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182화 (182/294)

< 알드리치 플랜 (3) >

입으로는 음식을 먹고 있지만, 현재 내 관심사는 다른 곳에 쏠려 있었다.

모건과 로스차일드.

이 둘을 어떻게 하면 엿 먹일 수 있을까, 계속하여 고민했기 때문이다.

“······.”

“······.”

내 옆에 앉았던 록펠러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식사 후 술 한잔하는 자리에서도 우리 둘은 계속하여 딴생각하며 침묵을 지켰으니까.

“이 왕자님.”

살짝 답답하여 산책하려고 일어났는데, 록펠러 대표가 나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그는 나와 함께 연회장을 빠져나오며 굳게 닫았던 입을 열었다.

“이 왕자님께서는 선견지명과 통찰력이 있으신 분입니다. 솔직히 제게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저 둘이 손을 잡으리라고 예상하셨습니까?”

록펠러의 두 손에는 각각 샴페인이 들려 있다.

이 중 하나는 내 것인 것 같았다.

나는 이를 건네받으며 록펠러의 질문에 답했다.

“남작도 그렇고, 모건 대표도 그렇고. 여우처럼 교활한 놈들일세. 그 점은 진즉 알고 있었지만, 둘이 한배에 탈 줄은 나도 몰랐다네.”

“허허.”

록펠러는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는 고개를 돌려서 모건과 로스차일드 남작이 있는 연회장을 바라봤다.

“정보력이 뛰어난 이 왕자님께서도 예측하지 못하셨다는 뜻이로군요.”

“저 둘이 모종의 거래를 했으니까. 내가 어찌 알았겠나?”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아주 낮은 확률로 둘이 손을 잡을 수도 있다고 예상했긴 했다.

나는 급히 지난날을 회상했다.

‘이전에 모건이 내게도 비슷한 제안을 한 번 했었지.’

연방 준비위원 자리를 하나 따로 빼 주겠다고는 유혹했었다.

영구적인 몫은 아니고 처음 한 번만.

모건의 제안에 나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며 확답하지 않았는데.

이에 조바심이 난 그가 남작과 협상을 한 모양이다.

“이거, 저 두 놈에게 아주 제대로 당했군요. 반독점법 소송 판결이 코앞에 다가오지만 않았어도······ 이리 허무하게는 당하지는 않았을 텐데.”

맞다.

록펠러는 모건과 함께 뉴욕 자본가들을 이끌어 가는 미국의 양대 산맥이었다.

최근에 본업인 스탠다드 오일이 독과점 소송에 휘말리며 정신을 살짝 놓은 상황.

만약 정상적인 컨디션이었다면.

그랬다면 록펠러는 진즉 이를 알아채고 내게 경고했을 거다.

“많이 화가 난 모양이군. 평소에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자네가 오늘은 유난히도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보면 말이야.”

씩씩거리는 록펠러를 향해 살짝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자 록펠러의 눈매가 더더욱 가늘어지며 살짝 무서운 표정을 지었다.

“그야······ 아, 아닙니다.”

현재 이 자리에는 나와 록펠러뿐이다.

뒤에 수행비서들이 따라오곤 있으나 어디까지 우리 둘만 있는 상황.

엄한 같은 편에게 화를 내고는 싶지 않았는지, 록펠러는 표정을 다시금 풀며 살짝 신세 한탄을 했다.

“하! 저도 늙었나 봅니다. 이리 기만당하면서도 가만히 있어야 한다니. 천하의 록펠러가 이리도 한심한 모습을 보일 줄이야.”

록펠러가 한참 투정을 부릴 때.

등 뒤에서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이 왕자님. 그리고 록펠러 대표.”

7인회 멤버 중 한 명이었던 와버그.

그가 나타났다.

와버그는 기분 나쁜 미소를 연신 머금으며 나와 록펠러, 우리 둘 사이에 껴들었다.

“두 분,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와버그 대표.”

“오랜만이로군.”

록펠러는 살짝 긴장하는 표정을 취하며 와버그의 접근을 경계했다.

나는 그런 록펠러와는 다르게 살짝 미소 지으며 그의 고용인 이름을 언급했다.

“그래. 알프레드는 잘 지내는가?”

