들의 보고는 허언이 아니었다.
‘우편의 종말이 곧 오고 있다고 믿고 있지.’
전화가 보급되면 그리될 것이라고 다들 철석같이 믿는다.
나 역시 미래를 알지 못했더라면 그리 생각했겠지만.
우편의 몰락은 아직 일렀다.
‘전화가 집집으로 보급되기까지 시간이 좀 있고, 더욱이 나중에 카드나 전기 같은 명세서를 요하는 산업들이 늘어나며 우편의 수요는 계속 증가할 거다.’
더욱이 내가 진출하려는 분야는 단순 우편배달이 아니다.
우편보다 돈이 되는 소화물 위주의 배달 산업으로 시작할 생각이거든.
‘국영 기업인 미국 우체국이 있는데 무슨 놈의 우편 사업이야.’
틈새 사업부터 시작할 생각이다.
나중에 그 틈새 사업이 본 사업이었던 우편 사업을 추월하게 될 터지만.
그건 한참 뒤에 이야기니, 일단 시장진입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경제가 성장할수록 사람들의 이동 욕구는 늘어나네. 더욱이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들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그들이 필요한 소화물들을 물류회사를 통해 붙일 것일세.”
“······.”
“······.”
“더욱이 그로 끝나지 않네. 동쪽에서 서쪽으로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빠르게 보내고자 하는 이들도 생겨날 것인데,어느 운송 수단을 이용하겠는가?”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철도를 이용하면.
아무리 빨라도 약 열흘이라는 시간이 소요된다.
하지만 현시대의 비행기를 이용한다면, 약 이틀에서 사흘 정도면 된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이 기간은 더욱더 짧아지겠고.
“가격이 싼 것을 찾는 이들도 가끔 존재하겠지만, 나처럼 시간을 중요시하는 이들도 생겨날 것이네. 나는 이를 타깃으로 삼을까 하네.”
다짜고짜 사업을 너무 크게 키우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며.
곧 생겨날 항공우편 또한 거론했다.
“흠. 미 체신부(미국 우체국 전신)에서 항공기 조종사 교육을 위탁받는다면, 항공학교 증축 비용을 뽑고도 남을 것일세.”
“아아!”
활주로와 비행기는 돈으로 찍어 낼 수 있지만 조종사들은 사람이다.
비행 기술을 익히려면 돈과 시간이 많이 든다.
가르치는 노하우도 필요하고.
“지금이 딱 적기일세. 확장할.”
더욱이
나는 한인들을 미리 교육해, 미국 체신부에 이들을 대거 고용시킬 생각이었다.
내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우리 한인들은 진정한 배달의 민족이 될 것이다.
“남들보다 한발 앞서서 미래를 보고 계시는군요.”
“암. 방금 나의 답변으로 자네들의 궁금증은 모두 해소되었는가?”
“예. 전하.”
나는 손뼉을 한번 짝하고 쳤다.
두 사람은 정신이 번쩍 드는지, 동그랗게 크게 뜬 두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뭐 하는가?”
“예?”
“일해야지. 방금 내가 제안을 하나 하지 않았던가?”
큰 그림은 내가 짜지만, 작은 그림은 밑에 있는 이들의 몫이다.
“자네들이 이리 빈둥빈둥 놀고 있어서야 쓰나?”
이를 담당한 한인도 구하고.
관련 예산도 계산해 봐야지.
나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이들을 열심히 부려 먹으며 채근했다.
일할 시간이 다시 돌아왔기 때문이다.
* * *
1910년 10월.
중간선거가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공화당과 민주당.
미국의 양 정당은 각자의 후보를 위해서 마지막까지 선거 유세를 펼치며 총력전을 펼쳐댔다.
『주요 격전 지역 예상 선거 결과 보고서』
루스벨트의 인기 덕분일까?
예상대로 공화당이 선전하고 있었지만, 민주당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원 역사대로 우드로 윌슨이 선전하고 있는 것도 눈여겨볼 사항이었다.
이어 신문을 펴 보았다.
온통 선거 이야기들뿐이지만, 내 눈에는 몇 가지 다른 기사들이 들어왔다.
“찾았다.”
『현 멕시코 대통령인 디아스. 연임을 위해 선거 조작을 시도하다!』
『야권 지도자 마데로, 선거 결과 불복. 디아스의 정권 퇴진까지 범국민운동 벌이기로 결의.』
『멕시코 혼란 속 정국 불안. 국경 인근 움직임도 심각.』
『당국, 국경 주변 검문 검시 인력을 증강할 것이라고 밝혀.』
미 언론이 드디어 멕시코 관련 보도를 싣기 시작했다.
선거가 코앞이기에, 아직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았지만.
일주일 뒤.
선거 열풍이 식은 뒤부터는 이 이야기로 도배가 되리라.
‘슬슬 언론도 움직이는군.’
나에겐 좋은 소식이다.
군부 인사들과 만남 때, 현지에서 입수한 멕시코 관련 정보들을 털어놓는다면.
대화를 아주 자연스럽게 이어 갈 수 있을 테니까.
네 명의 군부 인사 중.
특히나 국경 인근에서 근무 중이던 퍼싱 장군은 이 소식에 더더욱 관심을 가질 것이 뻔했다.
‘그들과 진짜로 만날 때로군.’
1912년 그리고 1920년 대선후보로 거론될 레너드 우드와 면을 트는 것을 시작으로.
퍼싱과 조지 듀이, 토마스 헨리 베리 순으로 미팅한다.
퍼싱과 조지 중에게는 각각 우리 회사의 무기를 은근슬쩍 홍보할 생각이며, 베리 학장에게는 웨스트포인트의 커리큘럼 전수와 함께 한인 신임 생도입학 요청을 한번 추천해 볼 생각이었다.
나는 짜 놓았던 관련 계획을 검토하다가 한 가지를 두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웨스트포인트에는 누구를 추천해야 하나······.”
< US ARMY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