“아! 제 고용주께서는 아주 잘 지내고 계십니다. 오스트리아 황태자의 총애를 어찌나 받으시는지 그분께서 제 고용주를 항상 곁에 끼고 조언을 구하시더라고요.”

와버그는 내 곁으로 다가오며 계속하여 깐죽거리는 태도를 유지했다.

“그나저나 이 왕자님. 그리고 록펠러 대표. 어렵게 7인회 모임이 다시금 열렸는데, 왜 함께 어울리지 못하시고 따로 겉도시는 것입니까?”

“······.”

“······.”

“하긴, 그리 뒤통수를 맞으면 저라도 화가 날 만도 할 것 같습니다. 멀찍이서 떨어져서 불구경하는데도 이리 빡치는데 말이죠.”

와버그는 로스차일드 본가 가문의 사람이다.

JP모건과 제임스 힐, 로스차일드와 야곱 쉬프가 한편을 먹으며 서로 대립하고 있었을 때도 중립을 지키고 있었던 인물.

“그렇지 않습니까? 낄낄-”

작금의 상황을 살살 긁으며 록펠러와 나를 자극해 댔다.

이에.

“참으로 경박스러운 언행이로군. 앞에 계신 분께 부끄럽지도 않은가?”

록펠러가 발끈했다.

와버그의 의도에 당한 거다.

“아, 예. 삼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나저나 이 왕자님. 재미나지 않습니까? 저 둘.”

나는 가만히 침묵하며 와버그가 무슨 말을 하나 경청했다.

그러자 와버그는 살짝 재미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과거의 일을 꺼내 보았다.

“이전 회의 때까지는 서로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이었는데 말이죠. 기억하실 것입니다. 각자 상대방을 두고 사냥개와 늙은 퇴물 취급하며 뒷담화를 까지 않았습니까? 바로 여기 있는 우리에게 말입니다.”

와버그는 피식 웃으며 남작과 모건이 있는 연회장을 힐끗 쳐다보았다.

아까 록펠러가 했던 행동과 비슷해 보였다.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입니다. 저 둘이 손을 잡을 줄이야. 빈에서 떠날 때만 해도 상상조차 하지 못할 그림이었는데 말입니다. 간만에 제 똥구멍이 쫄깃해지는 것 같습니다.”

경박스러운 와버그의 언행에 록펠러가 다시금 발끈했다.

나는 손으로 록펠러를 제지했다.

“자네 [고용주]의 먼 친척이기도 한, 우리 로스차일드 남작님께서 이번 회의를 위해 아주 많은 준비를 하셨으니까. 재미있을 수밖에.”

나는 다시 한번 와버그의 위치를 상기시켜주며 그의 고용주 이야기를 꺼내 보았다.

“그나저나 자네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는군. 자네 고용주께서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뿌듯해하겠구먼.”

이번에는 발끈한 것일까?

와버그는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하지만 이내 평정심을 찾으며 내게로 조금 다가왔다.

“이 왕자님.”

“듣고 있네.”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와버그는 한쪽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나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를 내며 내게 속삭였다.

“이대로 가만히 당하고만 계실 것입니까? 저라면 말이죠. 갖지 못한다면······.”

그 말을 끝으로 와버그는 손에 쥐고 있던 잔을 놓았다.

이어 유리잔이 바닥에 닿고 파편이 튀었다.

그가 들고 있던 샴페인은 곧 내 구두에 튀었고.

“아이고. 죄송합니다. 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 제가 술에 취해서 그만.”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는 와버그.

주위에서 나의 신변을 지키고 있던 내 사람들이 급히 내게로 달려왔다.

“괜찮으십니까? 전하.”

“괜찮네.”

최현우가 건네 준 손수건으로 샴페인을 닦아 낸 후 이를 와버그에게 건넸다.

재미없는 1인극은 이쯤에서 끝내라는 경고 표시기도 했다.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하네. 별 도움 안 되는 조언질은 이쯤에서 끝내도록 하게.”

“······예. 그리합죠.”

“그럼 남은 연회 즐겁게 즐기고, 내일 회의 때 또 보도록 하세나.”

* * *

“이 왕자님. 안에 계십니까?”

늦은 밤.

록펠러가 찾아왔다.

모건의 별장이었기에, 그의 수족들이 사방에서 우리를 감시하고 있었지만.

초조함과 분노가 가라앉지 않았기에, 결국 내가 있는 숙소로 다시금 방문한 것이다.

“쉬시는 데 제가 방해한 것은 아니겠지요?”

“아닐세. 그나저나 자네, 잠이 오지 않는가 보군.”

“예.”

록펠러는 위스키 한잔을 내게 건네며 테라스로 향했다.

“왕자님께서도 잠이 안 오시나 봅니다.”

“자꾸 한 단어가 생각나서.”

록펠러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 그렇지.

와버그가 너무 작게 말해서 록펠러는 이를 못 들었나 보네.

“본의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와버그가 내게 힌트를 줬네. 가지지 못하면 부숴 버리는 것이 낫다고 조언해 주더라고.”

“예? 와버그가요?”

록펠러는 잠시 턱을 잡고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며 와버그의 조언이 일리 있다고 동의했다.

“하긴, 모건 또한 그 점을 제일 염려할 것입니다. 아까도 그렇지 않습니까?”

록펠러는 회의를 잠시 쉬자는 내 제안을 거론했다.

“맞네. 우리가 판을 엎을 것을 두려워하여 우리에게 생각할 시간을 준 것이겠지.”

나는 곧 다가올 미래를 예상해 보았다.

“조만간 모건 측에서 연락이 올 것일세. 무엇을 원하냐고 물으면서.”

나는 고개를 돌려 록펠러를 바라보았다.

“자네는 무엇을 원하는가?”

“저는 없습니다.”

“없어?”

“예.”

록펠러의 단호한 대답에 나의 미간이 좁혀졌다.

“모건의 손에 중앙은행이 들어가는 것은 용납할 수가 없으니까요. 우리 모두의 노력으로 공황을 막아냈는데, 어찌하여 과실은 저자만 차지한단 말입니까?”

평소에는 이성이 앞서는 록펠러였는데 말이다.

오늘따라 감성적이다.

‘최근에 힘들어서 그런가?’

록펠러는 현재 코너에 몰린 상황이다.

미국 중앙은행이 경쟁자인 모건의 손에 떨어지게 생겼고.

그의 주축 사업인 석유 사업은 반독점법 소송으로 갈가리 찢어지게 생겼으니까.

멘탈이 나가지 않은 것이 용할 지경이다.

그러니 저리 감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겠지.

“하지만 명분은 모건의 손에 있다네. 그것도 많이.”

“······.”

“루스벨트 역시도 지난날 공황을 막아냈던 모건의 공을 높이 사고 있네. 그 때문에 월가 주도의 연방은행 입법 움직임에 딱히 제동을 걸지 않고 있지.”

“왕자님.”

록펠러가 목소리에 힘을 주며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모건에게 한 번 얕보였습니다.”

“그래.”

“더욱이 반독점법 소송 심판이 눈앞입니다. 그 소송에서도 패배한다면 저들은 더욱더 우리를 얕볼 것입니다.”

그동안 모건과 록펠러는 상부상조했다.

금융 분야에서 경쟁하는 사이였지만, 이리 서로 칼을 겨누지 않고 단합모임을 함께 했던 이유는 하나다.

서로의 세력이 비등비등하기 때문이다.

‘반독점법 패소는 록펠러에게 아무런 영향이 없는데 말이다.’

록펠러는 이를 모르고 있다.

그렇기에 반독점법 이후 자신의 세력이 크게 약화될까 우려했다.

“월가는 정글입니다. 강자가 약자를 사냥하는 곳이지요.”

“······.”

“연방은행 입법 건에 이어, 반독점법 소송까지 밀린다면······ 모건과 로스차일드는 우리를 만만하다고 여길 것입니다.”

맞다.

때를 만난 피라냐처럼 물고 뜯고 난리를 부리려고 하겠지.

더는 자신들을 위협하는 경쟁자가 되지 않도록 숨통을 끊고자 할 거다.

“나 또한 그리 생각하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연기를 하나 할 생각인데 말이야.”

“어떻게 말입니까?”

“약점을 보이면서 상대방이 우리를 물어뜯을 수 있도록 행동할 것일세. 그리고 가장 중요한 순간에. 쾅-”

나는 주먹을 꽉 쥐며 허공에 한 대 쥐어 패는 동작을 취했다.

“카운터를 날리고자 하네.”

다시금 록펠러를 바라보았다.

“그러기 위해선 록펠러 대표, 자네의 협조가 필요하네만. 내 제안을 허락해 줄 것인가?”

“들어 보고 생각하겠습니다.”

나는 쓱 앞에 지어진 별채를 바라보았다.

그 안에는 여러 손님이 현재 잠을 자고 있었는데.

그중에는 록펠러하고도 친한 인물이 하나 있었다.

“그대에게 알드리치 의원은 어떤 인물이지?”

나의 뜬금없는 질문에 록펠러가 눈알을 팽글팽글 돌려 댔다.

무언가 계산을 한참 한 후, 록펠러가 이내 입을 뗐다.

“몇 없는 친구이자, 정치적 동지입니다. 제 며느리의 친부 되는 인물이기도 하지요.”

“모건의 계획을 뒤흔들 아주 좋은 묘수가 하나 있는데······ 그 과정에서 자네와 알드리치 의원이 다칠 수 있다네. 아! 물론 나도 그렇고.”

“······.”

“살짝 자해하는 느낌인데 말이야. 자네만 괜찮다면 상상에 그치지 않고 실행까지 해 볼 생각이네.”

록펠러는 팔짱을 껴 댔다.

살짝 방어적인 자세를 취한 것이다.

“[정경유착]이라는 키워드를 사용하실 생각이십니까?”

“맞네. 현시대 미국 대중을 홀릴 만한 키워드로 이만한 것이 없으니까.”

명분이 확보된다면, 루스벨트 역시 두손 두발 다 벌리고 이번 사건에 참전할 거다.

그리되면.

모건이 제안한 연방준비은행 법은 절대로 의회를 통과하지 못한다.

‘결국에는 다시금 우리들의 도움이 필요해질 것이고.’

그리되면 좀 더 내게 유리한 법이 새로이 입법될 거다.

“아! 당장 결정하라는 말은 아닐세. 자네가 반독점 소송에서 지게 된다면, 이후에 로스차일드와 모건이 우리를 더더욱 물어뜯는다면 사용할 최후에 비기니까.”

정경유착 프레임이 생기면 반독점법 소송에서 록펠러가 굉장히 불리해진다.

록펠러는 이를 잔뜩 염려한 표정이었다.

나는 이 점을 상기하며 지금 사용할 타이밍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우리도 반격해야 하지 않겠는가?”

“······.”

“나는 미 대중을 선동하여 판을 엎을 생각이네.”

7인회 구성원 모두가 상처를 입겠지만.

발행되는 기사 제일 앞단에는 모건이 있을 거다.

현시대, 뉴욕의 자본가를 대표하는 이가 누구인가?

바로 JP모건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 사건]이 터진다면?’

모건은 어찌 될까?

아마 현재에 록펠러보다 더 고통스러울 거다.

나는 앞으로 곧 펼쳐질 가까운 미래를 상상하며 록펠러에게 물었다.

“뭐 나야, 모건 위주로 연방준비은행이 세워지든 말든 상관이 없는 상황이네만, 자네는 다르지 않은가?”

“······.”

“그러니 최후의 비기를 알려 주는 것이네. 스스로 자해한다면 모건의 독주를 막을 순 있네.”

록펠러는 한참을 생각했다.

내가 말한 여러 조건을 상기하며 록펠러가 두 주먹을 꾹 쥐었다.

“일단은 반독점법 결과부터 보도록 하죠. US 스틸과 스탠다드 오일의 재판 결과가 올겨울을 넘기지 않는다고 하니, 이를 지켜본 후 결정하겠습니다.”

내 예측에 따르면 스탠다드 오일 소송은 100% 패소한다.

US 스틸 소송은 30% 정도의 확률로 패소하고.

‘모건은 제 기업을 지키고, 록펠러는 이를 해 내지 못한다면······.’

록펠러가 아주 돌아 버릴 텐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록펠러의 반응을 존중했다.

“그동안 나는 지난번에 이야기해 둔 여론조사 기관이나 매입하겠네. 앞으로 우리가 행할 행동에 도움이 될 것이니까.”

“예.”

거대한 사냥감을 잡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큰 노력을 들여야 한다.

모건과 로스차일드.

둘을 상대하는 일이었기에, 나는 신중에 신중을 기할 생각이었다.

아주 깊게 함정도 파면서.

< 알드리치 플랜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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